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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전도대상은 누구입니까? / 갈 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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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갈라디아서2:7-10 
제목 : 당신의 전도대상은 누구입니까?
설교 :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잘 보내셨습니까? 고향 다녀오신 분들은 막히는 길 때문에 고생들 하셨지요? 하여간 여러분과 함께 예배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에 비해서 숫자가 조금 줄어든 느낌을 오늘은 받습니다. 특별히 1부 예배는 좀 심했고, 2부 예배는 그나마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숫적인 차이는 있지만 또 못 보던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어 반갑습니다.

올 신정 들면서 여러분 내가 새해에는 이렇게 살리라 하고 계획들을 가지셨죠? 그런데 한달 지나가 보니까 어떻게 제대로 되었습니까? 어떤 분은 시작은 했는데 작심삼일 이라고 사흘째 끝나버리거나, 어떤 분은 작심삼일은 되니까 사흘에 한번씩 작심해가지고 삼십일 한 사람도 있을 거고 그렇죠? 혹시 올 신정 들면서 품었던 좋은 계획들 아직도 펼치지 못한 분은 이제 내일부터 시작을 다시 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신정, 구정 한해에 두 번씩 설 세는 민족의 혜택을 누릴 수가 있지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는 지혜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2월 첫 주일예배를 드리는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울산교회 2월은 무엇보다 생명 사랑 나눔 축제를 위해서 태신자를 확정해야 하는 달입니다. 오른편의 현수막 보셨죠? 태신자를 정하셨나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현수막이 저렇게 고함을 칠 때에는 여러분들이 귀를 기울여서 잘 들으셔야 될 것 같아요.

오늘 주보를 살펴보신 분들은 9 페이지에 “알고 계십니까? 03년 생명 사랑 나눔 축제를”이란 글을 보셨을 것입니다. 물론 급히 들어오셔서 지금 찾아보는 분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일찍 오시면 미리 살펴보고 예배자리로 나오실 수 있습니다. 구주 대망 2003년 생명 사랑 나눔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할 일은 5명의 태신자를 품는 일입니다.

작년보다 태신자 숫자가 많아졌다고 짐이 더 무거워진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에, 그리고 그 이전부터 품었던 분들을 포함해서 다섯 명 정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부터 태신자 였지만 아직 우리 축제에 나오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그분은 여러분의 태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축제에 나와서 결신자 카드를 냈지마는 아직 계속해서 출석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 사람 여러분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습니까? 마치 아이를 가진 엄마가 그 아이를 배속에서 품고 열 달을 보내는 것처럼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사랑해야 할 영혼들 아직도 있습니다. 한번 품었으면 그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길때 까지 계속해서 사랑과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의 전도대상자는 누구입니까?”란 제목으로 태신자를 확정해야 하는 여러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태신자를 확정하기 위해서 이번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해야 될 첫 번째 일은 무엇일까요?

첫째, 여러분이 올해 복음을 전할 전도대상자를 찾으십시오. 사람은 아무도홀로 섬처럼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도 거기에 우리에게 소중한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고향에는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한 동네에서 결혼한 처지라면 거기에 또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관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일부터 나가는 직장에는 직장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일가친척, 초, 중, 고 대학 동창생들, 동네 사람들, 동호회나 계중 사람들 등을 살피면 우리는 엄청 많은 예비 태신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균 한 사람이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는 200명에서 300명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하고 또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리고 여러분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우선해서 다섯 명을 태신자로 정하는 일을 2월 한달 동안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 다섯 명은 여러분을 통해 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를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 사랑, 풍성을 나누는 이 잔치에 초대하시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마음속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시고 그 다음 생활을 하면서 주위를 사랑의 눈길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분이 꼭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무심히 그냥 다니지 말고 ‘주님, 저사람 입니까? 주님, 이사람 입니까?’ 한번 물어보는 시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및 친인척을 먼저 살펴보십시오. 조부모, 부모, 남편, 아내, 자녀 형제간이 있지 않습니까? 본가 식구, 외가 식구, 형제자매, 사돈댁 식구, 고모 이모댁 식구들, 생각해 보면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웃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를 들어 살면 주인집이 있을 것이고, 또 집이 커서 사는 사람을 세를 주면 세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앞집 사람, 옆집 사람, 뒷집 사람, 통반장 댁, 지역 유지 가운데 여러분이 접근하기 좋은 사람들을 골라보십시오. 반상회 회원도 좋고 배달원도 괜찮습니다. 아이들 친구도 좋습니다. 아이들 친구부모들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지역에서 생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세탁소, 부동산, 슈퍼, 관리사무소, 미장원, 이발소 목욕탕에서 만나는 분들이나 아니면 시간을 내어서 경로당을 기웃거려 볼 수도 있습니다. 거기는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동사무소, 파출소, 병원, 은행, 학교 등도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친구, 동창생, 선후배, 동향사람 올해 좀 챙기겠다. 전번에 작정하고 오지 않은 태신자, 구역원 가족들도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숙직을 하는 직장동료들도 있습니다. 같은 근무 조에 편성돼 야근을 같이 하기도 하고 출장도 같이 가는 동료들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태어나면서부터 여러분과 관계를 맺도록 하신 모든 분은 여러분의 태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사건을 통해서도 관계를 맺게 되는 많은 사람들, 직장이라는 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모두다 태신자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여러분의 태신자 후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전도대상자로 삼을 것인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효과적인 방법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활을 쏘는 곳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활 쏘는 사람들이 아무데나 화살을날리지는 않습니다. 과녁을 보고 그 과녁의 중심을 향해서 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전도를 할 때 무조건 화살을 쏘는 것 같아요. 누군가 맞으면 그가 바로 목표로 했던 대상인 것처럼 기뻐합니다. 우리의 활동에는 계획이나 전략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즉 우리는 어느 특정한 전도대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서 복음을 전하게 되면 마치 그 사람이 우리가 기도해 왔던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활을 쏘아놓고 어디에 꽂히는지 봐가지고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백발백중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성의한 전도 방법일 것입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중대한 과제를 그렇게 되는대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 주간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 둘째는 무엇입니까?

전도 대상자를 정하는 것임이 성경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 대상자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라고 말합니다. 그의 전도의 대상은 무할례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전도의 대상은 비할례자 입니다. 이방인이라고 하는 유대인 바깥에 사람들을 그는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그의 사역을 보면 전도의 대상자를 정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귀신들린 딸 때문에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하나님이 날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답하고 있는 것 보면 그의 마음속에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도에 대해서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합니까?”하면 “누구든지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아무나 오게라고 초대하는 것이 복음이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전도를 하려면 전도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우리 교회가 가장 잘 전도할 수 있는 계층은 어떤 계층이었습니까? 온 교회가 모든 사람을 전도할 수 없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잘 전도할 수는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좀 복합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 구역은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러면 어떤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쉬울 것인지 한번 여러분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전해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지마는 우리의 복음을 받는 사람은 더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것을 전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똑같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서지만 내가 청년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와 주일날 성도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와 집회를 하는 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할 때는 어떻게 전해야 할지는 방법을 달리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위해서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건에서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실 때 공공연하게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불공평하거나 편견 때문이 아닙니다. 인종적인 편견 때문에 가나안 여인 당신에게는 내가 도와줄 수 없다 그런 입장은 아닐 것입니다.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입니다. 결코 배타적이 되고자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갈라디아서는 분명하게 바울은 이방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너희들은 유대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아서 사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할례자의 사역자로 세우신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무할례자의 전도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복음서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 분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것이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있고, 마가복음 있고, 누가복음 있고, 요한복음 있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읽고나서 이제 마가복음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읽어보는데 읽어 보며는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에 안나오는 이야기 거의 없잖아요? 앞에서 다 마태가 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왜 마태복음도 있고, 마가복음도 있습니까?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썻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썻습니다. 계층이 누구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저자를 써 주시고 다른 복음서를 쓰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독자들이 달랐기에 전달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를 고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각의 전도 대상자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전도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혹시 설 명절인데도 딴사람 보기에 대책 없이 낚시하러 가신 분 있습니까? 낚시하러 가는 분들은 보면 명절 설이든지 추석이든지 그것 구별하지 않더라고요, 낮이든지 밤이든지 고기 문다고 하면 달려가더라고 그렇죠? 그러나 그 분들 한테도 배울 것이 하나 있어요. 그렇죠? 고기가 물든지 말든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미끼를 쓴다 그렇게 결심하는 낚싯꾼은 없더라고요. 언제든지 내가 가는 곳에 고기들이 잘 물 미끼를 준비한다. 낚싯꾼들은 그런 입장입니다. 사람을 낚는 낚싯꾼인 우리가 어떤 때는 너무 투박스럽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물든지 말든지 해라. 그런 입장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전도대상자로 정할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 대상자를 정해야 한다는 것은 지상 명령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족속이란 헬라 말은 종족이란 뜻이 담긴 말입니다. “모든 인종 집단”이란 뜻입니다. 각각의 인종집단을 그들 고유의 문화적인 상황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선교사들이 가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할 때도 있습니다. 문화권이 다르면, 여러분 우리들은 사람을 부를 때 어떻게 부르죠? 와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짐승들에게만 이렇게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요렇게 와라 이렇게 하죠. 그런데 만약 그걸 모르고 전도하러 가가지고 아이들 보고 와라 이러면 아이들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끼겠습니까? 문화를 알아야 만이 적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키가 이만큼 크다 이럽니다. 그러면 흑인들은 (손끝을 세워서) 이만큼 크다 이렇게 말합니다. 문화적인 차이가 아닙니까? 그것을 좀 알아야 그들에게 맞는 인종이 다르지 않아도, 같은 한민족 중에서도 사람들마다 다 선호하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사랑해서 만나서 사는 부부들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때는 저 사람은 꼼꼼할 때 안 꼼꼼하고 안 꼼꼼할 때 꼼꼼하다고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내 기준대로 생각해서 그런 거예요. 내가 기준이 되면 꼼꼼할 때는 안 꼼꼼한 것 같고 안 꼼꼼 할 때는 꼼꼼한 것 같습니다. 같은 한국사람, 같은 부부가 되어 살아도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 번째로 여러분이 이 주간 동안 하실 일은 여러분의 전도 대상자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성경 공부를 할 때는 본문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본문을 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들이 속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회에 속해있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성경시대에 살던 사람들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전도를 받는 사람들의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주님은 전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계획을 시초부터 가지고 계셨습니다. 온 세상에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천사들이 전한 것은 이 복음은 만방에 전해질 복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 하셨을 때는 분명히 땅끝을 향한 주님의 선교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유다, 사마리아, 땅끝이라고 하는 이 범주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복음은 먼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야 하고 그 후에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마침내는 유럽으로 까지 퍼져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울산은 어디서든 울산교회를 찾아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15분에서 30분이면 어디서든 우리 교회까지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도착한 다음 주차할 자리를 찾는 데에 동일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도 한 3,40대의 차량들이 돌아 갔어오. 돌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 가운데 아주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내가 다음주일에는 늦지 말아야지. 빨리 가서 쉽게 주찰 할 수 있는 데를 찾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교회 주차장 마련 안하면 나는 이 교회 안 와.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죠? 그것도 말이 되네요. 집에서 교회까지 오는 시간보다 여기 와서 주차할 장소 찾는다고 이렇게 고생해가지고야 누가 울산교회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하여간 우리는 이 문제를 앞으로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 올 한해 지나갔는데도 이문제가 해결 안 되면 담임목사를 비롯해서 삼십 명의 장로님들에게 여러분이 돌팔매를 던져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거리라고 하는 것은 꼭 몇 키로 떨어 졌는냐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서울서 두 곳 개척교회를 하면서 청년들에게 물어봤어요. 미안해서 내가 그냥 인사를 해 봤어요 “야 교회 오는데 좀 힘들지?” 이렇게 물으니까 대답이 그래요 “목사님 두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러는 겁니다. 교회 오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제가 울산 와서 보니 어떤 집사님께서 자기 아이를 우리교회 안 보내더라고요. 그래서 교회가 멀어서 안 보낸다고 그래서 나는 또 굉장히 멀리 있는 줄 알았어요. 차타고 가보니까 딱 5분 걸렸어요. 5분. 물론 그 아이는 몸이 조금 편치를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가까운 교회로 갔어야 할 이유가 있었겠지마는 멀다 가깝다고 하는 것은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것 입니다. 그러면 두 시간 씩이나 되는 거리를 사람들이 옵니까? 그것은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는 동안에 수백 개의 교회를 거쳐 오지만 왜 거기까지 올 수 있습니까? 교회가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또 한 30분 차타고 가도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산다고 해도 다른 교회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다섯 개, 스무 개의 교회를 지나서도 우리 울산교회로 오기도 합니다.

울산교회처럼 큰 교회는 울산광역시 전역을 전도할 대상지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우리 교회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백합부가 있기 때문에 우리 울산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하는 사역 때문에 울산교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양산병원 봉사나 동향원 봉사 때문에 울산교회 교인이 되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북구에 있는 어떤 교회는 무료급식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교인이 10가정이상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지나다니면서 교회가 붙여놓은 플랭카드가,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오게 할 수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전도대상을 인구 분포별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산에 사느냐도 알아야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알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연구한다고 세월만 보내고만 있자 이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꼭 알아야 될 것이 무엇일까요? 각 나이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광역시에는 혹은 중구에는 혹은 복산동 살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울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 젊은 도시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 있고 또 연세가 든 분들이 많이 사는 지역도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과 은퇴한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인 문제는 서로 다릅니다. 청년들은 내세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지만 노인들은 관심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지금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지마는 노인들은 언제 지상 삶이 끝날지 모르기에 영원을 준비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울산사회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집단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지구 담당교역자나 교구장은 그 지역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를 제가 소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3년 동안 우리 지구를 담당한 교역자들이 그 지역에 대한 최고 전문가들이 되도록 제가 도울 것입니다. 구역장들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나 통이나 반에 대해서 아파트 소장이나 통장이나 반장보다 더 소상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누구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그것이 결정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해서 교회가 부흥되는 곳들을 찾아서 간증을 들어보면 한 지역을 그 교회 구역원들이 다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 들고 나는 것, 생일까지도 다 챙길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되어야 여러분 복음 전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금요일 날 그냥 모여서 우리끼리 예배드리고 헤어지면 그들만의 잔치로써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눈을 돌려서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지역 사회를 인구 분포별로도 알아야 하지만 그 지역의 문화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면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아보십시오. 그들의 생각을 받아드릴 이유는 없지만 그것을 이해해 주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전도에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보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성가대에 앉아가지고 좋은 성가대 나오겠습니까? 음치인 사람은 스스로 물러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할렐루야 성가대가 더 좋은 성가대가 될 수 있습니다. 모르면 안돼요. 우리가 전도할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색맹이 아니고 인맹입니다. 사람 인자. 사람을 모르고 전도를 할려고 들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을 알아갈 수 있죠?만나서 이야기 해 봐야 됩니다.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 한국말 할 수 있죠? 그렇죠? 여러분 한국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것 어렵지 않지 않습니까? 그렇죠? 중국사람 만났을 때 “니 하오마”밖에 몰라가지고 문제가 생기지만 말이죠. 한국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이야기 하시더라고요. 나이가 팔십 가까이 되어서 자기가 살지 않은 동네에 복음전하기 위해서 이사를 갔는데 첫날 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 오는데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오늘 밤을 굶어야 될 것인지, 어째야 될 것인지 아주 막막해진 그런 순간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외국에 갔으면 이보다 더 어려울 것인데, 그래도 여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 내가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좋으냐 그래서 위로를 받고 있는데, 또 이웃에 한 사람이 와서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그렇게 해서 관계가 새로 맺어지게 되고 한 사람 전도 하게 되고, 또 한 사람 전도하게 되고, 복음 때문에 이사 갈 수 있는 이런 결단들이 우리한테는 있어야만 합니다.

전도에 실패하는 주유 원인은 우리 전도를 받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안하기 때문이예요. 왜 우리식으로만 자꾸 이야기 하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한번 만나러 오면 질겨, 벗어나기 힘들어” 그렇게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기피감정을 갖지 않습니까? 말하려고 하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만나주시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귀를 먼저 사용을 하십시오. 만나기가 무섭게 입을 사용하지 말고 여러분의 귀를 먼저 사용하라니까요.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어주시면 됩니다.

지난 해 우리가 거금을 투자해서 이 울산지역을 좀 살펴보았습니다. 불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당신 교회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저 그래요 하는 사람들이 60%,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60% 였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거나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도 30% 나 되었어요. 물론 13%, 교회 나는 꿈에도 가기 싫어요. 이런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죠.

우리 울산광역시의 기독교인의 퍼센테이지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그 사람들에게 복음 전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준비가 된, 토양이 준비된, 마음 밭이 씨를 뿌리면 되도록 되어 있는 곳이 30% 입니다. 60% 되는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하면 좋죠?
보통입니다. 듣기 좋아라고 보통입니다 그러지만 난 뭐 관심 없습니다. 이럴 수도 있습니다. 나 교회 없어도 얼마든지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될 것인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 과거에 전혀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과 과거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을 비교를 해 보니까 4:6으로 가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에 지금 안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교회에 가본 사람들이 열명 중에 여섯 명입니다. 한번도 안가본 사람들은 네 명이고. 순수한 이방인들은 아직도 네 명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열 명중에 여섯 명은 교회를 한번씩 가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생각이 듭니까? 들어오도록 하는 일도 우리가 잘 해야 되겠지만, 앞문도 활짝 열어야 되지만 문제는 뒷문을 잘 닫아야 합니다. 뒷문을 잘 닫기만 하며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예수 믿다가 다른 종교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신문에서 가끔 통계가 발표되죠? 울산도 그런 지역 중에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역의 영적인 형편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선교단체처럼 영적지도를 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복음을 전할 지역의 영적 상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신자라고 해서 다 같은 영적상태에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 울산 사람들의 45%는 점쟁이 집에 가본 경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 다니가다도 다니기 그만두고 점쟁이 집에 또 간 사람들도 상당히 나왔습니다. 점친다는 것은 우리사회에 아주 깊이 뿌리 박힌 습성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음력 설 되면 한번 장난삼아라도 한번 해보자 이런 입장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여차하면 점하는 사람들도 11%나 울산에 살고 있습니다. 조상 제사에 대해서는 75%나 되는 사람들이, 네 명중 세 명은 조상 제사 ‘반드시 지내야 되든지, 지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것 지낼 필요가 없다’고 답한 사람들은 울산 시민들의 8%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울산교회가 중구 복산동에 있다는 것 때문에 야 그 동네 이름 잘 지었다 싶었어요. 왜냐면 복산이니까, 예수님께서 팔복을 전한 그런 동산하고 비슷한가 싶어서 복산동 좋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까 복산동에는 점치는 집이 그렇게 많데요. 대나무 꺾어다가 세워놓았습니다. 대나무가 자꾸 시들어 지니까 요새는 플라스틱으로 된 대나무를 세워놓은 집들도 있더라고요. 거기도 영험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옛날에 함월산에서 부터 복산동과 북정동 사이에 시내가 흘러내려 가는데 거기에 맹인들의 회관이 있었고 맹인들이 주로 복점을 쳤기 때문에 이 동네를 일컬어서 복산동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진정한 복의 강수가 흐르는 울산교회를 주신 것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 울산교회는 반드시 복산동 주민들만 아니라 울산광역시 백만 시민 모두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복이 올해 도달할 예비 대상자를 일컬어 우리는 태신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잉태된 아이가 어머니의 태에서 자라듯이 여러분이 기억하고 기도하며 돌볼 여러분의 영적인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결론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왜 우리는 전도대상자를 알기 위해서 수고를 해야 할까요? 시간과 진지한 고민을 하면 더 효율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수록 그 사람과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신자 확정의 달 2월 첫 주간 여러분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2월 첫 주간 예배 보고 월, 화, 수, 목, 금, 토 엿새 동안 여러분이 해야 할 숙제가 있습니까? 뭡니까? 주위를 둘러보면서 2003년도 태신자를, 전도대상자를 찾는 일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누가 하나님의 복 받을 만한 사람인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울산에 살고 여러분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 다섯 명 정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마음 바꾸셔야 됩니다. 이렇게 대상을 정하는 것 그것 성경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공사역 대부분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베드로는 유대인에게로 그 사역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시작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 대상자에 대해서 공부하는 일입니다. 사는 집 형편은 어떤지부터 살펴야 되겠지요? 그 집은 어떤 가정인지, 가정마다 다 문화가 다릅니다. 영적인 형편은 어떠한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올해는 반드시 태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좀 더 세심히 접근해야 합니다.

태신자 세 명 써내기만 했지 작년에 한사람도 건지지 못한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제가 손들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못 건졌거든요. 그리고 여러분은 정직하지 않네, 손을 안드네 보니까. 손 안 들더라도 제가 용서는 하겠습니다. 올해는 우리가 한번 목표를 바로 보고 정 조준해서 사격을 해야 되겠습니다. 좋은 작품 사진을 만들려면 초점이 딱 맞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상에 대한 연구가 없이 전도의 수고가 제대로 결실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2월 첫 주간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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