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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밀 속에 감추어진 지혜 / 잠 20:5, 고전 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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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비밀 속에 감추어진 지혜
(잠 20:5, 고전 2:6-13)
나성영락교회(박희민 목사)


1.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지난 수요일부터는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고 대답할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제적으로 돈만큼 필요한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아니 밤잠을 설치면서 까지도 돈, 돈, 돈 하면서 동분서주한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참 치사한 일까지도 개의치 않고 심지어는 양심도 속이고 신의와 사랑까지도 배반하는 것을 본다. 아니 그 이상으로 남의 생명까지도 빼앗고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가! 그러나 또한 분명한 사실은 돈이 인생의 전부일 수는 없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돈이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겐 분명히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건강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흔히 북미에 이민 와서 사는 교포들이 주고받는 말 중에 이곳에선 건강만 하면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분명히 건강은 행복한 인간생활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많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어떤 이는 그것이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혹은 명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뭐니 해도 목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셨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삶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고 보다 값있고 뜻 있게 살도록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런 것들을 위해 우리의 귀한 목숨을 허비하고 있는 것을 본다. 우리는 가끔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우리에게 목숨이 서너 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는 향락적인 인생을 위해 낭비하고 또 하나는 자신의 Career를 위해 바치고 또 하나쯤은 이웃과 겨레를 위해 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비극과 슬픔은 인생은 한 개의 목숨밖에 없으며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일회적 삶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 바로 삶의 슬기가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인생의 지혜가 요청되는 것이다. 어떻게 일회뿐인 내 인생을, 한 개뿐인 내 목숨을 후회함 없이 값있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바로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한 어린이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거북이를 발견하였다. 그는 거북이를 데리고 놀면서 즐겼다. 그런데 거북이가 목을 집어넣고 나오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난 이 어린이는 거북이를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는 노인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 노인은 그러면 그 거북이를 바다에 집어던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거북이는 목을 빼고 바다 깊숙이 헤엄쳐 갔다. 이 노인은 거북이도 살리고 거북이의 목도 나오게 한 것이다. 이것이 삶의 지혜이다.


2. 가장 필요한 지혜

우리는 일회적인 인생을 바로 살고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즉 앞서간 성도들이 남긴 삶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일찍이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일 천 번 제를 드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묻기를 네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다. 그는 부귀영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지혜를 구하므로 부귀영화까지 얻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이 곧 지혜이다.

성경은 이러한 앞서 걸어간 성도들의 인생 경험과 신앙의 체험을 통해서 얻어진 인생의 슬기로 가득 차 있다. 잠언 3장 15절에 보면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했다. 잠언 3장 14절에서도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고 했다. 오늘 읽은 잠언 20장 5절에도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내느니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지혜를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마음속 깊이에 지혜를 넣어 주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지혜를 길어내어 잘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길어내지 못하고 어리석게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배가 없다. 그런데 옆에 보니까 뗏목이 나무에 묶여 있다. 그것을 타고 강을 잘 건넜다. 그는 생각하기를 그 뗏목이 요긴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집으로 가지고 가기로 마음먹고 어깨에 메고 죽을 힘을 다하며 걸어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저 뗏목이 요긴하기는 하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나그네의 짐이 되고 있구나 강가에 놓아두었어야 하는데 참 어리석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런 어리석을 범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3. 지혜가 무엇인가?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혜(God's Secret Wisdom)를 접하게 된다. 그럼 여기서 지혜가 무엇인가? 지혜는 지식과 구별되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도 중요하다. 현대인들에게 정보가 돈보다 중요하다. 누가 더 빨리 바른 정보를 얻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 지운다. 그러나 지혜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지식이 어떤 사물에 관해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지혜는 그 보다 훨씬 높은 차원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는 인간의 행복과 축복을 여는 master key이다. 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다.

1) 지혜는 인생의 종합적 사리판단력을 뜻한다.

이희승씨 국어사전에도 보면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판별하는 능력'을 지혜라고 정의했다. 그러니까 인생과 사물을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며, 바로 판단하고 바로 행동하며 바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지식이 많다고 지혜도 많은 것이 아니다. 세상엔 공부는 많이 했지만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별로 공부는 못했지만 지혜가 많은 분이 있다.

지혜는 인생의 올바른 방향 감각이다. 인생에겐 방향감각이 중요하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파멸로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그러기에 언제나 올바른 삶의 방향감각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지혜는 삶의 조화와 균형감각이다. 삶의 조화와 균형이 깨어질 때 불화가 찾아오고 파멸이 찾아오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생활 뿐 아니라 한 공동체나 한 민족의 삶에서도 꼭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의 원리를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도'에서 찾은 것이다. 이 중용의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인 것이다

2) 지혜는 문제해결과 행복을 여는 열쇠이다.

사람은 한평생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부닥친다. 그런데 그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지혜의 열쇠로 잘 풀면 오히려 우리 삶이 한 단계 upgrade 된다. 그러나 잘 못 풀면 많은 어려움과 파탄이 뒤따른다. 지혜는 지식을 바로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지혜는 위기를 오히려 창조적인 성장의 기회로 역이용하게 한다.
말하자면 지혜는 인생의 삶에서 바른 선택을 하게 한다. 삶은 하나의 선택이요 결단이다. 잘못 선택할 때 오는 고통이 크다. 그러나 바른 선택을 하게 될 때 풍성한 삶과 축복이 뒤따른다.

3) 지혜는 삶을 변화시킨다.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 어떤 실패의 경험을 했을 때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아니하고 새 삶을 추구한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결단, 새로운 출발, 새로운 습관을 길러간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그러한 실패를 반복하므로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4. 하나님의 비밀 속에 감추인 지혜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보편적인 인생의 지혜를 말하지 않고 깊은 인생의 지혜를 논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 속에 감추어진 지혜인 것이다. 마치 값비싼 보물일수록 깊은 곳에 감추어 두듯이 하나님의 귀한 지혜는 비밀 속에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혜를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세상 또는 세상관원들에게 속한 지혜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속한 영적 지혜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지혜는 잔꾀에 속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지혜는 훨씬 심오하다. 하나님의 비밀 속에 감추인 영적 지혜란 곧 예수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 지혜는 그의 성육신과 그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통해 인류 역사 속에 계시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3절 이하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꺼리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했다. 또 골로새서 2장 2절 이하에서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고 말했다. 일찍이 잠언 저자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잠 9:10)고 말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지혜를 아는 길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엔 인생의 모든 비밀과 진리가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인가?

1) 바울은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말한다.

좀 역설적인 말이지만 우리가 어리석어질 수 있을 때 참 지혜로워질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지혜를 터득할 수 있게 된다. 고린도전서 3장 18절,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했다. 바로 여기에 지혜에 이르는 신비한 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의 교만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결국 그 속에 감추인 최상의 지혜를 터득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많은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올무에 빠져드는 것을 본다. 예를 들어 옛날에 하만이 모르드개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멸로 이끌려고 간계를 꾀하다가 자기 자신이 만든 장대에 매달려 처형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똑똑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파멸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간과 정력과 재물과 생명까지 허비했던 어떤 의미에선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구원을 받았다. 슈바이처나 본 회퍼나 손양원목사나 테레사 수녀 등이 다 그런 인물들이다. 아니 예수님의 생애가 바로 그러한 한없이 어리석고 바보스런 생애였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을 터득하고 그 안에 감추인 진리와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그처럼 또한 스스로 어리석어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언젠가 신문에 보니까 William Murphy란 Welfare 타 먹던 한 사람이 765만 불 짜리 로터리 복권을 잃어버린 사람을 애를 써서 찾아 주므로 120만 불을 얻어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기사를 읽었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길가에서 주운 지갑을 백방으로 애써 주인을 찾아 주었는데 그 지갑 속에든 6장의 복권이 들어 있었고 그것을 3일 전에 잃은 주인은 자기가 당선된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완전히 잃을 뻔했던 이 주인은 그의 정직함에 감동되어 765만 불 중에서 120만 불을 떼어 준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주워준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어리석음이 오히려 그를 지혜롭게 한 것이다. 한 철인도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무지하면서도 자기의 무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리고 무지하지만 자기의 무지를 아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내가 이만큼 똑똑하다고 뽐내는 사람보다는 내가 이렇게 어리석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나 생각된다.

2) 영적 지혜를 터득하려면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본문 11절에서 사람의 사정을 사람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알 수 없다고 말하면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13절에 보면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했다. 우리의 삶에는 눈에 보이는 육신의 세계도 있지만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도 있다.

예를 들어 여기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고 가정하자. 땅 위에 보이는 나무만이 전부가 아니라 땅 속에 묻힌 보이지 않는 뿌리도 있는 것이다. 사실은 그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기에 그 나무는 생존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도 꼭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것들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간다. 그것을 부인하거나 무시하고서는 인간의 문제가 풀리지 않게 된다. 며칠 전 어떤 글을 읽다 보니까 Reality Dreams란 제목의 글이 있었다. Reality는 현실이란 말이고 Dreams는 꿈이란 말이다. 이 두 개의 단어는 서로 상반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 내용도 그런 말로 끝맺고 있었다. 'Realty is very much connected with dreams.' 우리 인간의 현실이란 우리의 꿈 세계와 상반되면서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육신 생활과 영적 생활의 관계도 꼭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현실 것으로만 풀려고 하기 때문에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 얽히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는 가끔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영원을 터치해야 된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예수님도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는데 저는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 하늘에서 풀 때 땅에서도 풀리게 되는 것이다.

불란서의 정치 철학자 알렉스 데 루키 빌리는 미국이 어떻게 대영제국을 이기게 되었는가 하는 비결을 알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다. 그는 지리적 요건, 지하자원의 풍부, 좋은 대학, 합리적인 헌법 등에 대해서 샅샅이 연구했다. 그러나 특별한 비결을 발견치 못했다.

얼마 후 그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다가 [의의 불길]이란 설교를 듣고 미국이 대영제국을 이기게 된 가장 큰 비결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미국의 위대성을 당시 미국 사회가 지닌 영적 힘에서 찾은 것이다. 한 개인이나 한 사회를 막론하고 그 개인과 그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어 나가는 힘은 보이는 물질 세계의 힘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3)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배우는 생활에서 터득된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보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배우므로 구원에 이르는 참 지혜와 가장 고귀한 인생의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케 된다. 우리가 욕심이나 시기 질투심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삐뚤어지게 보고 바른 판단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사심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워진다. 성령님은 지혜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삶에 지혜가 함께 한다. 

그러나 더 귀한 것은 그 묵상하고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때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다 끝낸 다음 결론으로 집 짓는 자의 비유를 들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건축가가 있는데 하나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요 다른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라고 했다. 누가 그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인가? 그것은 말씀을 듣고 행하며 실천하는 자라고 했다.

일본의 내촌감상 선생도 참 앎에 이르는 길에는 3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① 지식, ② 총명, ③ 지혜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관찰적 지식을 말한다. 사물을 보고 그 실상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총명은 사물과 사물의 관계성을 아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혜는 실체적 앎을 뜻한다고 했다. 생활 속에서의 앎, 말하자면 인생을 바로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 앎이 곧 지혜란 것이다.

이렇게 지혜는 삶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과 삶 속에서 생활화 할 때만이 참 지혜가 되고 산 지혜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지혜는 쇼윈도우 속에 진열된 진주나 보화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면서 자기들이 가진 보물을 자랑했다. 어떤 사람은 보석 반지를, 금화를, 로렉스 시계를 그러나 한 사람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후 해적들이 배를 겁탈해서 그들은 가졌던 보물을 다 빼앗겼다. 그러나 검소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그의 교양과 인격이 인정받아 스승으로서의 명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지혜가 우리 삶을 다르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영국 중부지방에 가면 코벤트리라고 하는 소도시가 있는데 그곳 중심가에는 특이한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몸에 실오라가 하나 걸치지 않은 금발의 여인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부터 900년전 코벤트리의 성주는 라이세스터 백작이었는데 그에게는 고다이바라는 아름답고 총명한 부인이 있었다. 시민들은 아름답고 품위가 있는 그녀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다.

그러나 남편은 폭군에 가까울 정도로 시민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시민들을 괴롭혀서 원성을 샀다. 이러한 원성을 들은 아내가 하루는 남편 백작에게 시민들의 세금을 덜어줄 것을 애원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를 골탕먹일 생각으로 옷을 벗고 말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외로 부인은 그것을 동의했다. 그 부인은 시민들에게 자기가 시민들의 세금을 덜어주기 위해 옷을 벗고 말을 타고 돌테니까 창문을 닫고 내다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날 정말 그렇게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았다. 시민들은 모두 그렇게 협력하였다. 남편도 아내의 용기에 감동을 받았다. 남편도 약속대로 세금을 내려주었다. 그녀의 그러한 용기와 지혜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녀의 시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참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는 십자가 밑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지혜로 여러분의 삶을 참으로 후회 없고 값지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특별히 이번 부흥회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깨달으며 여러분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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