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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을 기억합시다. / 민 16:30-33 , 눅 16: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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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것을 기억합시다.     
성경말씀: 민 16:30-33 , 눅 16:19-25
설 교 : 이화림 목사 (신안교회)
 

  어떤 교회 할머니가 예배실 중간쯤에 항상 자리를 정해놓고 앉았는데 이제 늙어서 설교가 잘 안 들려 빨리 천국가야겠어 -속히 천국 가야지 설교가 잘 안들려- 여러 번 그러시더니 앞자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옆에 있던 성도가 할머니 참으로 잘 옮기셨습니다. 그 자리는 참으로 좋은 자리입니다. 아무개 권사님이 늘 그 자리에 앉아서 예배 드리셨는데 2년 전 천국에 가셨고, 그 다음에 아무개 집사님이 그 자리에 앉으셨는데 1년 전에 천국 가셨습니다. 자리 옮기시기를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 할머니 얼굴색이 싹 변하더니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더니 그래도 그 전 자리가 더 낫지 하면서 그전 자리로 가시드라고 합니다. 천국가야겠다 빨리 가야겠다 하면서도 진짜로 천국에 빨리 갈 마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는 분당에 가서 사시겠습니까 천당에 가서 사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분당에 가서 살겠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읽은 눅 16장에 보면 부자와 가난한 거지가 있었는데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잔치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습니다. 듣기에도 너무나 마음 아플 정도로 비참하게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거지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 즉 천국에 갔고 부자는 죽어 음부에 즉 지옥에 갔습니다. 현대인의 성경과 표준 새 번역 성경에 보면 음부를 지옥으로 번역했습니다. 지옥의 고통 중에서 눈을 들어 멀리 천국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을 불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이 불꽃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25절에 이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말은 두 사람이 다 죽은 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두 사람이 다 죽은 사실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고 잘 살아도 죽고 못 살아도 죽고 행복한 사람도 죽고 고통당하는 사람도 죽습니다. 우리는 다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 어떤 사람은 안 죽으려고  몸부림치는데 안 죽으려고 하지 말고 잘 죽기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잘 죽는 것이 중요 합니다. 늙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 부질없는 일이고 곱게 늙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다 늙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 두 사람이 다 죽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다음에 두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죽은 후에 두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고 부자는 영원한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세에서 산 그 생활대로 내세에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철학자 칸트가 말하기를 지옥과 천국은 반드시 있어야한다 있다 없다 시비에 앞서서 반드시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부조리도 많고 모순도 많은데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무너진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지옥이란 말이 53번 천국이란 말이 554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지옥의 공포를 보여 주는 것 보다 천국의 기쁨과 소망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지옥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믿든지 안 믿든지 설교를 하든 안하든 지옥은 실제로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에 모순 되고 영원한 형벌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고 모든 사람의 감정에 지옥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지옥이 있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옥이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마 5:30 -너의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너의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10:28 몸과 영혼을 지옥에 던져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23:15-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눅 12:5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자를 두려워하라

막9:43,45,47에 3번이나 예수님이 지옥에 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영국의 토마스 스콧트경은 철저한 불신자이고 무신론자였는데 죽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죽음이 찾아오자 그는 최후의 순간에 나의 운명은 너무 비참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빠져 들어가야 하는 지옥의 두려움을 어이할까 하는 말을 남기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토리 박사는 말하기를 지옥은 확실히 존재하는데 그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고 다음에 경험과 관찰과 상식도 지옥이 있음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고

  지옥은 무서운 곳입니다. 이 세상에는 무서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호랑이도 무섭고 곰, 뱀, 자연의 재앙, 사람, 핵무기, 불치병, 전쟁, 죄가 무섭습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것은 지옥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지옥은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만일 너의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너의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손이나 발을 자르는 것 보다 눈을 빼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입니다. 그리고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막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나으니라

막 9:48 지옥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막 9:49 지옥에서는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옥은 뜨거운 불이 타는 곳 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곳입니다. 마치 생선에 다 소금을 칠 때 생선이 당하는 고통과 같은 고통을 당합니다. 지옥은 불속에서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막 9:48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지옥에는 불이 꺼지지 않으나 생물이 죽지 않습니다.

  지옥의 형벌과 고통은 쉬지 않고 끝이 없습니다. 죽지 아니하고 죽을 수도 없으니 영원토록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지옥은 뜨거운 불속입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구참사는 불지옥을 이 땅에서 경험하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너무도 아프고 고통스러운 참사였습니다. 광주에도 내년처럼 지옥철이 다닐 것 같습니다. 지옥은 심한 갈증 속에서 고생하는 곳입니다. 눅 16:24에 보면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을 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옥은 불꽃 속에서 심한 갈증을 느끼지만 해갈할 길이 없는 고통의 장소입니다.

  프랑스 사관학교에서 군목이 지옥의 형벌에 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불신자인 대위가 빈정거리면서 군목님 지옥에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불고기가 됩니까 고기국이 됩니까 군목은 침착하면서도 엄숙하게 힘주어 말하기를 그런 질문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지옥에 가서 직접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뜻하지 않았던 이 대답에 믿음이 없었던 그 대위는 큰 충격을 방아 신앙생활을시작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누가 지옥에 가는지 살펴봅시다. 단테가 쓴 신곡에 보면 9가지 지역으로 나누어진 지옥에는 9가지 죄인들이 형벌을 받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세례 받지 않은 어린이와 예수님을 믿지 않은 철학자들. ② 정욕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 ③ 먹기를 탐했던 사람들. ④ 인색한 사람과 낭비한 사람들. ⑤ 늘 화를 내면서 산 사람들. ⑥ 이단자. ⑦ 폭행자, 자살자,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 고리 대금 업자. ⑧ 유혹자, 요술쟁이, 점쟁이, 위선자, 모략자. ⑨ 반역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고 마귀에게 속한사람, 악한 죄를 범하고 산 사람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범죄자와 예수님 믿지 아니한 사람이 간다고 말씀 했습니다.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한 사람, 우상숭배한 사람, 간음한 사람, 탐색하는 사람, 남색하는 사람, 도적질한 사람, 술 취한 사람, 토색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오늘 읽은 민 16:30-33 에 보면 음부라는 말이 2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부를 표준 새번역 성경에 스올이라고 번역했는데 스올은 죽은 사람의 거주지 지옥을 뜻하는 말입니다.

  천국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요 14:2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예수님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장소입니다. 계 21:16 에 보면 천국의 넓이는 1만 2천 스다디온이라고 했는데 주경학자는 사람이 만든 자로는 측량 할 수 없는 곳 이라고 했습니다.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있고 열두 진주 문이 있고 거리는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진주나 황금을 귀하게 여기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면 문이 진주로 되어있고 길이 황금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황금을 밟고 다니게 됩니다. 천국에는 전등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예수님이 빛이시고 천국에 간 모든 성도가 빛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조미료가 필요 없습니다. 천국에 간 모든 성도가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거울이 필요 없습니다. 천국에 간사람 중에는 치장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성형수술을 받는 사람이 없고 다이어트 때문에 각종 약을 먹는 사람도 없습니다. 천국은 영원한 도성입니다. 지구촌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히 13:14에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고 했고 고후 5:1에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광주광역시는 영원한 도성이 아니고 장차 무너질 도성이고 천국만이 영원한 도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완전한 안식처입니다. 세상에는 심신이 피곤하고 질병과 여러 가지 삶에서 오는 고통이 많고 눈물이 많습니다. 실망의 눈물이 있고 후회의 눈물이 있고 이별의 눈물이 있고 참사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 있고 사망의 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이별이 없고 눈물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고 아플 것이 없고 사망이 없는 완전한 안식처입니다. 천국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천국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빌리선데이가 시카고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부흥사의 설교를 듣기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빌리선데이가 설교를 하다가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입에 대고 큰소리로 베드로 사도님 거기 천국에 장로교 교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 장로교 교인은 없습니다. 그러면 감리교 교인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 감리교 교인은 없습니다. 침례교 교인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에는 누가 있습니까 천국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있습니다. - 진실로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고 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는 천국 가는 대합실입니다. 천국에 가기 전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 가는 대합실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곽선희에게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부모가 며칠 뒤에 수능시험을 보아야 할 학생이 아주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면서 목사님과 상담하기를 원하는데 목사님 바쁘시지만 상담 좀 해 주십시오.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곽 목사는 이 학생을 만나기전에 진학문제나 진로문제, 전공문제 혹은 이성문제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미리 생각을 하면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의 질문은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진짜로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학생에게 왜 그것을 묻느냐 지금은 큰 시험이 눈앞에 있고 공부하기에 바쁜데 왜 그런 문제를 가지고 고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 학생이 말하기를 천국과 지옥만 바로 믿어지면 진실하게 살수 있고 공부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직장문제, 건강문제, 사업문제, 가정문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죽음의 문제이고 영생의 문제입니다. 생명문제 이상으로 중요하고 현실적이고 다급한 문제는 없습니다. 영생을 얻어야합니다. 반드시 천국에 가야합니다.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되면 가장 큰 비극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평가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잘살고 의롭고 깨끗하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선한일 많이 하고가 아닙니다.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기준은 긍휼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이 부자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는 말씀이 없습니다. 부정 축재를 했는지 못할 짓을 했는지 율법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예수님은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눅 16: 21 절에 보면 나사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다고 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였다거나 거지 나사로를 구박 하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부자의 죄는 비참한 나사로에게 무관심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던 죄입니다. 그런데 이 무관심과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결정적인 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불쌍한 사람을 위해 쓰지 아니하고 자신의 사치와 향락에만 사용한 것이 중대한 죄였습니다. 나사로는 부자가 먹고 내어 버리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했으나 그것도 잘 이루어지지를 아니했습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고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 입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마 5:7 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긍휼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보면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이 불한당을 만나 거의 반 죽게 되었는데 제사장이 그 길로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레위 사람도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는데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갔고 사마리아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돌봐주었습니다.

  유명한 주경학자 바클레이가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죄는 오직 하나 긍휼이 없는 것뿐이다.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의는 다 소용이 없다. 오직 긍휼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 하나를 묻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십니다.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보면 이 부자는 지옥에 가서야 뉘우쳤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 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지나 갔습니다. 긍휼에는 때가 있습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베풀어야할 시간에 베풀지 않으면 베풀 수 없습니다. 불쌍히 여겨야 할 시간에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불쌍히 여길 수가 없습니다.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한 복 있는 사람은 거지 나사로입니다. 나사로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부자는 오늘 말씀에 보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긍휼하심을 입은 사람, 위로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땅세서 제 아무리 잘 살았다 해도 제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었다 해도 들어가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삽시다. 우리 마음속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작용할 때 그 마음을 배반하지 마십시오. 배반하면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가 긍휼을 넘치도록 베풀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이 행복과 평안이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 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죽으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맙시다. 남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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