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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사를 개발하라 / 롬 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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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일목사 (태은교회)
은사 개발을 하라
로마서 12:6-8


아주 소박한 작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장원에 어느 날 어린 아이 하나가 할머니와 함께 들어 왔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아이와 할머니였습니다. 아이가 입을 열고 할머니 파마 값이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미장원 주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정가보다 조금 싼값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나가자고 했고 어린아이는 아쉬운 눈빛으로 미장원 아주머니 얼굴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미장원 아주머니가 왜 그러냐고 묻자 어린아이는 손에 든 저금통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할머니 파마해 드리려고 일년 동안 모은 돈이 7천5백 60원밖에 안되요. 아주머니, 이것으로는 안되지요."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몇 년 전에 집을 나가서 할머니가 자기를 키워 주시는 데 수고하시는 할머니 파마해 드리고 싶어서 돈을 모았는데  7천5백 60원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장원 주인 아주머니는 그 아이의 착한 마음에 너무 감동이 되고 감격이 되어서 돈을 받지 않고 그 할머니의 머리에 파마를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자기가 할머니 머리를 무료로 파마를 해 드리겠다. 그 여인에게 그 날은 온 종일 미장원에 감동과 감격이 파도친 하루였습니다. 그 감동은 그 날 하루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장원 아주머니는 그 아이의 집을 찾아 가 보았습니다. 너무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언니와 함께 그 아이와 할머니를 조금씩 이라도 돕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은사를 개발하며 살아야 한다는 설교를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효선이라는 그 어린아이는 은사를 아름답게 개발하며 살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고 유은영이라는 그 미장원 아주머니도 자기의 은사를 너무나 아름답게 개발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효선이는 고마워 할 줄 아는 자기의 마음을 아름답게 개발하고 표현했습니다. 고마워 할 줄 아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고귀한 은사입니다. 컴퓨터를 잘 하는 기술만이 좋은 은사는 아닙니다.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그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의지는 더 귀중한 은사입니다. 유은영 미장원 아주머니도 착한 마음에 감동할 줄 아는 자기의 순수한 감성을 아름답게 개발하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파마하는 은사를 돈 받지 않고 무료로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순수한 감성을 개발하는 대신 짓밟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효선이와 유은영씨는 하나님이 주신 착한 심성을 개발하고 표현하므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훈훈한 감동을 전해 주었습니다.

기술만이 달란트, 은사는 아닙니다. 기술보다 더 귀한 은사는 심성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착한 심성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고귀한 은사입니다.

오늘 이 세상을 떳떳하게 사는 방법중에 하나는 기술을 갖되 특별한 기술을 가지면 남부럽지 않게 살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자신만이 갖고있는 전문성이 있다면 큰 능력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은사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은사입니다. 여러분 판단에 이 태은 공동체에서 서로 기쁨을 주고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공동체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며, 서로 화합하며 서로 세워주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어떤 공동체에서 나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다른 이를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사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역을 하고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이 있어요.
내 안에 기쁨이 있어요. 은사입니다. 결과가 다른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은사입니다. 직분이 은사입니까? 아닙니다.
내게 있는 직분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감사가 있었어요. 은사입니다. 내게 있는 직분으로 형제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속상하게 만들었어요. 은사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협동하게 만들고, 감사하게 하고, 신나게 하고, 감동을 주고, 하나되게 합니다.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런 은사가 활발하게 개발되기를 바랍니다.


은사 개발과 관련해서 몇 가지 기억해야 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들을 골고루 나누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은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가지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은사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 즉 설교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섬기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교사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권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구제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다스리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다스리는 은사는 목사나 전도사님들, 장로님을 말합니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말씀읽고 예배드리는 일에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장로님과 전도사님들이 분명히 알아야 해요. 영적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장로님도 불행하고 목사도 불행해집니다.

본문에 열거된 모든 은사가 우리 교회에 활발하기를 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권위하는 은사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너무나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에 익숙한 우리들은 다른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다 함께 있는 대그룹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숨깁니다. 드러내놓아 봤자 도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여러분에게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염려와 두려움과 의심의 폭풍이 때때로 나를 쳐서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겁니다. 삶의 근심과 중압감들이 우리를 지치게 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케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이겨나가십니까?

다른 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홀로 힘들어하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방책이 자신만의 고립된 영웅주의가 아닙니다.

찬송가 399장2절-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세상 염려 내게 엄습할 때에 말씀으로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믿고 굳게 서리라.' 세상염려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약속,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기억나도록 격려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권사님들과 속장님들은 이 은사를 활용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작은 소그룹인 속회나 모임에서 권위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속상한 것은 일대일이나, 제자훈련, 또는 속회에 들어와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찾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소그룹에 속하지 않겠다는 것은 목회적 관심과 보살핌과 격려와 나눔이 필요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도 돕는자가 있을 때 잘살아가게 됩니다. 관계가 실패된 사람은 삶이 힘겹습니다. 노인이 될 때 제일 힘든 것이 무엇입니까?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힘든겁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주님의 몸의 한부분이 됩니다. 고전12장에 '우리가 한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한몸으로 구성된 사람처럼 살아가고, 행동하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우리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임원교육에 안오셔서 안타까웠습니다. 임원들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본보기입니다. 사역자들이 직접 본보기가 되어 공동체를 이끌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좋은 교회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모범이 되는 모델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태은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은사가 풍성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은사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은사란 굉장한 기술이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은사는 가슴과 입과 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기 손은 물론 기술과 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12장에 나열된 은사들은 대부분 가슴과 입과 손을 사용하는 은사들입니다. 우리들의 은사를 개발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없는 이들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몸이 있듯이 분명하게 은사는 있습니다. 모르십니까? 이번 주중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찾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은사 개발의 목적은 이웃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한 은사 개발이라면 그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명예를 위한 은사 개발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 소중한 가치를 아무리 말한다해도 교회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알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역할을 분담하고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3).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여러 가지 은사들을 주신 목적은 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은사는 결국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한 교제입니다.
교제는 우정, 친교라고 말할 수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성경에서 보면 '코이노니아'에서 유래된 말인데 원뜻은 서로에게 생명을 준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태은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헌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에서의 친밀한 관계는 공통취향, 서로에 대한 호감, 즐거움 등으로 형성됩니다. 만약 교회에서도 서로 모여 웃고, 떠들고, 기분좋은 활동만 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안에서 영적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작은 태은공동체 안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모습, 주고받는 모습, 서로 충고를 주고받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어려운 진실을 고백하고 기도하는 체험이 있을 때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모습이 세상에서 나누는 교제와 비교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우리는 모두 은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한 사람은 현세와 내세에서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은사를 잘 개발하여 사용하면 이웃이 행복해 지고 내가 행복해 지고 그리고 주님의 교회가 아름답게 자랍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사도 바울과 늘 함께 다니면서 자기들에게 주신 은사인 따뜻한 가슴과 부드러운 말과 천막치는 손을 개발하고 사용하면서 바울을 기쁘게 했고 만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봉사한 교회들을 아름답게 성장시켰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손발이 다 닳도록 아니 목이라도 내 놓으려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주신 모든 은사들을 마음껏 사용했는데 그것은 결국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과 축복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저는 연초에 말씀드렸듯이 올해의 목회 방향은 양육과 섬김입니다.
양육이 무엇입니까? 우리 태은교회가 피상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주님의 제자와는 거리가 멉니다. 쉽게 말해서 태은교회 교인이 몇 명이나 모이나? 이번 주일에는 몇 명 모였지? 누가 제일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까? 차 목사와 전도사님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사실 별 관심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우리 교회가 몇 명이 모이는지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변화된 삶에 관심이 있습니다.
과연 태은교회 교인들이 예수의 제자답게 행동하고 말하고, 다른이들의 삶에 유익을 주는가에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익함을 찾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찾아야 합니다. 교회안에서부터 찾으십시오. 그 다음에 밖으로 나가세요. 그 사람은 틀림없이 세상에서도 성실하고 인정받는 사회인일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를 개발하시기 바랍니다. 찾기를 바랍니다. 은사는 헌신을 전제로 나타납니다. 내가 헌신되지 않고 은사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헌신이 무엇입니까? 때로 사람들을 우리집에 초대하고, 어떤 사역을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난 이후에 오는 느낌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사로 헌신하셨다면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후회감이나 피곤함이 아니라 만족감,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럴 때 그 모임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은사를 활용하여 이 행복감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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