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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하지 말고 /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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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고
빌립보서 4:4-7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우리 교회는 올해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했는데, 저는 우리 교회에 부임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저 나름대로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힘썼지만, 과연 하나님과 성도님들 보시기에 어떠했는지, 제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나름대로 보람이 있으면서도 한편 부끄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10년을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특별히 최근 몇 개월이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일반적으로 Burn Out(탈진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소멸시켜버려, 다 태워버려, 남는 것이 없는 상태로 지친 모습, 그러면서도 안 그런 것처럼 보이게 숨기면서 지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지난 해 12월에 기도원에 올라 제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흡족하지 못해 이번에 다시 기도원에 오르고, 지난 주일도 기도원에서 보내며 두 주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부족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셔서 몇 가지 깨달음을 갖게 하셨고, 저는 새롭게 하늘로서 내리는 힘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 제가 받은바 은혜를 함께 나누면서, 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리 성도님들의 생활 속에서도 적용시켜 나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받은바 첫 번째 은혜는 즐겁게 목회하라, 목회를 즐겨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평범하지만 중요한 생활과 신앙의 자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람이 쉽게 피곤을 느끼고 지쳐 버리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보람을 맛보기보다 의무로 억지로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Burn Out 상태에 빠졌는가?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니 우선 목회를 즐기지 못한 탓이 컸습니다.

물론 목회에는 보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열매가 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목회가 짐이 되고 의무가 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목사는 이러해야 한다, 목사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보여야 한다, 성도들은 목사에게 이러한 것을 원하는데, 그 욕구를 채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목사는 걷는 것도 바르게 걸어야 하고, 얼굴에는 항상 인자한 웃음이 넘쳐야 하고, 성도들이 전화를 걸거나 이야기를 나누기를 요청하면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목소리로 관심을 표명하고 신앙적인 결론으로 권면해야 한다 등등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와,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의 갈등 속에서, 이 갈등이 점점 누적이 되고 쌓여만 가니, 그것이 짐이 되고 부담이 되고 무거워지면서 Burn Out, 탈진 상태에 빠지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설교도 그렇습니다. 목회자의 1차적 사명이 설교 말씀을 통해 은혜를 끼치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검보다 더욱 예리하여 우리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는데, 과연 나는 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가, 살아있는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서 그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는가, 10년 동안 열심히 말씀을 전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지는 않았나, 성경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는 일에 실패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입니다.

사실 그동안 10년 동안 설교를 했는데, 얼마나 우리 성도님들의 심령에 감동을 주고, 은혜를 끼치며, 생활을 변화 시켰는가 돌이켜 보면 부끄럽고 송구스런 마음뿐입니다. 그러자니 설교가 자꾸 부담이 되고 짐이 되고 설교 준비하는 것이 힘이 들고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묵상하는 중에, 목회를 짐으로 여기지 말고, 즐겁게 즐기면서 하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마음의 감동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무거운 짐이 없어집니다. 사라집니다, 날라가 버립니다. 무거운 짐이 오히려 기쁨의 근원으로 변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도 그렇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로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찬송 513장도 힘차게 불렀습니다.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 해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우리 성도님들 생활 속에서도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직분과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교회에서의 직분뿐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생활에서도 주어진 역할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짐이 되고 부담이 되면 점점 사는게 힘이 듭니다. 의무가 되고 습관이 되면 사람이 탈진하게 되고 발전이 없게 됩니다. 그 생활 속에서 즐거운 마음, 기뻐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을 감당함에 그 안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의 기쁨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인가 할 때, 뭐, 남달리 진실하게 사는 사람, 구제와 봉사에 열심인 사람, 기도 생활에 힘쓰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들은 모두 겉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귀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기쁨이 없다면, 그 일이 참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한다 할 때, 울면서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 마음도 기쁘고 상대방의 마음도 기뻐야 비로소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기쁜 마음으로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빼앗긴 것이지 준 것이 아닙니다. 받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받지 못하고 열등의식이라든가, 굴욕 같은 것을 느꼈다면 그 또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한다거나, 주고받는 아름다움 속에서도 진정한 기쁨이 없으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기쁨 없이 하는 일은 아무리 귀해도 무의미합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다고 해도 기쁨이 없으면 허망하고 말 따름입니다. 우리 모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특징은 기쁨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고 섬김을 받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복됨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이 기쁨을 회복하고, 즐겁게, 즐기면서 더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받은 두 번째 은혜는 상황과 여건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을 변화시켜라 하는 것입니다.

10년을 목회하다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2003년에도 또 똑같은 목회 사이클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그래서 이같은 작업의 반복을 되풀이하는 일을 생각만 해도 힘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목회 프로그램은 성도님들 잘 아시다시피 이렇습니다. 1월은 새 해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송구영신 특별새벽기도회를 갖고 새 마음 새 믿음으로 새 출발하도록 설교와 권면을 합니다. 보통 2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는 사순절이요, 사순절이 지나면 부활절을 보내면서 봄 전도행사를 갖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로 지키고 6월 이후에는 한 여름 우리 심령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힘씁니다. 그리고 봄 심방이 내내 계속됩니다. 9월이 되면 또 가을 심방을 하고, 교회 창립 주일과 더불어 새로운 마음가짐을 회복하도록 힘쓰며 가을전도행사를 진행하고 11월이 되면 이제 연말 준비, 새해 준비를 하며 보내게 됩니다.

매년 비슷한 목회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제 자신이 습관화에 빠지고 게을러집니다. 뭔가 변화를 가져오고 새로운 일들을 계획해야 하는데, 그것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끝없이 새로운 일을 추구하는데 발전과 향상과 진보가 있기에 일의 변화, 교회 여건의 변화, 상황과 환경의 변화를 꾀하려고 하지만, 이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 깨달은 바는, 나의 외부 상황의 변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내부의 영적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고는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내가 새롭지 않고는 새로운 여건과 상황이 주어져도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기도생활이 그러합니다. 기도생활 열심히 하시는 분은 이 은혜를 체험합니다. 뭔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를 드리면 마음이 후련합니다. 평강이 찾아옵니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세상 그대로 있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내 앞에 떡 버티고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해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후련하고 편한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켜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하고 보니 문제는 문제 그대로 있어도 예전처럼 그렇게 커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대로 있어도 예전처럼 그렇게 어둡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문제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문제를 대처하는 힘을 나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세상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변화에 있다는 사실, 우리 주님은 끊임없이 나를 변화시켜 새사람 되게 하신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날마다 새로운 사람, 날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제가 받은 은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라 라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큰 일, 작은 일, 기쁜 일, 궂은 일, 참 이 일 저 일이 많습니다. 성도님들의 욕구는 목회자가 기도로 사랑으로 심방으로, 여러 방법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안아주고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목회를 한번 돌이켜 보니, 심방이나 성도님들과 나누는 대화의 한 70%는 궂은 일, 어려운 일, 문제나 고통스러운 일로 인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30% 정도가 좋은 일, 기쁜 일, 축하해야 할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성도님들의 기쁨은 목회자의 기쁨입니다. 동시에 성도님들의 문제는 목회자의 기도제목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감정은 모두 전이 효과가 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도 있거니와, 성도의 생활이 잘되고 형통하면 목회자의 생활도 기쁨으로 가득해 집니다. 반면에 성도님들의 무거운 일, 일이 꼬이고 신앙이 떨어지고 교인들간에 갈등이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고 하는 일은 목회자의 마음에도 큰 부담과 무거움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이 무거움이 자꾸자꾸 쌓이면 목회가 피곤하고 힘이 들고 부담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안고 기도하는 가운데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나에게 맡겨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큼 감당해라”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신 말씀에서의 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는 목회의 짐도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시험은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만큼만 감당을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다, 그래야 내가 지치지 않고, 목회를 장기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가 혹 많은 교회와 교인의 문제를 감당할 수 없으면, 방법은 그냥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감당 못할 무거운 짐을 지고 탈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다른 일에 헌신하는 일이 더욱 현명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서 싸우다가, 저녁이 되면 창 가로 다가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것입니까? 이 교회가 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것입니까? 당신의 세상이요, 당신의 교회라면, 그것을 친히 돌보십시오. 저는 잠을 자러 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거운 인생의 짐을 모두 혼자 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염려와 근심의 제목들, 하나님이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3가지를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내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라. 둘째,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관용하는 생활을 하여라.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도하며 살아라.

특별히 6,7절 말씀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활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이 곧 이 한 해를 살아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줄 믿고, 주 안에서 즐거워하며, 내 자신을 변화시켜나가며,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사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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