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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봉사의 기쁨 / 창 39:1~6, 롬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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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봉사의 기쁨(2월2일)
본문 : 창세기 39:1~6, 로마서12:3~8
설교 : 임정석 목사 (대구평강교회)


오늘 창세기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요셉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든지 믿음과 용기를 잃지 않아
끝내 승리한 주인공입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향하여 흔들리지 아니하는 믿음을 가진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또한 항상 기도하며 살아간 기도의 용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점점 감당하기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기도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형편이 점점 어려워져도 거기 주저앉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점점 추락해 가는 삶의 위기 속에서도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열심내었습니다.

바로 이점이 오늘 우리가 요셉에게서 배워야 할 아주 중요한 점입니다!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왔습니다만!
종의 신분인 요셉이 오히려 주인 보디발의 집을 위해 봉사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어떠한 자세로 일했는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신분이 종이니까 그저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주어진 일만 하며 살았다면!!
그가 보디발의 집을 위해 봉사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비록 신분은 종이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자신의 일처럼 했습니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고.. 믿음으로 살고.. 기도하며 살았는데도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요셉은 감옥 속에서 신세나 타령하고 한탄하며.. 세월 보내지 않았습니다!

거기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쉬지 않았습니다!
무엇 보다 그 어려운 감옥 속에서도 남을 돕는 일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요셉에게 많은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요셉이 봉사한 보디발의 집에도 많은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봉사한 사람에게도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봉사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 교회 고등부 학생들은 동계수련회를 하면서.. 둘쨋날.. 
대구역 앞 쪽방(판자촌)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거기서 우리 학생들은 물론 고생은 했지만.. 고생보다 값진 봉사의 기쁨을 만끽하였습니다.
그때 그 봉사활동에 참석했던 한 학생은 이렇게 회고(回顧)했습니다.

"우리 2조는 수련회 둘째 날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요셉의 집」으로 출발했다.
  요셉의 집에는 우리 조 5명이 갔는데 봉사는 엄청나게 하고 왔다.

  그곳에는 독거(獨居)노인들과 실직자 그리고 쪽방 거주자들까지 200여명이나 살고 있었다.

  우리들은 처음 조금은 망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심히 일 했고 칭찬도 많이 들었다.
  그분들은 일찍부터 오셔서 밥을 드시고는 한 분 한 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우리들은 주방 한쪽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설거지는 정말.. 끝이 없었다. 
  그분들은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적어 긴 줄을 서서 점심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들을 위한 봉사를 완벽하게 감당하였다. 
  식사를 배식하고.. 물도 날라 드리고... 설거지도 완벽하게 감당한 것이다. 

  모든 정리를 끝내고 이번에는 「쪽방」이라는 곳엘 가서.. 다른 조와 함께 봉사했다. 

  처음에는 쪽방이 무슨 방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난 후에는 가슴이 무척 아팠다.
  정말 여러 번 느꼈지만 이번 봉사활동은 너무 좋았다. 
  쪽방에서 가져간 옷도 나눠주고 그들의 방을 청소도 하면서 나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쪽방이란 동네는 입구부터 사람 사는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게 생긴 곳이었다.
  맨 처음 그곳으로 갈 때 우리는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좁은 골목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허름한 옷을 입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이 추운
  날씨에 맨발로 나오셨다. 할아버지가 나오신 방을 보니 정말 사람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었다. 그곳에 이불을 몇 겹 깔아 차가운 기운을 막고 지내고 
  있었으며, 바닥을 보니 시멘트 바닥 그대로였다. 
  이 모습을 본 우리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황당해 하였다.
  "아니, 사람이 이런 곳에서도 살 수 있다니..."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쪽방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갈 때 쪽방 간사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을 보고 왜 저 사람들은 일도 하지 않고 사는가?   
  왜 삶을 포기하고 사는가? 하면서 손가락질을 할 때 우리들이 나서서 노숙자들의 심정과
  저들이 처한 환경들을 대변해 주고 이해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도 그동안은 길거리에서 누어있는 사람들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그들을 눈으로 보았고 그들의 상황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도우며 살아가고 싶다. 
  이번 동계수련회는 남들이 해보지 못한 봉사를 경험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으며
  이런 귀한 봉사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봉사란 이처럼 할 때는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하고 나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일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사는 보람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이란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끔..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봉사가 좋은 일임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고 또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좋은 일이라도 쉽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있고 또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억지로라도 봉사하면 다 좋은 일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래도 자기하고 잘 맞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봉사하면
봉사가 더 신나고 효과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의 한 여집사님이 운전하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여 입원하게 되었는데
입원한 그 다음날 구역식구들이 대거 병원에 문병 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나자.. 구역식구들은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역식구 여러분,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제가 여기 입원한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러니까 누가 하는 말이...
"글쎄 내가 어제 새벽기도회 때 기도하다 말고 두리번 거리며 누가 왔나 안왔나 살펴보는데
당신이 안보이질 뭐야!
그래서 급히 집으로 전화해 보고는.. 부랴부랴 구역 식구들에게 맨 먼저 알렸지..."

한참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 옆에 있는 다른 여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조용히들 하십시오. 왜 이리 소란합니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수다떨고 있을 땝니까?"
그러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몸져 누워있는 집사님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한 여집사님이 누워있는 환자 집사님에게 조용하지만 무게있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이번주일 주방 봉사시죠? 걱정 마세요. 제가 여기 오기 전 다 조치해 놓고 왔어요.
그러니 마음 푹 놓고 조리 잘 하시다가 퇴원하세요."

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다른 한 여집사님이 소리쳤습니다.
"아니, 집사님들, 이러고만 있을 때요?
그래, 그때 교통사고 날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이것을 먼저 정확히 파악하고 나서
어느 쪽이 잘못인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야 할게 아닙니까?
우리가 집사님을 도우려면 제대로 도와야 합니다. 자 집사님 말해 보세요.
사고날 당시 날씨는 어땠습니까? 앞차와 뒷차와의 거리는요?
안전거리는 유지했었습니까? 운전할 때 안전벨트는 매고 있었고..
좌우전후 살피면서 운전했겠지요? 그리고 보험은 들어있습니까?"

다들 이렇게 한마디씩 하고있는데 한 여집사님은 입을 꾹 다물고는
병실 내 어수선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또 쓰레기통를 비우고는 이어서 화장실 청소까지
깨끗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 여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보니 우리 구역 식구들은 모두들 받은 은사가 참으로 다양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말해 볼까요?..
저 집사님은 새벽기도회 시간에 누가 왔나 안왔나 척 살펴보고는.. 비상 연락을 취했으니
관찰의 은사와 연락의 은사를 받은 것 같고..
저 집사님은 이렇게 소란한 가운데서도 눈물 글썽이며 손잡고 위로하고 있으니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받은 것 같고..
저 집사님은 아무도 생각하기 어려운 주방봉사 명단까지 다 생각하고 조정해 놓았으니
눈치(sense)의 은사와 조치(措置 administrator)의 은사를 겸하여 받은 것 같고..
저 집사님은 교통사고 상황이 어떻고 보험이 어떻고 하는 것을 보아서
상황판단의 은사와 다스리는 은사를 받은 것 같고..
저 집사님은 이 난리 법석 떠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쓸고 닦고 하는 것을 보아
섬기는 은사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 예입니다..마는 이렇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
이것이 바로 받은 은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렇게 서로 섬기는 봉사는 은사대로 하면 좋다는 것으로서
오늘 신약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 본문을 다시 한번 더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2장 6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는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른데 그 다른 은사들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에게서 부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달 마지막 토요일인 25일 저녁에는 항존직 피택자들의 MBTI 검사가 있었습니다.
이 MBTI 검사라고 하는 것은 성격류형검사로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는 것인데
왜 제가 항존직 피택자들에게 이러한 검사를 실시했는가 하면
교회 지도자가 자신이 어떤 성격(性格)의 사람인가를 스스로가 잘 알아야!!
교회 봉사도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은사(恩賜)검사도 실시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이것도 다 항존직 피택자들이 자기 스스로의 은사까지도 잘 파악하여
자연스럽게 교회 봉사를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은사란 말이 나왔으니 아무래도 은사에 관한 말씀을 좀더 살펴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서
성경 한군데 더 보겠습니다. 신약 고린도전서 12:4-11입니다. 신약성경 278쪽입니다.
다 같이 찾아서 한목소리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은사(恩賜)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職任)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역사(役事)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지금 함께 읽은 이 은사들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것으로서
왜 이런 것을 나눠주었는가 하면.. 교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려고 나눠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 부분의 7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살펴 본 여러 은사들을 보면 이것은 직분하고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선물로 주시는 은사로서
결국은 이 은사가 자연스럽게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시는가 하면
교회 공동체가 유익하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교회공동체를 잘 섬기라고 이렇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다는 것인데
사람들 중에는 이것도 모르고 무슨 은사 받았다고 재거나 뻐기고
또는 받은 은사를 남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데 있어서 은사가 중요하고, 그래서
각자가 받은 은사를 따라 잘 봉사하면 교회공동체가 든든히 서게 되는 것은 틀림없지만
교회 공동체가 서게 되는 것은 받은 은사만 가지고 봉사해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직분(職分)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말하면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가 하면..
은사(恩賜) 따라 봉사해야 하고.. 직분(職分) 따라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사(恩賜)는 교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한다면
직분(職分)은 교회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즉 은사(恩賜)와 직분(職分)이라는 것을 놓고 볼 때
교회 공동체 가운데는 특별한 은사는 받았으나 직분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직분은 받았으나 특별한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랬을 때 사람들은 쉽게 이렇게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어떤 사람이 특별한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직분을 주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사람이 직분은 중직을 맡았는데 뭔가 특별한 은사를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것은 사실 별개입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주시는 것으로서 선물이기 때문에!!
주시면 받을 수 있지만 안주시면 받을 수 없으므로
그가 왜 은사를 못 받았으냐.. 이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이 직분을 받은 후에 그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어떤 특별한 은사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간청할 수는 있겠습니다 마는!!..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받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며 직분과 은사 그리고 봉사라는 시각에서 볼 때에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그것이 결국 교회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직분이란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성경말씀을 좀더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같이 성경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4:11-12입니다.

신약 313쪽입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자, 지금 함께 읽은 직분의 명칭을 보면.. 은사의 명칭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바로 이것이 직분이라는 것인데 이 직분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시피 왜 주셨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기 위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두 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하나는 은사로서 은사는 교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직분으로서 직분은 교회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은사와 직분을 가지고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세워가는가?
어떻게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를 잘 세우는 것인가
이것이 과제로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각자가 좋은 은사(恩賜)를 받았다 할찌라도 고린도교회 공동체 처럼
제잘난 맛에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하면서
분쟁하는 공동체가 되고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면!!..
그 받은 은사가 교회 공동체에 무슨 유익이 있으며!!(고린도전서 1:4-12, 12:5, 12, 26, 40)...

또 아무리 각자가 귀중한 직분(職分) 특히 중직(重職)을 받았다고 할찌라도...
빌립보교회 공동체 속의 유오디아와 순두게 처럼 각 개인은 훌륭하고 귀한 분들이나
저들이 마음이 나뉘어져 한마음이 되지 못하여 교회에 덕과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 직분이 교회 공동체에 무슨 유익이 있는가 말입니다!!(빌립보서 4:1-2).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4:7-11 말씀입니다. 신약 381쪽입니다.
여기도 한목소리로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恩惠)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奉仕)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奉仕)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이 말씀 가운데는 아주 중요한 진리가 4가지가 감추어져 있는데
첫째는 "정신차리고 기도하면서 은사와 직분을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가 경험적으로 한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명색이 자타(自他)가 공인(公認)하는 수제자였지만
정신차리고 기도하지 않음으로 결국 다 무너지고 말았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은사도 좋고 직분도 좋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는 가운데서의 은사나 직분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실례를 고린도교회 공동체에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공동체를 향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양한 은사를 받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아
너희는 너희가 받은 은사 그것 보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그 더욱 큰 은사란.. 사랑의 은사이다!!"

그래서 받은 은사가 크건 작건 간에.. 받은 직분이 중(重)하던 경(輕)하던 간에
서로 열심히 사랑하면서 그 받은 은사와 직분을 감당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무슨 은사를 받았든지 선한 청지기적 자세를 가지고 봉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무엇입니까?
청지기란 남의 재산을 대신 맡아서 관리해 주는 사람을 청지기라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은사를 받긴 받았는데.. 남들이 받은 은사와 비교해 보니 내가 받은 은사가 시원치 않아요
그래서 나는 그 은사를 신통치 않게 여기고 하챦게 여기고 있는데...
그러지 말라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은사가 네거냐? 아니다!!
그 은사가 비록 네 눈엔 대단하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은사는...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네가 받은 그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그 은사를.. 내 대신 잘 관리해라!!
이런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은사를 받았든지 선한 청지기적 자세를 가지고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결론적 말씀으로서.. 은사도 직분도 다 하나님께로 나왔으므로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께만 영광 돌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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