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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 꾸며 살자 / 창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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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고신일 목사
설교장소 : 기둥교회
제  목 : 꿈 꾸며 살자
성경본문 : 창세기 39장 1~6절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세기 39장 1~6절) 
<목회기도>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예배에 나온 저희들, 허물 많고 감출 것이 많지만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전쟁터로 변한 아브라함의 고향이 있는 [이라크]로 인해
세계가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군인을 보내기로 정했다고 합니다.
하루 빨리 전쟁이 멈추게 하시고,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평화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살기 힘든 세상에 살지만,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시고
소망으로 천국과 영생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때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들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외국에 나가 있음으로, 병상에 누워 있음으로
오늘 예배에 참석치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저들에게도 우리가 받는 은혜를 함께 나누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특별히 청년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 기둥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젊은이들을 붙들어 주셔서
저들이 꿈을 꾸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평생이 되도록 결단하며
그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우리의 예배에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에 시험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바램(욕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바램이 있으십니까?
사람들의 최고 바램은
1) 안정성 확보입니다.(안정성 확보의 욕구, 평안함의 욕구)
  누구나 평안하기 원합니다. 별 걱정이 없기를 원합니다.
  의·식·주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도 안정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이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전쟁의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안정되고 평안하기를 원하지만
  그 욕구를 채웠다고 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정성이 확보되어 평안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기대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2) 기대감의 성취의 욕구라고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있고, 부모와 부부간에도 바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교회에도, 목사에게도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사회에, 대통령이나 직장의 상사에게도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의 기대는 성취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큰 기대를 하기도 하고,
  세상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3) 소속감 유지의 욕구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엔가 묶여 있기를, 소속되어 있기를 원하지만
정작 묶여 있으면 이상하게 그곳에서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빨리 졸업하기 원합니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면 직장에 취업하여 소속되어 있기를 원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욕구는 점점 변화되고 많아집니다.
안정성이 확보되고, 소속이 분명해지고, 무엇인가 되었다 싶으면…
그때부터 내세우는 것이 '자존심'입니다.
이런 것을
4) 자존심 보존의 욕구라고 합니다.
만일 생활의 안정이 무너지고 소속된 곳이 없으면 자존심은 고사하고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수모를 겪고도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존심 운운하며 열을 내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복에 겨운 사람들입니다.
먹고 살기 어렵고, 기대할 것 없고, 소속된 곳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 무슨 일을 해도 좋으니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욕구들 외에도
사람들에게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끊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표가 있고 꿈이 있어도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워지고 성취하기가 쉽지 않을 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절망감에 빠져 자기를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라는 것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때로는 눈물을 참으면서, 때로는 이를 악물고, 참고 견디며… 
소망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힘들고 캄캄해지면,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면… 자포자기에 빠져 절망합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렵지만 소망으로 눈물을 삼키며 꿋꿋하게 버티십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쁨과 감격으로 벅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비젼,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
기막힌 외로움과 고통, 고독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의 신비함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그 신비한 꿈 때문에 큰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외롭고 힘들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칭찬 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있고, 멋지며, 신나는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십니까?
천국의 소망을 가지셨습니까?
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살려고 결심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습니까? 비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비록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칭찬 받지 못한다고,
환영받지 못한다고, 외롭다고 힘들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찬송가 364장 1절에 보면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하면 할수록,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수록 점점 더 어렵습니다.
예수 믿으면 먹을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합니다.
입고 싶은 옷을 입기도 어렵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말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길을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주님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기 떄문에 힘들고, 외롭고, 인정 받지 못하고,
칭찬 받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청년 요셉
 
요셉이 꿈을 꾸었을 때, 형제들에게 미움 받았을 때,
형제들에 의해 팔려갔을 때, 남의 집 하인이 되었을 때…
요셉은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청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돌이킬 추억의 날보다
꿈꾸며 이뤄갈 날이 더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에게 있어 현재는 끝이 아닙니다.
그러나 청년들 중에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난 안돼. 할 수 없어. 틀렸어."라고 말하는 청년들은
그 말대로, 생각대로 됩니다.
 
프랑스의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장 폴 싸르트르](Jean P. Sartre, 1905~80)라는 사람은
"인간은 가진 것의 총화(總和)가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것의 총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가졌는가', '얼만큼 가졌는가',
        '어디 있는가'…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떤 것을 가질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등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환경에 계십니까?
지금 고통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럼에도 꿈꾸는 일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린 학생이나, 청년이나, 나이 드신 분이나…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꿈꾸는 자를 쓰십니다.
 
 
꿈을 가진 요셉
 
여러분은 요셉의 가정환경을 얼마나 아십니까?
이제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
자란 환경에 대해서 원망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들에 대해서
미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요셉보다 더 비극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의 권리를 빼앗고 원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서 
14년의 수고도 참아낸 사람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딸(외사촌 동생)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7년을 기다리며 고생한 야곱에게 라헬을 주지 않았습니다.
라헬의 언니 레아를 먼저 주었습니다.
'라헬을 얼마나 사모했으면, 얼마나 감격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첫날을 보냈으면'
언니 레아를 라헬로 알고 밤을 지냈습니다.
[창세기 29장 25절]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창29:25)
 
이렇게 레아를 아내로 맞은 지 7일 후에 라헬을 얻기는 했으나
7년을 더 외삼촌을 위해 일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여인을 얻으려고 14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보낸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야곱은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창세기 31장 40절]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야곱은 바람직한 가정의 가장은 아니었습니다.
외사촌 동생
- 레아를 아내로 맞아
  여섯 아들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과
  딸 디나를 낳았습니다(창 29:31-35, 30:18-29).
- 레아의 동생, 자기가 사랑했던 라헬도 아내로 맞아
  두 아들 : 요셉, 베냐민을 낳았습니다(창 30:24, 35:24).
그뿐 아닙니다. 야곱은
- 레아의 몸종이었던 실바도 첩으로 삼았습니다.
  두 아들 : 갓, 아셀을 낳았고(창 29:24, 30:9-13)
- 라헬의 몸종이었던 빌하도 첩으로 삼아
  두 아들 : 단, 납달리를 낳았습니다(창 29:29, 30:4-8).
 
이렇게 4명의 여자에게서 12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11번째 아들이 요셉입니다.
4명의 여자에게서 낳은 12명의 아들이 있는 집이 화목했겠습니까?
아마 어떤 남자분들은 '야, 야곱은 복도 많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입니까? 복일 것 같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4명의 여자가 집에 있고 그들 사이에서 낳은 12명의 아들이
한 집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화목할까요?… 기막힌 노릇이지요.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 요셉은 그런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복잡한 가정 때문에…,
무책임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미워하는 형제들 때문에… 
다른 집과 같지 않은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가슴 아파하거나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여려분, 낙심하지 마세요. 한숨쉬지 마세요.
그런 환경, 그런 부끄러운 환경에서도
하나님 사람,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가정환경이, 좋은 성장배경에서
좋은 사람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천과 같은 곳에서 자란 사람도, 부끄러운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쓰십니다.
부모를 탓하지 마세요. 형제 탓하지 마세요.
친구 탓, 학교 탓, 나라 탓, 환경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기를 결단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요셉
 
요셉이 꾼 꿈은 이상했습니다. 요셉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자기가 꾼 꿈을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 37:7)
그것뿐이 아닙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 37:9).
 
그렇지 않아도 요셉을 편애하는 아버지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 받았는데,
이상한 꿈 얘기를 반복하니까 더 미움을 받았고 아버지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요셉은 꾼 꿈, 그가 갖고 있는 꿈 때문에 어려움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이 가진 그 꿈을 누가 준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꾸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이 꾸게 해 주신 그 꿈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얼마나 미워했으면 죽이고 싶어했고 죽이려 했겠습니까.
그런데 형제들이 "죽이느니 남의 나라의 노예로 팔아먹자"고 해서 
요셉은 팔려갔습니다.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가 요셉과 같은 일을 당했다면,
만약 여러분의 형제들이 여러분을 죽이려 하고,
죽이려다가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서
남의 나라의 종으로 팔려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자손들에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원수는 꼭 갚아다오."라고 유언할 지도 모릅니다.
요셉은 미움은 받았으나, 팔려갔으나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것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까?
[한]을 품었습니까?
여러분, 오늘 가슴에 맺힌 것 다 풀고 가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했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에 대해서 매고 꼬고 있는 것이 있으면
여러분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예물을 드리려고 교회에, 제단에 찾아 나왔어도
"다시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이 내게 안 풀어도 내가 내 기도의 응답을 위해서 풀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가정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 원망과 불평에 묶이게 됩니다.
'냉전(冷戰)'이라는 것도 전쟁입니다. 냉전도 하지 마십시오.
꿈이 있는 사람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영생을 사는 사람은…
아픔을 이기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요셉처럼 평안을 만들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요셉
 
요셉은 비록 사랑 받던 자리에서 남의 집 하인이 되었지만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얼마나 최선을 다했으면,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았으면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고 요셉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삶이 되고,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반문할지 모릅니다.
요셉의 삶이 '무슨 하나님의 형통인가? 무슨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인가?
형제들에게 미움 받고, 아버지에게 책망 받고, 노예상에 팔려가고,
남의 집에 하인으로 살고, 감옥에도 갇혔는데…
그런 인생이 무슨 하나님이 형통케 하시는 것인가?'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오.
요셉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에, 계획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요셉이 남의 나라에 갔기 때문에…
요셉의 가족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후에는 요셉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요셉의 가족과 이스라엘을 살려 주셨습니다.
비록 요셉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았으나
그 일에 쓰임 받은 요셉은 고통스러웠습니다.
-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의 명령대로 떠나라고 해서 길을 떠났지만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3번씩, 철저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죽을 위기를 겪었습니다.
-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매를 맞았고,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산다는 것은 솜사탕 먹듯 달콤한 것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으나 요셉은 자기 삶에 충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꿈을 믿고 그 꿈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비록 하인이었지만 얼마나 최선을 다했으면,
주인이 노예 요셉을 믿고 다 맡겼겠습니까?
 
-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 가운데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사장이 다 맡깁니까?
열쇠도 맡기고, 금고도 맡기고, 통장도, 도장도 맡깁니까?
직접 맡기지 않더라도… 그만큼의 신뢰를 받습니까?
- 사업을 하시는 분들 가운데
여러분이 경영하는 회사의 종업원 중에 여러분의 통장, 도장, 금고…
회사의 중요한 모든 것을 다 맡길 만한 종업원이 있습니까?
 
요셉은 하인이었지만 그 주인이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요셉이 믿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을 형통케 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는 사람으로 직장생활을 하십니까?
여러분의 동료들이 여러분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신앙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시겠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것 압니다.
살기가 어렵고, 사업이 어렵고, 장사가 어렵고, 직장이 어렵고, 공부도 어렵습니다.
전쟁 소식으로 점점 더 불안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안에서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인구가 50억이 넘어 60억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를 100명밖에 살지 않는 마을로 축소한다고 생각해 봤을 때
100명 중에 70명은 문맹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기 이름과 주소는 쓸 줄 알지만, 신문을 읽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30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00명 중에 50명은 영양 부족이라고 합니다.
배가 너무 많이 나와 걱정인 사람,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 모두 복에 겨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 사는 100명이라면
1명만 대학 교육을 받았고, 1명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집이 있고, 먹을 것이 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거기다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굉장한 엘리트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어 잠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75%의 사람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모인 여러분들 모두는 부유한 생활을 하는 여유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많은 기대 때문에 스스로 비참하게 만들어 사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 자식, 가정, 이 사회까지도 희망의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잘하였도다"하는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겠다는 그 꿈을 지키며
어떻게 하든지 최선을 다해 아무와도 원수 맺지 말고 평안을 유지하며 산다면…
맡겨진 처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삶의 결심만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범사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요셉처럼 형통케 하시고
함께 하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기 원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신분을 유지하며 살기 원합니다.
연약한 저희들을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이 함께 하며,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을 간증하며 살만한 믿음과 조건을 주시옵소서.
연약한 종의 양떼를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옵소서.
기둥교회 성도들이 범사에 감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3년 3월 23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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