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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의 이력서 /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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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봉목사  (상도교회)
신앙생활의 이력서 <창 5:21-24>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
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
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장 21-24절>

 
1. 인간의 삶은 세월과 함께 발자취(足蹟)을 남기게 됩니다.

초등하교 시절에 처음 일기를 쓰라면 대부분 밥 먹은 것과 놀러간 것을 씁니
다. 매일 먹는 것이 밥이지만 철이 없었을 때는 자신의 행위와 자기 자신에 대
한 성찰의 능력이 약함으로 그런 것들만 쓰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일기 숙제가
늘 부담이 되어 마지막에는 억지로 문장을 지어서 채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확대해 보면 어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
정에서 자신의 마음과 자기를 성찰할 능력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생활
(日常生活)에 파묻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들이 많습
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 중에서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사는 현대인을 비
유한 것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어느 양지바른 산골짜기에서 토끼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휙 불면서 도토리가 토끼 코 위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란 토끼는 거의 반사적으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토끼가 뛰는 바람에 옆에서 잠자던 꿩이 놀라서 날아갑니다.
꿩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바람에 이번에는 노루가 달리기 시작하였습
니다. 노루가 뛰는 것을 보고 호랑이가 뜁니다. 그러다 보니 온통 산에 있는 짐
승들이 모두 큰 변이나 생긴 줄 알고 죽을지 살지 모르고 그저 달립니다.
저들이 한참 숨이 하늘에 닿을 듯 뛰어가다 누가 묻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뛰지? "
'.......' 아무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일상에 파묻혀 실존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보면 현대인은 그 어느 시대보다 바쁜 생활들을 합니다.
대도시를 건설해 놓고, 아침마다 출근하는 샐러리맨들, 그뿐 아니라 유치원 어
린이로부터, 가정의 주부들까지 왜들 그렇게 바쁘게 뛰어야 하는지 삶의 의미
도 모르고 그저 뛰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놈의 돈이 있어야 산다는 것, 그 하나 때문에 정신없이들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상생활은 그 사람에게서 남길만한 기록은 없습니다. 
누구나 하루 세끼 밥은 다 먹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밥 먹고 소화시킨 것이 건
강은 될지 몰라도 삶의 의미는 아니란 말입니다.
즉 그 사람의 이력서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이력서가 되려면 그가 살아온 삶에서 무엇인가 내놓을만한 의미 있는 것
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력서를 보면 보통 <학력>과 <경력>과 특별한 <자격증>을 내세웁니다.
남들이 갖지 못한 것, 남들에게서 없는 것, 그리고 그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많
은 사람 앞에 내놓을만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명함에다 그것을 써넣고 다니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는 이
런 사람이오'라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일류학교, 명문대학, 그리
고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이력서가 그를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 위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
의 삶을 살아왔는가를 보면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똑 같은 환경에서, 똑 같은 가난한 삶에서, 똑같은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음에
도 불구하고 그가 이웃과 사회와 나라 앞에 무엇인가를 내놓을만한 것이 없다
면, 그렇게 훌륭한 이력서를 내놓을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똑같은 가난 중에서도, 똑같은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음에
도 불구하고 남들과는 달리 살아왔으면, 그 삶의 자취가 바로 성공의 삶이요,
존경의 대상이 되는 삶의 자취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애국지사들을 존경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왜 가난한 가정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을 칭찬합니까?
누구나 모두 그런 환경을, 그런 시대를 살아왔지만, 내놓을만한 것이 없는데 저
들에게는 남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력서를 써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서간 사람들의 삶의 자취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에녹>입니다.
에녹은 365세를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65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다'고 하
였습니다.

얼른 보면 매우 간단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 담겨있는 에녹의 신앙생활을 엿보게 됩니다.
에녹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일생동안 하나님과 동행했음으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다'고 하였습니다.
①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겠습니까?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다는 뜻이고,
⑵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이 두 가지입니다.
즉 <순종>과 <위탁>의 생활입니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그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 영어성경에는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과 밀접하게 교제하기를 기뻐했다'
(He enjoyed a close relationship with God throughout his life)고 하였습니
다. 하나님과의 <크로즈 리레이션쉽>(close relationship)을 기뻐했다는 것! 
이 말 속에 그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았는가 하는 것이 선명하게 드
러납니다.


☞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300년 동안 에녹은 한결같이 그렇게 살았다면,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보면 얼마나 굴곡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300년은 고사하고 100년도 안 되는 삶 속에서 몇 년이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와 <크로즈 리레이션쉽>을 가지고 있는가? 입니다.
깊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말이 300년이지, 그 기간 동안에 무슨 일인들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에녹은 이 점에서 우리에게 본을 끼치고 갔습니다.

그러면 그가 그렇게 살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후반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
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이 데려간다고 생각할지 모
릅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에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데려간다고
그렇게 보통 죽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좀 더 정확하게 보면, 우리말 성경에서 보다 영어성경에는 더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대로 보면 하나님이 그를 갑자기 취해 갔다고 하였습니다. (Then
suddenly, he disappeared because God took him)고 하였습니다.
이란 말이 중요합니다.
뭐 뭐 하였기에..., 그러기에...,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순식간에 취해 가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가깝게 동행하면서 사는 삶을 기뻐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훌쩍 데
려갔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마지막입니까?
세상에서 태어나 사는 복도 있어야 하겠지만, 가는 복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에녹은 세상에서 항상 천국과 연결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삶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 여쭈어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저 잠 자다 가면 좋겠다'는 소원이 제일 큰 소원일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의 고통 없이 그렇게 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제일 큰 복이란
말입니다.

사실 깊이 생각해 보면,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쉽게 불러갑니다.
반면에 회개할 것이 많은 사람들이기에 깨끗이 회개시키려는 것이 죽음의 고통
일 것입니다.


3. 성경에는 에녹과 정 반대 되는 이력서를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기 12:8-10절을 보면 <입산>의 삶이 바로 그런 삶입니다.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그가 아들 30과 딸 30을 두었더
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 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30을 데
려왔더라...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입산} 의 이력서는 자식만 60명을 낳았고 그것도 모두 이방인과 혼인시켰다는
기록입니다. 며느리 30명도 사위 30명도 모두 외국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 입산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권력을 남용하였습니다.
당시 사사란 대단한 지위였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가 컸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주신 기회와 권력을 남용하면서, 그의 삶은 오직 자식만
생산하는 방탕한 삶이었고, 향략에 도취된 삶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그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져버렸습니다.

오늘도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이력서이겠습니까!

☞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라면, 그것이 비록 가난
한 삶이라도 그것이 보람된 삶입니다.

☞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입산처럼 그렇게 살았다면 그러한 삶이 아무
리 화려하게 보여도 그것은 부끄러운 이력서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시간을 주시는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
의 자취에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이력서들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의미 있게 살도록 에녹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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