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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긴장 / 벧후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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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적 긴장
본문 : 베드로후서 3:8-13 


호레시어스 보나 박사(Dr. Horatius Bonar)는 밤이 되면 커튼을 치면서 기도하듯이 "혹시 오늘밤에, 오 주님!" 이라고 되 뇌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하늘을 쳐다보면서 "혹시 오늘인가요? 주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루하루 주님 오실 것을 예비하며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긴장하고 살아가는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에 대하여 두 가지의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께서 오실 날을 예측하여 정해 놓고 전격적으로 예비하는 자세입니다. 10년 전에도 그런 소동이 우리나라에 있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이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이라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앞으로 또 누가 그런 주장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 오실 때가 되었다고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오직 기도만 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예 무관심한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 다시 오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2000년이 지났는데 이제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영적 긴장이 풀리고 도덕적으로 느슨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전자처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예측하고 광적으로 예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영적으로 긴장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영적 긴장은 필요합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긴장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까지도 도덕적으로 해이한 것은 영적 긴장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할 말이 없는 시대입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봉독한 본문을 중심 하여 "영적 긴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길어지는 은혜의 사랑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곧 오실 것으로 믿고 기다렸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진지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자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적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가 한 마디 했습니다.

8-9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 하십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멘. 주의 약속이 더딘 것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은혜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예수님이 다녀가신 지 2000년이 지났지만 주님께는 한 2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느긋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시간표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표에 맞지 않으면 의심합니다. 불평합니다. 좀 느긋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의 약속이 너무 더디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무관심해졌을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는 더딘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더 구원받도록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은혜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의 기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 같으면 벌써 세상을 몇 번이고 심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조급합니다. 우리는 참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가 우리의 잣대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잘못 판단합니다. 하나님은 아예 심판하지 않는 분으로 오해합니다. 결국 영적 긴장을 풀고 도덕적으로 느슨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는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회개하도록 오래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를 제대로 알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마십시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함

주의 날은 도적같이 임합니다. 방심하고 있으면 큰 코 다칩니다. 영적 긴장을 풀고 있다가는 큰일납니다.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라고 하였습니다. 방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긴장을 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방심하다가 도둑을 맞듯이 긴장을 풀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을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아멘.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런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4절의 말씀을 오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며 그 날이 너희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리니 ..." 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에 의거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알려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그 날과 그 시를 미리 알려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날짜를 정해 놓고 예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때를 미리 알려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늘 깨어 있으면 도둑맞듯이 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도둑이 언제 올지 알아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깨어서 지키면(항상 빛 가운데 살아가면) 도둑맞지 않습니다. 항상 빛 가운데 살아가면 주님의 오심을 맞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늘 긴장하고 깨어 있으라

그러므로 늘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 긴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11절 하반절에서 12절 상반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아멘. 주의 날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를 잘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은 영적 긴장의 결과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근신하는 사람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영적 긴장을 풀면 도덕적으로 해이해집니다. 도덕적으로 문란해집니다. 영적 긴장을 풀지 마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기독교인 25%를 자랑하는 한국이 혼란스러운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어느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5%만 되면 시대정신을 만든다고 합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7%의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시대정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정신을 만들기는커녕 세상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불행한 일입니다.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창피해서 모든 문제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은혜가 되지 않을까 봐 말씀드리기가 두렵습니다. 이제라도 성도가 깨어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감리교의 신앙전통인 성결 신앙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거룩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하기모스'입니다. 이 말은 보통 '거룩'으로 번역되지만 본래의 뜻은 '다르다', '구별된다'입니다. 거룩은 세상의 것과 다른 것, 세상 사람과 다른 사람, 세상의 삶과 다른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레위기에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거룩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레위기 입니다. 레위기는 먹는 것도 구별해야 먹으라고 합니다. 종교적인 거룩은 물론이요, 침상에서 먹는 데까지 거룩 하라고 말씀합니다. 나아가서 사회생활의 거룩함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에만 경건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곳에서나 경건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되 성전에 있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입술로만 예배하지말고 삶 전체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긴장을 풀지 말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살아야 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

성도가 가는 목적지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천국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잠깐 지나갑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세대가 금방 지나갑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되 큰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세상에 미련을 가질수록 영적으로 흐트러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십시오. 영적 긴장이 풀리고 도덕적으로 느슨해지려고 하면 천국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갈 곳은 천국입니다.

1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의가 거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악이 가득하고 죄악이 많아 멸망을 초래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의가 충만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준비하는 사람은 의로써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일본인 교수의 고백입니다. 그는 부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 뒤에 천국이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눈이 열려 천국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대해 눈이 열리니 삶에 변화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던 세상의 욕망이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육체의 쾌락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웅다웅 하며 싸우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습니다. 그는 부인을 먼저 천국에 보내고 나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되었고, 천국에 대하여 눈이 열리자 경건한 생활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긴장을 풀지 말고 항상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다고 느긋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항상 긴장해야 합니다. 이 세상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바짝 긴장하고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만 보지말고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계속 긴장하십시오. 영적으로 긴장해야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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