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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의 믿음 / 히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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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믿음
히브리서 11:7
설교자 : 김형준 (동안교회)
 

  매스컴의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같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막연히 짐작만 하고 있던 가정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열 가정 중 네 가정이 이혼을 합니다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나머지 여섯 가정도 정상적이고 원만한 가정 생활이 이루어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상당수 가정이 이혼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면서 앞으로 어린이,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며칠 전 한겨레 신문 사설에 의하면 2001년 매매춘으로 사용한 돈이 연24조원입니다. 이는 농어촌 총 생산량 규모와 비슷합니다. 여성부가 형사정책 연구원에 의뢰해 매매춘에 종사하는 사람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3만 명이 공식적으로 등록해서 생활한다고 합니다. 1998년 여성개발원 조사로는 100만 명, 검찰과 경찰에서는 15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사설에서는 ‘가임여성 10%가 매매춘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전하며, 또 다른 통계에서는 ‘보통여성 5명 중 1명이 매매춘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식통계가 이렇다 치면 우리 사회 전체 흐름을 어느 정도 짐작해보고도 남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로또복권 열풍으로 직장인 61%가 복권을 샀거나 곧 살 계획이며 67%가 앞으로도 계속 구입할 계획이라고 조사되었습니다. 직장인 58%는 당첨되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도 했습니다. 다른 신문에서는 도박과 폭력을 소재로 하는 ‘올인’이라는 드라마가 온 국민을 대상으로 도박의 기초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정선 카지노 매출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점치는 문화는 또 어떠합니까? 이미 우리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상적인 문제해결 방법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이상한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에서 이 문제를 다룬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2002년 1월 기준으로 역술강좌에 수강인원이 2만 내지 3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제는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들어와서 점술관련 강좌가 개설되고 있습니다. 합리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는 사회불신 풍조가 사람들을 점치는 곳으로 몰려들게 만든다고 합니다.

더구나 요즘 대북 송금 문제를 둘러싸고 국민들의 마음은 몹시 착잡합니다. 우리 나라가 과연 법과 원칙을 가진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습니다. 최근의 한 통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10명 중 4명이 참전하지 않겠다 합니다. 연령별로 차이는 있지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약 40%를 조금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겠다는 결과를 얼마 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제가 몇 일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방송은 5분 간격으로 “몇 동 몇 동 환자! 자기 병실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였습니다. 병원의 환자들처럼 현 시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가다가는 어떤 막바지에 이르지 않겠는가 하는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제게는 전쟁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자매와 대화를 나누며 저의 이런 생각을 말하자 자매는 국제정세로 봐서 전쟁 발발의 위협은 전혀 없다는 의견을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나, 나나 혹은 당신 속의 죄성을 보며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을 것 같다. 이 민족에게 시련을 주셔서라도 거듭나게 하실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속에 있다’고 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이 혼돈과 불안정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창세기 6장은 노아 시대의 타락상을 설명하면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설명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을 그냥 두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 세상을 쓸어 버리시겠다고 정하셨을 그때 한 사람을 지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 자신뿐 아니라 그의 가족도 함께 구원 받았습니다. 삶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였고, 어려운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정체성을 소유했던 그는 바로 노아였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성경본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입니다. 노아를 주목하십시오. 어떻게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야 할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소유해야 할 믿음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노아의 믿음은 첫째, 하나님 말씀에 응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경고하심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의의 계시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자의 경고하심을, 보지 못하여도 경외함으로 즉 소망과 신뢰가 담긴 거룩한 두려움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눈으로 보는 것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이성이나 경험을 기초로 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말씀이 들려질 때 그 말씀을 어떤 태도로 듣는가와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5절, 노아만이 그 시대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이 경외함으로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말씀을 무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차이입니다.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때 롯을 기억하시고 그 가정을 구원코자 천사들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테니 빨리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롯은 후에 딸과 사위를 찾아가 간곡하게 전했으나 사위들은 농담처럼 여겼습니다. 생명을 걸어야 될 말을 농담처럼 여기고 농담처럼 여길 말을 생명처럼 여기는 어리석은 경우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 말씀에 생명을 걸고 들으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양강좌나 인격수양을 위한 말씀으로 듣는다면 지성인일지언정 신앙인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나에게 들려질 때 경외함으로, 생명을 걸어야 할 말씀으로 듣는 믿음을 소유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노아의 믿음은, 둘째 하나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한 믿음입니다. 노아가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함을 받아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자기 경험과 상식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함은 믿음을 지닌 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노아는 자기 판단으로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인 노아에게 배를 만들라 하였습니다. 노아가 배를 만든 곳은 바다로부터 800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주의 구체적인 설계를 보면 길이가 136.8m, 넓이가 20m, 높이가 13.6m로 모두 3층으로 짓고 잣나무로 만들며 안팎으로 역청을 칠하라 하셨습니다. 1858년 그레이트 이스턴호(Great Eastern)가 만들어질 때까지 노아의 방주는 무려 4천년 동안 가장 큰 배였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1800년대 해운업이 발달한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는 당시 노아 방주와 동일한 설계로 실험한 결과 이 구조가 잘 뒤집어지지 않는 가장 안전한 설계임을 증명했습니다. 항해가 워터롤리는 이 배가 가장 많은 물건을 실을 수 있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설계였던 것입니다.

노아가 과연 이러할 것이라 예상하고 행하였을까요? 노아는 엄청난 홍수를 본일이 없습니다. 자기 경험이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순종하기는 쉽지 않으나 노아는 경외함으로 순종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노아는 이 배의 필요성과 합당함을 비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배를 만들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정신병자라고 했습니다. 산에서 꼬박 120년간 배만 만들었습니다.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행동이었지만 노아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계획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달려 보혈의 피를 흘리셨고 내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내 삶을 인도해주시며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발견하고 그의 모든 편지 속에 ‘그리스도안에’ 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예수님의 방주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원 받은 삶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삶을 살면 구원 얻은 사람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경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이 바로 믿음에 근거한 사람다운 행동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간을 내달라는 말은 곧 생명을 달라는 말과 같습니다. 또한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물질입니다. 이렇듯 시간(생명)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물질 중 열의 하나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올려 드림은, 하나님께서 나의 구세주 되시며 삶의 주인 되시고 인도자 되심을 생활 속에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믿음 안에서 남다른 용서, 헌신, 격려가 있을 때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삶이 됩니다. 입으로 시인하고, 결단하고, 행하는 믿음을 구원의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삶이 쉽지는 않습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삶일 수 있으나, 삶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나누는 믿음입니다. 저는 이것을 특별히 ‘영향력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가족을 구원시켰습니다. 노아의 믿음이 가족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열심히 돈을 모읍니다. 돈이 있는 자는 영향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권력도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별개의 사회가 바로 가정입니다. 아버지의 권력 혹은 돈이 자식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느끼는 것이 있어야 순종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노아가 살던 그 시대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폐기하시리만치 흉악하고 악하였습니다. 노아가 480세 때 응답을 받고 방주를 짓기 시작해서 500세에 셈, 함, 야벳을 낳았습니다. 자녀가 태어난 500살 때도 여전히 방주를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자녀와 세 자부도 처음에는 악한 시대의 영향을 받아 입 모아 아버지를 정신병자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 안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평안과 의와 참된 소망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들은 노아의 삶에 영향을 받아 아버지를 따라 방주를 함께 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영향력을 지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가족들에게 영향력이 있기를 바라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이청준 저서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는 시각 장애자가 되신 안요한 목사님의 삶을 소설형식을 빌어 쓴 책입니다. 시골 교회 목사님 아들로 태어난 안 목사님은 참으로 궁핍하게 살았습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곤고하게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목사는 되지 않겠다 결심하였고,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귀 막고 세상의 지식과 원칙을 따라 살던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력을 점점 잃게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어가자 꿈과 희망 심지어는 가족마저도 그를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을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처절하게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성경 320면을 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에게 주신 말씀 중 특히 여호수와 1장 5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말씀을 그는 경외함으로 듣고 생명처럼 여겨 믿음과 소망 가운데 일어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며 영적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상식이나 사색, 합의, 필요에 의해 도출되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내 판단과는 상관없이 말씀으로 시작되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을 주님은 구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또 가정을 구원하시며, 영향력 있는 인생 되게 하시며 패역한 세대 속에서 시대와 민족을 바꾸는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십니다. 그런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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