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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마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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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본문 : 마태복음 9:9-13
설교 : 김찬종 목사 (과천교회)


오늘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택한 자를 불러내어 죄악을 용서하러 오셨습니다.  새 사람되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죄악으로 고민하는 자를 찾아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중풍 병든 자를 네 친구가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의 병의 원인이 죄 때문인 것을 아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시고 그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의인이라 자처하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없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죄의 용서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하나님은 인간들의 영혼의 질병을 보셨습니다.  그 질병을 그대로 두면 모두 죄 값으로 심판 받아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생애 30년을 사시면서 인간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피를 믿는 자에게는 죄 씻음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 진리를 먼저 체험한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교회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 죄인입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세무서장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높은 관직을 가졌습니다.  그는 부자였다고 성경은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는 그의 영적인 갈등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고민 고민하다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키가 작던 그는 사람에 가려 예수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급한 나머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러한 그의 마음을 주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근거렸습니다.  당시 세리직업을 가진 자는 창녀와 같이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삭개오는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내 권력을 이용하여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를 갚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나와서 그의 생애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세상에 육신을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피 흘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 앞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다시는 죄 때문에 고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밝히 증명해주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만 믿으면 됩니다.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아직까지 죄악의 사슬에 매여 계신 분 있습니까?  그 사슬을 풀어버리십시오.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만 믿으면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맑히시는 주의 보혈
  성자 예수 그 귀한 피 찬송하고 찬송하세
  주님 앞을 멀리 떠나 길을 잃고 헤맬때에
  나의 뒤를 따라오사 친히 구원하셨도나
  흰 눈 보다 더 흰눈 보다 더
  주의 흘리신 보혈로 희게 씻어 주옵소서.
  (찬송가 195장 1절)

  둘째,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믿는 자에게 참 생명을 주시며 풍성한 삶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인간의 삶은 육신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100년도 못 되는 세월뿐이 아닙니다.  영생을 살아야 합니다.  참 생명을 얻고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죄에 대한 심판은 죽은 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①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②생활 속에서 ③가정사에서 ④자녀들에게 심판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⑤나에게 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⑥사업의 실패로 올 때도 있습니다.  ⑦가정의 불화를 몰고 올 때도 있습니다.  ⑧생명의 단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참 생명은 단명(單名)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수하는 것입니다.  유구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소련의 장수촌 어느 지방에 100세 이상 되는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그 분들은 활동에 아무런 지장도 없으시고 100세 넘은 어른이 ‘인생은 이제부터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T.V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장수는 귀한 것입니다.  장수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 생명을 얻으면 장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이 있어도, 즉 죽음이 오더라도 영혼은 하나님의 품속에 안기는 복을 받습니다.  그것을 영생복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겠네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우리가 받겠네.

  나아가서 무조건 장수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이 풍성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풍성한 삶이란 ①아름다운 삶을 말합니다.  ②가치 있는 삶을 말합니다.  ③놀라운 삶을 말합니다.  ④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말합니다.  ⑤사회에 바르게 봉사하는 삶을 말합니다.  ⑥구제하는 삶입니다.  ⑦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입니다.  ⑧남의 머리가 되는 삶입니다.  ⑨영권이 있는 삶입니다.  ⑩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입니다. 
  믿은 사람이 항상 사글세방을 전전하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내 집도 지녀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남이 자가용 탈 때에 나도 탈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풍성한 삶은 꼭 영적인 것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육적인 복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군사 318명을 거느리고 살던 큰 부자입니다.  이삭도 부자였고,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지만 여러 떼를 이룰 정도로 재산이 많았습니다.  믿는 사람이 가난하게만 살아서는 안됩니다.  물질의 복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물질의 복도 주십니다.  그것이 풍성한 삶입니다.  친구들끼리도 그렇습니다.  한번 식사대접을 받았으면 나도 한번 대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풍성은 낭비가 아닙니다.  초과분입니다.  넘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예수님은 남은 것을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두었더니 12광주리에 남았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고 물질의 복을 받는 원리를 성경을 통하여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가정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말합니다.  과천교회에 오면 복을 받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을 받고 나서 그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①가정이 평안합니다.  ②부부가 건강합니다.  ③자손들이 직장생활을 잘합니다.  ④건강합니다.  ⑤자손들이 교회봉사를 잘합니다.  ⑥십일조헌금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교회생활에 게을러 질 수 있습니다.  성수주일 하는 것도 게을러집니다.  십일조도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교회봉사와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복을 받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리도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더 주십니다. 
  복은 간단합니다.  우리교회에서 처음 예수 믿으신 분들은 제가 가르쳐 드리는 대로 잘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복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자기 경험과 지식, 잘못 배운 고집이 살아서 순종할 줄 모르기 때문에 복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불행하게도 주의 종 목사들 가운데도 이 복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하는 종들이 있습니다.  자꾸 십자가만 지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기복(祈福)의 종교가 아니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이고 물질의 복도 얼마든지 받는 종교입니다.  즉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받았던 복입니다.  그래야 이웃도 도울 수 있습니다.  선교사도 파송할 수 있습니다.  구제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넘치게 주십니다.  영육 간에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십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 안에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요셉의 생애는 풍성한 복을 받은 생애였습니다.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겼습니다.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했습니다.  절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감옥에 들어가도 그 감옥을 다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높였을 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만사형통입니다.  그는 세계를 먹여 살렸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 받았습니다.  새로운 생애가 되었습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풍성한 삶이 우리에게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나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더 많이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베푸는 생애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 이 땅에 평화를 심기 위함입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찬양 내용입니다. 
  죄로 인해 노아 때에 온 세상은 물로 심판 당하여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았습니다.  죄는 소돔, 고모라 도시를 심판하여 불로 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롯과 두 딸은 구원받았습니다. 
  죄는 인간에게서 평화를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불안합니다.  초조합니다.  죄의 심판과 결과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을 멸망으로 이끈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평화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13장 1절입니다.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를 찾는 구주 예수 곧 오라 하시네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구세주를 영원히 섬기리

  평화와 기쁨은 같습니다.  기쁨은 평화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어졌기에 기쁜 것입니다.  죄를 없애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이 복을 받으신 성도 여러분!  이 기쁨과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사명이 먼저 믿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총동원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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