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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격려하는공동체를 이룹시다 /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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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격려하는 공동체를 이룹시다.
히10:19-25
윤정현 목사 (대선교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간 광야 길을 걸은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2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행진하다 보면 얼마나 문제들이 많이 생겼겠습니까? 그래서 50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두어서 그들간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공동체가 화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결하다가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되면 그 문제는 제사장들에게 가져옵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에 제사장들은 그 문제를 가지고 장막 속에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제사장이 장막으로 들어 가 있는 동안에 백성들은 깊은 침묵에 들어가고 제사장은 문제를 하나님께 아룁니다. 특별히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아뢰면 제사장들은 어떤 메시지를 가지고 나올까 하여 조바심을 합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올 때 대체적으로 세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갖고 나옵니다.

  첫째는 죄의 용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여 앉아서 그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제사장들이 그 죄를 짊어지고 성소로 들어갑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가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그들의 범죄를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행진에 필요한 힘을 얻습니다. 대제사장은 자주 이스라엘 공동체가 연합해야 할 필요성과 사랑의 중요성을 하나님 말씀을 대언 함으로써 전달했습니다.

  셋째는 목표 제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해 나아가는 도상에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일의 목표, 다음에 할 일, 미래의 비전을 말씀으로 전달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자신의 문제를 극복해 나가도록 돕습니다. 광야 행진 가운데 발생되는 모든 문제들을 장막 중심의 교제로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른 말로 말하면 "격려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오늘 우리 교회는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격려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많은 문제에 시달립니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간에, 심지어는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교우들끼리도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들을 용서하시는 사실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그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야 할 진정한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목표를 향해서 다시 달려갈 수 있는 삶의 에너지를 얻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로 교회 공동체는 격려 공동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구성원들이 서로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들입니까? 우리 형제들이! 또는 자매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아니 힘들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이 같은 격려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격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잘 모여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모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중심으로 모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도 그들이 잘 모인 데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언제 모였습니까? 안식 후 첫날, 일주일에 한 번 모였습니까?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 교회가 얼마나 자주 모였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46 절)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날마다 모이는 것이 번거롭고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이는 데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오늘 본문은 아마도 사도행전이 기록(A. D62-A. D63)된 이후에 적어도 2,30년은 흐른 뒤의 기록으로 봅니다. 이미 초대교회의 열기가 많이 식어진 후였을 것(A. D80-A. D90)입니다. 날마다 모이던 열성이 조금씩 식어 가는 위기를 맞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하기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현대 교회는 어떻습니까?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까? 우리 시대에는 주일 아침 예배만 겨우 나오고 마는 신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오후 예배를 없애기도 하여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이라도 더 말씀을 나누고 격려하고 같이 찬양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함께 모여 있는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모이지 아니하고 신앙이 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이지 아니하고 사랑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모이는 중에 하나님을 만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약속하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장막을 중심으로 모였습니까? 그 장막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장막에는 주의 영광이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고 기도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되실 때 진정한 모임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는 모임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을 만나야 합니다. 히10: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구약 시대에는 아무나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만 출입할 수 있었고 특히 지성소 안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순간에 성전 안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하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돌아가시던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 19,20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 그것도 1년에 한 번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은 반드시 그의 피를 힘입고 나가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만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함께 예배하는 주님의 자녀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만나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피차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이 험하고 고달픈 길이었지만 끝까지 가나안 땅까지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격려 공동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격려라고 하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불러서 곁에 있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말하는데 부름을 받아 곁에 서 계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우리 곁에 서서 위로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격려는 불러 곁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서로를 자극한다" 혹은 "서로를 다듬는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격려자가 되려면 우선 같이 있어야 합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 억울함을 당한 사람, 마음 속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격려의 출발입니다. 거창한 말을 해야 격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격려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공연히 그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욥의 친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더 상처를 주고 오지 않습니까? 무엇을 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함께 있어 주시기 바랍니다. 손이라도 잡고 사랑스러운 눈빛을 교감하면서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격려는 같이 있어 줄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격려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격려해야 할 내용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는 믿음을 격려해야 합니다.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가 진실한 마음과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을 갖도록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로 주님께 나아가도록 격려합시다. 우리가 만날  때마다 온전한 믿음으로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피차 믿음을 격려해야 합니다.

둘째는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주께서 약속하신 수많은 언약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삶을 살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그 소망이 자꾸 흔들립니다. 그래도 여러분!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너를 축복하고 반드시 너를 도와 주리라"고 약속하신 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주님이 좋은 일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힘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옆에 분들과 인사하시면서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힘을 내세요!" 모든 일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을 확실히 믿게 해야 합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끝으로 사랑으로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왜 사랑에 선행이 따라옵니까? 선행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행동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행을 사랑 안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 세 가지는 우리가 만날 때마다 격려해야 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격려를 예수님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은 격려의 삶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우울하고 괴롭고 슬플 때에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격려하십니다. 또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하시면서 힘들고 어려워도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으라고 믿음을 격려하셨습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라고 하시면서 주님이 떠나가시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소망으로 격려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마도 주님의  격려를 받은 제자들은 "주님이 지금은 우리를 떠나시지만 장래에는 우리가 주님 곁에 머물겠구나"라고 하면서 소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부디 바라기는 우리 대선 교회는 격려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모여야 하겠습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시고 여러분 곁의 형제 자매들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격려가 필요한 분들이 이웃에 있지 않는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믿음을 격려하고 사랑으로 격려하고 소망을 심어 주심으로 격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우리 모두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격려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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