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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자의 소원 / 잠언 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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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30:5-9
지혜로운 자의 소원
임대식 목사 (평안교회)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중 소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바라는바 소원이 있지만, 또 때에 따라 그 소원이 다릅니다. 어린아이들은 먹을 것이 소원입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먹는 것 말고는 다른 소원이 없다는 듯이 졸라댑니다. 그러나 성장해서 보면 그야말로 유치한 소원입니다.

참으로 나는 성숙한 한 사람으로서 정말 바람직한 소원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지혜로운 자의 소원을 배우게 됩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소원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여러 가지 소원이 아니라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물론 소원이 많겠지만 특별한 기도의 제목은 두 가지라는 말입니다. 또 죽지 전에 주시옵소서 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것이 평생소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자의 평생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8절 말씀을 보니 하나는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하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하는 기도 제목입니다.

뭐 이런 정도를 평생소원이라고 붙들고 살았느냐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지혜자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 보면 정말 중요한 소원이요 기도제목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허탄이란 말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애쓴 결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상실한 자에게 찾아오는 내적 허탈감을 말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이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이기적인 범죄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나로 하여금 진실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제목이요 소원입니다. 사람이 진실하게 살기가 진정 어렵다는 것을 체험한 지혜자가 진정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다가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또한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실 진실하려고 힘써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을 진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바르게 살고 깨끗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삶을 한 번 살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진실하게 살되 첫째로 내 자신에게 대하여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 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면 그것은 진실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 만나기가 꺼림직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해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운 것은 내가 진실에서 떠나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모르는 비밀이 있고, 내 자신에게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을찌라도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대해서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진실보다 귀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죄를 지었으면 죄 지은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하지 못한 내 자신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내 자신에게 내 모습을 감추고 겹겹이 쌓여있는 거짓과 가식이 드러날까봐 스스로 전전긍긍해서 살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고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의 근본은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피곤하다고 합니다. 피곤의 근본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은 위선과 가장과 허세가 가져다주는 부산물입니다. 그리고 거짓과 유혹 속에 내 자신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이렇게 부족하고 어리석고 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자신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할 수 있고, 영혼과 삶의 평안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외투를 하나 샀는데, 안주머니를 열어 보니 커다란 보석이 들어 있었습니다. 야! 횡재했구나,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밤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데,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랍비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런 경우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랍비는 말하기를 “당신은 외투를 샀지 보석을 산 것이 아니니 돌려주어야 합니다. 보석을 돌려줄 때 반드시 당신 아들을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면 보석보다도 더 큰 보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보석의 이름은 정직이요 진실입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디 아들뿐입니까? 스스로에게 진실한 것이 가장 큰 보석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진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지혜자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우리 또한 스스로에게 진실한 존재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진실해야 합니다. 요즈음 세상 풍조는 정직하다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요, 진실되다면 뭔가 막힌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무능하거나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은 진실이 승리하고 정직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합니다.

2월은 영어로 February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정결케 한다, 정직하게 한다, 진실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2월에 워싱톤과 링컨의 생일이 들어있어 두 대통령의 전형적인 이미지인 정직과 진실을 생각게 한다고 합니다.

링컨은 한때 젊어서 가게를 경영했는데, 고객과 약속한 물건을 구했을 때, 약속한 날짜를 지키기 위해 겨울날 40Km나 되는 먼 거리를 마차를 타고 배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진실되고 약속을 지키는 신뢰를 링컨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최상의 신조로 삼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답답한 뉴스 중 하나는 소비자들이 믿고 사는 대형 정유회사에서 엉터리 기름을 공급했다는 소식과 핸드폰 요금 서비스를 곰곰이 챙기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등등의 뉴스들입니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조 중 하나는 이윤만 추구하면 수단과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입니다. 그것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재벌 회사들이 그런 횡포를 부린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윤 추구가 아니라 국민의 정신 건강과 사회 풍조를 어지럽히는 만행이 됩니다.

이제 우리나라 16대 대통령 취임식이 곧 있을 예정이지만, 이 모든 정치적 계기가 위로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사회의 구석구석이 건강하고 바르게 세워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진실이 승리합니다. 정직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실 재주 있는 사람은 무섭습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겁이 납니다. 문제는 성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참으로 진실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여, 우리로 하여금 진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심령이 청결한 자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정직한 것이 진실이요, 하나님께 정직한 것이 믿음입니다.

사실 우리 사람들은 다른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어두운 면을 가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광고하면서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양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박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신앙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깊은 척, 믿음이 좋은 척, 거룩한 척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것이 참 소중합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현재의 능력이나 외모나 업적을 보시고 그 사람을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심에 갖고 있는 진실만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안 중근 의사의 어렸을 적 이야기입니다. 평소 아버지가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할 만큼 아끼는 벼루를 그만 깨뜨리고 말았다로 합니다. 안 의사의 몸종이 도련님, 이거 제가 깨뜨렸다고 말하십시오. 저는 매 맞는데는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했지만, 안 의사는 아니다 하면서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했고, 어린 안중근은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도련님, 제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래서 제가 했다고 그러시라니까요. 왜 사실대로 말씀드려서 이렇게 맞으셨습니까? 몸종이 안타까워서 말하니, 어린 안중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프지만, 마음은 참 편하다.”

그렇습니다. 아프지만 마음은 편하다. 참 옳은 말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좀 아프면 어떻고 좀 얻어맞으면 어떻습니까? 때로 하나님의 사랑의 매를 맞으면 어떻습니까? 진실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정직하면 하나님은 더욱 우리를 사랑하실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마땅히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질에 대해서 진실해야 합니다. 8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진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떤 존재입니까? 부하면 교만할 존재입니다. 지나치게 부하면 타락할 사람입니다. 가난하면 도적질할 사람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칠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인격을 알기에 우리는 하나님, 우리에게 적절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조선왕조 후기에 기록된 “일사유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김학성이라는 재상의 어머니에 얽힌 일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청상과부로 두 아들을 어렵게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면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추녀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예전과는 다릅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나가 보았더니 추녀에서 빗물이 떨어져 패인 땅바닥에 솥뚜껑이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파헤치고 뚜껑을 열어보니 은전이 솥 안에 가득합니다. 어머니는 가만히 생각한 끝에 땅을 더 깊이 파고 은전이 가득한 그 솥을 도로 묻고 나서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 아들들이 그 돈을 보고 마음이 게을러져서 공부를 소홀히 하고 못된 친구나 사귈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중에 그 아들들이 훌륭하게 되었을 때에야 어머니는 비로소 그때 그 일을 털어놓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적으로 로또 복권이 큰 유행이라고 하는데, 불로소득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됩니다. 지나치면 안 됩니다. 지나치면 나를 망하게 하고 집안을 망칩니다. 설사 당첨되었다고 해서 복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땀 흘려 벌지 않은 것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열심히 일해서 적절하고 규모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물질에 진실해야 합니다.

너무 부하게도 마옵시고,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사람은 모름지기 이 적절한 진리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너무 많이 먹을 수도 없고, 적게 먹어서도 안 됩니다. 고기가 좋다고 고기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해야 합니다. 정신도 그렇습니다. 너무 학대만 받아서도 안 되지만 칭찬만 들어서도 안 됩니다. 적절해야 합니다.

탈무드에 도를 넘으면 안 되는 것 8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여행입니다. 여행을 좋아해 여기저기 많이 다니다 보면 아예 바람이 나서 집에 들어오기조차 싫어지게 마련입니다. 둘째 친구입니다. 남자 친구건 여자 친구건 너무 많아도 좋지 않습니다.

셋째는 일입니다. 지나치게 일해서 일 중독에 걸리면 안 됩니다. 넷째는 술입니다. 술이 과하면 건강을 해칩니다. 다섯째는 잠입니다. 잠은 점점 늘어납니다. 많이 자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여섯째는 약입니다. 약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보약도 많이 먹으면 보약 중독증에 걸린다고 합니다. 일곱째는 향료입니다. 지나치면 좋은 향내는커녕 구역질이 납니다. 알맞은 양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덟째는 돈입니다. 돈이야말로 우리 생활에 알맞게 주어져야 합니다. 무조건 많이, 무조건 넉넉하게는 안 될 말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지혜자의 소원은 너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하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 말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여” 바로 이것입니다. 자, 과연 나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참으로 바른 소원을 가지고 그 소원을 하나님의 축복 속에 이루어 나가는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진실한 삶의 길을 마지막까지 걸어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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