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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신 손 / 출 17:8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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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윤기용 목사 ([email protected]
하나님이 주신 손
출 17 : 8-16


하나님은 인간에게 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은 그 생각과 행동을 손으로 나타냅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예지적인 것은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손이 있으므로 세상을 정복하고 위대한 문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는 폭군이었습니다. 검투장에서 엄지 손가락을 위로 쳐들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그 손가락을 아래로 숙이면 죽였다고 합니다. 폭군의 손가락의 방향에 따라 생사가 좌우 된 것입니다.

손으로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가령 그 사람에게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손으로 눈을 대신하고 만일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라면 손으로 입을 대신하고 만일 다리가 없다면 손으로 다리 노릇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이 병들거나 어떤 사고로 부자유스러우면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손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헬렌켈러 여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신체 부자유자이지만 다만 손끝의 촉각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귀나 눈이나 입은 손을 대신할 수 없으나 손은 모든 지체의 대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손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손 없이는 못 합니다.

사람은 손이 그 인격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이 부족하면 손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일 처리에 능한 사람을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에 능한 사람을 선수라고 합니다. 선수란 뽑혀진 손이라는 뜻입니다.
집을 짓는 사람을 목수라고 부르고 운전하는 사람을 운전수라고 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가수라고 합니다.
모든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면 수중에 있다고 합니다. 
도와주는 사람을 조수라 부르고, 어떤 관계를 끊었다는 말을 할 때에는 손을 뗐다고 합니다.
괴롭히는 사람을 혼을 내줄 때는 손 좀 봐야겠다고 합니다.
나쁜 일을 그만 두었을 때는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누구를 애타게 기다릴 때는 손꼽아 기다린다고 합니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알아 볼 때는 손꼽아 헤어본다고 합니다.

타향살이 몇 해 던가 손꼽아 헤어 보니
고향 떠나 10여 년에 청춘만 늙어

손은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말해 주기도 합니다.
악수할 때에 남의 손을 꽉 잡는 사람은 아무래도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고
살짝 잡는 사람은 이지적인 사람이며 손을 잡고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잡은 손을 흔드는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이고
손을 잡고 방끗 웃으며, 잡은 손을 별로 흔들지 않는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손은 말도 합니다.
손을 번쩍 들면 "그렇다. 좋다. 반갑다. 맹세한다. 여기 있다"
손을 설레설레 흔들면 "아니다. 싫다. 잘 가라" 하는 말이고
손을 불끈 쥐고 주먹을 들면 "어디 보자"라는 말입니다. 
엄지 손가락을 들면 "제일이다" 라고 뽑내는 말이고
집게 손가락을 들면 "저기이다"라고 가리키는 말이 되고
새끼 손가락을 들면 "꼴지이다"라는 말이 됩니다.
손으로 이마를 짚어도 벌써 말이 되고, 턱을 괴어도 벌써 말이 됩니다.
이렇게 손은 말을 합니다.
             
어떤 약속을 할 때는 손으로 약속합니다.
어린이와 약속을 할 때,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합니다.

(노래로)
새끼 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해

결혼을 약속할 때, 그 증표로 손에 반지를 끼워 줍니다.
불란서의 유명한 황제 루이 9세가 마이가렛(Margaret) 공주와 결혼 할 때, 결혼 반지에 "하나님, 불란서, 마이가렛"이라고 새겨 끼워 주면서, 그 외에 더 사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사랑의 고백입니까? 

로마에 가면 진실의 입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만든 조각상이 있는데 입이 열려 있습니다. 손을 입안으로 넣으면 진실치 못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손이 잘라진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과 그레고리 펙이 이곳에 가서 손을 집어넣고 깜짝 놀라는 장면으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명소입니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손을 넣어 보고 싶지만 정말 손이 잘라지면 어떻하나? 두려워서 잘 안 넣을려고 합니다. 용기를 내서 넣는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넣으면서
두려운 표정을 짓곤 합니다.
저도 한 번 넣어 봤습니다. 다행히 손이 잘라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어떤 손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종류의 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교만의 손이 있습니다.

왕상 13 : 1-6에 보면, 여로보암 왕이 벧엘 광야에 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단을 쌓고 소를 잡아 놓고 왕의 직을 가지고 자부심과 우월감이 가득하여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여로보암 왕의 제사를 막았습니다.
"왕이여 당신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명예를 위하여 교만한 마음으로 드리니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받지 아니하니 그 제사의 단이 무너지며 재가 쏟아지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여로보암 왕은 화를 내며 그를 잡으라고 호령하면서 손을 폈습니다. 그런데 편 손이 갑자기 말라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의 손은 교만의 손이었습니다.

2) 혈기의 손이 있습니다.

민 20 : 1-13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으므로 모세를 원망하고 공박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기를 지팡이를 가지고 백성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백성을 모아 놓고 혈기를 부리면서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손은 혈기의 손이었습니다.

민 16 : 41이하에 보면, 고라를 따르는 사람들이 모세에게 손을 들어 칠 때에
염병으로 재앙을 받아 죽은 무서운 역사가 있습니다. 
왕하 2 : 23-24에 보면
엘리사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조롱하던 소년들에게 암곰이 나와서 그들 중에 42명을 찢어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손이 행한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는 말씀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성찬을 받은 손입니다. 그러므로 이 손으로 부정한 일을 하고 죄 짓는 일에 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상을 조각한 "돌웰드 손"에게 거액의 보수를 지불하겠으니 비너스 여신상을 조각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보수를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거절하면서 하는 말이 "예수님의 거룩한 성상을 조각한 손으로 어찌 이방 신상을 조각할 수 있으리요" 하였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손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의 손은 어떤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1. 기도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최대 위기는 전쟁입니다. 전쟁처럼 위협적이고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전쟁에 능한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협상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족의 위기에 직면한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을 승리하게 한 것은 손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에 올라 갔습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을 때 홍해를 향해 내밀어 길이 나게 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잡은 것은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세는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싸움입니다.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집니다. 
전쟁의 승패가 모세의 손에 달렸습니다.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회의석상에서는 손을 드는 사람에게 발언권이 주어집니다.
치열한 전쟁터에서도 적군이지만 손을 들게 되면, 더 이상 공격을 한다든가 총을 쏘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포로들은 보호를 받게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을 드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항복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고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들지 않는 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애가 2장 19절에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88편 9절에서는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고자 매일 주를 향하여 그의 두 손을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도할 때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구원을 요청할 때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하나님을 갈망하며
"내 손을 들리이다"(시63:4)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의 형통을 구할 때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에스라가 범죄한 자기 백성의 속죄를 위해 기도할 때 자기의 옷을 찢고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기도의 손을 들어 올려야 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기므로 계속 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몹시 피곤하여 손을 더 이상 들 수 없었습니다.
이때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혔습니다.그리고는 모세의 양팔을 한쪽은 아론이, 다른 한쪽은 훌이 붙들어 올려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도하다가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피곤해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기도를 멈추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도 피곤하게 만듭니다.
일이 많은 사람은 정신없이 바쁘게 하여 피곤하게 만들고, 한가한 사람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게 하여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피곤해서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단의 계락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기도하다가 낙망하기도 하고 합니다.
기도하다가 피곤해 질 때도, 그리고 낙망되는 일이 있어도, 더욱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피곤해서 팔을 내릴 때,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믿음의 사람들에게 중보 기도를 부탁해서라도 계속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할 때,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신령한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았을 때 손을 계속 들고 있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했을 때 승리 할 수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람 주변엔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면 아론은 그의 형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돕는 후원자였고, 훌과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두가 훌륭한 지원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의 경우도 누가, 마가,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진실한 후원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수행하며 도와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전도자 무디에게는 생키라는 유명한 음악가가 있어서 무디의 전도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곤 했습니다.

석유왕 록펠러 1세가 자기 일생을 석유 사업에 바치려고 결심한 것은 25세 때였습니다. 그가 석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훌륭한 협력자가 있었습니다.
사무엘 앤드루스라는 영국의 기술자입니다. 그는 제유법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의 협력자는 헨리 후라그라입니다. 그는 조직력과 관찰력에 있어서 록펠러를 휠씬 능가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세 사람이면서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의 협력으로 석유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뒤러는 소묘 900점, 목판화 350점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작은 현대 뉴른 베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기도하는 손' 입니다. 이 그림에는 위대한 사랑과 믿음을 내포한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 공부에 뜻은 있었으나 가난했던 뒤러는 한 친구와 약속을 했습니다. 한쪽이 그림 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친구는 노동을 해서 학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뒤러가 먼저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되자 어느 날 친구와의 약속을 지켜 그 친구를 공부시키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마침 기도 중이었는데 그 기도를 듣고 있던 뒤러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이처럼 손이 거칠어지고 이미 굳어 버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내 친구 뒤러 만은 꼭 화가로서 성공하게 해 주옵소서"
뒤러는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그 거친 손을 스케치했습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기도하는 손'이 탄생한 배경입니다.
친구를 위한 희생적인 봉사가 명작을 남긴 것입니다.

빌리 그레이함의 경우도 그가 한번 전도 집회를 하려면 그의 스탭들이 1년 전부터 현지와 현장을 답사하고 치밀한 준비를 하고, 중보 기도 팀들이 날마다 기도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그를 돕는 사람들이 없다면 빌리 그레이함 역시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도 그를 돕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애굽에서 탈출하였고, 성공적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낼 수 있었습니다.
                                     
영어로 "돕는 사람"을 "헬퍼"(Helper)라고 합니다.
그러나 헬퍼라는 말은 "구조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헬퍼란 단순히 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서 구조해 주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홀은 모세의 헬퍼였습니다.
여러분도 기도의 후원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종일 진행된 아말렉과의 싸움은 결국 해질 무렵 이스라엘의 대승리로 끝났습니다.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훈련된 군사가 있고 무기가 많아서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여호수가 선봉장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심으로 싸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세의 손이 올려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함으로 이긴 싸움이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대승한 뒤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기록하여 기념하고 항상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두고두고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제단을 쌓고 이것을 "여호와 닛시" 여호와의 깃발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닛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깃발입니다.

신앙은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는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 앞길에는 아말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룩한 신앙의 삶을 방해하는 아말렉이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는 유혹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신앙생활의 기쁨을 상실합니다.

그때 우리는 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들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88편 9절에서는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고자 매일 주를 향하여 두 손을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손을 들 때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생각과 의지, 그리고 힘으로 할려고 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손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가득찼던 대표적인 인물을 생각할 때 야곱을 기억합니다. 야곱은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꾀와 의지로 살면서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얍복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꾀를 하나님께 항복시켜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도뼈를 부러뜨렸다는 것은 그의 가장 강한 자아가 깨어졌다고 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환도뼈는 가장 강한 뼈로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떼어
낼 수 없는 뼈"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가 깨어지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만났을 때 손을 들어야 합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앗수르 대군이 쳐들어와 하나님과 자신을 모욕하여 백성들과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함락 직전에 있게 되었을 때,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앗수르의 수십만 대군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습니다.
환난 때 두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시 28 : 2에 보면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했습니다.
손을 드는 자세는 "주여, 제가 주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주의 도우심이 없이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하고 항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했다는 것은 신앙인의 싸움은 곧 기도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아말렉 같은 마귀와 죄와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까요?
기도의 싸움으로만 가능합니다.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봉사하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독일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그 마을의 교회가 폭탄에 맞아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시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관 앞에 세운 예수님 동상은 상처가 컸으며 그 중에 손이 없어졌습니다. 온 교회는 예수님의 동상을 잘 만들어서 세우기로 했습니다. 교회 목사님은 기도하는 중에 꿈에, 손을 다시 만들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예수님의 동상 밑에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손이 없으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손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일하신다. 우리는 곧 예수님의 손이 되어 일한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손이 되어 봉사하고 구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손으로 기도하고, 봉사하고, 열심히 일하는 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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