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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어진 옥합 / 요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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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옥합 
요한복음 12:1-8
홍정길 목사 (남서울은혜교회)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남는 사건이 있다면 어떤 사건입니까? 우리들이 너무 좋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면 그 추억 속에 그냥 머물러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 추억이 내게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고 언제든지 가슴 가까이 두고 추억의 박물관에서 꺼내보고 싶어하는 목록이 됩니다. 이런 추억이 우리 주님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말하시기를 이 추억만은 내가 전파되는 곳곳에 반드시 회자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 서 그처럼 소중하게 붙잡고 머물러 있고 싶은 한 순간, 이 베다니 마을에서 생긴 일입니다. 이 일이 생긴 주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주간입니다. 이 주간에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구원을 주신, 사망 권세가 깨지고 부활의 능력으로 덧입는 영광을 안겨준 주간입니다. 장소는 베다니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 는 이 사건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문둥이 시몬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추측하기를 주께서 치료해주신 열 문둥이 가운데 다시 돌아와서 감사한 한 문둥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문둥이였고 지금은 치료받은 상태라는 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상상력을 발휘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마 그 문둥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마르다의 남편이었을 것이다. 하여튼 우리 주님이 베다니에서 한 집의 잔치를 받고 계셨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위한 잔치입니 다. 만약 문둥이 시몬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자기를 그 저주에서 풀러주신 주님을 향해서 감사가 쏟아져 주님 앞에 드려질 자리였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문둥이 시몬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다음에 마르다가 그 집의 실질적인 주인이어서 베다니의 사건이 기록될 때마다 문둥이 시몬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무지 추측이니 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마르다, 마리아 자매에게는 가정 의 기둥인 오라비 나사로가 얼마 전 에 다시 사는 놀라운 축복을 누렸기 때문에 그 감사와 감격은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잔치가 배설되었는데 역시 행동파인 마르다는 열심히 오락가락하면서 그 잔치의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때, 갑자기 상황이 바뀝니다. 마리아가 그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뛰어나오더니 예수님 발 앞에 순전한 나드향 한 근을 옥합을 깨뜨려서 붓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에는 우리 주님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합니다. 기름을 부어주는 것은 당시 최대의 영예입니다. 다윗은 시편 23 편에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 위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잔칫상에 들어갔을 때, 주인 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최 대의 영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론이 처음 대제사장으로 부름을 받고 즉위식을 가지던 날, 모세는 그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하나님의 축 복을 선물했습니다. 시편 133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바른 것이 아니라 너무 좋고 귀할 때는 머리에 부었습니다. 부으면 그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흐르고 수염을 타고 흐르는 그 기름이 옷을 적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부었던 이 기름은 얼마나 양이 많던지 머리 위에서 몸을 타고 그 발까지 적셨단 말입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자기 머리털을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극진한 대접을 할 때는 반드시 그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발을 씻길 것을 하인들에게 명령하는데, 하인들이 심기가 불편할 때는 주인에게 "주인님, 나는 오늘만은 발 씻는 것 을 면제해주세요."라고 그 발 씻는 것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것이 요즘 이스라엘에서 나온 문서에서 발견됩니다. 남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혹시 사랑하는 남편의 발을 씻겨 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등은 쉽게 밉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발을 씻겨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사랑하는 아내의 발을 씻어본 남편이 계십니까? 심리적으로 이 발을 씻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하인들이라도 너무 모욕감을 가질 때는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하인이 씻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발을 씻어줍니다. 그 발은 어떤 발입니까? 자기 집에 오셔서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있을 때 그 발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발은 어떤 발입니까? 인생에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고 아팠던 사랑하는 오라비가 죽었을 때, 슬픔을 가눌 수 없어 그 발 아래 자기 삶 전체를 엎어놓고 무릎 꿇었던 발입니다. 그 발이 자기를 구속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의 모든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 집에 왔습니다. 그 거룩하신 발 앞에 머리를 풀었습니다. 중동 사람들은 지금도 여인네들이 머리를 묶지 않고 풀어진 머리로 다른 사람 앞에 나가는 것이 실례입니다. 그녀는 발을 씻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걸레가 준비되지 않았는지, 의식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기 머리채를 걸레로 삼아서 그 발을 씻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방에 향기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이 나드는 원래 티벳과 인도 접경에 있는 히말라야의 높은 고산 지에서 나는 향료입니다. 너무 귀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다른 향료와 조 금씩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4복음서에 나온 말이 조금씩 다릅니다. 아 주 값비싸다고 기록된 부분도 있고, 아주 고귀한 것이라고도 기록된 부분도 있고,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극상품이라는 뜻도 있고, 순전한 향유라고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 중 하나가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팔아서 300 데나리온을 받으면 가난한 사람을 잘 섬길 수 있을 텐데.."
계산 잘하는 가룟 유다가 이 나드가 300 데 나리온이 나간다고 셈을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처음에 제자들에게 이 야기합니다. 그랬더니 그 부정적이 고 원망하는 마음이 일시에 퍼집니다. 그래서 모든 제자들이 분기가 충전했다(마 26:8)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옥합이라고 말하는 이 사라석고는 지금도 유럽의 골동상에서 고가를 주고 매매되는 일종의 도기입니다. 그냥 그 병에서 따라도 됩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그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랬더니 불평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많은 시간 교제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 귀한 일을 먼저 앞서 행했어야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자들은 불평하고 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그 제자들의 사고는 돈 중심이었습니다. 어떤 안목으로 사태를 보느냐는 참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제자처럼 매사를 돈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저는 일리는 있지만 멸시해야될 단어 중의 하나가 시간이 돈이라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모든 것의 가치척도의 중심인 것처럼 잘 못 오도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가룟 유다가 그랬어요. 그는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돈 만지는 일을 했습니다. 자기 일에 충성하고 몰입하다 보니까 예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도 잃어버린 채, 최대의 관심은 자기에게 맡겨진 그 돈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될 것은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할 때, 잘못하면 우리가 맡고 있는 일 때문에 주님의 의도와 관심사를 멀리할 수도 있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 보면 성가대, 기도를 안 하면 예배가 아니라는 사람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하지 않는 것은 교회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모든 것이 협력해야 되고 그 최후의 권위가 우리 주님께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잘하고 자기가 관심 있고 자기가 맡아있는 그 일 중심으로 모든 일을 평가하려고 드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나쁘게 변질된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예요. 그는 돈을 만지며 예수님의 모든 뒷바라지하며 돈을 쓰는 권리를 가지고 자기 개인의 적은 영달에 만족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저는 도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했는데, 어떻게 도적질 해 먹었겠습니까마는 돈을 늘 만지다 보니까 콩떡을 만들면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그런 사고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안 했는데, 결국은 쓰다보면 내 중심으로 바뀌어지는 경우를 봅니다.

  요즘, 서울의 큰 교회에서 누가 재정위원장이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50억, 100억, 200억, 어떤 은행에 돈을 맡기느냐에 따라서 실적이 달라지니까 재정위원장 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 봅니다.

  마태복음, 마가 복음에는 제자들이 분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주께 서 말씀하십니다. "저를 괴롭게 하지 말라." 여기 요한복음은 "저를 가만히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 상 있지 아니하리라." 두 마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행하고 있는 일은 나의 장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너희를 곧 떠날 것이다. 그리고 주께서는 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이 행한 그 모든 일은 반드시 알려져야 된다"
그렇다면 오늘 이 사건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로,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골고다에 달리실 때 이 베다니의 마리아는 곁에 가지 않습니다. 이 여인은 이미 예수님 살아있을 때, 예수님을 위해서 향유를 모두 썼기 때문에 그 후에는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요? 그 비결은 우리 주님의 발 앞에 있는 시간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기쁜 날, 예수님의 발 앞에 있었습니다. 그의 최대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가? 예수님께서 어떤 의지를 가지셨는가? 우리 예수님께서 무엇을 가장 원하시는가? 였습니다. 그는 자기 언니와 함께 일 하면서도 예수님의 동정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마음 전체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았습니다. 그의 눈은 예수님의 눈동자와 부딪쳐 있습니다. 그의 귀는 예수님의 입에 집중되어 있습 니다. 그의 심장은 주님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그 뜨거운 사랑을 받으려고 몸 전체로 나갔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실패하면서도 그 발 앞에 앉아있는 시간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사랑은 관심을 불러냅니다. 사랑하면 깊은 관심이 쏟아집니다. 이 여인은 우리 주님을 중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 분의 최대의 관심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집중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생 애, 가장 쓰라린 비극, 사랑하는 오라비가 죽었던 절망의 그 시간에도 이 여인은 그의 발 앞에 엎드려서 그 분께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주님이 얼마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알았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말씀 중에 제자들이 귓등에 흘려 버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얼마 있으면 유대 관원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죽으리라." 계속해서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님이 공생애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인자가 높이 들려야 되리 라."고 주께서 어떤 죽음을 당할 것인가를 계속해서 말했는데, 제자들은 안 믿었습니다.

  "예수님, 당신 보니까 물위를 걸어다니시던데, 당신 보니까 에워싸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없는 투명인간처럼 그냥 지나가시던데, 당신이 명령했더니 바다와 바람도 잔잔해지시던데, 당신이 물고기 두 마리, 보리 떡 다섯 덩이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니까 5천명이 먹고도 남던데, 당신이 이미 죽어서 썩기 시작한 시체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명령하니까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던데, 그 권능을 가지고 죽어요? 어림없습니다. 당신은 메시야입니다. 이 땅을 다시 회복시킬 분이십니다. 그 때 나는 당신의 좌편, 우편에 앉겠습니다."

  제자들은 끝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주께서 죽으신다는 의미를 그들은 몰랐습니다. 주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주님이 되기 원했습니다. 주께서 어떤 길을 가시겠는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단 말이예요. 사랑은 상대편을 향한 관심입니다. 이 여인은 사랑할 줄 알았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발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십니까? 그래서 그 분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그대로 순전하게 받는 시간이 얼마나 되십니까? 기도해도 그냥 내 소원 말하고, 성경을 봐도 내 이익 된 것 만 뽑아 쓰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사랑할 줄 아는 마리아는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이 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나드를 담은 그 옥합이라도 쓰게 안 깨뜨려야 될 것 아니예요. 또 다준다고 해놓고 따라놓고 보면 좀 남으니까 떡고물이라도 남길 수 있쟎아요. 그런데 이 여인은 다 주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주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당시의 도기인 옥합을 깨버립니다. 완전히 쏟아 부었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주기로 작정했습니다. 여러 분, 사랑은 그러합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주고 또 주어도 모자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그 사랑이 주님께로부터 자기에게 날마다 넘쳐 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주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자신을 주셨습니다. 주시다  못해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이 여인은 그 영광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아낌없이 자기를 향해 쏟아주 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그 역시 아낌없이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머리에 붓고 자기 머리털을 걸레로 삼아 주님의 발을 닦는 헌신으로 나아갔습니다.  "내게는 당신 이상 존귀한 분이 없습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세 번째로는 사랑은 기회를 잃지 않습니다. 이 여인은 주변의 여러 정황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실 날이 임박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깜짝 놀란 것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대로 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사로를 불러내니까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발 앞에 있을 때, 자기에게 부어 준 그 사랑의 메시지, 온 인류 대속을 위해 죽으시기로 작정한 어린양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대로 온 예루살렘과 유대의 모든 세력들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 여인은 감지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더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유월절 어린양 대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영광의 장례식을 생각하면서 향유를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사건에 대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토마스 칼라엘은 평생 살면서 자기 아내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는 그 시체를 붙잡고 "여보, 5분만 눈을 떠다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이 말을 하고 싶다구요."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들이 귀한 시간들을 놓쳐버리고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리고 이처럼 5분만 눈 떠달라고, 혹은 임종 직전에 내게 1년만 달라고, 그러면 주님을 위해서 사랑의 헌신과 봉사를 하겠다고 붙잡습니다. 부끄러워서 주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회를 놓치고 후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많은 좋은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좋은 생각을 구체적으로 헌신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하고 끝냅니다. 이 여인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사랑은 그 분을 향한 관심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 양보하는 것 같은데 기회만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나드 한근이 300 데나리온이니까 한 데나리온이 한 사람 하루 품삯이에요. 그러니까 300일 품삯입니다. 우리가 1년에 300일을 일 못 합니다. 52일 쉬고 공휴일 쉬면 280일 좀 넘습니다. 그래서 1년 연봉의 옥합을 깨뜨리자고 했습니다.
  그 옥합 깨뜨린 결과로 이 아름다운 건물, 밀알학교를 주께서 주셨습니다. 제가 당시에 로스엔젤리스에 갔었는데 어떤 장애인 가정에서 저를 초청해서 만나서 이야기합니다. "남 서울교회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학교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가 얼마나 소망하며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장애 가진 자식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해오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와 아무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미국 정부에서 자기들을 잘 섬 겨준대요. 그런데 한국에서 한 교회가 장애인 학교를 짓는다는 소식이 미국에 있는 장애인 가정에 소망을 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깨뜨려진 옥합은 향기가 진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윤영곤 집사님은 연해주에서 우리 동포들과 러시아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병원을 정리하고 선교훈련도 마치셨습니다. 바보들입니다. 생애 소중한 부분을 허비해버린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사랑은 주고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한 것이 사랑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그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교회가 될 것인가는 중심으로 주님 앞에 옥합을 깨뜨린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가로 결정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준비하는 분도 봤습니다. 은퇴하면 선교사로 갈 거래요. 어떻게 갈 겁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돈은 벌어놓은 것 은 없지만 집 한 채는 있으니까 그 전세금 받아서 은행에 넣어 이자 나오면 선교비 염려할 것도 없고 저개발국가로 가려고 하는데 일반회사 생활하면서 배웠던 개발도상의 과정을 도와주며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만약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만 결정하면 우리나라에서 10만 명의 선교사도 보낼 것 같아요. 우리에게 전체를 주신 주께서 전체를 받으시길 기뻐하십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마리아의 귀한 헌신이 우리의 생애의 푯대가 되어서 주님 마음에 지워질 수 없는 주님과 나만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 하나는 가지고 주님 앞에 가야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사건만 생각하면 신이 나고 그 사건 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으시고 그 사건만 생각하면 흐뭇해하시는 이런 헌신 말입니다. 주님 앞에 설 때 그 영광스러움으로 채워지는 복된 한 평생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 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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