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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령이 뜨거워지고 싶은가 / 눅 24: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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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심령이 뜨거워지고 싶은가
본 문 : 눅 24:32-35
설교자 : 변한규목사 (광주중앙교회)


오늘은 교단적으로 전국 교회가 지키는 성경주일입니다. 성경주일을 지키면서 우리 모두
의 믿음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성경주일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여기 '뜨겁다'라는 말에 원어성경
헬라어를 보면 '불붙었다' 혹은 '불타고 있다'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문법적으로는 현재분
사형 수동태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령이 뜨거워지더니 계속 뜨거웠고 지금도 숯불이 이글이
글 타듯이 불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중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
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도 심령이 답답하고 괴롭고 냉랭하고 클클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갑자기 그들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시
작했습니다. "심령이 뜨거워지고 싶은가?" 이 시간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우리 함께 성경주
일을 지키면서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의
심령도 뜨거워질 수 있습니까?

첫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왜 성경을 읽을 때 심령이 뜨거워집니까? 성경 자체가 예레미야가 말
한대로 불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클클하고 냉랭합니까? 심령을 뜨겁게 하는 성
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이 불같은 말씀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
께서 성경 속에 불을 담아 두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불, 은혜의 불, 신령한 불입니다. 죄
를 태우는 불이요, 불의를 이기는 경건의 불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불, 기도의 불, 전도의
불, 능력의 불입니다. 이러한 불을 하나님께서 성경 속에 담아두셨으므로 성경을 읽을 때
읽는 심령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성경으로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어떤 성경 말입니까? "예수님이 무
덤에서 부활하리라", 이미 예언했던 선지자의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니 너희
도 살리라", 예수님의 직언이 아닙니까? 이 예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심
령이 암흑이었습니다. 냉동실 같았습니다. 근심, 걱정, 초조로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랑
하는 성도여,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금언의 말
씀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심령이 뜨거워지니라,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원하는가? 성경을 읽
으라." 모세 오경을 읽고 사복음서를 읽어야 합니다. 150편 시편을 읽고 사도행전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심령이 뜨거워지고 심령이 뜨거워지면 믿음생활에 재미가 납니다. 절로 봉
사를 하게 됩니다. 미워했던 친구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오 예수님, 지금도 내 맘에 오시옵소서." 그럴진대, 역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성경 속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만나면 믿음생활에 기쁨
이 생겨납니다. 능력도 생겨납니다. 변화도 일어납니다. 새사람은 공짜입니다. 사랑하는 성
도여, 성경주일에 마음다짐 해보십시다. "성경을 읽자." 누가 복을 받는다 했습니까? 복 받
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
는 자로다"(시 1:2). 믿음생활 몇 년 되셨습니까? 계산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령 10년 믿음
생활 했다 하십니다. 그러면 적어도 성경을 10독쯤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 1독을
하셨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1독도 못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습니다. 외로운 성도가 있습니
까? 실연당한 성도가 있습니까? 사업에 실패한 성도가 있습니까? 또 괴롭고, 답답하고, 마
음이 아프고, 슬프고, 어쩐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성도가 있습니까? 곧장 성경을 읽으
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심령이 뜨거워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둘째 성경을 들어야 합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누가 말씀하시고, 누가 성경을 풀어주셨다는
말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성경을 풀어주시면 한 사
람 빠지지 아니하고 심령이 다 뜨거워질 것입니다. 스펄전목사가 지금 성경을 풀어주고, 김
익두목사님이 성경을 풀어주시면, 다 심령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1972년 미국 달라스에서
빌리 그래함목사가 성경을 풀어주는 집회를 했는데, 저도 그 말씀을 듣고 심령이 뜨거워졌
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 L. A. 넓은 백사장에 젊은이들이 모아서 오물을 남기면서, 남녀가
엉켜서 추태를 부리고 있었을 때에 경찰관들이 스피커를 대고 "돌아가라, 돌아가라" 외쳤습
니다. 그러나 꼼짝하지를 아니했습니다. 생각다 못하여 영적 지도자 빌리 그래함을 불러서
외치도록 했는데, 빌리 그래함이 스피커를 대고 다른 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에 말하기를" 하면서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때에 유명한 말입니다. "Bible says, Bible says", 다시 말하면 "성경이 말하기를", "간
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을 때에 젊은이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뿔뿔
이 흩어졌다는 내용, 타임지에 보도된 것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왜 그러한 일이 일
어납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위인의 말이 아닙니다. 저명한 작
가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지라, 듣는 무리들이 심령이 뜨거워져서, 괴로워져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게 신화와 같은 사건을 만들기도 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실
의와 낙담가운데 있는 엠마오 두 제자에게 하고픈 말씀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무
덤 가운데서 내가 다시 살아났느니라",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느냐", "이제
는 믿음을 되찾으라" 등등의 말이 많았을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맨 먼저 하신 것이 무엇입
니까? 성경을 풀어주셨습니다. 성경을 풀어주셨을 때에 듣고 있는 두 제자의 심령이 숯불에
타듯이 뜨거워지기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원합니까? 성경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듣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시간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예배시간을 빠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풀어주신 성경말씀을 들을 때에 놀
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첫째는 지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두 제자
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그가 예수님인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의 눈이 가
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6). 그러나 성경을 들을 때에 눈이 밝아집니다. 영
안이 열린단 말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31). 알지 못했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게 되었던 비결은 성경을 들었을 때
입니다. 둘째는 감정의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
신 것을 보고, 무덤 가운데에 장사지낸 것을 보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두 사람이 슬픈 빛
을 띠고 머물러서더라"(17). 그러나 풀어주신 성경말씀을 듣고서 변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32). 성경말씀이 불이 되어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
을 모조리 태워버렸단 말입니다. 어찌 슬픔만 태워버리겠습니까? 괴로움도 태웁니다. 억울
함도 태웁니다. 한숨도 태웁니다. 우리의 눈물도 태웁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들어야 합니다. 셋째는 의지의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13).
그렇다면 엠마오로 가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첫째 예수님을 버리고 가는 길입니다. 예루살
렘에는 예수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퍼져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핍박이
대단했습니다. 이때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예수님을 버리고 그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둘째 실패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 길을 걸을 때가 많습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3년동안 따랐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득세할 때에 자기들도 한 자리 얻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고는 무덤가운데 장사지낸바 되었을 때에, "우리는 끝장이다. 우리는 길이 없다.", 그
들은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더 머무를 수가 없어서 찾아간 길이 엠마오
의 길입니다. 그 길은 실패하고 돌아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셋째 의문에 쌓인 회의의 길입
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마 여인들이 잘못 보았겠지." 회의의 먹구름이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한지라, 같이 동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인 줄을 알지 못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갑자가 심령이 불타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설교는 성경을 풀어주는 일입니다. 따라서 설교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심령이 간절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풀어주는 성경말씀을 들으면서 왜 내 심령이 그냥 그대로 있는가? 냉랭한가? 클클한가? "선
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25).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
을 앞장세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이 말씀 내게 주신 말씀으로 아멘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나고, 심령이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경을 전해야 합니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
라"(눅 24:35).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심령이 뜨거워
졌다." 간증했다는 말이요, 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한 것을 보았다는
전도의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 제자들도 성경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왜 그들이 성경을
전했습니까? 심령을 뜨겁게 하는 성경인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을 전하지 않고
는 심령이 뜨거워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 우리 모
두는 다 예수의 증인들이요, 성경의 증인들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부족합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열 두 번을 넘게 예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들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곁길 갈 때가 많은 우리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증인들입
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비결은 하나입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성령님
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증인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전하려면 성경을 깨달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성경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
고"(45). 누가 우리의 마음을 연다는 말입니까? 성령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기록된
성경을 전하려면, 성령으로 읽고 성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으로 전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성
경의 가장 훌륭한 주석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만이 성경을 바로 깨닫게 합니다. 왜 그렇
습니까?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여기 감동이란 말을 외국인 어떤 주석가는 "The product
of the creative breathed of the God",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적 기운을 불어넣어 만
들어진 성경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생기를 불어넣어 지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주실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기운을 성경 속에 불어넣어 어린애
를 낳듯이, 성경을 낳았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신구약 66권입니다. 저자가 36명, 1600년동
안에 걸쳐 기록된 말씀입니다. 각기 살던 장소가 다릅니다. 시대가 다릅니다. 환경도 다릅
니다. 서로가 만나서 의논한 일이 없습니다. 자료를 서로 교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성경 66권은 통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분 성령 하나님이 주장하
셨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누가 심령을 뜨겁게 했습니까? 누가 심령을
열어주셨습니까? 누가 심령을 찌르고 쪼개어 주셨습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들을 때, 전할 때에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여기에
은혜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변화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심령이 따끔따끔 뜨거워지는 비결
이 있습니다. 성령은 성경과 동행합니다. 성령의 발걸음은 성경을 따라가는 발걸음입니다.
성령은 성경이 있는 곳에서 역사합니다. 성령은 인도하는 영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인도하
실 때에 성령은 성경으로 인도합니다. 성령은 성경으로 말씀합니다. 성령은 성경으로 깨닫
게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어찌했습니까? 성령이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성령이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성령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성령이 성경만 깨닫게 했습니까? 성령이 받은 은혜를 깨닫게 했습니다. 성령이 역사할 때에
은혜도 함께 받습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순전히 주의 은혜로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죄도 깨닫게 합니다. 베드로가 성경을 풀어 줬을 때에, 듣는 무리
들이 너도 나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설교를 잘 해서 그렇
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능력있게 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그 설교를 타고 성령이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타고 성령이 듣는 심령을 꾹꾹 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멍 뚫어진 가슴에서 들려오는 말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였
습니다. 성경은 성령으로 풀고 성경은 성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심령
이 뜨거워지길 원합니까? 성경을 읽으십니다. 성경을 들으십시다. 성경을 전하십시다. 그런
데 아직도 심령이 냉랭합니까? 아직도 마음이 닫혀져 있습니까? 영안이 열리지 아니했습니
까? 성령을 의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내 마음을 주장해 주시옵소서. 성경을
읽을 때, 듣을 때, 전할 때에, 권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
다. 성경주일을 지키는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의 믿음이 초대교회로 돌아가고, 성경으로 돌
아가는 축복받은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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