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 눅 23 : 39-43

  • 잡초 잡초
  • 581
  • 0

첨부 1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눅 23 : 39-43
김철봉 목사 (사직동교회)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들 중 누구에게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를 더 연기시켜 내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시146:34)/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곤고를 받으니 수고로운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 꼬, 언제나 밤이 갈꼬하며 새벽까지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구나(욥7:3-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누가 오늘 하루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요즘은 도로에 설치되어 있는 전광판에 오늘 시내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교통사고를 내어서 사망하였는지 그 사연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의 일도 모르는 인생이 어떻게 내일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 우주탐사선 컬럼비아호가 우주에서 일주일간의 임무를 잘 마치고 미국 텍사스에 있는 기지로 잘 돌아오던 중 그만 폭발하여 공중에서 산화하는 사건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일곱 명의 우주 비행사 또는 과학자들이 지상에 무사히 착륙하여 기다리던 가족들과 감격적인 만남을 준비하는 동안에 그런 비극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올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 나 나의 아들.... 이렇게 순서를 따라 왔습니다. 그러나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이사야40:30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의 가정을 보십시오. 한 아들은 아직 아이였음에도 심히 앓다가 그만 죽었습니다(삼하12:14-15)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이니라" 명랑하게 뛰놀던 어린 아들이 갑자기 심하게 앓다가 7일 만에 죽어 버렸으니 부모로서 다윗의 심정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이뿐입니까? 큰아들 암논이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건장하고, 잘 생기고, 장래가 촉망되던 압살롬마저 장군 요압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당합니다.(삼하18:14)

여러분!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일가 친척을 둘러보십시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을 둘러보십시오. 여러 사람들이 여러분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성품을 지녔던 얼굴들도 떠오를 것입니다. 죽음은 늙은 사람들의 눈앞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의 눈앞에도 있습니다. 가난한 거지 나사로도 죽었습니다만 날마다 호화로이 연회를 베풀면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그 부자도 죽었습니다.

(눅16:19-22) 죽음은 의외로 아주 가까이에 찾아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12:16-20에는 기막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자기 밭에 소출이 풍성하였습니다. 얼마나 토지가 많았으면 그 해 추수한 곡식을 더 이상 쌓아 둘 곳이 없었습니다. 부자는 창고를 헐어 버리고 새롭게 엄청 크게 창고를 신축하여 거기다 곡식과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 두었습니다. 부자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크게 도취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여러분! 이 부자의 자기 도취는 오늘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재물을 많이 쌓아 놓고서는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2003년 오늘의 한국 사회가 바로 이러합니다. 사기, 도박, 거짓, 요행, 미신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재물을 모으고들 있습니다. 복권 당첨금액이 200억원, 400억원, 700억원... 이것이 말이 됩니까? 온 나라가 요행술이라는 환상에 마비되어 가고 있습니다. 월급쟁이들이 한 달치 봉급을 다 털어 수백 장의 복권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한창 일해야 할 벌건 대낮에 복권종이 사겠다고 끝없이 줄 서 있는 그 모습이 전국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이 무슨 창피입니까? 김해, 창원에 경마장, 경륜장이 들어서고, 함인, 진주에는 투우장(소싸움장)이 들어서고 통영, 하동에는 경조장(요트, 보트경기장)이 들어설 것이라 합니다. 거기에도 전국에서 구름 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수한 도박판을 벌리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유감스럽습니다. 북에서는 핵무기를 빌미로 세계를 향하여 공갈을 퍼붓는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남에서는 전국이 사기, 도박, 요행 술에 정신이 팔려 요지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말 낭패입니다. 저 어리석은 부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날이 될 그 오늘은 찾아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두려움, 사업실패에 대한 두려움, 직장 해고에 대한 두려움, 자녀교육과 장래문제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입니다. 이런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축을 하듯이, 거처할 집을 마련하듯이,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무 준비도 안되어 있는데 어느 날 불쑥 죽음이 나를 데리러 온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데 5-6년 뒤에 찾아오시오" 이렇게 말하면 죽음이 물러가서 기다려 줄까요? 죽음이 두렵고 무섭다고 해서 생각도 하기 싫고 말조차 꺼내기 싫다는 것은 아이들이 밤을 무서워하여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쓴다고 해서 밤이 물러가 주지 않습니다. 언젠가 어느 날 죽음이 찾아오면 의연하고 침착하게,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죽음을 맞이하는 한 사람의 마지막 준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40절을 보세요. 예수님 옆의 한 강도는 자신의 죽음(사형선고 및 집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정직했습니다. 지나온 평생은 강도를 직업으로 하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 왔으나 마지막 순간, 죽음 앞에서 정직해지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정직해지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마지막 운명의 순간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짧지만 그 마지막 몇 분 동안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게 됩니다. 자신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죽음의 준비로서 첫 번째 할 일은 항상 매일 밤 회개와 의탁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마5:23-24, 6:12) 잠자리에 들면서 조용히 머리 숙여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반성과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사죄의 은총과 위로의 손길로써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예견하거나 임박해 올 때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이시여... 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을 찾거나 자식을 찾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수도 있겠지만 "예수여.../예수님이시여....." 이렇게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잘하는 준비입니다.

본문 42절을 보십시오. 골고다 언덕의 저 강도마저도 마지막 숨져 가는 순간에 "예수님이시여....."라고 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그 날이 올 때도 이렇게 예수님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 집사도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에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지금 이 시간 미리 이 기도를 한 번 드려봅시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리고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들어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42절을 계속 보세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주님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준비되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모두 기쁨으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는 우리들에게 언젠가 마지막 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처소가 예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소문제는 예수님께 맡겨 드리십시요.(요14:1-3)

우리는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렇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예수님, 나를 생각하소서. 예수님 저를 기억하소서" 이렇게 간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두 팔 벌리고 받아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코 교만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결코 불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누구를 미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하면서 겸손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보다 많이 사랑하고 섬기고 싶어질 것입니다. 결코 슬퍼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진정 마음과 정성을 모두어 오직 하나 남은 것... 무엇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 남은 내 영혼을 우리 예수님께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하루를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인생을 마지막 정리하는 날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만 한다면 비록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된다 할지라도 아무 겁없이 예수님 이름 부르면서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당당하게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