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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평하신 하나님 / 살후 1:3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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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신 하나님<데살로니가후서 1장 3절-5절>
최약선 목사 (논산중앙교회)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이는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송명희씨는 훌륭한 시인이고, 훌륭한 신앙인이고, 또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전도자입니다.
근데 송명희씨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에 걸려서 일생동안 한걸음도 스스로 걸어보지 못한 장애자입니다.
글씨 한자를 쓰려면 온 몸을 뒤틀면서 써야 겨우 글씨 한자를 쓰는 중증장애자 입니다.
그녀의 시 가운데 ‘나’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나는 이 시가운데 공평하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보통사람, 건강한 사람이,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그랬다면 저에게 그런 진한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로 한발작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 재물도 없고, 건강도 없고, 자랑할 것 없는 한 여인이 하나님을 향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노래한 것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공평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기 보다는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더 많지 않습니까?

감사는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은혜가 충만하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중에 감사의 조건들이 보입니다.
내 속에 은혜가 없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감사의 조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무엇이 많아서가 아니라 믿음이 있어서, 은혜가 있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마음속에 믿음과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송명희 시인을 생각해 보세요!
보통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불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께 불평해야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냈습니다.
나 남이 가진 재물 없으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건강있지 않으나, 나도 가진 것 있네 남이 듣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을 나는 들었네.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나는 받았네. 그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불평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비교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생각 안하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많네. 하나님, 왜 나는 적습니까? 왜 나는 저 사람 만큼 안주십니까?”라고 불평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는 비교 감사가 아니고, 절대 감사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 그 중에 두달란트 맡은 종에게서 우리가 배울점이 참 많습니다.
두달란트 맡은 종은 불평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왜 저 사람은 다섯달란트인데 나는 왜 두달란트 입니까? ” 이렇게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두달란트 맡은 종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 감사한 마음이 무엇으로 나타났는고 하니 주인이 두달란트를 맡겨주니까 그것을 가지고 바로 가서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한달란트 받은 종은 불평했습니다.
“주인님! 나를 어떻게 보시고 한달란트를 주십니까? 저 사람은 다섯달란트를 주고, 이 사람은 두달란트를 주셨는데 나는 왜 한달란트입니까?”
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한달란트를 땅에 묻어놓고, 다섯달란트와 두달란트를 맡은 종들은 열심히 일할 때 먹고 놀았습니다. 감사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불평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은 하나님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알기 때문에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하필이면 왜 내가 병들어야 됩니까? 왜 내가, 왜 나만, 왜 내가 더.....
마치 하나님이 내게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옵시다.
말씀을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들에게 고린도에서 보낸 편지의 내용인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한다. 이것이 당연하다’ 는 말이 나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저 날마다 좋은일만 있고, 날마다 기쁜일만 있고, 그저 웃을일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핍박도 있었고, 환란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속에 환란과 핍박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아도 되느냐?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감사해야 될 이유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그 고난은 쓸데없는 고난이 아니고, 그 고난은 너희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생시키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을 다듬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니까 나에게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에게 이 고난이 필요해서 주시는구나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 무엇인가 뜻이 있어서 주신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고난이 있는데 이것은 고난 후에 축복이 없습니다. 또 쓸데있는 고난이 있는데 이것은 고난 후에 축복의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쓸데 있는 고난입니다. 십자가 위에 은혜요! 십자가 위에 영광이요! 삽자가 위에 축복이요! 십자가 위에 면류관이라!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이 깨달은 은혜나 사도 바울이 깨달은 은혜나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내게 주시던지 나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리라...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러므로 고난중에도 믿음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산 정상에 섰습니다. 그러면 산 정상에 서 있는 사람만 보면 안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의 무엇까지 보아야 되는고 하니, 그 사람이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고난의 골짜기를 더듬어 올라왔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까지 보는 눈이 믿음의 눈입니다.
뚝 떨어져서 산꼭대기에 선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해서 그는 정상에 선 것입니다. 믿음의 승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승리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성장하고, 고난을 통해서 다듬어져서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그는 우연히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아픈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75세에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아픔이 있었고, 그가 100세때에는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하는 아픔의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과하니까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거져 야곱입니까? 20년동안 타향살이 머슴노릇 하는 고난의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내게 고난을 주신 것, 공평하신 하나님이 왜 나에게 고난을 주셨을까?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고난을 왜 내게 주셨을까?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세요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고 고난중에도 믿음의 꿈을 가지세요.

사도 바울은 일생동안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전도했습니다.
바울처럼 자기가 젊었을 때 잘못한 것을 깨닫고 정말 일생을 그렇게 뜨겁게 산 전도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가는 곳마다 고난을 당했습니다. 때로는 채찍에 맞기도 하고, 배고픔의고난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억울한 누명도 쓰고, 언뜻 생각할 때
‘참, 하나님도 바울이 전도하러 다니는 데 가는 길 좀 환하게 평탄하게 열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왜 공평하신 하나님이 바울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을까?
그런데 바울은 이 고난을 통해서 더 연단되고, 더 아름답게 다듬어져서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름답게 나타났습니다.
마치 조각가가 망치로 돌을 때릴때마다 만약 돌이 아픔을 느낀다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그 아픔위에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사랑받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 찬양대는 알테니까 물어보겠습니다.
신약성경은 몇권입니까? 이것 대답못하는 사람은 어디가서 논산중앙교회 교인이라고 하지 마세요! 몇권입니까? 27권입니다.
구약은 39권, 신약은 27권, 총66권인데 신약27권중에 바울이 14권을 썼습니다.
진주같은, 보석같은 그런 작품을 14권이나 썼습니다.

엊그제 어디를 갔더니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살지?” 이제 월드컵이 끝났다는 이야기인데 옆에서 “재방송 보면서 살지!”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정말 보아도 보아도 재미있습니다. 나는 어제 저녁에 또 봤습니다.
골 넣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근데 사실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갈 줄은 정말로 생각못했습니다. 16강만 올라가도 참 감사한데 더 기쁜 것은 그 선수들이 꿈을 가지고 그 어려운 훈련을 통과하고 얻은 영광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없습니다. 유명한 선수의 1년 몸값이 우리나라 선수들의 몸값을 다 더한 것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고난 중에서도 그 꿈을 버리지 않고, 그 꿈을 성취했기에 우리가 기쁜것입니다.
믿음의 꿈을 가지고, 공평하신 하나님! 내가 노력하는 만큼 성장케 하시고, 고난 받은 만큼 상을 주시고, 간구한 것 만큼 응답해주시는 그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 고난중에도  꿈을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고난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늘 병이 있었는데 그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 앞에 세 번 기도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습니다. 그런데 세 번만 기도했겠습니까? 많이 했겠지만 특별한 기도라서 세 번이라고 기록된 것 같습니다. 바울은 늘 하나님께 건강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안들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안들어준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사도바울도 기도 세 번했는데 세 번다 퇴자를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감사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약함 가운데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께 더 매달리니까 내가 강해졌구나”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에 대해서 더 감사했습니다.

이 송명희 시인이 이런 시도 썼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항상 감사하라
      건강할 때만 감사하는 자여! 항상 감사하라
      좋을 때만 감사하는 자여! 항상 감사하라

저는 종종 물을 마실때마다 기억나는 집사님이 있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그 집사님의 비명같은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을 마실 때마다 그 생각이 납니다.
그 집사님은 식도암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마시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뭘 먹는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근데 이 집사님은 먹지를 못하고 깨물어서 뱉어야 합니다. 꿀꺽 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막혀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나한테 하는 말이 “목사님, 물 한그릇 꿀껄꿀꺽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죽을 때까지 그 말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물 한그릇 마시는 것에 감사합니까? 조금만 아프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원망만 했지, 지금 이렇게 주신 은혜에 감사했습니까?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을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난이 와도 감사하고, 또 성도들이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필수 과목입니다. 천국대학에 필수과목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분명히 나타나있는데 5절말씀 마지막에 “그 나라를 통하여 너희가 고난을 받는다” 아멘입니까?
온실에서 자란 꽃은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들에서 비바람 맞으면서 자란 꽃은 강합니다.
바닷가에 가면 조약돌들이 많은데 다 둥글둥글 하고 이뻐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처음엔 다 뾰족한 돌인데 계속 파도에 부딪혀 닳아져서 이쁘게 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모진 부분들을 깎아내고 다듬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하셨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에 고난중에도 절대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왜 나만 병들게 했습니까? 왜 하나님 나는 가난합니까? 왜 남들은 당하지 않는 일을 나는 당합니까?” 라고 불평하지 말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뭔가 뜻이 있으시니까 주신 고난이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그 쓸모있는 고난을 통과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그 고난을 채우고도 남을 은혜와 복을 주실줄로 믿으세요
하나님은 공평하세요!

다음 주일이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아마 주보속에 헌금봉투가 있으니까 인상을 쓰신분도 있을텐데 여러분! 마음속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분은 절대 헌금하면 안됩니다. 하지마세요!
마음속에 정말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 헌금하는 것입니다
감사 없는 헌금은 낭비입니다.
예배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고 느낀 분이 헌금을 드려야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로 쓰여지지, 체면 때문에 하지 마세요! 여기는 체면 내세우는데가 아니니까 하실 것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한번 해보세요! 다음주일이 오기전까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을 쭉 돌아보세요! 내가 삼십년, 오십년, 칠십년을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느낀 것을 10가지만 적어보세요! 꼭 해보세요!
연말되면 신문사마다 10대뉴스등을 선정하듯이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지금까지 해본적 없으셨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중에 정말 하나님께 앞에서 “너 뭐가 감사하냐?” 고 물으실 때 “하나님! 이것, 이것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10가지만 적어보세요!
그것 못적은 사람은 다음 주일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매일 오늘부터 다음주일까지 잠자기전에 오늘하루 감사한 3가지를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루를 마치세요!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내게 필요하니까 고난도 주시고, 그러므로 고난을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중에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공평하신 하나님을믿는 사람은 고난을 부끄러워 하면 안됩니다.
가난은 힘듭니다. 그러나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죄가 아닙니다.
부요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면, 가난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건강한 것만 복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죄를 더 많이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집에 있으면 죄를 안짓고 다닐텐데, 다리가 멀정하니까 죄짓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이 다 복이 아닙니다. 그리고 병든 것이 다 죄가 아니고,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성공 실패는 끝에 가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갈 그 때까지 우린 아무도 성공자라, 실패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고난이 있다가 그 고난을 이기고 나가면 내년에 축복의 한 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건강하다가도 하나님 은혜에 깨닫지 못하고 살면 내가 병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가지고 부끄러워 하지 마세요!
바울은 자기의 육신에 질병이 있는 것을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나는 자랑할 것이 약한 것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한 것 밖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송명희 시인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세상일에는 장애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에는 그 육신의 장애가 도무지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그 높은 믿음의 경지에 그녀는 올라갔구요. 우리가 측량못하는 그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 송명희 시인은 깨달았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나’라는 시가 얼마나 좋은 찬송가 가사입니까? 이것 다 찬송가에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젊어서 병들어 고생안했으면 지금 뭐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팔팔 뛰어야 할 대학시절에 병이 들어 광주 제준병원에 입원해서 콜록콜록 하고 있을 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연약하구나! 그러니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되겠구나!
병을 얻어가지고 그것을 깨달았으니까 손해입니까? 이익입니까? 엄청난 이익입니다.
우리교회도 시각장애를 가진 이집사님이 계시는데 성경 말씀 속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어디를 가는데 시각장애자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걸 본 제자가 “예수님, 저 사람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저 사람 죄때문인가요? 부모의 죄 때문에 그런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참, 제자들도 못돼먹었어요! 겨우 물어볼 게 그것 밖에 없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면 ‘저 사람 분명히 뭘 잘못했으니까 망했지...’ 그럴겁니다.
어떤 사람 다쳤다면 ‘저사람 무슨 죄졌으니까 다쳤겠지...’ 그럴 겁니다.
그런 심보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남들에게 그런 소리 듣도록 꼭 만들어 줍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심보를 가지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병자를 고쳐주시고, 앉은 뱅이를 일으켜주고 하니까 그걸 본 제자들은 “예수님 저 사람 앞을 못보니 정말 안됐네요 예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서 “저 사람은 자기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앞을 못보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셔서 자녀삼아 주셨고, 하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고난중에도 믿음의 꿈을 접어서는 안됩니다. 고난중에도 감사가 그쳐서는 안됩니다. 고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축구선수가 고난받는 훈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틀린 것입니다.
고난을 열심히 견디고 나갈 때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어디에 고난없이 위대한 인물이 된다고 약속했습니까?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거져 받지만 내 믿음의 성장과 축복의 성장은 고난이 따릅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학교 교육은 다 합쳐봐야 1년도 안되게 받았습니다. 전혀 학교를 못다녔습니다. 아홉 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계모밑에서 어렵게 어렵게 살았습니다 청년이 되어서 사랑하는 애인이 생겨서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백혈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인을 만나서 결혼을 해서 4남매를 두었는데 세명을잃었습니다. 한명만 남았습니다.
정치에 뜻이 있어서 하원의원에 출마했는데 세 번이나 낙방했습니다. 나중에는 상원의원에 출마했는데 또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 미국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꼭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 며 나중에는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했는데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 제일 먼저 한일이 있었는데 모든 사람의 공평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셨는데 왜 피부가 검다는 이유 때문에 짐승처럼 노예로 살아야 되느냐며 그것은 안된다 그래서 남북전쟁을 잃으켜 흑인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 이유때문에 그는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한 일이 있었는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며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최고 명절입니다.
그는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을 원함하지 않고 감사하며 나가더니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며 송명희 시인의 ‘나’ 라는 시를 다시 한번 낭독하고 마치겠습니다.
      나 가진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같게 하셨네

공평하신 하나님을 여러분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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