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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숨을 찾는 길 /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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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찾는 길> 마16:21-28
새문안교회 2003. 3.23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예수님의 공생애의 사역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갈릴리를 중심한 사역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며 예루살렘에서 끝을 맺은 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를 중심한 전반부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그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제자들에게 알게 하시고 확신시키시는 사역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역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시고,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하는 데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시작된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후반부 사역은 참 메시야의 사명이 무엇이며 예수님께서 그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시고 수행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사역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역은 제자들의 일반적인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데에서 그 절정에 이르며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완료됩니다. 전반부의 사역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후반부의 사역은 예수를 믿고 그를 따르며 그를 통해 구원 받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중요성을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의 이러한 전환과 발전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오늘 본문에서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직전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에 만족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로서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뜻밖의 충격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즉각적인 베드로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22절을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로 확인된 예수님에게서 제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영광과 승리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뿐일 터인데 이와는 정반대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셔야 한다니 "도대체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절대로 그렇게는 안됩니다"라는 항변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반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또한 즉각적이었으며 한층 더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23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신 것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말씀하신지가 언젠데 바로 그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하시다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신 것이 언젠데 그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 말씀하시다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말씀하신지가 언젠데 바로 그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다니? 놀랍기 그지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말씀이 뜻밖이고 충격적으로 들리면 들릴수록 우리는 그 말씀에 더욱 귀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 자신이 사탄은 아니지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는 그의 그 말은, 베드로 자신은 모르고 했겠지만, 바로 사탄이 가장 원하고 집요하게 획책하는 일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꼭 필요한 메시야의 사명인데 그리 하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을 돕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20:28에 보면 예수님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들에게 우리가 질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시고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하나님나라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적인 승리와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락하고 쉬운 길을 가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은 사탄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확실히 알게 된 제자들에게 이제는 그가 세상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었던 정치적 메시야로서가 아니라 참된 메시야로서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실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 방법이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참 메시야로서 어떤 길을 가셔야 할지를 말씀하시는 데에 그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르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이들이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24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삶 자체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따르기를 원하는 이들 또한 그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의 삶의 모든 의미와 바램과 방식과 보람과 기쁨을 세상적이고 이기적으로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며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각오한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행동과 삶을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갈2:20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을 처음부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을 따르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이해시켜야 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다 싫어할 것을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는 분명한 이유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것이 생명입니다. 자기의 삶의 모든 의미와 바램과 방식과 보람과 기쁨을 세상적이고 이기적으로 스스로 정하는 것, 즉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가 살겠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죽은 삶이고 또 영원히 죽는 길이며, 자기의 삶의 모든 의미와 바램과 방식과 보람과 기쁨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며 목숨을 잃으면서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이미 살아있는 삶이고 또 영원히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케신 것이 25절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러면서 되물으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26) 아무리 이 세상을 온통 자기 맘대로 살고 자기 뜻대로 즐기고 싶어도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으며 그것과 바꿀 만큼 더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고,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음으로써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임을 가르치시고 반드시 그 가르침대로 될 것임을 확인시켜주신 말씀이 27절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물론 이 말씀은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의 행한 모든 일이 주님 앞에 낱낱히 다 드러날 것이며 그 때 하나님의 의가 온전히 서리라는 일반적인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오늘 본문의 맥락에서 볼 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말씀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 이는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고,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음으로써 주님을 따르지 않은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확실하게 다짐하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이심을 확신시키실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목숨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아무리 이해를 시켜도 그 따라야 할 예수님이 바로 생명의 주인이시고 하나님나라의 주권자시라는 확신이 없으면 그런 결단을 하도록 설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덧붙이신 말씀이 28절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베드로가 고백했듯이 나는 진실로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 사실을 너희가 다 죽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라"는 뜻입니다. 이 때의 제자들은 지금은 이미 다 죽었고 주님의 재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주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오신다"는 말씀은 마지막 날의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보여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앞에서 변형되시고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져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말씀하신 사건(마17:1-3),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예수 믿는 사람이 하루에 수천 명씩 되며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퍼진 일, 예루살렘의 파괴 등은 모두 예수님께서 왕권을 가지시고 영광 가운데 우리에게 다시 오심을 보여주신 사건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지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과 그의 관점에서 보지 않을 때에는 사탄의 이용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평소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아는 지식을 갖고 있어도 매사를 사람의 관점에서만 보다가는 주님의 일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지식이 바른 믿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를 따라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목숨을 찾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매 순간 우리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일차적인 목적은 생명을 얻는 것인데,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목숨을 잃는 길을 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잃는 길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스스로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 즉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살겠다고 믿으면서 목숨을 잃는 길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이 나도 살고 교회도 튼튼히 서는 길인데, 그것을 못해서 나도 죽고 교회도 위태롭게 하며 결국 사탄을 즐겁게 하고 있는 나는 아닌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 주님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목숨을 찾는 길이며 우리가 살아야 할 삶입니다. 본문 24절에 상응하는 눅9:23에서는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날마다의 삶입니다. 그것이 목숨을 찾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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