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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릇을 채우는 마음으로 / 왕하 4:1-7, 요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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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채우는 마음으로 (왕하 4:1-7, 요 2:6-11)
이성희 담임목사 (연동교회)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는 성경에서 기적이 많이 나타난 시대입니다.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전파되지 못하는 시대에 기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성경의 모세 시대와 예수님과 사도시대도 마찬가지로 기적이 많이 나타난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어렵게 전파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입니다. 엘리야 시대도 기적이 많이 나타났지만 엘리사 시대에 특히 기적이 더 많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엘리사에세 대머리라고 놀리다가 암콤 둘이 나타나 42명을 찢어 죽였습니다. 이 기적은 좀 심한 느낌도 있지만 기적은 기적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해준 수넴여인에게 아들이 있게 하고 아들이 죽었을 때에 그 아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이방 장수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 나병을 깨끗케 해 주었습니다. 오늘의 성경에는 엘리사가 과부의 기름병을 채워준 기적담이 나타납니다. 이 과부의 남편은 엘리사의 생도였는데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서 많은 빚을 남겨두었습니다. 채주는 이 과부에게 빚을 갚기를 독촉했지만 과부에게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채주는 당시의 법에 따라 빚을 갚지 못하는 과부의 아들들을 종을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과부의 딱한 형편을 엘리사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모든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당시에는 가장 불쌍한 사람을 지칭할 때 고아와 과부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사회적 정황은 고아와 과부는 자신의 힘으로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엘리사는 과부에게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과부는 기름 한 병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엘리사는 동네에 가서 그릇을 빌려 오되 최대한 많이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릇들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은 넘쳤고 과부는 이 기름을 다 팔아 빚을 갚았습니다.

우리에게 기름이 있습니까? 약간의 기름만 있어도 풍성한 기름으로 증가합니다. 그릇을 빌려 기름으로 채워야 합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동양의 묵상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노력이다. 반면에 기독교의 묵상은 마음을 채우기 위한 시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입니다. 얻고 채우는 것이 신앙적 삶입니다. 요한복음 10:10에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얻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특히 우리의 기름으로 풍성히 채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 여인이 기름으로 그릇이 가득 차게 된 것을 보면서 우리도 기름으로 가득 찬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첫째, 기름이 있지만 그릇이 없습니다.
과부에게는 한 병의 기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적지만 기름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엘리사는 과부에게 있었던 한 병의 기름을 이용하였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가지고 축복하사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같은 복을 주십니다. 내게 있는 작은 것으로 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적은 기름이 있어야 풍성한 기름을 얻습니다. 내게 작은 믿음이 있어야 큰 믿음을 얻습니다. 여러분, 마중물을 아시지요? 옛날 펌프를 사용할 때에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에 붓고 저으면 많은 물이 끌려 올라옵니다. 적은 마중물이 많은 물을 낼 수 있습니다. 씨감자만 있으면 많은 감자를 얻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7에는 말씀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으로 믿음에”란 말이 무슨 말일까요? 믿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작은 믿음으로 큰 믿음을 얻습니다. 작은 믿음이 큰 믿음으로 진보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작은 믿음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믿음으로, 있는 기름으로 큰 기적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마중물이 있어도 땅 속에 물이 없다면 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씨감자가 있어도 밭이 없다면 감자를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적은 기름이 있다고 하더라고 풍성한 그릇이 있어야 하고, 풍성한 근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름이 있지만 그릇이 없어 풍성하게 얻지 못하는 상태가 아닙니까? 그릇이 풍성하게 있어야 기름이 풍성해집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보세요. 기름이 풍성한데 그릇을 준비하였습니다. 믿음의 그릇입니다. 예수님의 병고치는 능력은 항상 차고 넘칩니다. 끊임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처럼 옷가에 손을 대는 믿음의 그릇이 없어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스쳤지만 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의 그릇이 있었고 풍성한 치료의 기름을 얻었습니다. 그릇이 있어야 기름을 담습니다. 아무리 풍성한 기름이라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복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담을 수 있는 은혜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에 “그릇이 크다, 그릇이 작다”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이 작아서 얻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9:15에는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릇이 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많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큰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금세기 초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던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명성 있는 지휘자입니다. 그는 원래 첼로주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연주 중에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심한 근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주 때마다 연주할 악보를 모두 외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주회를 앞두고 악단의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단원들 중 누군가가 대신 지휘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 임시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이 것이 인연이 되어 세계적 대 지휘자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시력이 나쁘지 않았다면 한 악단의 첼로주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악보를 볼 수 없을 정도의 지독히 나쁜 시력 때문에 악보를 모두 외울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세계적인 지휘자로 발돋움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그 자체가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토스카니니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하지 말자.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아담은 에덴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아니했는가. 눈물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리자. 눈물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더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힘이 되어주신다”. 과부의 고통은 그릇이 많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고통도 그릇을 크고 많게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은 하나님의 더 큰 능력을 담게 하는 그릇입니다.

둘째, 기름을 채울 그릇을 빌려야 합니다.
기름 한 병은 있었지만 그릇이 없는 과부에게 엘리사는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라고 합니다. 기름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름은 담을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릇이 있는 자에게 기름도 기름의 가치를 발하게 됩니다. 기름을 채우기 위해서는 우선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그릇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와야 합니다. 그릇을 기름을 채우는데 필수적입니다. 여러분 이웃을 보세요. 그 이웃이 가지고 있는 그릇이 무엇인가 보세요. 그 이웃은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어떤 것이 있는가 보세요. 내가 갖지 못한 그릇을 빌리세요. 최대한 많이 빌리세요. 그래야 채웁니다. 디모데후서 2:20에는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큰 사람에게는 금그릇도, 은그릇도, 나무그릇도, 질그릇도 있습니다. 큰 사람이 가진 그릇을 다 빌리세요. 그릇에 욕심을 부려도 좋습니다. 그릇이 커야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릇이 많아야 많은 복을 받습니다. 그릇은 빌릴 수 있는껏 빌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많이 빌리는 자가 많이 채우고 많이 얻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보세요. 그릇이 얼마나 있습니까? 이웃은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그릇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믿음의 그릇, 지혜의 그릇, 은혜의 그릇, 사랑의 그릇, 기쁨의 그릇, 화평의 그릇, 인내의 그릇, 용서의 그릇, 재물의 그릇, 충성의 그릇, 그 외에도 필요한 그릇들이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빌릴 수 있는 그릇은 모두 빌려오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 그릇에 기름을 채우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로 그릇을 빌려다 주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릇을 빌려오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최대한 많은 그릇을 빌려오면 하나님은 거기에 꼭꼭 채우십니다. 나의 처음 기름과 이웃의 그릇이 준비될 때에 하나님의 무한하신 기름이 채워집니다.

어떤 군목이 최전방에서 군목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벌통을 쳐서 꿀을 땄습니다. 아주 좋은 꿀을 따서 부대에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광고를 하여 누구든지 빈 그릇을 가지고 와서 꿀을 타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군인은 박카스 병을 가지고 와서 꿀을 받아갔고, 어떤 군인은 링거 병을 가지고 왔고, 또 어떤 이는 스페어 깡통을 가지고 왔습니다. 군목은 군인들이 가지고 온 빈 병에 다 꿀을 가득히 넣어 주었습니다. 박카스 병은 박카스 병만큼, 링거 병은 링거 병만큼, 스페어 통은 스페어 통만큼 꿀을 부어 주었습니다. 그후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를 공평하지 않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군목이 대답하기를 “누가 박카스 병을 가지고 오라고 했소? 나는 빈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빈 그릇대로 채워 줬을 뿐이오”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채우기 위해서는 빈 그릇이 많아야 합니다. 빈 그릇이 커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을 채우는 일에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결과적으로 많이 가지고, 많이 얻고, 풍성하게 채웁니다.

셋째, 문을 닫을 때 기름은 모든 그릇을 다 채웁니다.
과부는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문을 닫고”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고 외부의 인간의 힘을 바라지 않은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은총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랄 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6:6에는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의존하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존하면 채워집니다. 그릇이 있지만 왜 채우지 못합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존하고 바라보기에 채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문 닫으세요. 그리고 하늘을 향하는 문만 열어놓으세요. 그러면 성령의 기름으로 찹니다. 시편 81:10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십니다. 하늘을 향해 넓게 열면 하늘의 하나님이 친히 채우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혼식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부탁하였고 예수님은 우선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거기에 있던 여섯 개의 빈 항아리에 물이 다 채워졌을 때 예수님은 그 포도주를 떠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빈 항아리를 채운 물이 모두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채워야 포도주가 됩니다. 채운 물이 맛을 냅니다. 채운 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채운 기름이 비로소 뜨거운 불을 일으킵니다. 세상으로 향하던 생각을 닫고 하늘의 문만 여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그릇들이 성령으로 찹니다. 성령으로 채워진 우리의 그릇들이 비로소 맛을 내고, 기쁨을 주고, 뜨거운 열을 낼 것입니다.

결론
아주 옛날 인도의 아륙대왕은 사형수에게 가득 담긴 기름 그릇을 주며 네가 이 기름그릇을 쏟지 않고 온 장안을 다녀오면 살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죄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기름 그릇을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온 장안을 하루종일 돌아 다녀왔습니다. 그 때 사형수는 살고 죽는 것은 이 기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대왕은 사형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장안 큰 통로에는 무엇이 있고 오른쪽에 있는 큰 건물은 무슨 건물이더냐?” 이 때 사형수는 건물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아륙대왕은 “네가 거짓말로 장안을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만일 온 장안을 돌아 왔으면 내가 묻는 말에 왜 대답할 수 없느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 때 사형수는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명령하시기를 이 기름을 쏟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생명이 이 기름에 있는데 어찌 곁눈을 팔겠습니까? 건물도 사람도 경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기름 그릇만 조심스럽게 간직하며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 때 왕은 “옳다 됐다”하고 석방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도 생명은 기름에 있습니다. 기름 없는 등은 쓸모가 없습니다. 성령님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성령님 없는 삶은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의 그릇에 성령님을 채우지 못하면 그 그릇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하나님의 영, 성령의 상징입니다. 기름을 부으심이란 성령으로 감동하심이란 뜻입니다. 또 한 주간의 삶이 영으로 가득 채워진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릇에 성령님으로 가득 채우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돌아보지 않고 세상일에 기웃거리지 말고 하늘 나라 향하여 줄기차게 나아가는 삶을 사세요.

하늘 문만 열고 세상 문을 닫고 우리 각자의 그릇을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우는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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