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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핍박 속의 교회 성장 / 행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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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 속의 교회 성장
사도행전 4:1-4 
광성교회 / 유흥준 목사

       
어떤 성도 한 분이 (금요철야)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많은 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도회가 끝난 다음에 생각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 해 주시리라.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다면 좋은 일이 있고, 축복이 이어져야 할 텐데 왜 고난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어떤 교회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했고, 열심히 모였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목사님과 성도들의 마음속에 이젠 우리 교회가 잘 되는가 보구나. 부흥되고 축복 받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날아 온 한 통의 우편은 교회 건물이 경매에 붙여졌으니 몇 월 며칠까지 건물을 비워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열심히 했기에 더 좋아져야 할 텐데 왜 더 큰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까?

어느 목사님이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붙잡고 기도원에 올라가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부흥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웬걸! 몇 명 안 되는 있는 교인들까지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면 좋은 일들과 축복이 뒤따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생각은 번번이 빗나가는 것을 체험합니다. 더 열심히 했고, 더 많은 땀 흘렸고, 더 많은 눈물 흘렸고, 더 많은 헌신했고, 더 많은 시간 드렸고, 더 많은 무릎 꿇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이 더 나빠지고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기도가 잘못됐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열심히 그릇됐기 때문입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배웠듯이 초대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120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들이 한 일은 전혀 기도에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그들은 성령의 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았고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뛰어 나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3000명의 새로운 제자가 만들어졌고 가르침과 교제와 떡을 뗌과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무엇보다도 힘쓴 것은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나면서 앉은뱅이 된 40여세 된 사람이 일어서는 기적도 있었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이처럼 출발이 아주 좋았습니다.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 가면서 계속해서 승승장구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동이 걸리고 말았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세상 권세자들에 의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하여 사도들이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교회의 엄청난 위험과 큰 타격이었습니다.
이후로 어떤 핍박이 계속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요 또한 이 사건이 핍박의 첫 시작에 불과 할 뿐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제 갓 출발한 초대교회, 이제 막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고 이제 막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과 같기에 보호하고 보호해도 위험할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환난과 핍박을 막아 주시지 않았습니까?

1. 첫째로 핍박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1절에 핍박자들이 나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①<제사장들>은 아론의 남자 후손은 모두 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만 명이 넘는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②<성전 맡은 자>란 대제사장의 행정사무관장, 사무장으로써 대제사장의 오른팔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대제사장 다음가는 직책의 소유자입니다.
③<사두개인들>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막강한 실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자부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가장 잘 믿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핍박을 주도하고 이제 갓 태어난 교회를 말살하려 합니다.
얼마나 이상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의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교회문제는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 때문에 생깁니다.
돈 문제, 명예 문제, 정치 문제, 윤리 문제, 내 교회밖에는 모르는 욕심과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교회 부흥을 막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영적 지도자들의 세계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일한다 하면서 또 하나님의 일꾼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생활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면이 너무 많다는 것 무척 가슴 아픈 일이요 슬픈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것이 저의 모습이요 우리교회들의 현실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유대 종교지도자들 속에서 숨어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저를 포함하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만이라도 회개하고 바른 모습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칠 때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한국교회에 소망이 생길 것입니다.
그럼 지도자들에게만 문제가 있나요? 아닙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 평신도들에게도 문제가 많습니다.
제사장 제도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뒤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수 천년동안 그 제도가 이어져 내려 왔습니다. 전통이 좋은 것일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전통 속엔 엄청난 썩음이 자리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내려 온 제사장 제도가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책망을 가장 많이 받았던 부류도 제사장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 이었습니다.

20년,30년,40년 동안 신앙 생활한 것, 아니면 모태신앙인 것 자랑할 만합니다. 오래 신앙 생활하는 사람 가운데 좋은 일꾼이 많습니다.
동시에 교회부흥의 발목을 잡고 목회자의 마음에 못을 박는 자도 오래 된 신앙인 가운데 많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분계십니까? 이 시간 저와 같이 회개하고 저와 같이 정신 차리도록 합시다.

2. 핍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절에 나옵니다.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전함을 싫어하여>라고 말합니다.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부활을 전하는 걸 싫어하였기 때문에 핍박한 것입니다.

1) 왜 그들이 부활을 전파하는 걸 싫어합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을 전하는 자체가 유대 지도자들, 관원들에게는 협박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본인들이 예수 죽이는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었던 예수님이 살아났으니 그것은 자신들은 실패했고 예수님은 성공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① 그렇게 되면 그들은 백성들의 지지를 잃게 될까 하여 두려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백성들의 충성과 인정과 존경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② 또 자신들의 권위, 지위, 생계를 잃게 될까 하여 두려워했습니다. 백성들의 충성을 잃거나 소요가 일어난다면 로마 정부는 그들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을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③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교리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까 두려웠습니다.
④ 그리고 가장 두려운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은 것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다면 실패를 인정하는 셈이고 자신들의 설 자리를 잃는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까지 누렸던 기득권을 모두 다 빼앗기고, 또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부활이 전파되는 것만은 막아야만 했습니다.

2) 그들이 부활을 막기 위해 무슨 흉계를 꾸몄습니까?

3절에 보면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사도들을 잡아서 가두는 일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최초의 핍박입니다.

① 사도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해서 떠나지 않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증인이 되라는 명령에 순종해서 증인이 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핍박이요 감옥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지켰습니다. 그런 요셉을 하나님은 더 축복해 주시고 더 좋게 만들어 주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러나 요셉 역시 감옥이 기다릴 뿐 이었습니다.
바울 역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환난과 핍박 뿐 이었습니다.

명령에 순종했더니 축복대신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면 누가 순종하겠습니까? 누가 기도 열심히 하고 누가 성령 충만함 받고 누가 열심히 충성하겠습니까?
본문 이후에도 사도들은 계속해서 핍박을 받습니다. 순교를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들이 단 한차례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핍박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축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되는 길이라면 감옥이든, 죽음이든, 권세자 앞이든, 이방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그리스도의 부활 진리는 기독교 구원교리의 핵심진리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은 예수님이 사람만 아니라 하나님이시오, 참된 구세주라는 큰 증거입니다.
이런 사실은 사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사망선고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바로 사탄의 가장 큰 권세인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에게 실로 치명적인 일이었습니다. 사탄은 죄와 죽음의 권세로 세상 사람들 위에 왕 노릇하였는데 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생명의 권세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사탄이 얼마나 시기하겠습니까? 그래서 사탄은 자기의 하수인인 세속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 사도들이 전하는 부활의 복음을 막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지금도 물리적으로 기독교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습니다. 세상 종교지도자들 정치 권세자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박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부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과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이 전한 부활의 진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사단은 부활의 진리를 믿는 성도들을 두려워하고, 또 시험으로, 핍박으로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진리를 강조하고 전파하고 우리 자신들도 부활 진리를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② 이러한 사도들을 보면서 뭘 느낄 수 있습니까?

신앙인의 목표, 인생의 목표는 이 세상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점적으로 기도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꿈이 무엇이고 목표가 무엇입니까? 가장 바라는 게 무엇인가요?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입니까? 물론 세사에서는 그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버리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영원하고, 진정한 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들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성공자들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들 가운데 돈 때문에 밤낮 기도하던 자가 있었나요?
사도들 중에 세상 왕 되기 위해 하나님께 매달리던 자 있었나요?
그들은 고난만 받았을 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만 받았고, 예수님 때문에 점점 더 어려워 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신앙인들은 그들이 가장 큰 성공 자들이었다고 인정합니다.

왜 그들이 성공자인가요? 주님 때문에 받은바 고난이 크면 클수록 천국에서 받는 영광과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성공했는가> 그 판결은 어디서 내려집니까? 이 땅에서 내려지는 게 아닙니다. 이 땅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의 상급이 성공을 결정해 줍니다.
그런데 천국의 상급은 고난(핍박, 환난)과 관계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시면 고난에 대한 바울의 태도가 나옵니다. 로마서 8:17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려면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이 없듯이 고난과 핍박이 없이는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고난 없이 영광만 받고 싶어 합니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고, 십자가의 죽음 없이는 부활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눈물 흘린 적 있나요?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진주와 같은 영광의 눈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많이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많이 힘들어야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피곤해야 합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다 병들 필요가 있습니다. 헌신하고 봉사 많이 하다가 집안이 망하는(?) 아픔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광도 면류관도 영생도 누리게 됩니다.
이런 말은 설교자로서 하기 힘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축복이니 어찌 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큰 교회든 적은 교회든 직분자의 위치는 무척 힘이 듭니다. 구역장 사명 제대로 감당하려고 해도 얼마나 힘이든지 모릅니다. 구역원 때문에 눈물 많이 흘리고 힘들어서 눈물 많이 흘립니다. 그런데 그 눈물이 바로 영광이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훗날 우리가 받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광을 바라보면서 고난을 참고, 큰 영광을 위해 가능하면 고난을 많이 받으라고 바울이 소리치고 있습니다.
고난이 큰 교회는 영광이 큽니다. 특별히 고난을 많이 받는 성도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고난이 많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영광이요 상급입니다. 그러니 자랑해야 합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바울의 자랑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자랑하는 내용을 살피면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만 자랑합니다. 죽을 고비, 채찍에 맞음, 배고픔, 옥에 갇힘 등등입니다. 
우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기도 많이 하는 것입니까? 교회 부흥 된 것입니까? 축복 많이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저와 여러분이 주님 때문에 고난 많이 받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핍박 중에도 교회는 부흥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 막 새싹이 났습니다. 새싹은 잘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탄생하자마자 짓밟힘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교회지도자인 사도들의 잡혀감입니다.
쉽게 말하면 저와 여러분 몇몇 분이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개척하여 열심히 시작하는 순간에 그만 저와 몇몇 중심인물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의 생각엔 끝난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1)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체포되어 투옥되는 상활가운데서도 주님은 초대교회는 부흥시켰습니다.

3천명에서 5천명으로 2천명이나 증가한 숫자로 부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두 사도를 잡아 가둠으로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있었으나 두 사도가 전한 복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영혼이 변화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핍박이 오면 올수록 더욱 더 든든히 서 갑니다. 교회는 환난과 핍박을 통해서 튼튼해집니다. 어려운 과정을 많이 겪은 교회일수록 힘 있고 든든합니다. 복음의 진리위에 선 교회는 어떤 역경가운데서도 부흥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들에 피어 있는 야생화는 향기가 있고 생명이 질깁니다. 잡초는 밟히고 밟혀도 다시 일어섭니다. 그러나 온실 속의 화초엔 향기가 없습니다. 조금만 온도의 차이가 있어도 쉽게 죽어갑니다.

우리 광성교회는 야생화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에 의해 세워지고 넘어지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된 지체입니다.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지녔듯이 그 몸된 지체인 교회도 영원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교회는 패망대신 부흥하고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지도자임에는 틀림없지만 베드로가 있어도, 없어도 교회는 든든히 서갑니다.
교회의 주인은 베드로가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니고, 교회의 주인은 어느 장로 어느 집사가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한 교인이 떠났다 해서 교회가 넘어지는 게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도구일 뿐입니다. 베드로도, 요한도 도구일 뿐이고 목사도 도구일 뿐입니다. 천지 사방에 하나님의 도구가 널려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돌멩이로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일꾼이 중요하지만 베드로를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임이 분명합니까?
그러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왕의 역할, 주인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사탄은 어떤 경우에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짓밟아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TV가 짓밟고 신문이 짓밟아도 교회는 든든히 서갈 뿐입니다.

일제 시대 때도 교회는 든든히 서갔습니다. 6,25전쟁 때도 교회는 든든히 서갔습니다. 핍박 속에서 교회는 성장했고 핍박 속에서 교회는 교회다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려서 세우신 게 교회인데 어떤 세력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우리 교회를 바라볼 때 걱정되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혹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까?
교회가 흔들리는 것 같고 약해지는 것 같습니까?

만약 그런 마음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해지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반석이시오, 우리 교회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의 목자가 되시고 구원자가 되십니다. 만 왕의 왕 되시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광성교회를 보살피고 계십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2) 우리도 말씀을 전해야 부흥됩니다. 

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옥에 갇혔으나 믿는 자는 오히려 더 해 갔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지켜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다 말씀을 들은 자 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41절을 살펴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말씀을 듣고 제자의 수가 삼천이 되었고, 말씀을 듣고 믿는 남자의 수가 오천이 되었습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고 들을 수 없으니 어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러분 모두 다 전하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불신자들, 전도 대상자들에게 자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 전하시길 바랍니다. 듣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들어야 마음이 찔리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어 주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어야 회개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여하튼 교회는 전하는 자가 많아야 합니다. 어른이 됐든 어린아이가 됐든 전파하는 자가 많은 교회는 부흥됩니다.

남자만 5000명이 되었으니 전체 교인수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합하면 일만 오 천 또는 이만 명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요?
예루살렘의 대형교회입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얼마나 됐겠습니까? 일만 오천 또는 이만명이 모일만한 시설이 갖춰졌을까요? 멀리서도 쉽게 올 수 있도록 자동차가 있고 비행기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모였습니다. 환경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모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주시의 인구가 6십만 명, 전라북도 인구가 2백만 명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구는 사천 칠백만 명입니다. 이 많은 인구 속에 남자 장정만 오천 명 이상 모이는 교회가 과연 몇 교회나 있을까요?
지금부터 2000년 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일만 오천, 이만의 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런 교회를 찾기가 어려운 겁니까? 교회의 급속한 부흥이 끝났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생각은 패배주의자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성장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말씀을 전파하는데 게으르기 때문에 더딜 뿐입니다.
말씀 전파를 다시 회복합시다. 핍박 앞에서도 전파합시다. 시간이 없어도 전하고 피곤해도 전합시다.

하나님은 21세기의 대형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 광성교회도 영혼 구원에 큰 욕심을 꿈꾸고, 이런 부흥의 꿈을 꾸었으면 합니다. 전주시를 복음화 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대형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든 나쁘든, 핍박이 있든 없든 열심히 말씀을 전합시다. 열심히 전하는 교회에 많은 영혼을 맡기십니다.
열심히 전하여서 예루살렘의 부흥의 역사가 우리 광성교회에 그대로 재현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핍박을 두려워 마십시오.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시설이 안 좋기 때문에, 장소가 안 좋기에, 건물이 안 좋기 때문에 하면서 핑계 대지 마십시오.
핍박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환경 나쁨을 탓하지 마십시오. 환경 좋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말씀 전파에만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또한 오늘 우리 교회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너무나 차갑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흥이 끝난 게 아닙니다.
여러분! 진리와 의와 생명을 전하는 일에는 항상 사탄이 보낸 훼방꾼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러므로 전도의 사역을 하거나 도 교회의 사역을 할 때에 시험될 일이 닥쳐도 요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시험을 극복하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할 때에 주님의 큰 역사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부흥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진리위에 바로서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우리가 열심히 전하면 부흥은 뒤따라옵니다. 오늘도 내일도 전파, 전파 또 전파하여 믿는 자가 날마다 더 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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