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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라도의 세 가지 질문 / 요 18: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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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세 가지 질문
요한복음 18:33~38
이성관 목사 (강남교회)


온 세상에 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느긋해지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는 봄이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봄 놀이, 꽃 놀이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순절이
이 봄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면 참 역설적인 일입니다.
생명이 피어나는 봄에, 예수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물은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그 일로 분주한데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얘기하고, 죽음을 얘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영광과 승리만 있어야 할 텐데,
고난과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쁘고 좋은 일일지라도 어지간한 것에는 신경도 안 쓰는 현대인들에게
고난과 죽음을 얘기해야 하는 이 사순절은 아무런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진짜 기독교인이 누구냐 하는 것은 성탄절 때가 아니라,
바로 이 사순절 기간 중에 증명이 되고, 보여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별히 저는 고난 주간 새벽기도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 교인이, 이 새벽기도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유치부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전 가족이 총 동원되어 예수님이 가졌던
고난의 길에 함께 가고자 하는 새벽예배가 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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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아온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밤새 내 심문과 조사를 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죄명을 정했습니다.
30절에 나오는 것처럼 "행악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켰느냐, 아니냐의 차원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악하다 라는 판결이었습니다.
이 사회에서는 도저히 쓸모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런 쓸모 없다는 세상, 도대체 그것이 어디입니까?
참혹한 아프리카입니까?

예수님은 새벽녘이 될 때까지 심문을 당하시다가,
행악자라는 판결을 받은 뒤, 유대지역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끌려갔습니다.
당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돌로 쳐서 사람을 죽일 권한은 있었지만,
십자가 처형은 로마법에 의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총독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새벽같이 몰려온 군중들의 소동에 놀라서 잠자리에서 부랴부랴 나온 빌라도 앞에,
결박당하신 예수님이 끌려 왔습니다.

피 땀을 흘리시며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고, 밤새워 재판까지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겉모습은 정말 초라했습니다.
그래서 잘 먹고, 좋은 생활을 해온 빌라도의 눈에는 예수님이 우습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것이 빌라도가 한 첫 번째 질문이었습니다.
대 로마제국의 사람으로서 유대를 다스리던 총독이 던졌던 이 질문은
오늘 세상 사람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일찍이 다윗이 이렇게 울면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이 기도할 무렵의 다윗은, 정말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 압살롬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던 당당한 왕의 모습은 간데 없습니다.
그러한 다윗에게 사람들은 "네가 그토록 부르짖던 너의 하나님은 어디 갔느냐,
외출하였다 더냐, 잠 잔다 더냐?" 하면서 조롱하고 놀려댔을 것입니다.

빌라도의 질문도 같은 뜻입니다.
잘먹고, 편하게 살고, 총독으로서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빌라도에게는,
결박당하여 앞에 서 있는 한 젊은 청년이 우습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왕이면 유대인들을 우리 손에서 해방시켜 보시지,
지금 내 앞에 결박되어 서 있는 주제에 무슨 왕이란 말이냐"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보입니까?
예수님을 조롱이나 비난하지 않고, 나의 왕이시라고, 우리 가정의 왕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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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답변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이 한 마디를 묵상하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진실함과 거룩함을 깨닫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절대로 비꼬아서 말씀을 하시거나,
농담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번 빌라도의 질문처럼 경멸과 비웃음이 담긴 질문에 대하여서도
예수님은 진지하게 대답하시고, 대화를 하십니다.

빌라도가 소문을 듣고 한 말이라는 것을 예수님이 왜 모르시겠습니까?
다 아시면서도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알고 있는 것들이 오늘도 살아 계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직접 교제하고 만나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얻어진 것들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냥 알고만 있는 지식적인 것들이 많고,
남에게서 들은 것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예수님과 대화했던 것이 언제이며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그리고 그 분에 대해 무엇을 새롭게 아셨습니까?
내가 직접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 앞에 무릎 꿇는 신앙적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예수님, 그 분을 나의 왕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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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는 두 번째 질문을 예수님에게 던졌습니다. 35절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면 길도 고치고, 납세법도 고치고, 정치도 개혁해서
사람들 살기 좋게 해 주였을 것이고, 그랬으면 누구나 다,
그 왕이 무엇을 했는지 다 알았을 것입니다.
국회의원만 되어도 다 알고, 구청장만 되어도 다 압니다.
그 사람이 지역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그 분이 무엇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그들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쓸모도 없고, 가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장애물이고 귀찮은 존재라면서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내 인생과 내 가정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이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이 나라와 세계는 어떻습니까?
혹시 알고 있기는커녕, "당신이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이냐"
"나를 위해서 해 놓은 일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라고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예수님이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버리고 팔아 넘긴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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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빌라도가 던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비난성의 질문에
역시 성실하게 답변하셨습니다.
짜증을 내거나 무시하거나, 회피하시지 않았습니다.
37절입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왕으로서 진리를 선포하고 알려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기대와는 정 반대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제 3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38절입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사업 잘되게 해 주시고, 건강 주시고, 뭐 그런 거가 예수님하실 일이고,
해야 할 일일텐데, 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치러 왔다니,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38절 그 다음을 보십시오.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질문해 놓고는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들을 필요도 없고, 알 생각도 없습니다.
진리가 무엇이지? 진리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게 밥을 주나 떡을 주나,
그것을 위해서 왕으로 왔다니, 하면서 그냥 나가 버렸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이 질문을 오늘 우리는 이렇게 바꾸어서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와 내 가정의 왕이십니까?

네가 한 일이 무엇이 있느냐? /
"당신이 나의 왕이라면서 나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진리가 무엇이냐? /
"왜 내 기대, 생각과 다른 것을 얘기하십니까?"
"오늘 세상에서 진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진리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들었다면, 빌라도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앞의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은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것을 들어야 합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알게 된 진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답변해 주셔서 알게 된 진리가 내게 있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으로부터 진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내 생명을 살리고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신앙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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