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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른 열심 / 롬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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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고신일목사
설교일자 : 2003년 3월 16일
설교장소 : 기둥교회
제  목 : 바른 열심
성경본문 : 로마서 10장 1~4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10장 1~4절) 

<목회기도>
 
3월 16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오늘의 주인공이 되게 하심 감사합니다.
이 좋은 예배의 자리,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게 하심 감사합니다.
이 시간 기둥교회 예배에 동참고자 인터넷을 접속하고
모니터 앞에 앉은 이들을 포함하여
함께 한 맘 된 모든 이들의 마음과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다르게 살았으나 한 맘으로 모여 예배드립니다.
각기 형편과 사정이 다르고 기도의 제목도 다른 이들이 예배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시고,
각자가 알아듣고, 깨닫는 기쁨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전쟁의 위협, 정치적인 혼란, 국가 경제의 무질서…등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일터가 흔들립니다.
영육간의 병으로, 경제적인 병으로… 힘이 들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모든 정체에서 벗어나고, 이 모든 병에서 놓임 받기 원합니다.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손잡아 주시옵소서.
이 어려운 때에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모두에게도 우리와 같은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이 시간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시기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따뜻함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부드럽고 여유로운 얼굴 표정을 지으시고
부드럽고 너그러운 말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마음이 넓고 관용을 베푸는 성질이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너그럽게 사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자신이 희생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옆의 분들과 "너그럽게 사십시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의 열심(열정)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했습니다. 열심히 섬겼습니다.
'열심'하면 유대인, '기도'하면 유대인. '율법 지키는 것'하면 유대인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여전히 열심입니다.
 
바울도 열정적이고 열심이 극에 달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때, 바울은 스데반의 처형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행8:1)
바울이 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까?
바울이, 그때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마음은 당시 유대인들의 공통된 열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종교적인 행위와
전통과 형식을 지키는 것이 구원 받는 길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교적인 행위, 전통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열정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열심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 변화되고 보니
유대인들,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롬10:2)
이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나는 이렇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습니다만,
  그 열심이 지식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아가페쉬운성경)
열심히 무엇인가 하는데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가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모든 열심이 다 진리는 아닙니다. 열정이 있다고 다 진리는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수령, 김정일 장군'이라고 부릅니다.
김일성이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었지만 평양시내 곳곳에
"위대하신 어버이 수령 김일성 동지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습니다. 꼭 성경구절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말끝마다, 좋은 일이 생기면 '수령님', '장군님'을 들먹입니다.
그 열정적인 사랑은 사랑보다는 숭배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열렬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김일성 수령, 김정일 장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자세를 가다듬는 그 열심이 진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열심이 있었지만,
참 진리와 지식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들의 전통과 행위와 자기들의 선입견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대로 행했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교회에 오래 다니는 것도 중요하고, 봉사를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순간 순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의 원하심인가",
"말에나 일에나 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가?"(골3:17)를 확인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 가는 삶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무엇인가 하지만
열심히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정의에 불복종하게(반대)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의)이 무엇인지 모르면…,
하나님의 원하심이 무엇인지 모르면… 자기 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의로움을 주장합니다. 자기 주장이 많고 말이 많아 집니다.
모든 것에 자기가 옳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치 않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자기 판단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에 맞지 않으면 반항하고 비판합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는 사람들이 다 착하고 순진합니다.
모든 면에 은혜롭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도 초신자들은 다 착하고 겸손하며 순종을 잘 합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가고 경력이 붙으면서
습관적인 신앙생활로 바뀌고 교회 생활에, 신앙생활에 익숙해지면
겸손하고 순박하던 사람이 변해서 경력이 되고 기득권으로 변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주장이 많아집니다. 자기를 내세우려 합니다.
"내가 봉사 많이 했는데, 내가 헌금 많이 했는데,
내가 더 오래 다녔는데, 내가 나이 더 먹었는데…"
"나도 회장했고, 그런 것 나도 해 보았고…"  나를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정말 은혜 받은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신을 낮추고
자신이 한 일, 자신의 경력…등에 대해서 오히려 부끄럽게 여깁니다.
더 잘 하지 못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 보십시오.
얼마나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주장을 강조하고 
'내가 오래되었는데,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했는데…'하며 말이 많았는지…
물론 그동안의 수고와 희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고 애쓴 이들 많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들의 숨은 공로를 인정합니다.
기둥교회 오래 다닌 이들이 이 교회의 기초가 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득권으로 변해 있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그런 경력으로
새로운 사람들의 길을 가로막고 나선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말 많은 사람, 투덜거리는 사람,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그 말이 다 옳은 지, 그 말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지,
하나님의 원하심을 이루는 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지 잘 들어 보십시오.
거의 대부분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가 옳다는 얘기입니다.
마침내 평안을 깨고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만 했던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열심(열정)이 있어야…
 
성경에는 선한 일에 폭발적인 열정(enthusiasm, zealous)을 지닌 사람들이
여러 명 소개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디도(Titus)일 것입니다.
그는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고린도에 갔습니다.
디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울과 동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 대해 바울이 근심할 때 함께 걱정해 주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을 돕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다른 성도들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마음을 격동시켰습니다(고후8:17,22).
 
사실 열정과 활력이 넘치는 영적 생활은 감탄할 만한 자질입니다.(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열정이 바른 지식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 열정과 열심이 바르게 배우지 못하고 하는 것일 때는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기도 하고 마침내 사탄의 도구로 쓰임받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고, 칠 줄도 모르는 사람이
피아노를 치고 싶은 열정만으로 친다면...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짜증이 납니다.
사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참 좋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 잘 못치는 사람이 피아노 소리를 내면 짜증이 납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사랑해도 배우고 익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운전면허도 없고, 운전할 줄도 모르지만 운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운전한다면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결심한 사람도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열정이 성경의 지식에 기초해야 하고, 교회의 질서에 맞아야 합니다.
잘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지 않는 일이라면…
신학적인 오류에 빠지고,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사탄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엘톤 트루블러드(Elton Trueblood)는
'생명이 있는 기독교의 세 가지 지주(기둥)'가 있다고 했습니다.
(Vital Christianity has three Pillars)
① 헌신하는 내적 생활,
② 봉사하는 외적 생활, 그리고
③ 분명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지(知)적 생활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헌신적인 생활을 무시하거나, 봉사하기를 거부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는 일을 무시하게 되면
영적 성장이 중단되고 지적, 영적인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여러분, 성경을 끼고 교회에 다니고, 십자가 목걸이를 오랫동안 달고 다닌다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결심하고
그 삶속에, 생각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예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말씀을 잘 듣고 배워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영성훈련에 참석하라고, 봉사생활을 해야 한다고,
세상에 나가서 빛되고 소금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보여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전통, 율법…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어야 생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믿으려 하고 살려 해야 합니다.
천국 가는 것도, 영생 얻는 것도, 참 평화를 얻는 것도, 참된 믿음을 갖는 것도…
하나님이 내신 길,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요3:16)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유도 예배는 하나님께서 예배하라고 명하셨고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요4:23)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믿음은 말씀을 들어야 생깁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이 생기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예배의 자리에 참석해야 하고
▶ 성경말씀을 듣고, 공부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4절에 보면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목회자들이 설교를 들으라 하고, 성경을 배우고 읽으라고 하지만
사탄은 예배 드릴 수 없게 하고,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만들고,
성경공부를 할 수 없게 방해합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려 하고,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해야 하고,
  성경공부를 하려 해야 합니다.
▶ 그리고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여러분의 믿음을 시인하십시오. 믿음을 시인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 믿음으로 천국에 갈 것입니다.
나는 예수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나는 기둥교회에 출석하는 성도입니다"라고 표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모이기에 힘쓰는 것도… ,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도,
PB Academy(기둥성경신학원)를 하는 것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확신한 일에 거하게 하려는 이유 밖에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 16, 17절에 보면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7)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자녀들 중에 가방들고 학교가는 것이
고통 받으러 가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부 마쳤다고 쉽습니까? 취직하기도 어렵습니다.
장사도 어렵고, 사업도 어렵고, 행복한 가정을 지키는 것도 어렵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습니다.
저는 쉬운 것 같아요? 설교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커피를 누르면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설교가/목회가 쉬운 줄 아십니까?
전에 어떤 할머니가 제게 "목사님 주일에 설교하고 평일엔 뭐하슈?"라고 물으셨습니다.
설교하는 것이 쉬워 보였나 봅니다. 목회하는 것이 쉬워 보였나 봅니다.
주중에는 할 일이 없이 시간 보내는 줄 아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새벽 2시에 "목사님 뭐하슈?"하고 전화 하시지…
그러나 이렇게 저렇게 속썩이는 사람이 한 둘이라야지…
다 ~ 자기는 아닌 척 하고 있지만… 있어요. 있어….
 
우리 어렵지만… 돌아가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신앙생활 하십시다.
- 부부간에도, 가족간에도, 형제간에도 열심히 사랑하며 사십시다.
  평안하게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참고, 덮어주고, 이해하며, 성질 내지 말고 사십시다.
-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부서에서도… 수근거리고 불평하기 보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이 되어 주며 사십시다.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심이 지나치면 싸우고, 돌아서고, 등지고 갈라섭니다.
  그러나 새신자들은 누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새신자들은 겸손하게 배우려 하고 순종하며 신앙생활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 이름으로 한 맘 되고, 예수님 이름으로 용서하고
  예수님 이름으로 낮아지고… 평안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회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샀다고 합니다.
소프라노와 테너 파트는 '오른편에 놓자'고 하고
알토와 베이스 파트는 '왼편에 놓자'고 했답니다.
왜냐하면 피아노 소리가 가깝게 들리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를 '오른편에 놓자, 왼편에 놓자'고 싸우다가 갈라서게 되었답니다.
그 교회는 피아노를 사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며
싸우는 교회도 있답니다.
'당신'이라는 말은 3인칭일 때는 극존칭입니다. 가장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2인칭일 때는 부부간에, 편한 관계에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싸울 때는 상대방을 막 부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어느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불렀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뜻이 통하고 악의가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을 한심한 분으로 만드는 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미국 테네시 주에 <Right Foot Baptist Church>라는 교회가 있답니다.
사순절 기간에 교회에서 세족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족식을 하기 전에 '오른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 왼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고
의견이 갈라져 서로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왼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는 쪽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오른발을 먼저 씻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갈라져 나와
세운 교회가 <Right Foot Baptist Church(오른발 침례교회)>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구요.
 
여러분, 살면서 사소한 일로, 웃기는 일로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봉투>, <봉지>, <봉다리> 중에 어느 말이 정확한 말입니까?
싸울 것 없습니다. 뜻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살기를 원하시는데
왜 유대인들처럼 엉뚱한 전통에 얽매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는지…
그것 때문에 바울 사도가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이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 기둥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 가운데도
답답하고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위해…
따끈하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수는 없을까요.
 
 
안도현 이라는 작가가 쓴 시를 소개합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셨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태우고 희생시켜 다른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 적이 있으십니까?
이 사순절에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내 가정에, 일터에서, 교회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스스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뜻을 생각하며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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