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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를 극복합시다 / 수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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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합시다(수14:6~15) 
소망감리교회 (박세종 목사)


수 14:6-15
위기를 극복합시다
"위기"라는 말을 합니다. 위기라는 말은 어려움이 많이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찬송가에도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또 "이 땅 위에 험한길 가는 동안 참된 평안이 어디있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14:1-2에서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이 쇠하여 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한다"고 실토하였습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일촉즉발의 위기입니다. 이북에서는 핵 공장을 재 가동하고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나와 전체가 위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합니다. 방탄복 주문이 밀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덩달아서 경제는 4년이니 6년 최저치라고 하며서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꼭 죄이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에서는 땅굴이 발견된다고 하고 땅속에서는 지하철마저도 대형 참사를 일으키며 불안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다 다가옵니다.
누구나 다 당하고 나도 당할 수밖에 없는 위기라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이냐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세요!
12명의 대표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요단강을 건너가서 여리고 성을 정탐케 하였습니다. 40일이 지나 12명의 정탐꾼들이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민수기 13:33에서는 "우리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와도 같다"라는 보고서를 12명중에 10명이나 그런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
대다수가 거의 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절대로 소유할 수 없다라는 견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보고를 듣고서는 "아 ― 우리가 아예! 애굽 땅에서 아니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중에 장관을 하나 세워서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이나 행진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비단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일까요?
요즘도 이와 똑 같은 사건들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모든 일이 잘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풍성한 삶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위기에 부딪혔을 때의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예수님은 때를 따라 도와 주시며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위기가 닥쳐왔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십니까?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느랴 하시면서 그저 언제나 평온하시던가요?
저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다른 사람들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나폴레옹은 간질병 환자였습니다.
실락권을 저술한 죤 밀톤은 장님이었습니다.
음악의 황제라고 하는 베토벤은 여러분도 다 잘아시죠?
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였습니다.
사도바울은 평생토록 육체를 찌르는 가시를 가지고 살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기는 사람이 되고 누가 지는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까?
기억하세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느냐 아니면 기피하는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어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위기에만 정신을 집중하면 그 위기는 점점 자라서 대장부가 되어 집니다.
그래서 나 자신은 결국 무엇과도 같아집니까?
메뚜기 같이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이 되니 때를 따라 우리의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나 자신은 대장부가 되고 위기의 문제는 메뚜기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기를 바라보느냐 위기를 이기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사도바울은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고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뺏을 자 없는 기쁨을 소유했고 의의 면류관까지도 소유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린 누구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
내 삶의 위로와 참 평안 주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

위기를 따라가는 패배자가 아니라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반절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우리가 위기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누구에게나 다 봄비를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봄에 봅니다.
나뭇가지마다 새싹이 새순이 돋아나고 있음을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다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9절을 보세요.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 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에게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에게까지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약속한 땅은 결단코 값싸게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하였고 여호수아도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하였던 것입니다.

마 17:20절을 들어 보세요!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하였습니다. 산을 옮긴다는 것! 얼마나 엄청난 사건입니까?
그런데 거기에도 뭐가 있을 때 옮겨진다고 하셨습니까?
"만일 너희의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겨자씨 만한 것이라도 대가를 희생하려는 헌신적인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자녀가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통장이 많은 자녀입니까?
좋은 학군이 있는 자녀입니까?
오히려 좋은 학군에 퇴폐업소는 더 즐비합니다.
시 126편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 하였습니다.
눈물이 무엇입니까? 바로 희생이요 헌신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희생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의 무릎입니다. 왜요?
기도는 생명과도 같은 나의 시간을 드리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자존심, 내 계획, 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철저히 사이클을 맞추는 순종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도끼의 칼날이 목을 겨누고 있는 형장을 향하여서 바울은 기도의 무릎으로 기어서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로마의 성문에는 사도바울을 처형했던 장소가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처형장 입구에서 처형당하는 장소까지 거리는 약 100m 정도이고 길은 울퉁불퉁한 돌이 깔려져 있습니다. 신을 신고 걷기에도 불편할 정도인데 사도바울은 그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 다 가고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

사랑하는 여러분!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땀방울은 핏방울이 되기까지 헌신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사순절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에 영성 계발 훈련을 실시하려고 합니다.
이 훈련의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의 훈련입니다.
24시간 횃불기도회를 합니다.
교구별 기도회 그리고 전교인 새벽기도 총진군을 차례로 실시하려고 합니다.
우리 소망의 모든 성도들이여!
하나님에게 드리는 최고의 헌신이며 희생인 기도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서 우리도 산을 옮기는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눈물! 내 무릎을 적시는 눈물. 내 뺨에서 흐르는 기도의 눈물로 더러운 마귀, 원수마귀, 질병의 마귀로부터 깨끗함을 얻는 신유의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다시 10-1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45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이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 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는 조금! 아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은 과장이 있습니다. 85세 된 노인이 45년 전이라면 40세인데 어떻게 강권하고 힘이 그때나 똑같겠습니까? 전 51세인데도 다른데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말은 힘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중년이었던 40세 때나 완전히 노인이 된 80세가 될 때까지 절대로 늙지 않았다는 말은 주름살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 보톡스 주사가 있지도 않고 땡기는 수술도 없었을 테니까요.
세월이 45년입니다.
그것이 안정된 생활이 아니라 광야에서 떠돌아 다녀야 하는 유랑생활이었습니다.
수많은 적들을 대항하여 싸워야 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서 죽을 뻔도 하였고 느버림 골짜기에서는 아말렉 군사들에게 패배를 당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기기도 하였습니다.
마실 물조차도 없는 광야에서 제대로 된 샤워 한번 해 보았을까요?
방음이 전혀 안되는 천막에서 부부끼리 마음놓고 대화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세월이 45년인데도 갈렙은 한마디의 불평이 없었습니다.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말입니다.
사도바울을 보세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치 아니하며
                  우리가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받지 아니하며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하면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약 1:12에서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위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업에 손을 댔으나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애인마저 세상을 뜨는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나중에 한 결혼은 부부의 불화와 갈등뿐이었습니다.
미국 토지 관리소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학원 강사가 되려고 했는데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상원의원에서 떨어졌습니다.
부통령에서도 낙선하였습니다. 그가 누군지 짐작이 가시죠
바로 그 유명한 흑인들에게 자유를 준 링컨 대통령입니다.
엄청난 실패의 연속입니다.
수 없는 시련들 닥쳐오는 실패 속에서도 아브라함 링컨은 끝까지 인내하였습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제일 존경받는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무엇이 있도다. 복이 있도다" 믿으시면 아멘! 할렐루야!
누구에게나 위기는 닥칩니다. 
모양은 달아도 죽을 것 같은 위기도 나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우리는 이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도로 헌신하며 끝가지 인내하여서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위기를 이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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