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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입을 깨끗하게 합시다 / 사 6:1-8, 엡 4: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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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입을 깨끗하게 합시다       
성경말씀:  사 6:1-8, 엡 4:29-32
설 교: 이화림 목사 (신안교회)


  어느 나라의 왕이 두 신하를 불러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두 신하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닌 후에 상자 하나씩을 들고 돌아 왔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가 가져온 상자를 열어보니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왜 사람의 혀를 가지고 왔느냐고 왕이 묻자 두 신하는 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왕은 두 신하의 말을 다 들어 본 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도 혀요 가장 선한 것도 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의 혀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도 할 수 있고 가장 악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고 헐뜯는 부정적인 말을 한다면 혀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말하고 형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의 지혜를 모았다고 하는 탈무드에 보면 어느 날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는 시장에 가서 소의 혀를 사왔습니다. 그 혀를 가지고 요리를 해서 먹었습니다. 며칠 후에 남편이 말하기를 오늘은 모든 음식 재료중에서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시장에 가서 또 소의 혀를 사왔습니다. 남편이 어째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 소의 혀를 사오고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소의 혀를 사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가 대답하기를 친절한 말, 사랑스러운 말, 아름다운 말, 좋은소식을 듣는 것은 가장 맛이 있기 때문에 혀를 사왔고 가장 싼 것, 가장 쉬운 것, 그저 아무생각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싸구려 행동이 말이기 때문에 혀를 사왔습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귀한 것도 말이고 가장 잘못되기 쉬운것도 말입니다. 그래서 약 3:2에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도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말로 불행해 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고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아들이 와서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간호하는데 그 아들도 백발이었습니다. 어느 날 간호사가 그 할머니에게 할머니는 큰 복을 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간호해 주시니 얼마나 좋으십니까 제가 병원에서 여러 해 동안 봤는데 할아버지처럼 정성을 다해 할머니를 간호하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간호사아가씨 저 사람은 내 아들이야 내아들 간호사가 얼굴이 붉어지면서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저는 꼭 할아버지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  아저씨 그렇게 많은 사람이 머리 염색하는데 아저씨는 왜 염색하지 아니했습니까 아저씨야말로 진짜로 머리에 염색을 해야 할 사람입니다. 머리에 염색을 했더라면 제가 이렇게 실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 있으시면 당장 머리에 물들이세요 진짜 머리 염색해야 할 사람은 안하고 안해야 할 사람은 염색을 하고 다닌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말조심합시다. 잘 알고 말합시다.

  오늘 읽은 사 6장에 말씀에 보면 유대 나라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있었던 이사야선지의 영적 체험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웃시야왕은 유대나라를 52년 동안 잘 다스렸습니다. 우상을 다 멸하고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행하므로 왕과 백성은 태평세월을 52년간 누렸는데 그 왕이 죽었습니다. 이사야선지는 정치가였고 방백중 한 사람이었고 웃시야왕의 친척으로 왕을 의지하고 그 왕궁에서 일했는데 왕이 죽었습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나의 장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이런 걱정이 있는 바로 그런 순간에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다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이사야는 3가지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영광으로 충만한 하늘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땅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큰 감격을 체험했습니다.


다음에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이다 나는 살아남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음에 이사야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하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고 자신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나를 압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이 마당에서 개하고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가 아이를 따르고 또 아이가 개를 좋아해서 같이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아이가 개에게 이리오라고 하는데 개가 안옵니다. 자꾸 오라고 하는데도 안오니까 아이가 하는 말이 너 정말 안 오면 죽여 버린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랬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아이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가 어머니는 부리나케 아이를 붙잡고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 잘못입니다. 제가 언제인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에게서 어머니는 자기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서 자기의 추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 저주스러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죄 가운데서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5절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나는 화를 받아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고 두려워하면서 나는 입술이 부정합니다. 부정한 백성 중에 살면서 입술의 부정이 체질화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주변을 보면 부정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게 습관이 되어서 부정한 말인줄도 모르고 아주 깜짝 놀랄만한 더러운 말을 나오는 대로 하고도 태연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들어왔고 그렇게 해 버릇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선지는 부정한 백성 중에 살아오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자기의 부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입으로 나쁜 말을 한다음에 나는 본래 그런 마음이 아니었는데 잠깐 내가 실수해서 그랬다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가 아니고 본래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마취상태에서 하는 말이 진짜라고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그때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때에도 감사와 찬송이 나올 만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찬송 부르고 거룩하다가 어느 순간에 가서는 형편없이 저속한 사람이 돼 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있던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무의식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만큼 입술이 깨끗하고 성결해야 합니다.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고 그 사람의 믿음이고 말로 인해서 사람이 저주를 받고 화를 당하고 망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부정한 입술 때문에 화를 당하고 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말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했습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지 말고 자신의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을 종합해서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부정한 입술이 부정한 사람을 만듭니다. 탈무드에 보면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험담을 듣는 사람을 죽이고 다음에 내가 지금 험담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죽이고 다음에 험담하고 있는 나 자신을 죽입니다. 어두운 말 부정적인 말 더러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런 말이 바로 나 자신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험담을 하면 나의 심령이 황폐해지고 인격이 삐뚤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일생동안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수고를 많이 했지만 그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유감스럽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치고 모세를 때려죽이겠다고 까지 할 때 모세는 이를 감당하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는지 그 순간 큰 실수를 했습니다. 반석 앞에 서서 반석을 두 번 치면서 이 패역한자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바로 이 죄 때문에 이 말 실수 때문에 모세는 꿈에도 잊지 못하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스가 산위에서 그 쪽을 바라보기만 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죄목을 낱낱이 말씀하고 하나님께서 해석하시기를 너는 나를 믿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것은 나  하나님이지 네가 아니지 않는냐 왜 네가 절망하는냐 너는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망령되이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시 106:33에 보면 분명히 지적하기를 모세가 망령되이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말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세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한 말들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 같습니까

  오늘 읽은 5-7에 보면 이사야가 너무도 끔찍하고 답답해서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애통하고 회개하고 탄식할 때 스랍중의 하나가 제단 숯불을 화저로 집어다가 이사야의 입에 댔습니다. 그런데 제단에는 숯불이 없습니다. 자꾸만 제물을 태우기 때문에 제단에 있는 돌들이 뻘겋게 달아 있었습니다. 제단 숯불이란 말은 불처럼 달아오른 제단에 있는 돌을 말합니다. 그것을 숯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입에 대고 지져 버렸습니다. 성경에는 없지만 지져서 타버렸습니다. 스랍이 제단에 있는 돌을 가져다 이사야의 입에 대며 말하기를 보라 이것이 너의 입에 닿았으니 너의 악이 제하여 졌고 너의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제단은 죽음을 말합니다. 제물이 제단에서 타 죽습니다. 너의 입술이 타 죽었다는 뜻입니다. 너의 입술은 이제 죽어버렸다 지져서 타버렸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입술이 다시 살아서 꿈틀거리고 부정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속죄의 징표를 보여주고 그런고로 너는 깨끗하게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12세기의 영성가였던 버나드가 말하기를 우리가 깨끗하게 되고 의롭게 되고 성결하게 되는 길은 결정적으로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해야 유순한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노를 쉬게하지만 교만한 사람의 말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고 불의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아주 낮추고 낮추어서 겸손하게 되면 말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화평스럽게 됩니다. 

무디는 부흥사로 온 천하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무디는 구두깁는 사람이었고 공부한바가 없기 때문에 무식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역에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갔는데 그 지역신문에 무디는 여러 가지 허물이 있다고 허물을 줄줄이 나열하고 무식하다고 써 놓았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그 지방의 목회자들과 무디를 사랑하는 분들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나쁜 놈들 이럴수가 있어 그때에 무디는 그 신문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버려두세요 저에게는 신문에 나지 않은 허물이 훨씬 더 많으니까 서운할 것 없습니다. 무디의 겸손이 이렇게 부드러운 대답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 믿어주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충만하면 우리의 말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마음이 깨끗하고 입술이 깨끗해지면 깨끗한 말을 하게 됩니다.

오순절 때 성령 충만한 초대 교회의 특징은 방언이었습니다. 방언은 언어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언어의 변화가 옵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아름다운 말 예수님과 같은 말 복음을 전하는 말로 언어가 변합니다.

골 4:6에 너희 말을 항상 은혜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여 놔두면 풀이 죽어 부드러워집니다. 그리고 소금은 맛이 없는 것을 맛이 있게 합니다. 그러나 소금 자신은 녹아 없어집니다. 자기 정체는 녹아 없어지면서도 자기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 소금입니다. 소금으로 고루게함같이 부드럽게 화목하게 맛있게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엡 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데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말이란 말을 영어 성경에는 악한 말이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원어는 썩은 열매라는 뜻입니다. 썩은 것은 대체로 더럽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성경을 번역할 때 더러운 말이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더러운 말은 건설적인 말이 아니라 파괴적인 말, 화합하는 말이 아니라 갈라놓는 말,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이 아니라 깍아 내리고 헐뜯고 맥이 빠지게 하는 말입니다. 

잠 12:18에 어떤 사람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사람의 혀는 좋은 약과 같다고 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맙시다. 내가 하는 말이 병을 잘 낫게 하는 좋은 약과 같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말이 되도록 합시다. 덕을 파괴하는 말을 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선한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잠 16:24에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좋은 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선한 말이 이렇게 귀하고 좋습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말인지 은혜를 떨어뜨리는 말인지 깊이 생각하고 은혜가 되는 말을 합시다. 은혜가 되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말입니다. 

남의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여집사가 있었습니다. 이 여집사는 이간시키는 데는 천재이고 말을 만드는 데는 수재이고 말을 보태는 데는 귀재였습니다. 그 교회는 항상 그 집사 입 때문에 시끄러웠습니다.  본인도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결심하였지만 고쳐지지 않아 자기 자신을 미워하였습니다. 기도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무서운 꿈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 여집사는 근심하기 시작했고 견디다 못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가 자기 혀를 짤라서 강단에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혀는 제물로 바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는 집으로 돌아와 혀를 짤라 자기 집 개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개가 자기 혀를 씹어 먹는 것을 보고 난 후 평생 벙어리로 살았습니다. 습관하된 자기 죄를 이기기 위해 처절한 결단으로 죄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입술이 깨끗해진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은 입술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어 폭력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언어폭력이 실제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어폭력은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 우리는 입을 깨끗하게 합시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한데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불로 입을 지져서 깨끗한 입을 가지고 깨끗하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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