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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 고후 11: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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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본 문 : 고린도후서 11:21~30 (전도서 9:13~18 참조)
설교 : 강석공 목사 (광야교회)


    "언행일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는 인간의 삶의 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지도자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시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때문에 그토록 심하게 저들을 책망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저들의 어떤 태도들이 문제였습니까?

    첫째, 저들의 문제는 말은 잘 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마 23:3 참고) 저들은 소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서 말만 잘 하는 예수쟁이들이라고 빈정거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빈정거림에 대해서 뭐라고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듣던 말과는 정반대로 말은 잘 못 하지만 행동은 옳고 바르다는 평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지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그 짐을 지기 위해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습니다.(마 23:4 참고) 그 당시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게 했는지 모릅니다. 정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을... 그러나 자신들은 결코 그 짐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앙적이라는 말로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잔뜩 짊어질 것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교묘하게 빠져나가지 않습니까? 평신도들보다는 오래 믿었고 또 잘 믿는다는 지도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도자들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셋째, 저들은 무슨 일이든지 다만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만 했습니다.(마 23:5 참고) 저들은 성경을 기록한 경문이라는 것도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아주 크고 넓게 만들었습니다. 또 옷술도 매우 길게 하고 다녔습니다. 저들이 입었던 옷과 그 옷의 장식들은 저들의 신분, 학력, 능력, 재력, 권력, 명성 등을 과시하는 꾸밈의 극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의 겉은 경건한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속은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옷을 걸치느냐에 따라서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치장에 그토록 많은 공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꾸밈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이상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참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께서는 저들의 교만함을 특히 강하게 비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참으로 이상하게도 저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들은 사람의 영광을 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보다 자기 영광을 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 온갖 수치와 모욕과 고난을 다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사명에 꽉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고후 11:23 상반절) 그러나 그토록 충성스럽게 헌신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심한 고난뿐이었습니다. 그가 고린도후서 11장 23절 하반절 이하의 말씀으로 직접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왜 그토록 심한 고난을 겪었다고 말했습니까? 스스로 자랑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려고 했을 뿐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29~30) 사도 바울은 자신을 연약한 교회의 지체들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의 본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하는 우리를 연약하다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또 우리를 가리켜서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조롱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우리는 연약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합니다! 이상하게 들립니까? 결코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강한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의 부요함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련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구원하시는 놀라운 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광야교회 가족 여러분! 때문에 거친 광야를 순례하는 순례자는 결코 잔재주를 부리지 않습니다! 가면을 쓰지도 않습니다! 겉치례 따위에 별로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주님의 능력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때문에 광야가 좋은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확실한 믿음을 가진 순례자들이 어둡고 악한 이 세상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평화의 동산으로 변화시키는 "창조적 소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가면을 벗어버립시다! 그리고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주님의 제자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삽시다!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주님이 주시는 크고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의 삶에 항상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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