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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 / 렘 1: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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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유관지목사  (목양교회)
제목 :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 (렘 1:13-19)
본문 : 예레미야 1:13∼19


오늘의 본문을 두 글자로 요약하면 '심판'이 됩니다.
16절 뒷부분에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경계하리라" 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다섯 글자로 요약하면 '임박한 심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끓는 가마를 가지고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끓는 가마
의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환상을 예레미야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윗면에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은 그 솥의 물이 북쪽에서부터 넘쳐흐르기 시작했
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약회사 CM 같습니다만 오늘의 본문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두려운 심판의
임박' 이렇게 됩니다.
끓는 가마는 심판이 극심하고 맹렬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심판에
서 피할 수 없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왜 유다를 심판하려고 하십니까?
예레미야는 두려운 심판이 임박한 이유를 16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기 때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길 때 하
나님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을 징계의 채찍으로 삼아서 이스라엘을 심판하
시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순절은 십자가
에 대해 집중적으로 묵상해야 하는 때인데 십자가는 사랑과 공의가 조화를 이
룬 사건입니다. 죄악에 물든 인간을 마땅히 심판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
인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대신 다는 것으로 이 공의를 실현하시고
사람을 용서하는 것으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으로 표현됩니다.
노아 때,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
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심히 무거울 때 하나님은 그 성과 온 들과 성에 거주
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는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으시겠고 말씀하셨습니다. 시
내산에서 모세를 대표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을 때 "너는 나 외에
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3∼
5b)라 하시고 이어서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
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20: 5b)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여주시기 전에 살구나무 가지 환상을 먼저 보여주셨는데 이것은 '나
는 내 말을 꼭 지킨다'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말로 살구나무는 '샤케드'이고 지켜보는 것은 '쇼케드'입니다. 음이 같습
니다. 살구나무의 환상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하
나님이 지켜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살구나무가 그려진 안경을 쓰고서 읽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꼭 이루어진다." 믿으면서 읽으셔야 합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내가 지켜보리라'고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 이것
은 이천육백 이십 여 년 전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환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어야 할 교회가 다른 것을 중심에 둘
때, 세속화될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사랑과 공의와 화해와 순결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짠맛을 잃은 소금은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힌다는 말
씀으로 이 사실을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의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억눌린 사람, 억울한 사람들의 편을 들어야 할 교
회가 세상의 권세 잡은 이들에게 빌붙을 때, 거짓되고 악한 세력 편을 들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교회가 침묵할 때 하나님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아니오!' 할 자신이 있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만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
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외로운 사람 편에 서
있습니다.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할 자신이 있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 이것
은 이천육백이십 여 년전,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환상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 사회에 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것을 꼭 알아야합니다.

이 사회는 타락과 부패에 빠져있으면서 거기서 헤어 나오려 하지 않고 그것을
즐기며 오히려 더 깊이,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이 사회는 갈등과 혼란 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지 않고 그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갈등이 얼마나 큽니까?
보름 전에는 '반핵반김(反核反金)'을 외치는 대규모의 집회가 시청 앞에서 있었
습니다.
어제는 '반전반미(反戰反美)'를 외치는 촛불시위가 광화문에서 열렸습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시청앞파'와 '광화문파'로 갈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미 갈라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시청앞으로 가고 아들은 광화문
으로 가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힘써야합니
다. 노사문제를 비롯해서 사회 각 분야에 쌓여 있는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합니
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갈등을 해소해야 하
는 일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지, 이것을 위해 얼마나 힘쓰는지,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해방 직후의 기록들을 보면 한국을 신탁통치하자는 주장이 나왔는데 신탁통치
를 반대하는 진영과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아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두 진영으
로 나뉘어서 한쪽은 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대회를 하고 한쪽은 남산에서 집
회를 하고 가두행진을 하다가 종로에서 크게 충돌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무엇입니까? 6·25가 일어나서 국토가 초토화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들을 언제까지 방관하실까, 위기감을 갖게 됩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잘못 사용할 때 반드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셨습니다. 에덴에서 추방하
시고 여러 가지 고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
성은 금송아지 숭배, 불신앙, 불평으로 이 선물을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
님께서는 그 세대를 광야에서 소멸시키는 것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주신 큰 선물 가운데 하나가 컴퓨터입니다. 이제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컴퓨터가 음란문화를 퍼뜨리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에도 많이 쓰입니다. 이제는 사이버 폭력이 폭력 가운데
제일 무서운 폭력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선동의 도구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컴퓨터가 교회를 공격하는 일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공격하
는 반기독교 사이트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낼 때 교정을 아무리 애써 정밀하게 보아도 책이 나온 다음에 보면 오자
가 발견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출판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활판술
을 지배하는 것은 악마다'라는 말이 있는데 컴퓨터가 점점 악마에게 지배당하
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가지고 우상을 숭배
하는 유다 왕국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13절), "재앙이 북방에서 일
어나"(14절),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이렇게 '북'이라
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말에서 '북'이라고 하면 대체로 좋지 않은 뜻으로 쓰입니다. 몹시 좋지 않
은 환경을 말할 때 북풍한설(北風寒雪)이라는 말을 씁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동풍, 서풍, 남풍, 북풍에 다른 이름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데 북풍은 광막풍(廣漠風), 또는 광한풍(廣寒風)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쓸쓸한
바람, 몹시 추운 바람, 이런 뜻이지요. 동풍은 밝은 명(明)자를 써서 명서풍(明
庶風)이라고 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특별히 북한 문제가 있어서 '북'이라는 말은 피하고 싶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도 북이라는 말은 두 세 번(신2:3, 욥37:22, 슥 6:8)을 제외하고는 고난,
재앙, 징벌, 이런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욥기 37장 9절은 "폭풍우는 그 밀실에서 나오고 추위는 북풍을 타고 오느니라",
잠언 25장 23절은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
을 일으키니라"라고, 북쪽은 추위,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 오는 곳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환상의 예언자 에스겔은 북쪽에서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 것을 보는 것으로 그
의 예언을 시작합니다(겔1:4)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죽은 후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졌습니다.
구약성경 역대 상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적지 않고 있습니다.
역대 상하를 보면 소제목들이 '유다왕 여호람' '유다 왕 아하시야' '유다 왕 아
달랴' 이렇게 남왕국 유다 왕들의 이야기로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
다. 다윗의 피가 남왕국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북왕국은 반역한 욍국이다' 이것이 역대기를 기록한 기자의 견해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북을 하나님이 심판과 멸망이 시작되는 곳으
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블레셋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이사야 14장 31절에서 "대저 연기가 북
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고 스바냐는 블레셋
을 비롯해서 주변 여러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스바냐서 2장 13절에서 "여
호와가 북쪽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
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 여러 곳에서 북은 재난, 재앙, 파멸, 침략이 시작
되는 곳으로 말하고 있는데(4:6, 6:1, 6:22, 10:22). 오늘 본문은 그같은 예언의
첫 시작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이 시대를 심판하신다면 오늘 우리에게 그 윗면이 북에
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자연현상을 사용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때는 홍수로써,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을 사용하셔서 심판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공해를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물 부족을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질병을 사용하실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특히 북한을 주목해야합니다.
예레미야는 심판을 예고하면서 처음에는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
마' 이렇게 추상적인 말을 사용합니다.
그 다음에는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구체적으로 방위를 제시합니다.
그 다음에는 '북방 왕국의 모든 족속들' 범위를 좁힙니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바벨론을 지목하여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
로 사용하신다고 일관되게 선포합니다.
6·25 때 북한을 채찍으로 드신 하나님께서 북한을 심판의 도구로 다시 한 번
사용하시지 않을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한 쪽이 망해야 한 쪽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
는 안 됩니다. 그것은 구 시대적인 사고입니다.
우리와 북한의 관계는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동반자적 관계임을 알아야 합니
다.
한쪽은 천국이고 한쪽은 지옥이라는 생각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한 쪽은 전적으로 옳고 한쪽은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양극논리도 지혜로운 것
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의 실상은 알아야하며,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합
니다.
북한 때문에 당한 고통, 북한 당국에 의해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학살당한
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합니다.

저는 작년 6월에는 북한에 다녀왔고 지난 2월에는 방글라데시에 다녀왔습니다.
두 나라 다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입니다. 자연스럽게 두 나라를 비교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단히 가슴 아픈 말이지만 그래도 방글라데시가 북한보다 낫습니다. 제가 북
한이 미워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느낌입니다.
방글라데시에는 삶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삶이 넘쳐납니다.
저희 교회가 교회당을 건립한 찬드라푸르 마을에 가서 봉헌예배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어느 마을을 통과하는데 사람들이 수백 명 깃발을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감리교회 다스 감독님에게 저게 무엇이
냐고 물으니까 지방의회 선거가 있는데 선거운동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활기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대표적인 것은 적막감입니다. 삶이
없다고 해야 하거나 아주 빈약하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작년에 북한에 갈 때 일행 중에 서영은(徐永恩)이라는 여류 작가가 있었는데
이 분이 돌아와서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체제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표현
입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총회가 다가오면 감독선거전이 아주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선
거 끝에 한 분이 감독으로 선출되면 주변에서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을 지지
했지만 감독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이니까 이제는 선출된 감독을 함께 잘 섬깁
시다'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게 됩니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나라 안의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 우라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
나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보조를 취해야 합니다.
북한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끔찍한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합니다.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졌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심판 받을 요인들을 제거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어야합니다.
아까 시청 앞과 광화문 이야기를 했는데 예전에는 한국교회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이제 다섯 주일이 지나면 부활절인데 1960년대에는 한국교회가 부
활절연합새벽예배를 두 군데에서 드렸습니다. 진보진영은 남산에서 드렸고 보
수진영은 덕수궁에서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양심적인 교회 지도자들, 특히 평신
도들이 중심이 되어 '한 곳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립시다'해서 여의도 광장에서
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연합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직도 완전한 합
치는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 해를 보수진영에서 설교를 맡으면 그 다음에는 진
보 진영에서, 구체적으로는 NCC 계통에서 설교를 맡고.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
는 하지만 그래도 한 곳에 모여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모든 국민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마련하고
사람들을 그곳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컴퓨터를 하나님의 선물답게 잘 활용해야합니다. 지금 매스컴을 중심으로 사이
버 공간 정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홈페이지에 교회내부의 문제를 폭로하는 내용이 올라오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종종 '나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이 사이트에
들어와 보았는데 뭐 이 모양입니까?' 하는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컴퓨터의 한계도 알아야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70년대까지 전화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전화로 여론을 조사했을 경우 이
런 단서가 붙었습니다. '이것은 전화를 가진 사람, 그러니까 상층구조에 속한
사람들의 의견이지 국민전체의 의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컴퓨터를 통해
형성되는 여론도 20대, 30대의 여론인 경우가 많습니다.
컴퓨터를 선교에 더욱 잘 활용해야합니다. 저희 교회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
든 것은 1997년의 일인데 지난 주일에 총 접속횟수 30만 회를 넘었습니다. 최
근에 부쩍 늘어난 것이니까 앞으로는 사이버 목양교회의 뜰을 밟는 사람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많아질 것입니다. 1,2년 사이에 50만 회를 돌파할 것입니다.

17절 이후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심판을 말씀
하신 다음에
"그러므로 너는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다 그들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구별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구별된 삶이 곧 거룩
한 삶입 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
지 않게 하리라"(17b) 하셨습니다.
우리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겠다고 하시고 이어 "그들이 너
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
니라"(19절) 말씀하십니다.

요옐서 2장 20절에는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
고 척박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세력이, 재앙이, 재난이, 심판이 물러간다는 뜻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하며 살 때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를
괴롭히던 것, 우리를 위협하던 것들은 멀리 떠나게 됩니다.

심판의 가마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드리는 이 때에, 그 끓는 물의 열기가 느
껴지는 때에
말씀 위에 서서 믿음을 굳건하게 하며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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