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꿈과 희망을 가진 삶의 축복 / 롬 5:5-6

  • 잡초 잡초
  • 317
  • 0

첨부 1


 
제목: 꿈과 희망을 가진 삶의 축복(롬 5:5-6)
이름: 이한규목사 (분당사랑의교회)
     

< 꿈과 희망을 가지십시오 >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간직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하나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꿈이 없는 곳에는 눈물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금 가지고 있는 소중한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잃어버린 꿈은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은 날마다 새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꿈을 잃어버립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실망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일이 잘 안되니까 실망해서 꿈을 잃어버리고, 어떤 분은 믿었던 사람에 대해 실망해서 꿈을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가장 큰 실망은 다른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오지 않고 내 안에서 옵니다. 내가 희망을 버리고 실망을 택할 때 실망은 오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가지기로 결심하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의 희망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살면서 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습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꿈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꿈이 있기에 사람은 계속 발전하다가 인터넷 시대까지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짐승 중에 똑똑한 편이라는 여우가 만든 여우굴은 수천 년이 지나도 조금도 발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에게는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사람답게 살려면 "어떤 일을 일으키겠다!"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일을 이루는 주체가 되지 않고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어?"하는 태도보다 더 비극적인 태도는 없습니다. 우리는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실패해도 꿈을 잃지 말고, 힘들어도 꿈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꿈이 죽으면 우리 영혼도 점차 죽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꿈을 회복하면 우리 영혼도 점차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꿈꾸는 자가 되면 죽어도 진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그 순간이 가장 멋있게 변화되는 순간이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 안에서 꿈꾸는 사람이 된다면 죽어도 멋있게 변화되는데 살아 있는 이 땅에서는 왜 변화가 없겠습니까? 우리에게 좋은 변화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시 꿈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과 자녀와 교회의 꿈을 가지시고, 교회 부흥의 꿈도 가지십시오. '하나님! 우리 교회가 활력이 넘치고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꿈 >

약 4년 여 전에 우리 교회가 큰 꿈을 가지고 생겼습니다. 그때 아무 것도 없이 저희 집 거실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목회자도 백만 원의 개척자금은 있지만 우리는 백만 원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부흥해서 지금의 교육관 자리를 얻었고, 조금 더 부흥해서 지금의 본당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교회부흥은 예상보다 참 더디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외부적 요인에 핑계를 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이 안돼는 것에 대해 핑계와 변명을 일삼는 것은 부끄럽고 무책임한 일이기에 저의 부족함을 핑계의 변명으로 감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의 부족함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선 이곳은 장소가 좋지 않습니다. 장소 탓을 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곳이 장소가 좋지 않은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한국 교계에서 분당은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표현합니다. 유능한 목회자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 분당 중에서도 이곳이 가장 목회가 힘든 지역입니다.

우리 건물 옆으로 한 건물 지나서 30억짜리 자체 건물을 가진 생수 두란노 교회가 있습니다. 그 옆 건물 4층에는 186평 자체 성전을 가진 남서울 제일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뒤편으로는 15억짜리 자체 건물을 가진 신도시 교회가 있습니다. 신도시 교회 바로 앞에는 5층에 8백 평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새생명교회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 건물 뒤쪽으로 두 건물 지나면 지하에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전을 가진 샘물교회가 있고, 샘물교회 대각선 50미터 거리에는 60억짜리 자체 건물을 가진 새소망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남서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3만 명의 성도로 분당에서 제일 큰 여의도 순복음교회 제 3성전이 있고, 남동쪽으로 한 블록 반 떨어진 곳에는 지금 소망교회에서 300억짜리 교회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그 소망교회 건너편의 이마트 바로 뒤쪽에 있는 하나교회도 60억짜리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고, 그 바로 아래쪽에 있는 불꽃교회도 40억짜리 자체 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억'소리가 나는 큰 교회가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이곳에서는 조그만 개척교회도 많이 생겼지만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처럼 작은 상가 임대 교회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잘 견디어 온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계속 이곳에 고집스럽게 남아 있어야 합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이곳에 그냥 있어도 크게 부흥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가 많다면 우리가 교회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꿈을 가진 자의 더 합당한 모습일 것입니다.

요새는 교회 이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이전을 목회자의 성공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이전을 논하는 것이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교회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을 피해 도망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이곳에 끝까지 남아 있겠다!"고 해야 합니까? 그 기개는 좋지만 그 모습은 성도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목회자는 성도에게 새로움을 주고, 생명력을 주고, 활력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교회 부흥도 힘써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교회 분위기도 밝아지고 성도들에게도 생명력이 넘치게 되지만 교회가 침체해 있으면 교회 분위기도 어두워지고 교회 생활에 권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리더는 성도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이 없다면 그것은 리더의 직무 유기이자 책임 회피입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영혼에 활력을 주기 위해 많이 고민합니다. 그래서 제일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좋은 프로그램에도 신경을 씁니다. 이 부분은 저의 약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이기에 다른 교회에서 하는 좋은 프로그램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런 면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1995년부터 2년 동안 MBC 신우회 지도목사를 지냈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예배를 인도하러 방송국에 가면 가끔 녹화 장면을 봅니다. 그러면 연기자의 연기도 기가 막히지만 연출자의 연출도 기가 막힙니다. 그때 연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때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좋은 의미의 연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좋은 프로그램이 성공했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에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깨는 것처럼 리더가 "안되면 말고 식"의 리더십을 가지면 리더십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리더가 어떤 프로그램을 추진할 때 충분한 고려가 없이 무작정 시작하여 그 프로그램을 성공시키지 못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면 리더십에 훼손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에서 무슨 프로그램이 성공했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 아닙니다. 리더는 그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잘 선택해서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어야 합니다. 그처럼 리더는 끊임없이 그 공동체에 활력을 주는 통로를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는 반드시 침체기가 있고, 권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항상 좋은 상태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침체와 권태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침체와 권태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새롭게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태도입니다.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아쉽지만 최근에 우리 교회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편입니다. 스스로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은 적고, 성도들의 전도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연히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교회의 분위기는 침체되고, 성도들은 영적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평균적으로 3년 정도 한 교회에서 지내다 보면 그런 영적 권태가 생긴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그런 상황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하는 것이 요즘 저의 가장 큰 기도제목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지난 주 목요일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따라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정이 넘어 다시 교회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 새 바람이 불게 하시고, 성도들에게 새로움을 주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혹시 좋은 교회 자리가 없는가 하고 인터넷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2시 8분 경에 여기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분당 수내동에 교회 이전 대상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음날 그곳을 가보았습니다. 흥분이 될 정도로 모든 조건과 상황이 좋았습니다. 이틀 후에 이미 구성된 건축위원회를 긴급 소집하고 건축위원들과 그곳에 함께 가보았습니다. 건축위원들이 다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에 기관장들을 불러서 그 장소에 가보고 난 후에 여러 가지 제반사항을 점검한 후 교회 이전 결정을 내렸습니다. 장소도 최적의 장소였고, 재정도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만했습니다. 게다가 쓸 수 있는 공간도 여기의 3배나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회를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에게는 두 번의 교회 이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분당 야탑동에 있는 OO교회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교회 이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기쁘고 밝은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 비전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비전에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으면 심적 부담은 더 크게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전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그 뒤 그 장소로 우리 교회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교회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에 입주한 후 매주 꾸준히 1-2가정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가끔 "그때 그냥 밀어붙여서 이전할 걸"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더욱 적절한 장소를 주실 것을 믿고 큰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손이 잡힐 만한 비전을 주시고, 성도들이 기쁨으로 교회 이전에 참여할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년 1월에 또 한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분당 경계선을 넘어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땅 4백 평이 평당 80만원 되는 싼 가격에 급매물로 나와서 교회 이전을 생각하고 건축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성도들에게 그 비전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성도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때 그 비전을 부드럽게 감싸안도록 하지 못하면 교회 이전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쉬웠지만 다시 한번 더 포기했습니다.

몇 달 후, 다시 그 지역을 방문했을 때 우리가 보았던 땅을 80만원에 매입한 사람이 3개월만에 다시 평당 120만원에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그냥 밀어붙여서 이전할 걸"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저축이 뛰는 부동산값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도 많았지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더욱 적절한 장소를 주실 것을 믿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장소를 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했습니다. 두 번의 기회가 다 아쉬웠지만 지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곳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시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역사가 있기에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해도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교회이전에 대한 성도들의 부담 문제 >

이제 우리는 교회 이전이라는 큰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문제로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심리적인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이해합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담을 줍니다. 그러나 그런 부담을 가지지 않고는 어느 공동체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므로 그런 부담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둘째는 재정적인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개척교회를 꺼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척교회는 재정적인 부담이 있고, 큰 교회는 재정적인 부담이 없다는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물론 큰 교회에서 아무 의미 없이, 아무 교제 없이, 아무 참여 없이 뒷자리에서 예배만 드리고 슬쩍 사라지면 재정적인 부담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뒷자리 생활, 뒷구멍 생활은 결코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주지 않습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려면 큰 교회에서도 소그룹 모임에 참여하고 교제하고 봉사하며 지내야 합니다. 그러면 재정적인 부담이 없겠습니까?

사람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데에만 재정을 쓰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품위 유지비용'을 들입니다. 즉 사람은 어떤 모양이든지 자기에 맞는 특성과 환경에 따라 좋은 의미에서 '품위 유지비용'을 들이고 그 가운데 만족을 느껴야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저급한 사람들은 그 '품위 유지'를 '사치와 허영'으로 잘못 오해하여 저급한 삶을 사는 경우가 있지만 요새 많은 사람들은 '품위 유지비용'의 중요성을 점차 인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 열려 있지 않으면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큰 교회에 다니면 '큰 교회 성도 유지비용'도 만만찮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큰 교회에서 뒷자리에 있는 경우는 상관없지만 조금이라도 성도들과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하려면 재정적인 부담은 더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큰 교회도 성도들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비전을 세우고 끊임없이 교회 사업을 펼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비용을 다 대는 것이 쉬운 줄 아십니까? 아주 만만찮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는 재정적인 부담이 많고, 큰 교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큰 오해입니다.

며칠 전 이 근처의 OOO교회 다니는 한 분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가 수지에서 분당으로 이사오는데 총 O백억 원이 필요한데 현재 OO억 원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문제로 인해서 그분 마음이 참 힘들다고 합니다.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200억 마련 비전센터 헌금을 하는데 현재까지 약 2천 세대가 90억 원을 작정했습니다. 한 가정 당 450만원을 작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교제하면서 남들은 작정하는데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 옆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전후사방에 눈이 많은데 얼마나 부담이 됩니까?

그런 일이 한번으로 끝납니까? 지금 이 옆의 OO교회 자리에 있다가 그 교회가 수지로 이사갈 때 4년여 전 IMF 때에 약 OOO억 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그때 성도는 지금의 3분의 1인 4천 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면 1천 세대가 헌금에 동참했다고 쳐도 한 세대 당 평균 천만 원 이상을 헌금했다는 말입니다. 이래도 큰 교회에 다니면 부담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찌 그 교회뿐이겠습니까? 대부분의 큰 교회가 다 그런 상황을 몇 차례는 겪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 성도는 재정적인 부담이 있고, 큰 교회 성도는 재정적인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실제로 '큰 교회 성도 유지비용'이 만만찮고, 게다가 큰 교회 중직으로 있으면 그분이 받는 재정적인 부담감은 엄청납니다. 교회에서 비용이 드는 어떤 일을 추진하는데 어떻게 본인만 모른 체 합니까? 그래서 돈 없는 사람이 큰 교회 중직으로 있는 것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 실망하여 시험에 들고 결국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 사랑의 부담을 힘써 지십시오 >

중요한 것은 그 교회를 이끄는 담임목사의 철학과 의지입니다. 담임목사는 성도들의 신앙의 활력과 영혼의 보람을 주는 비전을 세우되 성도의 형편을 살펴가며 분수에 맞게 적절한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최대한 하되 성도의 부담은 최대한 줄여주려고 해야 합니다. 성도의 부담이 너무 과중하면 그 비전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다음으로 미룰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담임목사의 할 일입니다.

반면에 성도들은 적절한 사랑의 부담을 지고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사랑의 부담을 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면 영혼이 가벼워지고, 인간관계가 가벼워지고, 인생이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영혼이 가벼우면 바람이 불 때 쉽게 날아가 버리고, 삶이 힘들 때 내 옆에서 나를 붙들어줄 사람이 없고, 하나님도 옆에 계시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부담을 전혀 지지 않으려는 가벼운 영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은혜는 받았다고 하면서 사랑의 부담과 헌신의 손길은 외면한다면 그것이 흔히 말하는 '값싼 은혜(cheap grace)'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적절한 부담이 있어야 그 부담이 시련의 날에 나를 지켜줍니다. 나룻배는 바닥짐이 있어야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요트가 바다의 엄청난 파도에 엎어졌다가 다시 원상을 회복할 수 있는 이유는 밑바닥에 무거운 바닥짐(ballast)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무거운 바닥짐을 배 밑창에 까느냐? 그것이 없으면 배가 편하고 고생을 덜 할 텐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닥짐이 있어야 그 배는 중심을 잘 잡고, 특히 파도가 치는 날에 그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에 늦잠도 못 자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인생의 바닥짐처럼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는 그 부담스런 일이 인생의 어려움을 만날 때 나에게 큰 힘과 능력과 위로를 주고 내가 거뜬히 그 어려움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듭니다.

교회 생활에서 왜 한 가지 이상 봉사를 해야 합니까? 살기도 만만찮은 이런 때에 봉사에 시간을 쓴다는 것은 때로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그 부담이 없으면 겉으로는 편한 것 같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참 많습니다. 신앙의 맛이 떨어지게 되고, 교회에 대한 애정도 잘 생기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사랑의 끈은 느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조금 싫증이 나고 조금 어려움이 생기면 영혼이 가볍기 때문에 꼭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자신의 의미를 살리고, 그로 말미암아 삶의 의미를 살리려면 최선을 다해 사랑의 부담을 지려고 해야 합니다.

그처럼 담임목사는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부담을 덜어줄까?"를 생각하고, 반대로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부담을 나누어질까?"를 생각한다면 그런 목사와 성도가 있는 교회는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가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 견고한 형제애를 나누고 동시에 우리 앞에 놓인 꿈과 비전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두 달 동안 교회 이전의 대장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 관심을 기울여 살피시고 나름대로의 사랑의 부담을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장 필요한 것이 교회 간판, 본당의 장의자, 마이크 시스템, 피아노 2대, 15인승 봉고, 복사기, 신디사이저, 인테리어 비용, 잔금 비용 등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교회를 주님의 몸된 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받은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주님의 몸된 전을 위해 이번에 기쁜 마음으로 헌신의 손길을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새롭게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망을 가지면 실망은 사라집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이 구절에서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이라는 말은 공동번역에서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가지면 그 희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5-6절).

이제 우리 모두 웅크린 상태에서 기지개를 펼 수 있어야 합니다. 제일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꿈과 희망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조금 더 실천을 하고, 조금 더 행동을 하고, 조금 더 헌신을 하고, 조금 더 동참을 하고, 조금 더 시도를 하십시오. 영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트라이엄프(triumph,승리)는 트라이(try,시도)를 해야 얻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번 교회 이전 과정에 여러분 모두 힘써 동참하셔서 여러분들의 영혼에 희망과 새로움이 넘치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