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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일생 (4) : 신앙고백 / 마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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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베드로의 일생 ④ : 신앙고백
< 본 문 > 마16:22~33
<설  교 > 신반포교회 홍문수 목사


오늘은 베드로의 일생 네 번째 시간으로 ‘베드로의 신앙고백’ 사건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지 어언 3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후면 제자들과 헤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되고 그후에는 부활 승천하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에 그들에게 확실한 신앙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곁에서 말씀도 듣고, 여러 기적도 목격하는 가운데 신앙이 생겼겠지만 공적인 고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은 고백이 있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고백이 없는 신앙은 헛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신앙 고백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설사 수십 년 교회를 다녔다 하더라도 신앙 고백이 없으면 진정한 성도인지 점검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 세례 문답을 통해서 꼭 신앙 고백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 성도가 되었음을 표시(mark)하는 것인데, 예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베드로의 신앙 고백 사건을 통해 진정한 신앙 고백이 무엇이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중지는 축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 각자 신앙 고백을 재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됨과 성도됨을 확인하시고 그와 더불어 주어지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신앙 고백의 개별성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즈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예비 과정이었습니다. 13절.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인자는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아들’이란 뜻이죠.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자신을 낮추시는 겸손한 자기 칭호였습니다. 마치 옛날 임금이 자신을 가리켜 ‘과인’이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여러 가지로 대답했습니다. 14절 보면 여러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지 중의 하나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틀린 겁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로마의 학정에서 구원해 줄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런 선지자들을 열거한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죠.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15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치고 너희들은 어떠냐? 그런 질문이죠. 이 질문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대답할 성질이 아닙니다. 각자 대답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올 때는 다른 사람의 인도로 따라나온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각자 ‘내가’ ‘나의’ 신앙을 고백해야 됩니다. 군중심리에 의해 우왕좌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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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게 아닙니다 부화뇌동하는 게 아닙니다. 여론을 보고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물론 신앙은 공동체성도 갖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공동으로 하는 겁니다. 같은 신앙 고백을 하고 서로 돕고 협력하며 신앙 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나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내가 믿는 것을 전제로 다른 성도들과 협력하는 것이지 내가 믿지 않으면 아예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 고백은 함께 하더라도 각자 고백해야 됩니다.
예> 사도신경으로 신앙 고백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라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 영문판에도 보면 “I believe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각각 신앙을 고백하고 각각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 다른 일들은 얼마든지 대신 해줄 수 있어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본인이 직접 해야 됩니다.
예> 평소 부인이 교회 가자고 권유해도 늘 이렇게 말하는 남편이 있었답니다. “여보! 당신이 우리 집 대표로 교회에 갔다 와.”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천국 문에 이르렀는데 문지기 천사가 신앙을 확인합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두 분 중에 대표로 부인만 들어오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수님 앞에 신앙 고백을 하든 하지 않든 결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결정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아무쪼록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은 각각 신앙 고백을 하시고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신앙 고백의 내용

그런데 신앙 고백을 정확히 해야 됩니다. 막연히 믿는다고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고 믿음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본문 16절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한 내용이 나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 보면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곧 구세주이심입니다.

① 하나님의 아들 :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마치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오해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 성인(석가모니, 공자, 마호멧과 더불어) 중 하나라고 합니다. 혹은 인류의 스승, 심지어는 민중 해방자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만 맞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차리라 예수님을 사기꾼이나 정신이상자라고 불어야 합리적입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닙니다. 옥스퍼드大, 캠브리지大 영문학 교수였던 Clive S. Lewis가 한 말입니다. 그는 한때 예수님을 심히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기독교입문」이란 책까지 썼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정신 이상자이거나 혹은 사기꾼이지 결코 도덕적인 스승은 될 수 없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누구나 엎으려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된다.” 왜냐하면 요10:30 “나와 아버지(=하나님)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거든요.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거짓말을 한 건데 어떻게 존경받는 스승이 될 수 있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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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구세주 : 예수님이 이 세상이 오신 주목적은 인류를 죄와 사명에서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당시 사형틀 아닙니까? 무슨 죄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대속의 제물로 돌아가신 겁니다.(요1:29)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사해주겠다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에 따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18절~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절 → 반석=신앙고백. 교회를 세운다고 했는데 이것은 개인 성도와 교회 공동체를 모두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교회에 음부의 권세가 넘보지 못하게 됩니다. 음부의 권세는 사망과 지옥 형벌을 가리킵니다. 즉 믿는 자에게는 사망도 형벌도 다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9절 →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 제사장장적 권세를 갖고 잇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중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베드로와 같이 신앙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한번 재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영생을 얻었고,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해 내는 특권을 얻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신앙 고백의 과정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도 바른 신앙 고백을 할 수 없었는데, 어떻게 베드로는 정확하게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가 특별히 IQ가 높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17절. “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렇게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준 그 신앙은 혈육 즉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된 것이란 말씀입니다.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고전12:3 “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 고백을 하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내 실력으로 노력으로 된 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조차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엡2:8~9) 우리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감사 감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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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앙고백의 진실성

신앙 고백은 입술로 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것이라면 그 진실성에 대한 증거가 나타납니다. 마치 과일 나무와 같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 열매가 맺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열매가 있기 전부터 본래 사과나무지만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고 분명히 사과나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뭐라고 말씀합니까? 마7:17~21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래서 믿음으로, 신앙 고백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지만 그 고백의 진실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믿음이 행위와 인격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00% 완전한 행위와 인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태도가 중요합니다. 비록 부족해도 일관성 있는 태도로 변화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립니다. 비록 그 크기가 작을지라도, 아직은 영글지 않았다 하더라도 때로는 벌레가 먹더라도 사과라는 겁니다. 그러나 사과나무라고 했는데 엉뚱하게 다른 열매가 나오면 그건 가짜라는 겁니다.

그 열매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모습입니다. 죄로 가득한 옛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이제 새 사람의 모습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신앙의 인격화, 생활화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이 혹시라도 수단화되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병을 고치는 의사, 문제 해결해 주는 해결사, 고통 중에서 건져주는 구조대원, 재물을 제공하는 은행장 ... 이런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런 문제들도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위와 인격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것이 곧 신앙 고백의 진실성을 증명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고난까지 자청하게 됩니다. 도마 같은 사람은 그렇게 의심이 많았지만 부활하신 에수님을 만난 이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요20:28)으로 고백하고 그 신앙 고백이 진실한 것이기에 그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설에 의하면 그가 이라크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멀리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하게 됩니다. 그의 신앙 고백이 진실한 것이기에 그의 사람을 드렸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쳤던 것입니다.

부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보시고 바른 신앙 고백,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의 증거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가 되고, 우리의 신앙을 증명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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