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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 창 19: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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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차재일목사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창세기 19:24-28


지난 한주간은 참 우울했습니다.
대구 지하철 사건도 그렇고, 제 친구 목사의 아내가 죽은 사건으로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신촌 세브란스에서 장례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단 앞에 관을 놓고 영정을 앞에 놓고 있자니 전목사가 연애할 때 남산에 같이 갔던 시절부터 별의 별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위로가 되는 것은 대구에서 시신을 찾지못해 안타까워 발을 구르는 분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고, 또 그분들 중에 그 영혼이 어디로 가야할지 준비되지도 못했는데 떠난 분들에 비하면,
사모님은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서 애도하고, 또 가신 길이 분명하기에 위로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몇 달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마지막이 될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주에만 해도 저희 내외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사모대학에 가기로 손을 꼭 잡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장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늘 롯의 아내를 통해 우리 자신을 새롭게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롯은 삼촌 아브라함을 떠날 때 큰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력으로 큰 꿈을 이루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선택할 때 그가 바라본 곳은 샘근원을 찾아 우물을 팔 필요가 없는 물이 넉넉한 곳이며, 여호와의 동산같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애굽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와 함께 딸들과 사위를 얻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더 고달프고 진이 빠지는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그가 살아가는 곳에 경건은 없었습니다. 생존만 있었습니다. 쾌락은 있었으나 기쁨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를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롯의 가정만은 지켜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 아브라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가족을 구원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불행한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신앙을 고백하는, 그녀의 남편은 의인이었습니다. 소돔이 파괴되던 날, 아내는 남편 롯과 함께 그 도시를 떠났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뒤돌아 도시를 쳐다보는 바람에 그만 순식간에 죽임을 맞이하여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오늘의 교회를 향한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영어성경에서는 기억하라(remember)고 말씀합니다.
눅17:32절에서 하나님은 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나 룻을 기억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영원히 잃어버린바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주님은 사랑과 자비, 은혜가 가득한 분입니다.

그 주님이 롯의 아내가 행한 것처럼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기억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는 사실 분주하게 살아가면서 이런 일을 잊어버리고 살 위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롯의 아내는 많은 특권을 누렸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사는 시대는 진정한 구원의 신앙을 접하기가 어렵던 시절입니다. 성경도 없었고, 사역자도, 교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몇몇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한정적으로 베풀어졌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흑암과 무지, 미신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때 롯의 아내는 수백만의 한명이 누릴 수 있는 특권들 즉 영적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명확한 지식을 얻었고, 명확한 경고까지 받았으니, 참으로 그녀는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척 아브라함은 믿음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두사람의 믿음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특권을 가졌습니까?
아브라함이 최초의 언약을 받을 때, 롯의 아내도 거기 있었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소돔에 와서 그녀의 남편에게 달아나라고 경고할 때도 그녀는 그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그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 도시를 빠져나갈 때, 그녀는 그들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이것을 결코 사소한 특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롯의 아내는 아무런 선한 영향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은혜로 주어진 수많은 기회들에도 불구하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특별한 메시지와 경고들을 들었음에도 그녀는 타락한 상태로, 불경건하고 완고하고 믿음에 순종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다 그 모습 그대로 죽었습니다.

그녀의 명철의 눈은 단 한번도 뜨인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각되거나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 여인의 신앙이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신앙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남편의 생활방식에 순응했을 뿐입니다.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수동적으로 남편이 걷는 길을 따라 걸으며 이러저리 휩쓸려 다녔을 뿐입니다.
아내의 마음은 세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오직 관심은 세상뿐이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이런 마음상태로 살아가다가 그 모양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태은성도들은 부흥회를 앞두고 발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롯의 아내들로 가득찬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부모나 아내 혹은 남편 때문에 신앙적 특권을 많이 누린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영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습니다. 나는 은혜로 주어지는 풍성한 기회들을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제공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좋은 설교를 듣고, 성경지식이 풍부한데다 지극히 신실한 가족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개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다가 끝내는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 멋진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내가 교회에서 리더로서 역할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십니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게하시는 엘리야의 종이었습니다. 늘 함께 다니던 종이었지만 나아만의 옷 몇벌이 아까워서 거짓말했다가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3년이나 함께 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돈  몇 푼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롯의 아내는 세상에만 정신이 팔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내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올바른 지식과 엄중한 경고와 특권을 향유했지만 바른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은 신앙적 특권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결코 지금의 특권이 나를 영적으로 성숙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내 가족중에 신실한 분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그분이 좋은 모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잡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분위기가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환경이 나를 영적으로 바로 세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나라의 훌륭한 목사님들처럼 여러분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정말 좋은 설교는 듣기만 해도 감동이 되고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 설교를 듣는 분들은 정말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는 집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 너무 분주한 것 아니야? 그런 일쯤은 맡길 만한 사람은 없어?” 그랬더니 제게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럼 당신에게는 그렇게 맡길만한 사람이 있어?” 제 아내는 지나가는 말로 했고 잊어버렸지만 저에게는 지금까지도 가슴에 울리고 있습니다.
정말 태은교회에 차목사의 영적인 영향력을 받고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열정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인가? 내 아내가 아닌 하나님이 물으셨을 때 그 이름을 몇 사람이나 번개같이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이 시대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명받는 특권을 받은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런데 그 놀라운 설교를 듣고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그 마음은 어떻습니까? 결국은 그 문제입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롯의 아내와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경건한 부모님의 기도가운데 자라나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늘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열매없이 심령이 황량한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완고하고 완악하며 세상적인 상태로 놓아두어서는 안됩니다. 부모님이 잘 믿었다고 해서 자식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내 자신을 거룩케 함을 경험하고 소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롯의 아내와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한 소년이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비결을 물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일부터 해야 합니까?”
그때 목사님은 소년에게 친절히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한시간만 내가 가르쳐준 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겨우 한 시간인데요.”
목사님이 소년에게 설명했습니다.
“하루에 15분씩 기도하고, 15분씩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게. 15분씩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15분씩 사랑을 실천하게. 그러면 자네의 인생에 밝은 빛이 보일걸세.” 그 소년은 그때부터 이 교훈을 행동으로 옮겨 전세계를 누비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사람은 빌리 선데이. 세계적인 부흥사의 이름입니다.

결정적인 한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꿉니다. 좋은 가르침은 소멸되지 않는 인생의 귀한 자산이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무감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껏 수많은 기회들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고에 살았던 삭개오를 기억하시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여리고를 지나가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번 지나가시면 그 길을 다시 걷기 않을 것입니다.
삭개오에 있어 그 걸음은 주님을 뵈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예수님이 지나치실 때 주님을 뵐 수없어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오늘은 네 집에서 묵으리라’
삭개오가 그런 열심을 갖지 않았더라면, 서둘러 주님께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삭개오는 잃어버린 영혼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 길을 마지막으로 지나가시던 길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사는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기쁨을 여러분이 누리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주제로 부흥회가 월요일 저녁까지 계속됩니다. 성도여러분! 이 부흥회에 전념하십시오. 생각을 집중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바뀝니다.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어느 분이 죽어가는 교회를 설명했습니다. - 서로 관심이 없다. 자기 일들에 바쁘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 참석해 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한다.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모임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많다. 성도들의 얼굴에 기쁨보다는 짜증스럽거나 귀찮아하거나 수심이 가득 차 있다. 기도회는 거의 텅 빈다. 교회의 권위가 없다. 질서도 없다. 목회자는 단지 종일뿐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권위는 온데 간데도 없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태은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이기를 소원합니다. 생명있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하이벨스 목사의 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주일설교를 마친 후에 한 신혼부부가 담요에 싸인 아기를 팔에 안겨주며 기도하기를 요청했습니다. 아기의 이름을 묻자 젊은 엄마는 아기의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순간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이제까지 본적인 없는 끔찍한 기형인 아기였습니다. 작은 얼굴 전체가 움푹 함몰되어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아기가 숨을 쉬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오 하나님 이럴수가 어떻게---”
엄마가 말합니다. 아기 이름은 에밀리에요. 두달정도 밖에 살수없다고 합니다. 아빠가 말합니다. “이 아이가 죽기전에 우리의 사랑을 알고 느끼도록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좋겠어요.” 기도를 마친후 목사님은 물었어요. “어떻게 도울 수 있는 있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오랫동안 소그룹에서 사랑을 받았어요. 이 슬픈 소식을 들은 날 밤, 소그룹 지체들이 우리집에 함께 있었습니다. 에밀리를 데려오던 날, 집을 청소하고, 식사까지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밤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 줍니다. 에밀리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있습니다.”
빌 하이벨스목사는 말합니다.
교회가 아니라면 그 가족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교회가 아니라면 그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교회는 슬픔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소외되고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희망입니다.
저는 주님의 제자들이 태은교회에서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아직은 온전치 못하지만 교회가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태은교회에 소망을 걸고 함께 열정을 쏟을 형제는 누구입니까?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를 갈망하는 자매는 누구입니까?

저는 우리 태은교회에 롯의 아내가 없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의 사자들이 롯을 찾아 오셨듯이 이번 성회에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이 머무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부흥회에 학생, 청년, 장년, 노인들도 모두 은혜받는 일에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축복된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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