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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내가 빚진 자라 / 롬 1:1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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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가 빚진 자라
로마서 1장 14절~17절 
김찬종 목사 (과천교회)


오늘은『다 내가 빚진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빚이란 남에게 신세를 끼쳤다든지 또는 빌려온 것이 있어 반드시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빚은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도 빚입니다.  서원을 말합니다.  헌금약속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빚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직장동료에게 약속한 것도 빚입니다.  대통령에 출마한 사람이 국민에게 공약한 것도 빚입니다.  국회의원이나 도의원, 시의원에 출마한 분들이 지역주민에게 공약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일종의 빚이 됩니다.  그러므로 재임 중 그것을 갚으려고 힘쓰고 애쓸 때 인정받는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한 약속도 빚입니다.  잘 지켜야 부모와 자식간에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한 약속도 빚입니다.  약속을 잘 지킬 때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빚이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것이 빚의 특성입니다.  빚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특히 신자들이 가지는 빚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빚입니다.  물질적인 부채입니다. 

쉽게 말하면 돈을 빌려 갚지 못하면 빚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남의 종이 되는 경우가 몇 가지 있었는데 남의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면 종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종이 되지 않으면 아내를 종살이 시키든지, 자식을 종살이 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도 종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종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도 종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빚이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빚에 대하여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의 것을 빌렸으면 빠른 시일 안에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셈이 분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그런 사람은 인간세계에서도 신뢰와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습니다. 

  한 여성도가 자기들 교인이 많이 사는 어느 동네에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교인들이 많아서 잘  팔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예상대로 물건이 잘 팔려나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외상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 가게는 일년도 못되어 거덜이 났고 외상값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럴 즈음 그 부인이 철야기도회를 갔더니 그곳에 외상을 가져갔던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외상값 생각에 기도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의 귀에 옆에 앉은 사람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빚도 지고 있고 외상값도 밀려있으니 용서해주십시오 라는 내용의 기도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뻐하며 회개를 했으니 곧 갚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외상값을 가져오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돈을 빌려 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한 기한 안에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또한 생활에 절제가 없이 많은 돈을 빌려 써서 낭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그러므로 사치를 줄여야 합니다.  분수를 지켜야 합니다. 

  빚이 있으면 ①심령의 손해를 봅니다.  ②자유가 없습니다.  ③종이 됩니다.  ④압박을 당합니다.  ⑤괴롭습니다.  ⑥거짓말을 하기 쉽습니다.  ⑦신용을 잃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8절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될 수 있는 한 남에게 물질의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또한 투기하기 위하여 빚을 져서도 안됩니다.  또한 작은 돈이라도 빚을 졌으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받고 신용 있는 믿을 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악의 빚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인간들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 속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 23)

  인간들의 마음은 이렇게 추악합니다.  더럽습니다.  방탕합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으로서는 구원의 여지가 없습니다.  선한 것이라곤 조금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은 자기의 죄를 잘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핑계합니다.  남을 탓합니다.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는 작고 다른 사람의 죄가 크다고 말합니다.  죽일 죄인들입니다.  인간 그대로 두면 모두 멸망입니다.  심판입니다.  죄의 빚도 그대로 두면 모두 죽음뿐입니다.  인간들은 모두 이 죄악의 짐을 지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결과를 모르는 자도 많습니다.  결과는 죽음입니다.  멸망입니다.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인간이든 이 죄악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죄악 때문에 멸망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죄악의 빚이 깨끗이 씻음 받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구속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인간이 불행해지는 근본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가려진 담 때문입니다.  그 담은 죄악입니다.  악독입니다.  원망입니다.  불순종입니다.  방탕입니다.  음란입니다.  많은 인간들이 그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고 오늘도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들을 향하여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은 무슨 짐을 지고 계십니까?  주님께 모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승리하는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의 빚입니다.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인간들을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찬송가 28장 3절입니다.

  주의 귀한 은혜받고 일생 빚진 자되네
  주의 은혜 사슬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행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빚입니다.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할 때가 많습니다.  구원을 주셨는데도 그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도록 천국도장을 꽉 찍어 주십시오.  나를 천국에 등기해 주십시오!’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 천국등기소에 도장을 찍어 등기해 놓으셨습니다.  이를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은혜의 빚을 갚는 길일까요? 


  첫째,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빚을 갚는 최선의 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기뻐하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 감사의 생활은 은혜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특히 감사는 기쁨을 창조합니다.  기쁨은 찬송을 부르게 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합니다. 
  무슨 일이든 감사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더 많이 주십니다.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문둥이를 고쳐주었을 때 예수님께 와서 감사를 표한 문둥이는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열 명이 모두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감사를 표했던 그 하나의 문둥이는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감사는 육신의 병만  치료하는 것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얻게 합니다. 


  둘째,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도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구절을 우리는 늘 암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나로 바꾸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내가 용서한 것과 같이 나의 죄도 용서해 주옵소서”입니다. 
  내가 용서 없는 삶을 살면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이하에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용이 있을 때 주님이 나의 심령에 가까워지며, 그 후에 기도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관용이 없는 마음은 돌같이 굳은 마음입니다.  그런 단단한 곳에서는 씨를 뿌려도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발아가 되더라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뿌리를 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용서가 있을 때 따뜻한 마음이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게 됩니다.  거기에 계속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세 번째, 주님께 헌신할 때 은혜의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헌신은 은혜를 받은 자가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의 삶을 말합니다.  찬송가 356장입니다.  주님께 헌신을 다짐한 성도의 찬송입니다.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주 앞에 조아려 하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생을 보낸 리빙스턴은 주일학교 때 친구들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 드릴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헌금할 돈이 없습니다.  그 대신 저의 생명과 몸을 모두 드립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성장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아프리카 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어릴 때의 결심과 기도를 잊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받으십니다.  헌금이란 육신이 살아갈 때 꼭 필요한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육신은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 돈을 내 몸을 바치는 표시로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인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또한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수 주일 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찬양하는 일입니다.  가르치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이나 내게 주어진 재능대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의 빚을 갚는 길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은혜의 부채를 갚을 수 있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살리는 길이요, 나도 사는 길입니다.  본문은 바울 사도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니 그 은혜가 너무 놀라와 그 빚을 이방인들에게 갚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명의 고백입니다.  로마서 10장 14절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말씀을 전하지 아니하면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십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입으로 그 아버지와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죄악으로 멸망당함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모든 인간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그 구원의 방법이 전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오직 한가지 방법은 전도입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입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예수님도 전도하셨습니다. 

  중국의 윗치만 니의 전도간증입니다.  그는 학교에서도 열심히 성경을 읽는 삶의 변화가 있는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전도를 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미국인 선교사를 만났는데 선교사는 그에게 ‘일년동안 몇 명이나 주님 앞으로 인도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전도열매가 전혀 없었기에 부끄러워했습니다.  그 이유를 선교사는 두 가지로 지적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가려진 담이 있기 때문이고, 다음은 전도대상자를 수첩에 적어놓고 기도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부르짖었습니다.  몇 달이 지났을 때 명단에 기록된 70명중 1명을 제외한 69명이 다 구원을 받았다는 간증입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전도 노트를 준비하십시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려진 담을 제거하십시오.  회개입니다.  그리고 지옥에 보내서는 안될 사람을 기록하십시오.  그리고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복음을 전하십시오.  교회를 자랑하십시오.  구원을 소개하십시오.  목사님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늦추면 안됩니다.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톨스토이가 한번은 여행을 하다가 어떤 집에 들렀습니다.  그 집의 어린 소녀가 톨스토이가 가진 가방을 보고 탐이 나서 어머니에게 저런 가방을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머니는 다음에 사주겠다고 달랬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톨스토이는 지금은 여행중이니 이 가방을 줄 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러 가방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 후 돌아오면서 그 집에 다시 들렀더니 그 소녀는 벌써 죽어 장례를 치른 후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톨스토이는 그 가방을 소녀의 무덤에 갖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을 연기하지 말라”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연기하면 안됩니다.  4월 20일 이전에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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