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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을 세우는 사람 / 행 4: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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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행 4:36-37
제목 / 사람을 세우는 사람
설교 / 전충현 목사 (영암교회)


지금 현재 이 지구상에는 60억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도 단 <두 부류>의 사람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넘어지게> 사람,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 !
이렇게 말입니다.

강원도 <정선> 땅 !
그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에 <카지노>를 세운 사람 !
그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유혹에 넘어져 왔는지 모릅니다.

<로또 복권>으로 이 땅에 미친 바람이 불게 한 사람 !
그도 역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주(週)가 즐거웠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
그렇게 <찰나적인 즐거움>은 거기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마약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
<찰나적인 즐거움> !
그것은 <덫>입니다.
바로 그 <덫>에 걸려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 !
그 <덫>에 걸려서 결국 그렇게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이 땅에 부지기수로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 말고도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까 ?
<행복한 세상>은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은 바로 그런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과 저 !
우리 모두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그 비결을 <바나바>라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 본문 중에서 <36절> 말씀을 다시 함께 보시겠습니까 ?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바나바> !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알고 있는 사도들은 그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이 <바나바>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에서 <바>字가 붙으면 그것은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요나> 시몬은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위로의 아들> !  어떻습니까 ?
너무나 <멋진 이름>이지 않습니까 ?

그것은 그가 스스로 붙인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을 아는 다른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 !
누군가에게 <소망>이 되는 사람 !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를 가져다주는 사람 !
참으로 <멋진 인생>, 참으로 <멋진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 ?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될 수 있겠습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가 <말>로써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따듯한 <격려>의 말 한 마디 !
그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어떻습니까 ?
<매스컴>만 하더라도 보십시오 !
왜 그렇게 <비판적>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언론의 기능> 중에서 <비판 기능>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인줄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 지쳐버린 사람들 !
미래가 너무나도 불투명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명도 있다는 사실을 이 나라 언론들은 알아야 합니다.

따듯한 말 한 마디의 바로 그 <격려>가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히 10:24> 말씀도 무엇인지 아십니까 ?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할렘>街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 지역은 특별히 <흑인>들로 가득하고,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곳에도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의 아이들 중 50% 정도는 졸업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
그것은 마약, 술, 담배, 부모님들의 이혼 等으로 인해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퇴학을 당하는 아이들이 그 학교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학교에서 한 번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학교를 졸업한 한 사람이 어느 날 그 학교를 찾았습니다.
그 날은 새로운 아이들이 그 학교에 입학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61명의 아이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합니다.
  누구든지 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 졸업을 하는 아이에게는
  내가 대학학비를 전부 대 주겠다 !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
  너희들은 할 수 있어 !

성도 여러분 !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
초등학교 과정에서 이미 반 이상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가던 여느 때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61명 중 52명이 <고등학교>에까지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무려 <34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무엇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이렇게도 다른 인생을 살게 했습니까 ?
<돈>이라고요 ?
천만에요 !
그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믿는다 !
너희들은 할 수 있어 !
바로 그 말 한 마디의 <격려>가 그 아이들로 하여금 그렇게도 다른 인생을 살게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이렇습니다.
우리의 따듯한 <격려> 한 마디는 이렇게도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인생을 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격려>는 말라서 죽어 가는 나무에 <단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 40:1> 말씀도 무엇인지 아십니까 ?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
  내 백성을 위로하라 !

도대체 <무슨 말>로 위로하라는 말씀입니까 ?
거기 그 대답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리라 !
  산마다 낮아지리라 !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리라 !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라 !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것은 여기 이렇게 서로가 <격려>하고, 서로가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 인생>이 되어주는 것 !
바로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추운 겨울을 <남쪽 나라>에서 보내기 위해서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를 보신 적이 있습니다.
그 떼는 언제나 <ㅅ 字>형입니다.
기러기는 <왜> 그런 모습으로 떼를 지어 날아갈까 ?
<조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맨 앞에서 기러기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게 되면 그 뒤에 있는 새에게 양력(揚力)이 생긴답니다.
비행기로 하여금 하늘을 날게 하는 양력(揚力)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형태로 무리를 지어서 날아가게 되면 무려 71%나 더 멀리 날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간혹 그것을 모르는 기러기가 대열에 빠져나간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홀로 날아가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기러기는 곧바로 <ㅅ 字>형 대열에 합류하게 된답니다.
하지만 앞서 가는 기러기는 쉽게 지친답니다.
그래서 기러기들은 수시로 자리를 바꾸어서 날아간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뒤에서 나는 새들은 열심히 <우는 소리>를 낸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는 소리>가 아니랍니다.
그 소리는 앞서 가는 기러기를 향해서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소리랍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습니까 ?
새들도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는데, 우리는 지금 어찌하고 있습니까 ?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우리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
그런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국의 백만 장자 <100명>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저들에게서 <두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
<하나>는 저들 중 70%가 가난한 <시골 출신>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의 장점을 보는 눈을 저들이 가졌고, 그것 때문에 저들은 한결같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만 보는 사람 !
그러기에 입술을 열기만 하면 다른 사람을 열심히 <비판>하는 사람 !
그런 사람은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고,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우리 이제, <칭찬>에 너무 인색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따듯한 <격려>의 한 마디 !
그것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그런 곳에 모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바로 그런 삶이 이제는 여러분과 저의 삶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사람, <바나바> !
그는 <위로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로써만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37절> 말씀을 다시 보시지요 !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

자신의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내어놓는 모습 !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바나바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이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는 성도들마다 자기 것을 제 물건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열심히 나누는 모습 !
그런 모습이 초대교회 안에는 가득했습니다.
그처럼 서로가 열심히 나누는 모습 !
바로 그 나눔의 대열에 <바나바>라는 사람도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
여기 이런 모습 !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

<말>로 하는 격려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물질>이 가는 격려는 더더욱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물질>이 가면 <마음>은 반드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없어도 <우리의 말>은 얼마든지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위로와 격려 속에 <물질>이 담기면 더더욱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잠 19:17>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까 ?  구약성경 930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

성도 여러분 ! 
무슨 말씀입니까 ?
<물질>로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우리가 그 물질을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식하신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

결국 무슨 말씀입니까 ?
거기에는 결코 <공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기억력이 나쁘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빌리신 것을 갚기에 인색하신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빌리신 것을 갚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거기 <잠 11:25> 말씀도 무엇입니까 ?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
거기 그리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여러분의 삶>이 윤택해지기를 원합니까 ?
<예수님>도 여러분의 삶이 <윤택한 삶>이 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
여기 이 땅에다가 너무 많은 것을 쌓으려고 하지 말랍니다.
여기 이 땅은 <도적>이 많답니다.
여기 이 땅은 우리가 열심히 쌓은 그것을 <녹슬게> 한답니다.
그러기에 <하늘>에다가 보다 많은 것을 쌓으라 하십니다.
거기 그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은 <물질>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격려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경제원리>는 할 수만 있으면 열심히 긁어모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제원리>는 그것과 너무나도 다릅니다.
<예수님의 경제원리>는 할 수만 있으면 <먼저>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누르고> <흔들어> !
그리고 <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누르고> <흔들어> !
그것도 모자라서, <넘치도록>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경제원리>를 따라서 살아간다면 그 결국이 무엇이겠습니까 ?
<우리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산다는 결론에 우리가 이를 수 있지 않습니까 ?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이제는 더 이상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다시 쓰려고 하지 마십시오 !
그 책은 얼마 전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책입니다.

성도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정보는 무엇입니까 ?
그 책은 우리에게 <21세기형> 금융지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전한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인가 ?
그 책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돈을 <바르게> <잘> 사용할 수가 있을 것인가 ?
그런 문제에 대한 대답은 그 책이 우리에게 전혀 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세상의 그 어떤 경제원리로 여러분의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
<예수님의 경제원리>로 살아보십시오 !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는 자>가 복되다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서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고 하는 것 !
그것은 그 사람이 <성숙했다>는 증거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를 보십시오 !
여간해서 아이들은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할 수만 있으면 모두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
<인격적인 성숙>이 없이는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내  삶 속에서 <주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까 ?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말하자면 아직 더 자라야 하고, 아직 더 성숙해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신 24:19-21> 말씀을 함께 보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구약성경 299면.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

  네가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 두라 !
 
성도 여러분 !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경제원리>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경제원리>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여기 <이 원리>를 우리, 잊어버리지 말자구요 !
그리고 여기 <이 원리>대로 한 번 살아보자구요 !
그리하면 !
그리하면, 우리가 손을 대어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 하지 않습니까 ?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사는가 ?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넘어뜨리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떤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
사람을 <살리는> 사람 !
사람을 <세우는> 사람 !
우리가 그런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
바로 그것이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 !
여기 이 사실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뜻을 하나님께서 아직은 접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이제, 따듯한 <격려의 말> 한 마디를 아끼지 말자구요 !
우리 이제, <나눔의 삶>을 열심히 살아보자구요 !
우리의 그런 모습으로 인해서 이제는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도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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