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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 히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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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히브리서13:14
제목 :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오늘 예배는 2002년 한 해의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사흘 후 수요일부터 구주 대망 2003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기준해서 보면 어제나 오늘, 오늘이나 내일이 다를 바 없습니다만 한 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주일은 무언가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2년 한 해가 마지막 지나가는 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오늘 본문의 진리를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는 진리를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변천하는 세상 속에서,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무상한 세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림자를 잡으려고 애쓰는 대신 정말 있는 그것을 추구하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14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개역 성경 본문은 두루 뭉실하여 한 문장처럼 보입니다만 뜯어 살펴보면 본문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영구한 도성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는 장차 올 영원한 도성을 찾고 있다" 14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 진리를 성령으로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여기 세상에 영구한 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동시에 장차 나타날 영구한 도성을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본문 가운데 나오는 첫 진리를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 이 땅에 영구한 도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이 세상에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가십시오. 여기 이 세상에는 영원한 도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도성이란 말은 성읍, 혹은 시가지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본문의 도성이란 말은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든든하고 의지할 만한 것 모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기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는 거처를 제공하는 것이 도성의 기능입니다.

타락한 아들 가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인류 최초의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그 성읍을 명명했습니다. 성읍 에녹이 건축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시가지 건설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무슨 신시가지 건설로 이어지고, 모델 하우스 오픈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류 역사는 시가지 몰락사이기도 합니다. 가인이 세운 최초의 성읍은 이미 흔적도 없이 수 천년 전에 사라졌습니다. 가인은 자기 힘으로 살겠다고 주장하던 인류의 대표자였지만 그의 삶은 불안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만한 벽을 만들지 않고는 잠들 수 없었던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이 자기를 위한 첫 성을 쌓은 다음, 사람들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 많은 성읍을 세웠습니다. 고대 유명한 성읍들 테어베, 니느웨, 바벨론 모두 당대에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던 성읍들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정확한 위치마저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천년 영화를 자랑하던 경주를 살펴보십시오. 엄청 넓은 시가지에 많은 주민이 살았지만 그 영화를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울산이 경주보다 커질 줄을 당대의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금은 울산의 위성도시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참 경주가 잘 나갈 때는 세상에서 엄청난 도시였습니다. 요즈음은 도시가스로 난방과 취사를 하지만 이미 그 때 집들을 그을리지 않기 위해서 즉 도시 환경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취사를 위해 숯만 사용하도록 경주에는 법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화려한 경주의 영화는 퇴색한지 다시금 천년이 지났습니다.

옛 도읍지 공주를 둘러보십시오. 거기는 더 서글픕니다. 그 곳도 한 때는 한 나라의 수도였지만 지금은 한 마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나니" 그렇습니다. 어떤 위용 있고 견고한 도성이라도 사라져 갑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충고합니다.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고전7:31).

한날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업적들은 불타게 될 것입니다.". . .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 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벧후3:10).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임시적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전부 변천하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의 성읍들도 사라지며 거기 세워놓은 건물들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기관들과 건물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역사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그 위용 있는 성전까지 파괴된 것을 수 차례 읽어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위해 헌당된 건물까지도 여러 번 파괴된 것을 구약은 보여줍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헤롯이 수 십년 걸쳐서 성전을 새로 지었습니다. 바로 그 성전 역시 지은 지 수 년 만에 또 다시 폐허가 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촌사람들, 예수님 제자들이 선생님과 같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을 구경하면서 수선을 떱니다.

"선생님 저 건물 한 번 보십시오. 이 돌들 좀 보십시오"라고 이야기 할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경고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웃 여러분, 이 세상의 것들은 지나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것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것들을 얻기 위해, 사라질 것을 손에 넣으려고 영혼까지 팔고 있습니다. 그 어리석은 추구의 대열에서 벗어나십시오.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확실하고 든든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본문을 살펴보면 여기에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객관적 진리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우리에게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여기 세상에 영구한 도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고백을 합니다. 여기 세상 사람들과 다른 신자의 입장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에게도 영구한 도성은 이 땅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있는 것처럼 여기고 살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상상 속에, 그 계획 속에, 그 노력 속에 세상이 약속하는 신 시가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들은 그것들에 마음을 쏟고 영구히 즐길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기독 신자들은 유일하게 여기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치 이 땅에 영구한 도성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집착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속화된 요즈음 사람들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저희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생각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는도다" 시편기자는 자기 시대의 세태를 이미 그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당대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그 속 생각을 보니까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로 미치리라 생각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농장을 자기 이름으로 칭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년 전 옛날 사람이나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나 속 생각은 동일합니다.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같은 세상을 살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늘 시민으로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땅에 속한 것의 무상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일컬어 신자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삶은 반드시 달라야만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이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4절은 그런 의미에서 13절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13절은 말합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서 영문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그리스도를 맞이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도이기에, 나그네로서 세상을 살기로 결단한 무리이기에 여기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가십시오. 주택부금도 들고 아파트 분양 서류도 갖출 수 있지만 여기의 영구한 시가지가 우리 그리스도인 몫으로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생의 안전과 보장은 아파트 당첨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복된 내일은 시험에 합격하고 불합격하는데 달려있지 않습니다. 최첨단 아파트 로얄층이 여러분의 삶에 행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인기 학과 합격이 여러분의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여러분의 이름으로 집을 마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로서 거기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는 자들은 텐트를 치고 살면서도 행복했습니다.

원하신다면 텐트를 치고 살던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계속 셋방에 살기로 결단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며 사는 자들이 열 가정, 스무 가정만 모이면 적당히 살아가는 백 세대, 천 세대를 능가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셋방에 사는 것만이 주님을 위한 헌신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들 말하는 "대망의 새해"의 꿈을 짓밟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예산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들 하지만 우리가 한번 각오를 하고 주를 위해서 헌신을 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 오도록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결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성읍이 주는 모든 안락과 편리를 보류하고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신앙의 순례자들입니다. 그렇게 성도들이 살 때 우리 가운데서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힘을 얻지 않겠습니까?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나아가면서 나만 특별한 헌신을 하는 것처럼 생각을 하면 때로는 손해보는 느낌도 들지 않겠습니까? 불안한 마음도 들지 않겠습니까? 모교회에 속해 있는 천오백 세대 전체가 나처럼 헌신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지구상 어디에 가서 헌신을 해도 그들은 헌신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영원토록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지나가는 삶을 살면서 우리가 고백하는 대로 주님을 고백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라면 한번 주님을 믿고 결단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브라함은 육축과 은금이 풍부한 사람이면서도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성읍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이삭 역시 한해 농사를 백배나 거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해에 백배나 기업신장을 한 거부이지만 그는 여기 이 세상이 나그네길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어쩌면 한해에 백배나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 때에 땅에 보물을 쌓지 아니하고 하늘에 쌓을 줄 알아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업의 신장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올 한해 거둔 것으로 인해서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 기대를 가지고, 이 땅에서 즐기려 하고, 보물을 이 땅에 쌓으려고 한다면 그 기업신장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얽어매어 있는 한, 세상에서 후히 받아 누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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