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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무후무한 제사와 축복 / 왕상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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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한 제사와 축복
왕상 3:4-15
대복제일교회 서문수 목사


오늘은 솔로몬의 일천 번제입니다. 인류역사를 통하여 일천번제를 드린 사람은 솔로몬 말고는 없습니다. 그는 전무후무한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전무후무한 은총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3:12-13)

여러분,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다 하여 지혜와 능력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본적인 은혜는 있었겠지만 그 위에 더하여 받은 특별한 지혜와 특별한 능력과 특별한 축복은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낸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일천번제를 통해 몇가지 은혜를 새기고자 합니다.
1. 솔로몬은 신앙의 스케일이 컸습니다.
큰 믿음이었습니다. 놀라운 믿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일천번제를 생각해 내고 어떻게 그 일을 실천했을까요?
번제란 헌신의 제사로서 양을 잡아 온전히 태워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성경, 어느 율법에 일천마리의 번제를 요구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일천마리를 드리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꼭 수많은 짐승의 피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대단히 흡족해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천번제후에 하나님은 바로 나타나셔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주시겠다고 무제한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신앙의 스케일이 분명히 큰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앙의 스케일이 크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헌신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헌신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이 수많은 프로그램과 바쁘게 돌아가면서, 무언가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만약에 헌신이 없거나 약하고 드림이 없다면 이는 알맹이가 빠진 신앙입니다. 나를 뜨겁게 하는 사람은 헌신의 폭이 큰 사람입니다.

우리가 작은 헌금으로 함께 협력하는 아프리카 앙골라의 정명섭선교사님은 언제나 나를 뜨겁게 하는 분입니다. 그는 평신도 시절에 좋은 자리, 많은 월급의 선장 자리를 뒤로 하고,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일평생 선교사로 헌신하고 지금까지 놀라운 사역으로 헌신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두 아들을 낳자 말자 아프리카의 일평생 선교사로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앙골라 대륙에 놀라웁게 역사하심을 볼 때 저는 언제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헌신은 제대로 못하면서 스스로 잘 믿는다 생각하는 사람, 교회는 이래야한다 저래야 한다는 사람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스케일을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2. 어디서 일천번제가 나왔습니까?
1) 자신의 부족을 뼈저리게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는 고백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길인줄 알았고 참으로 위로부터의 은총을 사모한 마음에서 일천번제란 방법이 나왔다고 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낼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는 강력한 마음,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에서 일천번제가 나왔다고 봅니다. 이는 야곱이 받아 나오지 못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여 마침내 받아 내는 그 마음, 그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로 그 축복을 바꾸셨습니다.

2) 어떻게 자신의 부족이 뼈저리게 느껴졌을까요?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꿈 꾸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다윗이 통치할 때는 나라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어마 어마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 나라를 이어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그가 다스려야 할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꿈이며 비젼입니다.

우리는 꿈이 있어야 하고, 꿈이 크고 위대할 때,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의 부족을 알게 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그 은혜와 그 축복을 사모하는 강렬한 마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중에 인도의 최초선교사 윌리암 케어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를 현대선교사의 아버지라 합니다. 그는 구두방에 앉아 구두를 수선하면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꿈을 불태우고 구두방에서 지도를 붙여 놓고 기도하며 나를 선교사로 보내어 달라고, 나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들어 인도의 선교사로 사용하셨습니다.

꿈이 클수록 자신의 부족은 더욱 뼈저리게 절감하게 됩니다. 꿈이 큰 사람은 기도가 커지게 됩니다.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셔서 들어 사용하십니다. 빌립보 2:13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꿈이 없고 소원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들어 쓰실 수 없습니다.

헬렌켈러는 말하기를 눈이 보이지 않는 자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비젼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꿈이 있어야 고난도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것이고 눈물과 불행도 축복으로 바꾸어 갈 수가 있습니다.

왜 형편없이 살아가는 것입니까? 왜 자꾸만 넘어지며, 왜 기도의 열심히 생기지 않는 것입니까? 꿈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바라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형편없는 목표가 있으니 마음이 뜨거울 수 없습니다. 기도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실천했습니다.
소든지, 양이든지 1,000마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몇 년전, 부활절에 우리 사는 지역에 부활절 계란을 돌릴 때 계란 2600개를 돌린 적이 있습니다. 정말 작은 계란이지만 2600개나 되니 정말 많았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양을 일천마리 잡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태워 번제로 드릴려 해 보십시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 일을 과감하게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하면 뭐합니까? 누구나 큰 생각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일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정을 합니다. 그러나 작정할 때 하나님이 마음을 받으시겠지만 축복은 실천한 이후에 내려오는 것이며 실천한 자가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꿈만 가지지 말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도록, 보좌를 움직일 수 있도록 생각을 실천으로 헌신하여야 합니다. 기도도 실천하고 말씀도 실천하고 헌신도 실천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십니다. 성취하십니다. 부르짖을 때 응답하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렘 33:2)
하나님은 구하지 않는데 미리 알아서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해야 주시고 찾아야 만나게 해 주십니다. 두드릴 때 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화 생략)

4. 일천번제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1) 일천마리의 양은 사람이 볼 때 대단한 것이지 하나님께는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크시기 때문입니다.
(시 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사람이 생각할 때 어마 어마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지금까지 받은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이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큽니까? 왕이란 것이 세상에 최고의 자리니 놀라운 축복이며 다윗의 아들이 솔로몬 뿐이 아니니 감사한 일이며, 더군다나 어머니는 밧세바이니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받은 은혜에 비하면 일천마리 번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받을 축복에 비하면 일천번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받을 축복이 무엇입니까? 전무후무한 지혜와 수와 부와 영광입니다. 받을 축복에 비하면 일천마리 번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드릴 때 받을 축복을 보아야지 드리는 손의 예물을 보면 안됩니다.

(4) 일천마리 양은 쓸데없이 허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 해도 되는 것을 괜히 허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기쁘게 열납하셨습니다.

(예화중략)

오늘 설교는 어제 밤에 갑자기 바꾸었습니다. 아내에게 오늘 설교가 바뀌었다고, 제목이 솔로몬의 일천 번제라고 하니까, 일천번제는 드리는 것인데 헌금 설교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찌 제가 헌금을 많이 수금하기 위하여 설교를 하겠습니까? 내 아들도 그렇게 키우듯이 여러분도 좋은 축복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바라서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성경에 하나님이 제시해준 헌금의 표준도 실천을 하지 못합니까? 그 정도도 못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합니까? 그냥 먹고 사는 것은 열심히 일하면 됩니다. 그러나 밥만 먹고 살아서 사는게 아닙니다. 그 이상의 넘치는 필요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받아내는 자의 것입니다. 하늘에 쌓여있습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자는 빼앗습니다.

예수믿는 것은 첫째는 구원받고 둘째는 세상에서 복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물질이다, 건강이다 하는 것이 원리를 터득하면 그보다 쉬운 것은 없습니다. 이건 기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쪼록 잘 터득하시고 뚫려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드림이 있고, 축복의 응답이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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