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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부르시는 주님 / 마 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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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를 부르시는 주님
본문 : 마태복음 9:1~13
임정석 목사  [[email protected]]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는 병원(病院)도 많습니다.
그 많은 병원 가운데서도 가끔 보면... 특별히 소문난 병원이 더러 있습니다.

"그 병원에 가면 아주 유명한 의사가 있는데... 그 의사는 디스크를 아주 잘 고친대..."
"그 병원은 화상(火傷) 전문병원이어서 불이나 물에 데여 아주 심각해도.. 다 고친대..."

이렇게 특별히 잘 고친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가보면 환자들이 항상 대기실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은 보통이 넘는 것 같습니다.

산 위에서 산상수훈(山上垂訓)을 마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주로 병자들을 고치신 일이었기에
가는 곳 마다 환자들은 몰려들었고... 줄을 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산(下山) 하자마자 고치신 질병을 보면.. 문둥병(마태복음 8:1-4),
중풍병(8:5-13), 열병(8:13-15), 귀신들린병(8:16-17).. 등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연일 모여 들었습니다. 

요즘도 어떤 의사가 이렇게 문둥병 중풍병 열병 귀신들린병 등
여러 가지 병을 다 치료하는 의사가 존재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메어 터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 속에서 그렇게 고치셨으니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예수님 주변은 항상... 밀고 댕기는... 에워쌈만이 있었습니다(마태복음 8:10, 18).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각종 질병을 고치셨을 뿐만 아니라..
이 환자가 앓고 있는 중풍병도 말씀 한마디로 고치셨다(8:13)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른 사람의 중풍병을 말씀으로 고친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중풍병도 틀림없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점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9:2).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지난번 처럼(8:13)...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말씀 한마디로 고쳐주시지 않고...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자(小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특히 그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서기관들이 있었는데(8:19, 9:3)
그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意圖)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지난 번 처럼 병이나 고치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별소리를 다하는군!!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그런 말은 하나님이나 할 수 있는 소리인데... 감히!!"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생각하는 서기관들의 생각까지 다 아셨습니다.
꿰뚫어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서기관들은 정곡을 찌르는 이 말에 움찔합니다.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人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자, 서기관들이 어떠했겠습니까?
놀라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으리라... 믿어집니다.

그때 다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이 하신 일은 좋은 일은 좋은 일이었지만... 서기관들은 솔직히 속이 좀 불편했습니다.
'저 사람이 우리 속을 긁어?.. 어디 두고보자!... 얼마나 가나....'

일이 이렇게 되면... 병 고치는 일이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하셔야 한다고 믿고 있는 죄의 문제를 다루는 일을..
좀 천천히 하셨으면.. 그들과 덜 부딪쳤겠지만...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은 거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다가.. 한 사람을 부르게 되는데..
그는 세관(稅關)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는 마태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우리는 여기서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나를 좇으라' 하는 그 말 한 마디에.. 예수님을 좇았는가?
그는 자신의 직업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쉽게 버려도 되는 것인가?"

여러분은 이러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세리도 여러 류형의 세리가 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마태처럼... 세관에 앉아서 세무일을 보는 세리가 있고
집집이 돌아다니며 직접 세금 거두는 세리가 있고
이러한 세리들을 총괄하는 세리 즉 세리장(稅吏長)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류형은 어떠하든... 세금과 관련되어 일하는 사람들을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보았느냐?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고.. 죄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이러한 것을 느끼게 하는 말씀들이 있는데
10절을 보면..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하면서
세리와 죄인들을 같이 놓고 취급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결정적인 말씀은... 13절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것을 보면 마태는.. 예수님께서도... 의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하산(下山)하신 다음에... 
계속 병자나 치유하고 다녔으면 인기가 하늘을 치솟았을 것인데...
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렇게 말씀 하시는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병이나 치료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물론 병을 치료하는 것도 사역의 한 부분이었기는 하였지만...
궁극적인 사역은 그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었기에...
이점을 더욱 더 분명하게 해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관에 앉은 마태도 부르시면서.. "나를 좇으라" 말씀하신 것이었는데
마태가 두말 않고... 얼른 따랐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오늘날 어떤 사람에게 "당신 그 직장 그만두고 나오지! 하거나.. 그 직장 좀 옮겨보지 그래!"
했다고 해서.. 그가 금방 사표(辭表)를 내거나..
아니면 잘 다니던 직장.. 안정된 직장을 금방 옮기는 것이 쉽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친구의 말 한마디에... 사표 내고 회사를 나오거나...
직장을 옮겼을 때... 그것은... 다 나름대로 생각이 그동안 있었기 때문이지...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금방 사표 내거나 직장 옮기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마태도 그렇습니다.

그 직장이 어떤 직장입니까?
먹고 사는데 지장없는 직장입니다! 소위 안정된 직장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직장,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태 자기 자신만이 안고 있었던 고민이요 문제였다고 보는데...
여하튼 그는 그렇게... 그 직장을 뛰쳐 나옵니다.

그리고는 성경에는 없지만...
아마도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자유와 기쁨을 맛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그 다음에 그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모두 다 집에 초대해
잔치를 벌린 것을 보아서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내용이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것이 아니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이 잔치가 어떤 잔치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큰 잔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5장 27-32절)

아마 마태는 나름대로 다 생각이 있어서.... 큰 잔치를 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대받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가 앉았으며
같이 식사했습니다.

이 모습을 바리새인들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한 마디 합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태복음 9:11)

예수님께서 모를리 없었습니다.
가만 계셔도 되지만.. 아마 그때 가만 계시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셨던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자 생각해 봅시다. 이 예수님의 행동, 몰라서 그 집에 가서 앉았습니까?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거기 가 앉아서 식사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른지 몰라서...
그렇게 거기 갔으며.. 그 자리에 앉아서 식사했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아셨습니다!! 다 아시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아시면서도 의도적으로 하신 것이라면!!..
그 의도(意圖)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을 부르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마태복음 9:13)
그래서!! 죄인의 자리에 가 앉으시고!!.. 죄인과 함께!!... 식사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의 일화(逸話)입니다.

한번은 그 목사님께서 서울 KBS 방송국 신우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서보니 그 방송국의 부사장이 장로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은 내심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방송국 부사장이 장로님이셨기 때문에
복음 증거하는 일이 여러모로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상한 얘기를 이 부사장 장로님께 듣습니다.
"목사님, 방송국 부사장 일이 얼마나 바쁜지 교회 장로직을 잘 감당할 수 없어서
방송국 부사장 자리를 아무래도 사표 내고.. 주님 일에만 전념해야할까봐요...."

그때 이 목사님이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오늘 말씀처럼...
"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태도 세관 박차고 나와 풀타임으로 주님 일 했는데... 그렇게 하시죠" 그러지 않았습니다.

정반대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로님, 차라리 교회 장로직을.. 사표 내시죠!!"

전혀 엉뚱한 대답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장로직이 성직(聖職)이고 천직(天職)인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소 목사님 생각은... 성직이며 천직이란 교회 안에서만 행해지는 직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향한 직분이라는데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만한 자리에 오르기도 힘드는데.. 그 자릴 박차고 나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더더욱 주님 증거하며!!... 꽃 피우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기도 하고.. 죄인과 함께 앉아 식사하기도 하시는..
그 깊은 의도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또 조금 전에 목사님께서 대답하신 그 대답
"장로님, 차라리 교회 장로직을.. 사표 내시죠!!"
이 말의 깊은 의미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님이나 목사님이... 한 죄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정말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은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나 목사님은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그들을 매도하고... 손가락질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왜 그들을 향하여 다가가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 부르고..
그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고... 그러는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도!! 아브라함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즈러졌고!! 그래서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영혼은 고귀한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예화(例話)를 잘 드는 명강사(名講師)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떤 세미나에서 열변(熱辯)을 토하다가 주머니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어
높이 쳐들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이 수표가 얼마짜리 수표인지 아십니까? 아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 들었습니다.

그 다음 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10만원 짜리 수표를... 여기 계신 분들 중 한 사람에게 드리려고 합니다.
자, 내 손을 보십시요"하면서.. 갑자기 그 수표를 막 구기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강사는 한참 그 수표를 구기더니.. 그 구겨진 수표를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이 수표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 강사는 다시 그 수표를 땅바닥에 내 던지고는... 구둣발로 막 밟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사는 완전히 구겨지고 더렵혀진 그 10만원짜리 수표를 다시 높이 쳐들고 또 묻습니다.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때 이 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사람의 영혼은.. 마치 이렇게!!!
구겨지고 더렵혀져도!!!... 여전히 고귀한 것이고.. 여전히 존귀한 것이며..
여전히 가치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부르시고... 죄인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를 부르신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보면 「부르심과 영접」이라는 소주제(小主題) 아래 있는 찬송이 313-329장
총 17장입니다.
그중 설교 전에 함께 부른 318장의 찬송가 제목은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죄인 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어떤 소리냐? "부드러운 소리"라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 죄인들을 부르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를 간절히 오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간절히 부르시며.. 부드럽게 부르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비록 구겨는 졌고 더렵혀도 졌지만.. 그래도 쓸모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오늘도 그렇게 부드럽게 부르시고 계시며.. 간절히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5장 24절입니다.
"너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가운데 등장하는 두 인물..
한 사람은 이름 모를 중풍병자이고..
한 사람은 이름이 밝혀진 세리인데..
이 이름 밝혀진 세리 마태가 누군가 하면 바로!!..... 마태복음을 쓴..
마태 자신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그렇다면 이 마태복음 안에서의 이 사건은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간증(testimony)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간증입니까?

내가 과거에 이렇게 더러운 죄인이었다는 간증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더러운 나를 사랑하셔서...
찾아오시고.. 불러주신 예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귀하고 놀랍다는.. 그러한 간증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 세리 마태와는 다릅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을 자격이 있었을른지도 모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어부 출신입니다.
그들은 바닷가에서 고기 잡다가 혹은 그물 깁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손가락질 받고 살던 마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주님 앞에서... 더욱 감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나를 찾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제자 삼아 주셨다!!...
눈물 흘리며 감격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자기를 부르시는 그 한마디에!!... 나를 좇으라는 그 한마디에!!...
당장 좇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주님을 따르면서... 점점 알아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태복음에서 자기의 치부를 다 드러내 놓고.. 이렇게 간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 응답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한 응답은.. 주님께 가까이 가는 응답으로
한 응답은..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멀리 가는 응답으로....

나는 어느 쪽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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