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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기쁨 / 빌 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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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일시 : 2003.02.09
† 설 교 자 :김병수  목사 (후암교회)
† 설교제목 :거룩한 기쁨
† 성경본문 :빌립보서 1:12~26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어떤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줄 아는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에 보면 분명한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이 너무나 기뻐서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쁜 마음으로 내건 사람이 한 명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삶의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를 열정적으로 믿고 따르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과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쉽게 표현하면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에게 생명을 내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에게 그의 삶의 기쁨이 어떤 것이며, 그 기쁨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했으며, 그리고 그 기쁨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삶의 거룩한 기쁨

(1) 바울 사도의 삶의 목표

먼저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는 12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알기 원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므로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한다는 18절의 말씀과 같이 바로 ‘복음의 진보’였습니다. 복음의 진보가 사도 바울의 삶의 목표였기 때문에 이것이 이루어 질 때 바울은 기뻐할 수 있었고, 그의 삶 전체를 통하여 온전히 복음의 진보를 나타내었다면, 그의 삶은 정말로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삶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사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뻐하고 자신의 처지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금 처한 상황은 로마의 감옥이었습니다. 냄새나고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습기도 많고, 자유롭지 못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지 못하고, 계속 로마 병정들에게 감시를 받고 살아가는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완전히 집중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복음이 널리 전하여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인생의 성적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 이후에 그 목표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때에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삶의 목표를 설정할 때 자기 자신만의 인생의 성적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적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과목에서 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필수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과목에서 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더욱 좋습니다. 예를 들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좋은 건강을 가지고, 항상 편안한 여유를 가지고, 세상의 좋은 모든 것에서 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세상 사람들은 "저 사람 참 잘 살았구나, 정말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구나"라고 그 사람의 인생의 성적표에 대해서 좋게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적표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의 성적표는 바로 하나님께서 채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성적표를 단지 세상 사람들을 기준으로서 채점되어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못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필수 과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선택과목에만 집중하고 그것만하면 되는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점하시는 인생의 성적표에서 가장 중요한 필수과목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 다른 모든 인생의 여정이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은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바울 사도의 인생의 성적표

바울 사도도 이미 인생의 성적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성적표에 보면 지금 이렇게 감옥에 들어와서 힘들게 사는 것이 결코 그의 삶에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점수로 나타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은 우리 인생 성적표의 채점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세상이 채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마귀가 채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의 인생을 세상이 채점을 한 다면 바울 사도는 어떤 평가를 받았겠습니까? 아마도 낙제일 것입니다. 그 좋은 학벌 다 버리고, 그 좋은 집안 배경 다 버리고, 수 도 없이 많이 맞고, 돌도 맞고,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고, 아무런 재산도 없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어리석은 낙제생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울 사도는 우등생입니다. 비록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하늘에 큰 상급을 쌓았으며, 복음의 진보를 위한 그의 고통은 하나님의 성적표에는 엄청난 점수로 기록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성적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요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난한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성적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목적인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위하여 복음의 진보, 복음의 증거는 우리가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수 과목입니다. 복음의 진보를 위하여 복음의 증거자로 서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는 구별된 인생의 성적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동일한 기준에서 인생의 성적표를 바라본다면 아마도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거꾸로 사는 삶

20절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내가 살아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지 않으면 죽는 것 보다 못하고, 내가 죽어도 그리스도가 그 죽음으로 인하여 존귀히 되지 않는다면 그 죽음은 아무런 가치 없는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내어 걸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내어 걸만큼 우리의 전부를 걸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1) 오직 예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온전히 집중되지 않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는 결코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닙니다. 어쩌면 점점 세상이 발달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에는 점점 어려운 세상이 다가올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점점 더 악한 영들이 기세를 부리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고, 유혹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궤계는 교묘합니다. 인간들에게 아주 달콤한 환상을 보여 줍니다. 점점 과학과 문명을 발달시켜 아프지도 않고,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고, 인간의 과학과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도록 세상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각 가운데 고정시켜 놓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 세상을 삶은 어떤 목사님은 ‘거꾸로 가는 삶’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거꾸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 밖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이미 세상에게 진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히 집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걸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2) 예수쟁이
옛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서 불렀던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바로 예수쟁이였습니다. 우리 말에 이 ‘쟁이’라는 말은 아주 쉽게 표현하면 ‘미쳐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볼 때에 아마도 예수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에는 ‘예수쟁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정말로 사도 바울과 같은 인생의 성적표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에게 미친 예수쟁이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까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옛 사람이 너무 강해서 똑바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구세주로 고백하기 전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과 구세주로 고백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과 구세주로 고백한다고 해서 우리의 모습이 갑자기 예수님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한꺼번에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이 필요하고 뼈를 깎는 인내과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내어야지 예수님의 모습을 조금씩 더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날마다 날마다 내 자신을 쳐서, 내 본능을 쳐서, 내 하고 싶은 것, 내 육신이 원하는 것을 쳐서 하나님의 앞에, 복종시키지 않으면 금방 금방 내 속에서 튀어나와 시험에 들게 하고 좌절하고 낙심되게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질 때,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목숨을 내어 건 소명과 인내가 없다면 결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미치지 않으면 우리의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대가를 지불하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복음의 진보와, 하나님 안에 있는 연약한 자들을 향한 믿음의 진보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헌신과 소명인줄 믿습니다.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걸어야 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주님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내어 건 결단과 헌신과 고백이 없다면 아버지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내 삶이 되어지기를 원한다는 주님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기쁨은 바로 거룩한 기쁨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곧 바울의 기쁨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기쁨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의 기쁨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기쁨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삶의 목표는 오직 하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대로 살 때 비로소 참다운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인생의 기쁨을 얻는 다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 기쁨을 온전히 얻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의 생명을 예수님께 내어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삶은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보기에는 실패한 인생 같아 보이지만,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복되고 행복하게 산 인생으로 평가해 주시고 칭찬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후암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인생 여정을 마친 이후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을 수 있도록 분명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거룩한 기쁨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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