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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경주 제대로 달려라 / 고전 9: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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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앙의 경주 제대로 달려라
본문 : 고린도전서 9:23-27 
설교 : 황광민 목사 (석교교회)


어떤 여성이 하늘나라의 꿈을 꾸었습니다. 천사가 그녀를 커다란 궁전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커다란 집은 당신네 마부가 살집이오" 여인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습니다. "뭐라고요? 나의 마부가 살집이라고요?" 여인은 참으로 놀랐습니다. 비천한 마부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되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여인의 마음속에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자기 집에서 부리는 마부가 저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된다면 자신의 집은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살집도 빨리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천사는 작은 집으로 여인을 데리고 가서 "이 작은 집이 네가 영원히 살집이라" 고 말했습니다. 이에 여인은 화가 나서 되물었습니다. "무엇이라고요? 나의 집이라니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여인은 화가 나서 펄쩍 뛰는데 천사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너의 마부는 큰집을 지을 자재들을 충분히 올려 보냈다. 그러나 네가 보낸 것으로는 작은 집을 짓기에도 벅찼다. 이 작은 집이 네가 영원히 살집이다." 여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울다 깨었는데 꿈이었습니다. 그 후 크게 뉘우치고 하늘의 상을 얻기 위하여 충성했다고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의 상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24절의 말씀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구원받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상을 얻는 일도 또한 중요합니다. 구원을 받더라도 불 가운데서 구원받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이왕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가면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1등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24절의 말씀을 다시 함께 봉독 하십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자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아멘. 여기서 바울 선생님은 경주에서 우승한 챔피언을 모델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상을 받는 사람은 여럿 있습니다. 우승자를 비롯하여 2등도 있고 3등도 있습니다. 장려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참가상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승자를 모델로 하고 신앙의 경주를 하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그리스 사람들의 경기를 보았을 것입니다. 경기는 2년마다 열렸습니다. 바울도 경기를 보러 갔을 것이라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경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그의 경기에 관한 언급은 그가 경기를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경기는 주로 두 종류로 구별하였습니다. 하나는 복싱과 레슬링이 혼합된 팬크라티움(Pancratium)이었고, 다른 하나는 높이뛰기, 달리기, 창던지기 등으로 이루어진 펜타틀론(Pentathlon)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기를 보면서 신앙의 경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선수들은 사전에 적어도 10개월 이상은 엄격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훈련 없이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모진 훈련을 통하여 훌륭한 선수가 되는 법입니다. 목요일 새벽에 같이 공부하는 한 목사님의 따님이 발레를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발레를 연습하는 과정에 엄지발톱이 10번 이상 빠졌다고 합니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우리 신앙인의 경주도 이와 같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상을 얻으려면 힘쓰고 애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상을 받기 위하여 애쓰는 것처럼 신앙의 경주에서도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일등 하는 사람을 모델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3등도 아닙니다. 2등도 아닙니다. 오직 1등을 바라보고, 1등을 하기 위하여 힘쓰는 사람처럼 열심히 신앙의 경주를 달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경주에 모델이 있으십니까? 누구를 모델로 하고 신앙 경주를 하십니까? 신앙의 모델을 정하고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한 모델 없이 신앙 생활했는데 누군가 한 분을 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인물을 모델로 삼고 배워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겼던 사람, 충성을 다했던 신실한 사람을 모델로 삼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어거스틴을 모델로 해도 좋겠습니다. 마틴 루터를 모델로 해도 좋겠습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뮐러를 모델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델로 하고 최선을 다하는 신앙 생활을 하십시다.

둘째, 절제해야 합니다.

2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아멘. 여기서 중요한 말은 '절제'입니다. 세상의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선수들은 절제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우리들도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신적 절제와 물질적 절제가 있습니다. 정신적 절제는 분노가 일어날 때 노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기가 일어날 때 시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탐욕이 일어날 때 탐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음욕이 일어날 때 음행을 행치 않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고 싶으나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적 절제는 술이나 담배 같은 무익한 소비를 금지하여 사치와 일각을 피하는 것입니다.

제네바 개혁 때 칼뱅의 목회방침은 절제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60세 이상의 남자와 30세 이하의 여자가 결혼하면 간음으로 취급했습니다. 또 40세 이상의 여성이 25세 이하의 남성과 결혼하는 것도 모두 간음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귀부인이라고 해도 귀금속이나 보석을 소유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으며 결혼 반지 이외에는 반지를 못 끼게 했습니다. 머리의 모양과 옷, 그리고 음식의 수까지 감시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부자요, 고관대작이라 할지라도 죽은 후에 무덤을 치장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신실한 신앙생활을 위하여 절제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지금 그대로 따를 수는 없겠지만 절제의 정신만은 배워야 하겠습니다.

셋째, 목표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26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아멘. 이 말씀처럼 달리기 선수는 골인지점을 분명히 보고 달립니다. 권투선수는 허공을 치지 아니하고 목표를 분명히 바라보고 주먹을 날립니다. 이처럼 신앙의 경주자도 목표를 분명히 바라보고 달려가자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하시는데 목표가 있습니까? 달려가실 목적지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 성도가 달려갈 신앙경주의 목적지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하자는 말씀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달려가야 할 신앙경주의 목적지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성도가 달려가야 할 목표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인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처럼 온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이룰 수 없다고 해서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겸손하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넷째,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2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봉독하십시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멘. 여기서 '버림이 된다'는 말은 '자격을 상실한다', '실격 당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의 상을 받을 자격을 잃을까 두렵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상을 받는데 혼자만 상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는 말은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즉 몸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의 소욕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강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구를 따르면 죄를 짓습니다. 바울은 이 욕구를 쳐서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의 욕구를 따르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라 복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웃지 못할 이야기가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14세기 경, 현재의 벨기에 지역에 레이몬드3세라는 군주가 있었습니다. 그는 친동생의 반란으로 폐위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동생은 차마 형을 죽일 수 없어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의 문은 특별히 설계되었습니다. 레이몬드3세는 원래 식욕이 왕성하고 뚱뚱한 사람이었는데 그 뚱뚱한 몸으로는 나올 수 없도록 문을 작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은 그 작은 문으로 빠져 나오면 살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감방에는 날마다 맛있는 음식들이 제공되었습니다. 좁은 문을 빠져 나오려면 그 음식들을 먹지 말아야 할텐데 식욕의 노예였던 레이몬드는 자제를 하지 못하고 열심히 먹다가 점점 더 뚱뚱해져서 영영 나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소리가 들려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즐기며 살아라!", "안 된다, 육체의 욕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 두 소리는 항상 우리 속에서 충돌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권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권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권하였습니다.

물론 육체의 욕망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울도 이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갈등을 "사망의 몸"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육체의 욕망을 이기게 하는 힘을 성령이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육체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육체의 욕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심으로 하늘의 상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실격되는 분이 하나도 없기를 기원합니다. 구원받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러나 면류관을 받는 것은 더욱 영광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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