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허무한 인생에서 해방 / 롬 8:18-28

  • 잡초 잡초
  • 419
  • 0

첨부 1



◎ 성경본문:로마서8:18-28
◎ 일시:2003년 2월16일

허무한 인생에서 해방 

혹성탈출이란 영화의 줄거리는 서기 2029년 지구에서 쏘아 올려진 우주 정거장에서는 인류의 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위해 훈련받은 침팬지를 이용, 그 비밀을 밝힐 소 우주선을 은하계로 내려보냅니다. 침팬지를 태운 소 우주선이 우주 정거장의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공군 대위 레오 데이비슨(마크 월버그 분)이 긴급 출동하는데, 잠시 후, 레오가 탄 우주선 계기판의 작동이 멈추고, 레오가 두 개의 태양을 보는 순간 이상한 힘에 이끌려 우주선은 이름 모를 행성의 늪지대에 추락합니다.
레오가 도착한 행성은 원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암울한 곳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유인원(원숭이)에게 길들여져, 멸시 당하고 하등 동물 취급받는 노예와 같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을 말살해 버리려는 사악한 지도자 테드(팀 로스 분), 모두가 공존해야 한다는 평화주의자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 분) 그리고 속박과 억압에서 독립하려는 인간들이 나옵니다.

실제로 사람이 짐승에게 노예가 되어 산다고 하면 아주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럴 수밖에 없다면 암담, 허무, 허탈, 절망, 좌절, 실망등등으로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것보다 더한 일을 실제로 당하고 있는데도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20절에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피조물은 사람을 가리키며, 허무한 것은 죄와 죽음, 썩어질 육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람은 죄와 죽음과 썩어질 육신에게 그야말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 앞에서 굴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말씀에 대해서 인정할 수 있습니까?
19-22절 말씀을 정리해 보면 모든 피조물인 사람들은 자기 의지에 관계없이 죄와 사망과 썩어질 것 앞에 굴복함으로 탄식하며 고통 가운데 살면서, 이런 탄식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에 자유에 도달하기 위해 간절히 기대하고 있는 사람의 현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끊임없이 죄를 짓고, 마치 자기 육신에 빚이라도 진 사람처럼 자기 욕심에 끌려 필요이상으로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자꾸 쌓으려고 하는지! 그래봐야 육신이 영원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고 죽어서 썩어 없어질 것인데! 많이 쌓은 사람일수록 죽음 앞에 허무함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뭣 때문에 살았는가? 이렇게 죽으려고 그렇게 안 먹고 안 입고, 베풀지도 않고 나누지도 않고 살았는가? 생각하면 자기 인생이 불쌍합니다.

그러므로 인생들은 이런 허무에서 탈출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혹은 어떤 신의 아들들이 출현해서 이런 허무한 것 즉 썩어 없어질 것들에 종노릇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어제가 음력 정월 대보름날인데 둥그런 달에게 빌어보기도 하고, 큰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에게 빌어 보기도 하고, 망망대해 앞에서 간절히 소망을 빌어 보기도 하고, 참선, 요가, 명상등 다해 보지만 탄식함과 고통이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 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내가 온 것은 양(사람)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10:10)하심으로 당신을 통해 풍성한 생명을 약속하셨고,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로마서8:2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고 함으로 예수로 말미암아 허무한데서 굴복하고 썩어질 것의 종노릇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 주심을 선언하였습니다.
사람이 허무한데 굴복함에서, 썩어질 육신에 대해서 자유함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믿었는데도 여전히 죄에 노예처럼 죄를 짓고, 썩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육신을 위해 한도 끝도 없이 채우려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점점 죽어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불신자처럼 탄식하며 내 몸의 자유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2절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아느니라."
23절 "그뿐아니라(심상치 않다)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믿는자들)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2절에 "탄식"은 모든 피조물이 하는 "탄식"이고, 23절의 "탄식"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탄식"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도 탄식하며 몸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차이가 있습니까? 있지요! 없다면 성경이 뭣하러 필요하고, 목사가 왜 필요합니까?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지요.
요한사도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5:13) 성경이 있고, 목사가 있으니 행복한 줄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경과 목사를 조종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여러분 우리가 탄식과 허무함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날은 앞으로 주어질 소망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이루어집니다.
24절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즉 우리가 받은 구원은 소망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소망 속에 놀라운 은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예수 믿어도 천국 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허무함에 굴복하고 탄식하며 살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 땅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탄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분명히 압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타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어떤 노력이나 공을 쌓아서 마지막 때에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순간에 구원은 완성되어짐으로 더 이상의 노력이나 공을 쌓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이 땅에서 탄식하지 않고 살수 있는가를 알게 하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에 주어질 완전한 자유 즉 구원이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저는 여러분에게 율법 혹은 계명은 죄인 된 나를 보게 하는 거울일 뿐이지, 그것을 지켜서 구원은 받는 것은 아님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계명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확실한 소망 때문에 다음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기에 허무함에 굴복하지 않고 탄식하지 않고 살수 있습니다.
첫째는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사는 삶입니다.
25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라"고 하신 말씀과 17절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라는 말씀을 합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자! 내가 지금 너에게 뺨을 한대 후려 갈길테니 참아라이!"하는 것과 "자 한 대 후려갈기고 1억 줄테니 참아라이!"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왜 허무한데 굴복하며, 탄식합니까? 장차 주어질 영광을 바라보세요.

둘째는 성령의 도움을 받는 삶입니다.(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
23절에서 그리스도인들도 탄식한다고 하였는데, 우리와 함께 하신 성령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탄식하며 살수 없는 사정을 아시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니다. 그 결과는요? 27절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님의 기도가 하나님께 적중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세요.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기도는, 우리가 탄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확실한 줄입니다.

셋째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입니다.(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지라도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좋게 하심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믿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좋은 작품은 그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습니다. 두들기고, 깍아내고, 불로 달구어 내기를 여러차례합니다.
사람을 만드는 최대의 작가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 손안에 있는데 허무한데 왜 굴복합니까? 왜 탄식합니까? 작가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더 이상 허무한 것 즉 죄와 죽음과 썩어질 육신의 정욕에 굴복하며 탄식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죽이고 만드신 것입니다.
장차 주어질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기쁨으로 참아내시고, 하나님께 적중하는 기도만 하시는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시고, 최고의 걸작품을 위해 나를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