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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인도따라 영적성숙을 이루자 / 엡 3: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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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생명의 인도따라 영적성숙을 이루자
성경귀절 : 에베소서 3:14~19
설교목사 : 강동수목사 (동신교회)
   

오늘의 본문 말씀은 바울 사도의 기도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되 특별히 영적인 성숙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속 사람과 겉 사람을 구분하면서(롬7:22,고후4:16) 속사람은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 가현적인 것보다 참된 것,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그 본능과 행동과 습관까지 포함하듯이 속사람도 그의 영적인 것, 인격적인 것, 이성적이고, 도적적인 자기존재를 의미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같이 속사람의 바람직한 삶을 영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본문을 근거로 하여 금년도 실천목표를 “성령의 인도따라 영적성숙을 이루자”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성장에는 교세의 확장과 건물의 공간, 그리고 재정적인 확충을 의미하는 양적성장이 있고, 그리스도인의 영성계발과 그리스도에게 헌신하며 교회에 봉사하는 내용들을 의미하는 영적성장이 있습니다. 또한 교인들로 하여금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 몫을 다하고 교회의 건물이나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되 감사하며, 자발적이며, 기쁨으로 하게 하는 구조적인 성장이 있습니다.

이같은 성장의 종합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오늘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같은 교회성장의 3차원을 해마다 돌려가며 연차적으로 노력하며 힘써왔습니다. 2003년도에는 영적 성장을 도모하기로 당회에서 목회방침으로 정하였습니다. 영적 성장이 무엇이며,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를 함께 생각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립니다.


1. 기독교 신앙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가?

보상 없는 신앙이 가능한가의 문제입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 신앙 양태를 걱정하는 이들은 우리의 신앙이 대단히 미신적, 우상숭배적, 샤머니즘적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 이들의 신앙 정신은 자기자신이 중심이 되고, 자기자신에 복과 행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신앙정신은 기독교 신앙 정신과는 정반대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필요하다면 희생하고, 십자가를 지고,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시각으로 성경말씀을 보면 진실로 기독교 신앙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31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에베소서 6:1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 말라기 3:10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리라.” 말라기 4:2 “네가 송아지 같이 뛰리라.” 이들은 모두 신앙에 대해 넉넉한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보상에 대한 말씀은 욥기 초두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기 1장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마주앉아 욥의 신앙에 대하여 사탄은 보상이 있기에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고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그 사실을 확인합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 고백하기를 “모태에서 빈손으로 났으니 죽을 때도 빈손으로 돌아 갈것이요,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살과 뼈를 치면 배신 할 것이라는 사탄의 말대로 그에게서 악창이 나고 재에서 고통받을 때도 욥은 “입술로 범죄지 아니하리라”(욥2:10)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갑절이나 축복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근본적으로 보상을 바라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른 신앙인에게 그의 사랑의 복과 은혜로 보상하고 계십니다.


2. 그리스도인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그리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창12:2).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빌2: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만주의 주가 되는 보상을 바라고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순종과 대속적인 희생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만민이 행복하게 되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작년말부터 몇몇 장로님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 주변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청소하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요, 즐거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일로 청소한 사람도 행복하고 청소하지 아니한 주변 사람들도 행복합니다. 네가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행16:31). 가정에서도 그 누군가가 희생함으로 자기 자신가 가족 전체가 행복하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3. 생명 살리기 운동은 기독교 영성인가?

기독교 영성은 예수님 닮은 삶을 의미합니다. 환언하면 작은 예수님이 되어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성신학자들은 말하기를 기독교 영성이란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생각으로 자연이나 역사나 사람을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느 신학자는 한국교회의 앞으로 과제는 “땅”의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땅은 소유를 뜻합니다. 한국 교회가 소유에 대한 청지기 사명을 바르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에는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은 곧 생명을 뜻하기도 합니다. 땅은 모든 더러운 것을 품에 품고 이를 깨끗하게 정화하며 새롭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과 사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적 능력을 의미합니다. 땅은 세상 만물이 서 있을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견고한 기초입니다. 이것은 바로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영성은 이 땅에서의 바르고 의미있는 삶입니다. 땅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하루 하루를 바르게 살고 의미있게 살고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새해는 이미 출발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모험의 새 세계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따라 영적 성숙을 이루시는 거룩한 한 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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