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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보다 더한 것? /아가 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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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특강
푸른초장교회(무안 청계)


          사랑보다 더한 것?


말씀/ 아가서 8:6,7  "...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6,7).


  오늘은 사랑 이야기를 잠깐 하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철학자, 문인, 사상가, 종교인들, 그리고 평범함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랑이란 말을 써 왔습니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랑에는 남녀의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의 사랑, 그리고 아가페의 사랑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랑도 하찮은 사랑은 없습니다. 모두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아내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사랑합니다. 목자를 사랑하고 양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인간은 사랑하며 사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성경도 보십시오. 구약부터 신약까지 면면히 흐르면 꿰뚫고 있는 주제와 사상이 사랑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사랑으로 인해서 멸망 받을 인생들이 구원을 받게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므로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계시록에 가면 신랑과 신부의 사랑의 혼인 잔치로 피날레를 맞이합니다.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사랑 없이는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일 뿐입니다. 성경의 성경이라고 하는 아가서는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8:6,7).

사랑은 어떤 것보다도 강하며.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에서 사도 바울도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1,2)

  '방언'은 외국어를 비롯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아름답고 유창하고 논리 정연한 언어를 가리킵니다. 또 '천사의 말'은 천사들이 사용하는 천상의 용어로서 최고의 경지에까지의 언어를 말합니다. 이런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이런 것들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알고, 모든 미래사를 내다 본다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능력 얼라나 놀랍습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이런 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영어로 'Im nothing'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 3절을 보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구제하고 희생하며 봉사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이는 영어로 'I gain nothing'. 아무리 애를 쓰고 수고해도 얻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하고 나서 그런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러한 일 자체를 무익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없이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 모든 삶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바탕을 이루는 생명입니다. 이 사랑이 말의 의미를 주고, 행동에 의미를 주고,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이 사랑을 놓쳐버리면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 하면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귀한 것이 없습니다. 가치도 메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도 진보하고 변화되고 정말 의미 있으려면 사랑이 모든 삶의 동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합니까? 어디서 배웁니까? 이 사랑이 어디서 옵니까?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랑이 아닌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그런 사랑은 무익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고,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환경과 어려운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독일의 위대한 실존철학자인 칼 야스퍼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다니던 시절, 캠퍼스에서 아름다운 유태인 여자 게르투르트 마이어를 만났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야스퍼스는 한 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녀 역시 소문난 천재인 그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마음껏 사랑을 하고 학문을 연구에도 몰두한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둘이 졸업을 하고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스퍼스는 모교의 철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주위의 친지들 모두가 부러워하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얼마가지 않아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고 유태인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야스퍼스의 아내인 게르투르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대학 당국에서 야스퍼스를 불러 명령을 하였습니다.  "야스퍼TM 선생, 지금 우리 조국은 유태인들을 분리하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선생의 아내가 유태인인 까닭에 아내와 이혼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떠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야스퍼스는 참으로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는 철학으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정교수인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아내와의 결혼한 것을 지상 최대의 행복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명령은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침착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저의 주된 관심은 실존 철학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삶의 심연과의 합일을 말하는 철학입니다. 아내는 제 삶의 심연과 같은 존재입니다. 모교를 사랑하지만 아내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실례합니다".
  그렇게 미련 없이 교수직을 버렸지만 야스퍼스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슬이 시퍼런 나치 정권은 그에게 일체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술이나 강연활동도 ,심지어는 여행도 금지 시켰습니다. 그나 너무나 유명한 학자였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존재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숨통이 막힌 야스퍼스는 참으로 못견뎌 하였습니다. 보다 못한 그의 아내는 자신을 버리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야스퍼스는 오히려 그런 아내를 야단쳤습니다. "어허, 몇 번을 말해야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이요. 다시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 마시오."
그러면서 오히려 아내를 위로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의 설득으로 칼 야스퍼는 아내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할 결심을 하고 당국으로부터 스위스 여행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내는 독일에 남아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자 야스퍼스는 망명마저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끝까지 아내를 보호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8년 동안을 그는 그림자처럼 아내와 붙어 다녔습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었습니다. 초인종 소리에도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혹시 나치가 아내를 수용소로 끌고 가기 위해서 오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야스퍼스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독일이 항복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서로 얼싸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랑의 빛나는 승리를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야스퍼스를 나의 모습으로 그의 유대인 아내를 볼품 없이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아내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남편을, 자식을 ,가족을 친구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야스퍼스가 이처럼 사랑의 가치관이 없었더라면 사랑하는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고 행복하게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다면 그는 개똥철학자에 머물렀을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이 철학자 야스퍼스를 진정 위대한 철학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자였습니다. 그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이 시대를 보면 정말 신앙생활하기 어렵습니다. 말씀이 흘러 넘치고 믿음이 흘러 넘치지만  승리하는 크리스천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생명력 있는 크리스천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풍요를 누리며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크리스천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랑문제라고 봅니다. 홍수가 나도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참다운 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찾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믿음다운 믿음. 사랑다운 사랑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모두가 이기적이기 저기 중심적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I am nothing' 과 'I gain nothing'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자'이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이런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리 안에 중심을 차지하지 않으면 다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소중함을 알고 그 사랑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 참 된 사랑이란 것은 말로서만 아니라 그 것을 위해서 자기를 비울 줄도 알고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야스퍼스가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 어떤 것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문의 영광을 사랑하였습니다. 교수로서 명예, 철학, 모교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스위스로 가서 안전하게 살고 싶은 자기 사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 사랑은 죽음의 위협도 넘어트릴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랑은 어떤 나치의 핍박과 위협도 꺼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로 살고 싶습니까? 어떤 핍박에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고 싶습니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믿음이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고 합니다. 사랑은 어떤 불도 꺼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more than… more than … 그 어떤 것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앞에 모든 신앙이 무너지고 깊은 좌절 속에 낙향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질문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더 사랑하는 것. 예수님은 너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공평하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고,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을 요구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넘어졌던 것입니다.  왜 예수님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그물 부친 배까지 버린 그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그 들 안에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었고, 주안에서 출세하려는 세상적 야망의 꿈이 있었습니다. 결국 십자가 죽음 앞에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세상과 주님을 똑같이 사랑해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더 사랑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야스퍼스가 모교 대학 사랑, 가문의 명예, security(안전)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문제는 사랑하지 않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명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을 조금만 더 사랑해도 돈의 욕심을 이길 수 없습니다. 자기 영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영광을 쫓아 살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보다도 사람을 더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기에 세상을 떠날 수 없지만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만큼 절대성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상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요한은 실제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도 환란과 곤고가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이 내 안에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야 하며, 그 분 앞에 언제나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학생 수양회 때 하덕규 가수의 간증을 들으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 분은 가스펠 송 가수입니다. 교수입니다. 가시나무 새 곡이 너무나 좋고 아름다워서 교과서에까지 실렸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여기저기서 오라고 합니다.  그분은 노래를 사랑합니다.  노래하며 살아도 일생을 살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 분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어떤 자인가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자 이며, 하나님보다도 노래를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많은 후배들이 출세를 하면서 교회를 떠나고 크고 좋은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명성에 걸맞게 업그레이드 해 나가며 교만하고 높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탈선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아무것도 아닌 자로 살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한 길로의 오랜 순종을 결단하고 처음 부르신 교회를 떠나지 않고 17년을 섬겼습니다. 어떤 초청이 와도 주일은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종이 되고자 화장실 청소를 하며 아이들 성가대를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에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그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이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 보다 자신이 더 유명해질 수 없기에, 하나님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사랑할 수 없기에, 하나님보다 노래를 더 사랑할 수 없기에 스스로 낮아져서 작은 교회에서 작은 자가 된 것입니다. 헤어질 때도 배웅하는 목자들과 포옹하며 인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분의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이 되었습니다. 돌아서서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영광의 길을 가지만 이처럼 하나님이 숨겨놓은 보배 같은 존재도 있구나....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나는 얼마나 내 영광을 위해서 애쓰는 자인가? 얼마나 나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애를 쓰는 자인가.... 이 모든 사람보다 예수를 사랑해야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 이것이 성숙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잠언서를 8:17절 봅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나리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잠언8:18,19). 사랑처럼 강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면 존재 의미가 생깁니다. 사랑하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가을학기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맛 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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