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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라 / 렘 6: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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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라
본문 : 예레미야 6:-15 

중세기 어느 수도원에 신부복을 입은 낯선 구도자가 찾아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수도원을 지키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그때 구도자는 "예, 저는 평화를 찾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그 구도자는 「신곡」을 지은 단테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유럽에서 여론조사가 있었습니다. 그 조사중에는 "인간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가장 압도적인 인류의 열망은 "평화" 였습니다.

약 100여 년 전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오랫동안 국경문제로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저들의 분쟁은 마침내 전쟁 일보 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1900년 부활절 아침에 아르헨티나의 한 목사가 평화를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경을 넘어 칠레에 가서도 평화를 외쳤습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양쪽 국민의 감정은 풀어지고 전쟁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는 국경에 배치하였던 무기를 녹여 큰 청동 그리스도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이 동상은 높은 산 위에 세워졌는데 그 동상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 밑에서 영원히 지키자고 맺은 평화를 두 나라가 깨뜨리면 이 산들이 무너지리라"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두 나라는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평화를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진정 평화를 주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1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고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아멘. 여기서 '옛적 길'은 하나님을 잘 섬기던 이전의 삶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평화를 누렸던 옛날의 삶을 말합니다. 그 길이 곧 이제 알아보고 바로 행하라는 그 선한 길입니다. 그 길이 민족이 살 길이고 백성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으로 생명의 양식을 삼고 하나님께 바로 섬으로 아르헨티나와 칠레처럼 평화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

그런데 여기서 먼저 생각할 것은 전쟁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한 방편이라는 사실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땀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12-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 땅 거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전토와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나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은 바벨론의 침략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장 13--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이는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무서운 죄악으로 인하여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70년 동안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악에 빠진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전쟁을 이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들어 가나안 땅 족속들을 멸한 것은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후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을 때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손에 붙여 심판하셨습니다. 구약성서는 분명하게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한 방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E. F. 슈마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사회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창조질서)과 지나치게 어긋나는 이념으로 살 때 덤치는 심판이다... 전쟁이 불합리하고 갑작스런 재앙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전쟁은 그릇된 사고방식과 그릇된 생활양식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발생한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대한 심판으로서의 전쟁을 바르게 이해하였습니다.

우리가 겪었던 6·25 전란도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이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1차 적으로는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일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죄악의 관영한 현실도 새겨봐야 하겠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기 전에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로 물든 우리 자신을 원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전쟁의 위협 아래 살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가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더욱 긴장되고 있습니다. 저도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죄로 인하여 심판을 자초한 우리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막연한 평화는 없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전쟁의 심판을 피하려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반응은 진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심각한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1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가벼이 보았습니다.

여기서 '심상히' 라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또는 '예사로' 보는 것을 뜻합니다.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상황인데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쟁이 일어날 리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평강을 외쳤습니다. 도무지 평강이 없는 상황인데도 평강 만을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었던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이 있으므로 평강하다고 외쳤습니다. 7장 3-4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평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틱낫한 이라는 베트남 승려가 서울에 와서 평화운동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평화운동, 반전운동 참 좋은 것입니다. 누가 전쟁을 좋아하겠습니까? 그런데 틱낫한 승려는 반전은 외치면서도 반핵은 말하지 않는답니다. 그는 월남에 있을 때도 그랬답니다. 월남과 월맹이 대치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는 월남에서 반전을 외쳤습니다. 월맹과 싸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월매의 폭정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평화운동으로 월남과 월맹은 평화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1년 후에 월맹은 월남을 침략하여 적화통일을 이룩했습니다. 미국도 철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공산화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죽거나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 많은 지성인들이 잡혀 처형당했습니다. 정치수용소에 끌려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수두룩합니다. 그때 월맹이 가장 먼저 처형한 사람들은 반전, 평화를 외치며 시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데모했던 사람들은 사회주의에서도 반기를 들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평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금물입니다. 평화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계를 늦춰서는 안됩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북한은 전쟁을 일이킬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규군이 117만이요, 즉시 전사가 될 수 있는 600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일 1만기 등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미국에게 큰소리치니 보기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득이 무엇입니까? 핵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입니다. 그러므로 반전을 부르짖으려면 북한의 반핵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평화를 원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전쟁을 피하려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적인 방법입니다. 예레미야 7장 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을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아멘. 이것이 살 길입니다. 이것이 평화를 누리는 길입니다. 이것이 평화를 얻는 선한 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책망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책망에 귀를 막고 오히려 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는 싫어하고, 평안하다고 외치는 선지자들을 좋아했습니다.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니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고 죄를 계속 짓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성은 무너지고, 성전은 북태워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어떤 이는 서울을 스올이라고 부릅니다. 스올은 지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서울의 죄악상이 지옥을 방불케 합니다. 서울만 그렇겠습니까? 대한민국 전체가 죄악에 빠졌습니다. 안믿는 사람들만 그렇겠습니까?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모두 타락했습니다. 영적 수준이 아주 낮습니다. 도덕적 감각이 마비되었습니다. 죄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를 불안케 하는 전쟁의 소식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로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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