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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혼란의 바벨탑 / 창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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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바벨탑 (창11:1-9) 
이름 : 문강원목사  (원천교회)


오늘 본문은 노아 홍수 후에 다시 번성하기 시작한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는 모습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노아의 자손들이 시날에 정착한 후에 놀라운 건축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는 진흙이 아니라 마치 시멘트처럼 벽돌을 견고하게 붙일 수 있는 역청도 발견했습니다. 삶에 대 변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과학기술과 현대문명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이용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런 것들을 개발하게 하셨는데 우리가 이것을 이용하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Ⅰ. 바벨탑을 쌓는 목적

  1.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서

4절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인생의 명예를 추구하는 탑이 바로 바벨탑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인간 중심으로 사는 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탑을 높이 쌓으면서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늘에 닿게 하여'라는 말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었습니다.

여기 '우리 이름을 내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들의 이름을 높여 자기들이 영광을 받고자 하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여야 할 신앙인들에게도 이렇게 자기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높은 탑을 쌓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의도가 나빴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과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살아 남은 노아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그 홍수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그 은혜를 벌써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 대신 나의 이름을 높이 세우려는 바벨탑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바벨탑을 쌓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죄를 짓지 않으시려면 우리들도 바울처럼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합시다. 아무리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성공적인 일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2.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본문 4절에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단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로 한 마음을 품고 단결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집단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치료약을 개발한 사람이 이 치료제를 개발해 놓고는 자기와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려고 숨긴다면 누가 그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존경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그 어떤 치료약보다도 더욱 귀한 소식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 복음인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길인 복음을 나누어주지 않고 교회안의 성도들만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이기적인 집단보다도 더욱 악한 집단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향하신 소원을 가지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성도들을 우리 교회로 불러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물질도 주시고 능력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만약에 주신 은혜, 주신 재물, 주신 능력을 자지고 나만 위해서, 우리만 위해서, 쌓아 놓고 누린다면 하나님께서 온 지면에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만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오늘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더 이상의 재물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재능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강력한 조직이 아닙니다.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Ⅱ. 바벨탑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  - 교만의 탑을 혼란의 탑으로-

그러면 바벨탑을 쌓게 만든 그 힘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기술과 재력과 하나의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받았는데 그 사용을 잘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짓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세가지 중에 어떤 것을 제거하셨습니까? 바로 언어를 혼란하게 하심으로 하나의 단일 공동체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잘못된 집단주의를 해체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고집된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들로 하여금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 갑자기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자 자연히 바벨탑 공사는 중단되고 만 것입니다.
바벨이란 이름의 뜻은 '혼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결과는 평안이 아니라 혼란뿐인 것입니다. 이름을 내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기 이름이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려 했으나 오히려 뿔뿔히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벨탑의 결과는 실패와 혼란뿐이었습니다. 물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물질이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명예도 좋은 것이지만 명예가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없는 물질과 하나님 없는 성공은 오히려 혼란만 가져올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자신의 뜻을 대항하고 바벨탑을 쌓은 자들에게 심판주로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을 쌓던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능력들을 가지고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다가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주 되심이 인정되지 않는 가정, 사업, 교회, 나라는 혼란해진다는 것입니다.


  Ⅲ. 오늘 우리들은 바벨탑의 실패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바벨탑을 쌓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헛된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헛된 교만의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은 참으로 지혜롭고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만든 문명의 바벨탑 안에서 얼마든지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보니 죽은 사람을 나중에 과학이 발달했을 때 다시 살리겠다고 수억원을 들여서 냉동시켜 보관하는 회사가 생겼는데 그렇게 지원자가 많더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에 대항하는 과학문명은 교만의 바벨탑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물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는 물질의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범죄가 이 물질의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잔인하기 짝이 없는 범죄들을 돈 몇푼을 얻으려고 저지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 되었고, 돈이 많으면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오직 물질의 바벨탑을 쌓는 무리들로 가득찬 세상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물질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해서는 않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 삶에서, 우리의 생각에서 이런 바벨탑을 쌓아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바벨탑이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쌓아놓은 재산일 수 있습니다. 바벨탑을 산산이 부숴뜨려야 합니다.


  2.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도 안됩니다.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은 오직 바벨탑을 건축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이 한가지 목표에 그들의 모든 정렬을 쏟았습니다. 다른 어떤 사회적 이슈도 그 공사를 중단시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지금 인생의 정열을 다 쏟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대역사를 이룬다는 대역사의 주인공이 된 듯하여서 매우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공사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 공사를 중단시킬 권세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이 일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집단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집단주의는 개개인의 생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집단주의는 다른 집단을 무조건 적으로 여기고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표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자들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위기는 민족주의에서 온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집단과 집단이 힘을 모아서 서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살벌하게 싸움을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어디에 어떤 무리들과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복된 장소에 복받을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복을 받습니다.

늘 부정적인 사람들, 죄짓는 장소에 거하지 마시고 늘 긍정적인 사람, 선을 베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무리들과 함께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쌓아야 할 탑을 바벨탑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무너진 바벨탑을 보면서 혹시 우리 속에 이런 무너져야 할 바벨탑을 쌓아놓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혹시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바벨탑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한다면 하나님은 그 물질을 다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물질의 바벨탑 속에 갇혀 있다가 멸망당하지 않도록 그 물질을 흩어버리실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세운 것들에 따라서 심판과 칭찬을 각각 받게 될 것입니다. 헛된 혼란의 바벨탑을 쌓았는가 아니면 거룩한 성전을 지었는가에 따라 그 날에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무너지고 말 혼란의 바벨탑을 쌓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고 오늘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영광을 돌리시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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