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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삶을 위한 기준 /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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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을 위한 기준(시1:1-6)
한남제일교회 오창우 목사


시1:1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로또 복권 사셨습니까? 한번 맞으면 700억이라는데, 대단하지 않습니까?" 온 나라가 로또복권 때문에 난리이다.
한번만 맞으면,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이 다 맞는 것이 아니고, 단 한 사람만 받는다. "그것 맞아서 잘 된다?" 잘 될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희생해서 그 사람만 잘 사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온 나라 백성이 로또복권에 기준을 세우고 일은 안하고 그것만 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절대로 복이 아니다.

오늘은 `행복한 삶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기준`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무엇을 구별하기 위해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일정한 원칙이나 수준과 대상"을 의미한다. "제 얼굴이 하얗습니까? 까맣습니까? "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기준을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군인들이 줄을 설 때는 아무렇게나 서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되는 사람을 먼저 세우고 그에게 맞추어 줄을 서게 함으로 질서정연하게 되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에도 기준을 잡는 다림줄 또는 머릿돌에 의해서 집을 지어야 바른 집을 짓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법과 규칙 이외에 윤리와 도덕이라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에 의해 움직이고 이것이 지켜지는 사회가 선진사회요, 좋은 사회이다. 반대로 이 기준이 권력이나 돈에 의해서 무너지거나 지켜지지 않는 것을 부정부패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기준에 의한 행복한 삶의 원칙을 갖고 생각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물론이요, 우리 자신도 구별되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행복한 삶을 위한 기준을 찾는 중에 은혜를 나누게 되길 바란다.
행복한 삶의 기준은 1.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고 살고 2.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1.심겨진 나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표현을 보자. 즉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는 것이다. 심겨진 나무는 자연적으로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농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심은 나무를 의미한다. 누가 나무를 심겠는가? 농부가 심는다. 왜 심는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맺기 하기 위해서다. 농부가 과실을 맺기 위해서 과실수를 심었다는 것이다.

순서적으로 따지자면 잎이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라고 했다.
열매를 따겠다는 목표는 분명하다. 모든 과실수나 벼도 마찬가지다. 열매를 맺으려면 잎이 마르면 안된다. 한번 잎이 마르면 다시 물을 주어도 잘 자라나지 않는다. 농부는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 관심을 갖는다.

잎이 마르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1. 기후가 안 맞으면 마르게 되어 있다. 2. 농부가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마르게 되어 있다.
성경에는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고 되어 있다. 시냇가에 심어서 마르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무슨 시내가 있는가? 성서학자들은 포도나무 과수원에 웅덩이를 깊이 파고 물을 많이 준 것을 시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심겨진 나무는 열매맺는 목표가 있고, 그 일을 위해서는 농부가 절대로 잎을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 성경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한다. `형통`은 `평탄`이 아니다. 찬송가 434장 후렴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고 했다. 형통이라는 것은 무슨 일이든지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가물고 홍수가 든다 할지라도 농부가 있기 때문에 다 감당할수 있는 것이다. 잎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게 될 것이다. 홍수가 나면 헤쳐서 물이 쌓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농부가 살게 하는 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님이 커다란 고구마를 하나 갖고 나왔을 때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그 고구마 종자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김용기 장로님은 이 고구마는 특별한 종자가 아니라 사랑을 먹고 자란 고구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고구마밭에 나가 고구마 줄기를 하나씩 쓰다듬으며 "잘 잤느냐?"하고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었다는 것이다. 사랑을 먹고 자란 고구마가 크게 자랐다는 것이다. 사랑을 먹고 자란 꽃들은 다 잘 자란다.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도 사랑을 먹으면 다르다.

지난 주간 어느 신문을 보니, 빵도 태교음악하듯이 클래식을 틀어주면 반죽이 잘된다고 한다. 사랑먹고 만든 반죽이, 그 빵이 맛있다.
사랑먹고 큰 나무가 잘 자란다. 그러기 때문에 심겨진 나무는 행복하다. 농부가 있기 때문에. 그 농부가 잎을 마르게 하지 않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형통하게 한다. 심겨진 나무는 농부가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는 어떠한가? 요15:1을 보자.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우리의 농부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니이 내 농부이시다. 참포도나무는 예수님이다. 시편에는 내가 심겨진 나무이고 하나님이 농부시라는데, 예수님이 포도나무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요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
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
도 할수 없음이라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나는 가지이다. 아까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고 했다. 시냇가가 무엇인가?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 곳에 있는 나무는 잘 자라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시냇가는 누구인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시냇가이다.
우리가 그분에게 붙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살 길이 있는 것이다.

주님께 붙어있는 가지는 농부되신 하나님이 키워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존재가 바뀌었다. 우리의 가지는 돌감람나무 가지이다. 돌배이다. 그러나 참감람나무요, 참배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줄기가 붙으면 그때부터 내 신세가 바뀌는 것이다. 그 전에는 돌배를 맺었으나, 예수님께 붙은 후부터 좋은 열매 맺는 가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신분이 바뀐다. 어떻게?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진 천국백성이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신분이 바뀌었다. 우리가 맺는 열매,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가지는 줄기에 붙어있고, 줄기는 뿌리로부터 양분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누구에게 달려있는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심겨진 나무는 하나님이 나를 심으셨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 내가 이 세상에 우연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시냇가이신 예수님께 붙여서 자라게 한 심겨진 나무요, 또 예수님께 가지인줄로 믿는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잎이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할수 있다.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6)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에게 열매 맺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는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가? 성도가 행복한 이유는 하나이다. 하나님이 내 농부이시기 때문이다. 그 분의 보살핌과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행복한 줄로 믿는다.

욥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 손에 있는 사람은 행복이 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에 어떻게 했는가? 저 사람은 아무리 키가 크고 힘이 세어도 할례받지 않은 자이다. 나는 할례자다.
창17장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희가 이 사실을 믿으면 할례받으라. 할례받았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거니와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갖고 나아가노라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높이시고 승리케 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심겨진 나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사람들. 농부되신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만사형통케 하시고 우리를 자라게 하며 열매맺게 하시는 놀라운 축
복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바란다.

심겨진 나무의 자부심을 갖고 살자. 청년들이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2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2

우리는 그 사랑받고 태어났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이 알게 하고 여러분이 사랑속에 살아가는 것을 알고 여러분에게 증거하도록 나를 세우신 줄로 믿는다.
옆사람 손을 잡고 "심겨진 나무십니다.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열매 많이 맺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 보자.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함께 하시길 바란다.

2.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지키면서 산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지키며 사는 것이다.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한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법칙이다.
① 법칙은 지켜야 한다.
안 지키면 벌금을 문다.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도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져야 한다.
그런데, 기분 좋으면 해가 뜨고, 기분 나쁘면 해가 안 뜬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법칙이라는 것은 꼭 따르고 지켜야 한다.

시편기자는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오직이라는 것은 다른 길이 없고, 단 하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율법이 두 번 나온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시편기자는 율법이라고 표현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지키고 살지 않는 사람은 악인이라는 것이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편기자의 신앙의 고백이다.
② 율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라`이다.
`토라`는 흐르는 물이다. 물이라고 하는 것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꼭 있어야 한다. 흐르는 물이라고 하는 것은 나 자신뿐 아니라 대대로 자손에게도 흘러야 하는 것이다. 한번 먹고 없어지는 물이 아니라 계속 되는 물이다.
나뿐 아니라 내 후손도 이 말씀을 율법으로 지킬 때에 살아가는, 생명의 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법칙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물이요, 안 먹으면 죽는 그런 물이라는 것이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지키는가? 지키면 복이고, 안 지키면 악한 사람이고 망한다고 생각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물이 되어서 나뿐 아니라 대대 후손을 살게 하는 축복의 물로 생각하는가?

이번 설에 세배 드리고, 혹은 세배를 받고 덕담을 받거나 할 때에 무슨 말을 듣는가? 행복하게 잘 살라고 하면서 한 마디 던질 때 무엇이라고 하는가? 로또 복권 맞으라고 했는가? 과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회개해야 한다.
건강하면 잘 살 것 같은가? 공부 잘하면 잘살 것 같은가? 돈 많이 벌면 잘 살 것 같은가? 누가 돈을 주시고 누가 건강 주시는데, 누가 지혜를 주시는데?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했는가? "너는 심겨진 나무다. 하나님 말씀을 율법으로 지키며 살면 네게 복이 있다. 그렇게 살아라." 이렇게 말씀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이것이 신앙이다. 우리 대대로 전해져야 할 말씀이다.
"미리 좀 말씀하시지, 설 지나고 말씀하시면서...왜 야단을 치시는지." 그만큼 똑똑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결혼한 신랑신부가 와서 절을 할 때 새 가정에 주는 첫마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건강해라. 아들딸 낳고 잘 살아라." 누구 마음대로인가? "너는 심겨진 나무다. 하나님이 너희를 만나게 하셨다. 하나님 말씀을 율법으로 알고 생명물로 알고 지켜야 할 법칙으로 알고 그렇게 살면 잘 살것이다.
꼭 그렇게 살아라." 꼭 그렇게 하길 바란다.

수1:1-9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복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하면 그 땅을 정복하고 잘 살 것인가를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1: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5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
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바라보며 열두정탐꾼이 다녀온 후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으나 -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동안 고생을 했고 그 땅을 향해 가게 될 것이다. - 하나님은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명한 모든 율법을 지켜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지키고 네 길을 평탄케 하고 네가 형통하게 되리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 아니고 - 이 말씀은 꼭 지켜야 하는 율법이다. 이것을 안 지키면 악한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생명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무거운 것만이 아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은혜가 있음을 믿기 바란다. 율법을 지키면서 살되, 율법주의자가 되서는 안 될 줄로 믿는다.
시편1편을 보면서, 이 말씀은 안 믿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고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들처럼 살면 안되겠다는 것이 이 시편기자의 다짐이다.

1절 말씀에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라고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신앙인들이 안 해야 될것을 말하고 있다.
시1:1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것은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악인들의 꾀`,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지키지 아니하고 생명물로 여기지 아니하고 꾀부리는 사람이다. 예수님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한 부양의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안 지려고 이 말씀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고르반"이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부모에 대한 책임을 안 져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예수님 가운데 있었다고 하면 얼마나 역사적으로 깊이 내려왔겠는가?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안 지고 형제에 대한 책임을 안 지고 나만 복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너희들이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는가? 악인들의 꾀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살았다. 제사장과 짜서 속이는 것이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고치자, 또 그들은 예수님에게 어떻게 안식일을 범하느냐며 죄인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죽어가는 죄인을 살리는 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죄인가 하고 공박하신다. 너희들이 만약 너희 집의 소나 돼지가 죽게 되면 안 살리느냐?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은 말씀을 자기에게 유익하게 해석하고 남을 정죄하는데 사용한다. 악인의 꾀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판단한다.
말씀을 갖고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자기 유익에 쓰는 것, 오늘 이 시대가 악한 것이 무엇인가? 소위 법을 알고 권력의 구조를 아는 사람들이 권력가지고 법을 사용해서 공의롭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유익에 쓰는 것이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쓰기 때문이다.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하나님 말씀을 자기 유익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여기고 그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지, 남을 정죄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 하자.
`즐거워한다`는 기대를 갖고 소망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배드리기 전날 토요일은 주의 날을 예비하는 날이다. 적어도 어려서는 그랬다. 아버지가 장사를 끝내고 오시면 꼭 목욕탕에 간다. 예배당 가기 전에 목욕탕가고 이발소에 간다. 그리고 손수 양복을 데리신다. 넥타이와 주일 헌금을 준비해 놓고 예배당에 가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즐겁고 복된 것임을 그 때 알았다. 어려서 크면서 그것을 보았다.
절기헌금과 헌금을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복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마음이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오는 것. 예배당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예배시간에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이보랴, 예배 드리랴, 그러나 설교말씀이 전부가 아니고 예배당에 예배드리려 준비하는 시간부터 예배드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사모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말씀을 잘 지킬까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묵상이란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사도행전 13:11에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다고 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 말씀이 여러분에게 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금요일에 본문을 갖고 미리 성경공부를 한다. 교재가 나와 있다. 지혜로운 분들은 구역공과를 보면 어떤 순서로 설교를 하는지 다 나와 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말씀이 묵상이 되고 지켜질까를 생각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미리 한다.

수술하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론 수술을 잘하는 의사도 필요하고 같이 수술을 하는 스텝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수술받을 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가? 마취제다. 마취제가 없으면 고통속에 다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취제인 클로로 포름을 발견한 사람이 심슨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수술을 하면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았다. 최초로 인간의 몸을 수술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아담의 갈비뼈를 꺼내실 때에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에 했다.

사람을 잠들게 한 다음에 수술을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발견한 물질이 클로로 포름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사업의 지혜를 주시고, 공부하는 사람에게 공부의 지혜를 주시고, 직장생활하는 사람에게 직장생활 잘하도록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교회생활 속에 신앙생활 잘하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지난 주 책방에 나갔다가 니시모또 세히치로란 사람의 신앙일대기를 쓴 `성서를 따라간 장사꾼`이라는 책을 보았다. 무슨 말인가 하고 봤더니, 세히치로란 사람이 시골 가난한 집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 한 곳에 두달 이상을 못 있었다. 직장에서 돈을 벌어서 술값으로 다 탕진하고, 못된 짓하고, 주인 몰래 물건을 팔아 먹는, 그런 삶을 사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이 사람이 장기와 바둑판을 제조하는 업체의 일인자가 되어 부자가 되었다. 일본기독실업인회의 회장도 되고 한국의 교회도 세우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는 일을 했다.

이 분의 간증을 다른 사람이 썼는데, 제목이 `성서를 따라간 장사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율법으로 생각하고 법칙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가 예수를 믿고부터 꼭 주일을 성수하겠다. 난 주일이 되면 예배당에 가는 것을 잊지 않겠다. 이 제조업회의 회원들이 수련회를 가면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데, 주일날 따로 나와서 예배당에 갔는데, 목사님이 혼자서 난롯불을 쬐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사람들이 마을의 축제에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께 나는 꼭 예배를 드려야 하니, 예배를 드려줄수 있겠냐고 묻자, 목사님이 급히 가운을 입고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자기 표현에 의하면 가장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주일 성수를 꼭 하고, 자녀들을 낳은 후 자기 자녀들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 각서의 내용이 무엇인가? 아버지가 믿는 주님 나도 믿고, 나도 주일성수하고 믿음 안에 잘 살겠다, 그리고 내 후손들에게도 이것을 전하겠다는 내용이다. 맨 마지막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복을 증거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으로 삼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꼭 복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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