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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받는 의원 누가 / 골 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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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사랑받는 의원 누가 (골로새서 4:10-17)


    어느날 손가락들이 자기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엄지손가락(拇指)이 나서서 말하기를 “내가 있어야 지장(指章)도 찍고, 최고를 나타낼 때 나를 보여야만 최고의 의미가 전달되기 때문에 내가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다.”며 자랑을 했습니다. 둘째 손가락(示指)은 “내가 있어야 이것, 저것하고 가리킬 수 있지, 내가 없으면 어느 손가락으로 가리키겠느냐, 내가 더 중요하다.”고 했고, 약지(藥指)는 “내가 있어야 결혼할 때 반지를 끼울 수가 있지, 내가 없으면 어디에 반지를 끼울 수 있겠느냐.”고 했고, 새끼손가락(小指)은 “내가 있어야 약속을 할 수 있지, 내가 없으면 어떻게 약속의 징표를 나타내겠느냐.”고 하며 서로가 자기의 위치가 더 중요하다며 자랑을 했습니다.

가운데 손가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손가락들이 중지(中指)를 가리키면서 “키만 머쓱하게 큰 너는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중지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내가 없으면 너희들은 다 병신이야.”라고 했습니다.

    <병신>이란 말이 꼭 나쁜 뜻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신체에 병이 들거나 흠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위장이 병들어도 <병신>이고, 눈이 좋지 못해도 <병신>인데, 여기서는 손가락 하나만 성치 못해도 다른 손가락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 몸에 있는 사지백체(四肢百體) 중에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맹장은 없어도 되지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주시대에는 맹장이 없으면 우주여행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몸에 필요치 않은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나름대로의 역할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각기 다른 성격을 주시고, 다른 기질과 다른 성품과 다른 재능들을 주셔서 이 세상에서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고유한 일들을 하도록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여서 그것을 하면 신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교회생활 속에서도 내가 해야 할 역할을 바로 발견하게되면 신나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가,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잘 발견하고 사용하는 성도들 되어서 이 세상에서 살 때도 내 기질과 내 재능을 따라서 일하므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신나는 일이 되고, 또 교회에서도 내게 맡겨주신 달란트대로 잘 생활하므로 활기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신나는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 때 <내게 주신 것은 이것, 이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다 사용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고 왔습니다.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고 왔습니다. >하고 고백하여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복음전파를 도운 누가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잘 사용한 한 사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에게 주신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가진 재능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사람은 <누가>라고 하는 의사입니다. 누가에 대한 기록은 성경 가운데 세 번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빌레몬서 1장 4절에 보면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미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몇 곳을 보면 누가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의사로서 바울의 선교사역에 동참하여서 일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바울에게 사랑받는, 그리고 온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의사 누가>였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는데 특별히 사도행전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저희가...>하는 말이 나옵니다. 또 16장에서 보면 <우리가...>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16장 전에는 지칭하는 자세가 <저희가 이러이러 했다, 저희가 어떤 일을 했다>고 표현하다가, 16장 10절 이하에서 보면 <우리가 어떻게 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사도행전의 초기 사역 때는 누가가 없었고 <우리가..>라고 표현하는 16장의 사역에서부터 누가가 바울의 선교사역에 동참하여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라는 말이 사도행전 16장 10절 이하에서부터 나오게 되는데 누가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에 드로아에서 바울과 함께 동행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다가, 바울이 순교할 때 까지 끝까지 바울을 도와서 선교에 헌신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자기의 재능으로 복음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지금 뿐만 아니라 옛날에도 의사는 상당한 학식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합니다.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인 누가는 자기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전도자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특별히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 바울이 순교하는 순간까지 바울이 복음을 잘 전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누가가 직접 복음을 전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바울이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육체적으로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짐작하건대 간질(癎疾)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질(眼疾)이 있어서 눈병 때문에 <큰 글자로 쓴다>라든가, <다른 사람이 대필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눈이 매우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질병들이 있었는데 이런 질병을 잘 치료해서 복음이 효과적으로 증거되도록 누가는 자기의 인술을 사용했습니다. 복음전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성경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바울과 바나바, 마가가 함께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당시 좀 젊었던 마가는 밤빌리아 버가라는 지방에 와서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복음전도가 어려웠습니다. 루스드라 지방에서는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핍박이 일어나서 돌로 바울을 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돌에 맞아서 바울이 죽게 되었는데 유대인들이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던져버렸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다시 살아서 복음을 계속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밥을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재워주면 자고, 안 재워주면 노숙하고, 때리면 맞고, 쫓겨다니는,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생명의 보장을 받을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바울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데 사도행전 16장 10절 이하에 보면 그가 드로아에서 합류해서 2차 전도여행을 갑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을 합니다.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갑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잠시 옥에 갇혔을 때 누가도 같이 옥에 갇힙니다. 27장 이하에 보면 바울을 따라서 로마로 가는데 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열 나흘 동안 살 소망이 끊어질만큼 극심한 고생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골로새서에는 바울이 로마에 와서 옥에 갇혀있는데 누가도 함께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혀 있으면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쓸 때 있었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문안의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1차 투옥되었다가 그 때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 소위 옥중 서신이라는 글을 씁니다. 그리고 잠시 석방되었다가 다시 투옥되어 두 번 째 투옥되었을 때에 디모데전서와 후서를 쓰는데 이것은 마치 자기의 유언장과 같은, 최후의 진술같은 글들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보면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미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옥중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여서 데살로니가로 갔다가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첫 번째도 함께 옥에 갇혔지만, 두 번째 로마 옥에도 함께 갇혔습니다. 누가는 옥에 갇힐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바울을 도와주느라고 같이 있는 것 뿐입니다. 그 두 번째 옥에서도 끝까지 바울을 도와서 위로하며, 모두가 떠난 그 장소에서 바울을 도왔습니다.

    요즘도 교도소 생활이 어려운데 그 당시에는 어떠했겠습니까? 그 당시에 인권(人權)이 있습니까, 남의 눈을 의식합니까, 얼마나 힘든 옥중생활이었겠습니까. 그 힘든 상황을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하면서 디모데에게 이야기 합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져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두 가지 재료에다 기록하였는데 하나는 나일강에서 나는 갈대로 만든 종이 파피루스(Papyrus)에 성경을 기록하였고, 또 가죽종이(羊皮紙)에 기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그 때 수감된 감옥은 지하감옥이었습니다. 얼마나 습기가 많고 또 차가운지, 파피루스에 쓴 종이성경은 떨어지고 처질 수 밖에 없어서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지하감옥이 얼마나 습기가 많이 찼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외투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바울이 갇혀있는 지하감옥은 습기가 차서 축축했고 너무도 추운 감옥이었습니다. 비참한 상태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고생 때문에 다 떠나갔습니다. 오직 누가만이 그의 곁에 남아서 그를 위로해주고 그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어디서나 대우받을 수 있는 의사였습니다. 어디서나 존경받고, 어디서나 편안하고, 어디서나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의사인 누가였지만 복음을 위해서, 바울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모든 기득권을 다 포기해 버리고 배고픔과 헐벗음과 생명의 위험과 갖가지 멸시와 천대를 복음 때문에, 바울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받기로 결단하고, 순교의 자리까지 나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게 있는 재능, 직업을 가지고 얼마나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까? 내가 가진 직장, 재능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런 기질과 성격과 재능과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런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나 하나 잘 먹고, 잘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이것 가지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며 섬기라고 주신 도구들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어느 회사가 사원들을 모집할 때에 재능있는 사원들을 모집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회사는 당연하게 그가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활용할,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능력을 가지고 회사를 위해서 일해야 할 사원이 자기를 위해서 쓴다고 하면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생각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재능들을 주셔서 이런 저런 직업들을 가지게 해 주셨는데 이 재능과 직업들은 이것으로 자기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하라고 주신 직임이며 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 평안, 내 기쁨, 내 만족, 내 자식, 내 가정, 내 체면, 내 앞날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성경에서 말하는 한 달란트받은 종처럼 땅에 묻어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가의 아름다운 헌신을 본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는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다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누가처럼 내가 가진 직장과 재능, 모든 것을 송두리째 다 버릴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내 처지에서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가는 특별한 사람이니까, 성경 속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뿐 만이 아니라 역사가운데서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남들을 위해 산 위대한 의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슈바이처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철학박사였고, 음악박사였습니다. 신학박사였습니다. 유명한 저술가였습니다. 그의 음악실력은 온 유럽이 흠모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의과 대학에 들어가서 5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람바레네(Lambar"en"e)에 가서 일평생동안 흑인들을 위해서 살다가 삶을 마쳤습니다. 리빙스턴도 대부분 탐험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며 일생을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 온 선교사인 알렌(Horace Newton Allen)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의사였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얼마든지 편안하게 자식 잘 키우면서 살 수 있었지만 선교사역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이 열악한 나라에 오지 않았습니까? 일신기독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주 선교부에서 이 땅에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 생각하고 많은 의료선교사들이 들어 와 남겨놓은 흔적들 아닙니까?

    우리교회에도 박무열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의사입니다. 나이도 아직 젊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의 열정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편안한 것 다 버리고 지금 벵글라데시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벵글라데시에는 얼마나 인술이 필요한지, 어린아이들이 배가 볼록볼록한데 회충약만 제대로 먹여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자기의 젊음과 안정된 삶을 다 포기하고 헌신하는 의사가 우리교회에도 있습니다.

    이런 의사들이 돈 버는데, 편안한데, 자기 자녀를 위해서 자기 직업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위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이고, 또 그들 때문에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온 것입니다. 내가 가진 직장을 다 접고 이들 처럼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직장이 어디든지, 내 직업이 무엇이든지,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 직장이, 내 직업이 무엇입니까? 내가 처해 있는 지금의 처지에서 복음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세요. 내가 가진 직장,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게 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교역자로부터, 성도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직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가장 작은 것이라도 복음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는 이름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복음을 전한 누가

    누가는 복음전파를 도울 뿐 아니라 직접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의사로서 공부를 많이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헬라의 문장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숫자를 정확하게 압니다. 보통사람이 그냥 넘기기 쉬운 것도 자세하게 보는 눈이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가지고 글을 써서 한 사람을 믿게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물론 그가 쓴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하게 은혜를 주셔서 온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하셨지만 그가 본래 펜을 들어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데오빌로라는 고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을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을 통해서 데오빌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의 믿음이 더 장성하게 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신약성경의 4분의 1이나 되어집니다. 당시 성경 한 권을 가지려면 지금 돈으로 3억 원 정도의 돈이 필요했는데 누가가 쓴 성경만도 지금 돈으로 친다면 적어도 2천 만원 이상의 돈입니다.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2천 만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 시간과 물질과 그의 정력을 쏟아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한 영혼을 믿게하기 위해서 이렇게 힘을 기울인 누가였습니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지체높은 데오빌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영향력있는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인맥을 통하여서 그는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직장을 통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의사는 복음 전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옷 벗으라면 옷 벗고, 가슴 열라면 열고, 입 벌리라면 입 벌리고, 시키는대로 하지 않습니까? 의사는 복음을 전하기가 쉬운 위치에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직장이나 삶의 환경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던 누가의 삶을 본 받아서 내 직장을 통하여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한번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식이 없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직장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에게 내 직장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전도의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가는 자기에게 주어진 이 축복의 기회를 복음을 위해서 사용했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직장과 재능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사용하리라고 다짐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주신 재능, 내게 있는 인맥(人脈), 내게 주신 물질, 내게 있는 온갖 축복은 다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도구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이웃을 돕는 자가 지혜있는 자요, 참으로 복이 있는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보면 집을 짓는 자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세우고 그 공력(功力)이 불로 나타 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불이 나면 나무나 짚은 다 타고 없어지고 말지마는 금이나 은은 타지 아니하고 끝까지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자신을 위한 모든 수고는 사라지고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한 모든 일들은 변하지 아니하고 그 공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는 그날 보석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


3. 겸손한 누가

    누가는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만약 그가 바울의 주치의가 되어서 바울을 돌봐주지 않았다고 하면 바울의 선교에는 심각한 차질이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가 바울에게 있으면서 바울에게 듣고 배운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사도행전이 탄생된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기회가 없었더라고 하면 초대교회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교회의 성장에 있어 사도행전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누가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아주 겸손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삶을 산 누가였지만, 그리고 그렇게 긴 성경을 썼지만 저자인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 속에서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고만 소개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참으로 큰 일을 하고도 자랑하는 것 때문에 다 까먹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마 안되는 봉사를 하고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 때문에 남의 눈살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렇게 큰 희생을 하고도, 이렇게 큰 일을 하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의원 누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 첫 째는 겸손이요, 둘 째도 겸손이요, 셋 째도 겸손이다>. 아무리 큰 일을 하고 귀중한 일을 해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성도들 되셔서 누가차럼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사람에게 사랑받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직장이, 내 재능이 어떤 것이든지 내 직장과 재능을 가지고 복음과 주님을 위해서 살아보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힘들고, 손해보고, 어려워도 복음과 주님을 위해서 일해 보리라, 누가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처한 처지에서 최선을 다 해서 하나님과 주의 종들과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가처럼 별과 같이 빛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직장을 통하여서 한 생명을 예수 믿게 하기 위하여 그처럼 심혈을 기울였던 누가처럼 복음을 전해 보십시다. 내가 일생동안 적어도 열 두명 정도는 구원하리라,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온 심혈을 다 기울여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되게하여 그들을 이 땅에 남겨두고 가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가처럼 사랑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큰일과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드러내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는 성도들 되어서 누가처럼 사랑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 성(聖) 누가병원이 얼마나 많이 세워졌습니까? 누가복음을 통하여 예수 믿고, 사도행전을 통하여 교회가 얼마나 성장되고 있습니까? 영락의 온 성도들은 나의 직장과 나의 환경과 나의 삶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여서 제 2의 누가, 제 3의 누가. 제 4의 누가로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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