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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 없으면 / 고전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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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으면
고린도전서13:1-3
김영규 목사 (성덕중앙교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사랑이 없다면?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장입니다.  앞서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지요?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을 보여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제일 좋은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본 장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사랑의 정체를 가장 잘 설명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사랑의 가치, 사랑의 성격, 사랑의 내용, 사랑의 실천, 사랑의 영원성 등이 짧은 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 장은 먼저 사랑이 없는 상황을 假定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만일 내게 사랑이 없다면?  사랑 不在의 상황을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본래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없는 상황만은 반드시 상상해 봐야만 합니다. 

  우스개 俗說 가운데 머피의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잘못될 소지가 있는 것은 어김없이 잘못되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뭔가 잘못된 것을 생각하면 그 일이 터져버립니다.  머피의 법칙에서 따온 유사 법칙이 또 많습니다.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일수록 잘 일어난다"(겁퍼슨의 법칙)  "지난 이사 때 없어진 것은 이사할 때 나타난다"(질레트의 이사 법칙)  "찾지 못한 도구는 새것을 사자마자 눈에 보인다"(마궤트의 일요목수 제3법칙)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을 때 통화중인 경우는 없다"(코박의 수수께끼)  "사면서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일수록 계산대에서 바코드가 잘 찍히지 않는다"(바코드의 법칙)  "집에 가는 길에 먹으려고 생각한 초콜릿은 쇼핑백의 맨 밑바닥에 있다"(쇼핑백의 법칙)  "기가막힌 문구가 떠오를 때는 편지를 봉한 직후다"(편지의 법칙)  "전화기 옆에 펜이 있으면 메모지가 없다.  메모지가 있으면 펜이 없다.  둘 다 있으면 메시지가 없다."(프랭크의 전화 불가사의)  어떻게 이런 묘한 격은들을 생각해 냈을까요?  아마 할 일 없이 앉아서 잘 안 풀리고 꼬인 일들만 생각한 모양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입니다.  뭔가는 항상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들 중에 상당 부분은 좋지 않은 것,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입니다.  내게 죽음이 온다면?  내가 병든다면?  사고가 일어난다면?  누가 나를 배신한다면?  재산을 다 잃는다면?  이런 좋지 않은 생각들은 대부분이 삶에서 현실로 나타납니다.  석가모니 같은 사람은 애당초 행복과 기쁨은 생각지 않고 인생의 비극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出家했어요.  出家!  거꾸로 하면 家出!  인생의 불행한 면만 생각하다보면 가출하게 됩니다.  조심하세요.  그러므로 철저하게 좋은 일만 생각하고 나쁜 일은 머리터럭 만큼도 생각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한 번 해 보세요.

  그러나 제가 긴 얘기를 한 것은 불행한 假定을 하지 말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반드시 내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봐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不在의 상황입니다.  내 인생에 사랑이 없다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게 사랑이 없다면?  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은 어찌될 것인가? 


사랑이 없을 때 무의미해지는 것들

  사랑이 없다면 내 삶의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해집니다.  세상에서 살아 숨쉬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습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가치를 상실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랑이 없을 때 무의미해지는 것들 중에 중요한 네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로, 사랑이 없으면 모든 말이 무의미해집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1절)  사람의 방언이란 인간의 언어들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5개 국어, 7개 국어를 유창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휘가 풍부하여 많은 책을 쓰고 멋진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천사의 말이란 천사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령한 방언을 말합니다.  인간의 언어든지 천사의 언어든지, 사랑이 없다면 그 모든 언어가 무의미합니다.  무의미한 정도가 아닙니다.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입니다.(1절)  사랑 없는 말은 그저 시끄러운 騷音에 불과합니다.  영문 성경에 보면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저 反響하는 징이나 시끄러운 심발이다!"  사랑 없는 언어는 騷音이요 雜音입니다. 

  세상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論理整然하게 말도 잘합니다.  속된 말로 하면 이빨이 쎕니다.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쓸 데 없이 이빨만 쎈 사람입니다.  따질 때 말 잘하는 사람, 불평 불만을 조목조목 잘 쏟아놓는 사람, 싸울 때 말 잘하는 사람, 싫어요 싫어!  세상 언론이 바로 그렇습니다.  밤낮 남의 허물만 들춰냅니다.  지난주에 보니까 음성 꽃동네에 대한 비판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법의 잣대를 갖다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남을 위해서 땡전 한 푼 안 내는 사람들이 항상 법에 어긋나느니 어쩌니 떠듭니다.  우리 동네에도 있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비닐 하우스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는 법적으로 모두가 불법입니다.  우리 사회가 법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는 줄 아세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는 줄 아십시오.  몇 년 전엔가는 어떤 연예인이 기부금을 횡령했다고 떠드는 바람에 졸지에 찬밥이 된 일이 있습니다.  그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한 두 가지 일을 했다고 해서 많은 심장병 어린이를 살린 일이 희석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要旨는 사랑이 없는 말들은 騷音이라는 겁니다.  입만 살아서 남의 실수나 잘못을 동네방네 떠들지 말고, 사랑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 선전하라는 겁니다.  암만 論理整然하게 사설을 잘 쓰면 뭘 합니까?  사랑이 없이 떠드는 말들은 다 잡음이요 소음입니다. 

  사랑이 담긴 말을 하십시오.  지난 수요일 우리가 사랑하는 김희진 집사님이 쓰러지셨습니다.  7시간이 넘도록 뇌수술을 하고 호흡기를 단 모습을 대할 때에 정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사흘 전부터 눈을 뜨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고 넘어질 당시 상황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데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이제는 음식을 먹고 말을 합니다.  부인되시는 우리 유정숙 집사님이 김희진 집사님이 눈을 떴을 때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여보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요?"  김집사님은 대답 뿐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떻게 빨리 회복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가?  사랑의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립니다.  기쁨을 줍니다.  위로를 줍니다.  평안을 줍니다.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말은 소음이요 잡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둘째로, 사랑이 없다면 성경 지식이 무의미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2절)  예언하는 능력이란 성경 계시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은 계시적인 지식을 말합니다.  즉, 성경에 대한 이해력이나 교리적인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주변에 보면 가끔 보면 성경을 "뗐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겁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성경을 뗐느냐 했더니 미션스쿨 다닐 때 뗐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성경을 뗐다는 사람 중에 그다지 겸손한 사람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면 아는 만큼 잘난 척 해요.  평신도나 목사나 마찬가집니다.  왜 대한민국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수 십 개나 됩니까?  교리가 달라서입니까?  아닙니다.  다 장로교 아닙니까?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입니다.  아마 고린도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리 좀 안다고 목에 힘 줍니다.  다른 교인들을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실수와 잘못을 헐뜯습니다.  분명히 아십시오.  사랑이 없다면 모든 지식이 헛것입니다. 

  셋째로, 사랑이 없다면 큰 믿음도 무의미합니다.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2절)  신앙 좋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앙 좋다고 하면 대개는 典型的인 모습이 있습니다.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십일조 생활 잘하고, 방언 은사 신유 은사 있고, 혹은 기도 잘하고.  특히 기적을 일으킬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반드시 사랑과 함께 있어야 됩니다.  신앙과 사랑은 언제나 하나여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신앙이 무의미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5-17)  천국은 사랑의 왕국입니다.  사랑 없이 신앙에 열심인 사람은 천국에서 필요가 없습니다. 

  넷째로, 사랑이 없다면 모든 구제 활동이 무의미합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3절)  이 부분은 봉사 활동의 극단적인 예를 말씀합니다.  내 모든 재산, 내 모든 소유를 남에게 나눠줬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줬습니다.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연 그런 경우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첫째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떠밀려서 선행을 하는 경우입니다.  연말 연시나 교회 절기가 되면 특별 구제가 많이 있습니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구제하자고 선전하는데 가만히 있자니 눈치 보이고 그래서 하는 겁니다.  수재 의연금 내는 것, 길 가다가 자선 남비에 돈 넣는 것, IMF 시대가 됐다고 금모으기 운동하는 것...양심 때문에 사랑 없이 하는 자선 행위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功名心에서 하는 자선 활동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갖기 위해서 자선행위를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옛날에 배의 선장은 배와 함께 죽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습니다.  공직자가 자기 책임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상이나 신념을 위한 희생입니다.  마르크스, 트로츠키, 혹은 체 게바라처럼 사상적 신념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꺼이 사상과 이념을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고 목숨을 버립니다.  그러나 중심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든, 공명심이든, 신념을 위한 것이든 자선이나 구제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이 다 필요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동기가 없을 때에 그 모든 행동이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구제라고 다 같은 구제가 아닙니다.  구제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가르침에 의하면 남을 구제하는 방법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주기 싫어서 미적거리다가 할 수 없이 주고는 곧 후회하는 경우, 둘째는 주기는 주되 아주 조금 주는 경우, 셋째는 받는 사람이 족하다 싶을 만큼 주되 대신 넌지시 어떤 부탁을 하는 경우, 넷째는 어떤 부탁도 없이 후히 주나 여러 사람이 다 보는 데서 줌으로써 상대방이 창피해 하고 어쩔 줄 모르는 꼴을 바라보는 경우, 다섯째는 가난한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갈 때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돈을 집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구제, 여섯째는 구호 물품을 그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되 받는 편에서는 알지 못하도록 그들의 집에다 몰래 가져다 주는 경우, 일곱 째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피차 알지 못하는 가운데 회당 입구에 있는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경우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최선의 구제는 그가 더 가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채권자들의 요구를 대신 들어주고 잃어버린 유산을 찾게 해주며,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알선해 주어서 다시는 부자들에게 빈손을 내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제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제도 최선의 구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구제는 단순합니다.  그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오직 사랑의 동기에서 행하는 구제만이 참다운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을 때 내 인생은?

  사랑이 없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첫째로, 나는 헛소리 잡소리 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사랑 없이 하는 모든 말은 헛소리요, 소음이요, 잡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 없이 이 말 저 말 떠든다면, 이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소음 하나 더 보태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세요. 

  둘째로, 내 인생의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2절)  문자 그대로입니다.  "I am nothing !"(NIV)  "I am nothing at all !"(JB)  나는 전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존재도 없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인생입니다.  내가 만일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사라져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지구를 떠나주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좋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말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 일도 하지 마세요.  사랑이 없다면 정치도 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없다면 시집 장가도 가지 마세요.  사랑이 없다면 경제활동도 하지 마세요.  사랑이 없다면 공부도 하지 마세요.  사랑이 없다면 음악도 미술도 문학도 쓸모 없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그냥 사라져 주십시오.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셋째로, 사랑이 없다면 내 인생에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타인에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바로 내 자신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I gain nothing"(NIV)  "it profiteth me nothing"(KJV)  "it will do me no good whatever"(JB)  나의 모든 사회 활동이 내게 유익이 없습니다.  영적 소득이 없고, 영혼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가끔 교회 일을 많이 하느라고 찌든 사람들을 봅니다.  교회 일 때문에 찌들다니?  말이 좀 이상하지요?  교회 일을 하면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 즐거워야지 왜 찌듭니까?  그런데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은 어둡고, 몸은 피곤합니다.  눈동자에 생기가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즐겨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흑, 흑!"  사랑 없이 하는 봉사는 영혼에 유익이 없습니다. 

  성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의 일을 해 보세요.  저는 혼자 있을 때에는 쳐져 있다가도 성도들과 같이 있으면 생기가 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성도들이니까!  성도들을 위한 일이라면 항상 즐겁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평안합니다.  위로가 됩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르친다면 먼저 자신에게 유익이 옵니다.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성가대원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찬양을 부른다면 먼저 자신의 영혼에 만족을 얻습니다.  구역장이 구역원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역 예배를 인도한다면 예배가 기다려집니다.  말씀의 은혜를 먼저 받습니다.  영력이 생깁니다.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봉사 법칙입니다. 

  결론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십시오. 

  첫째로, 모든 말은 사랑으로 하십시오.  사랑하지 않을 때 하는 말, 사랑이 담기지 않은 언행은 잡음이요 소음입니다.  내 모든 말이 의미 있는 소리가 되게 하십시오.  사랑의 말을 하세요. 

  둘째로, 지식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지식은 교만케 합니다.(고전8:1)  사랑이 없으면 지식은 나를 실족시킵니다.  교만하게 만들 뿐입니다.  더 아는 만큼 사람을 더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나의 모든 지식이 빛을 내게 됩니다. 

  셋째로, 믿음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교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가졌는지 점검해보세요.  나의 모든 헌신과 주님을 향한 열심이 사랑의 동기에서 나오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로, 사랑의 동기에서 모든 봉사와 구제, 자선 활동을 하십시오.  공명심, 양심의 압박, 신념에 좌우되지 마세요.  오직 사랑의 동기에서 행하는 선행만이 내 영혼을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랑의 동기에서 봉사하시고, 사랑으로 사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참 신앙이요 복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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