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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군대 같은 교회 / 겔 37:1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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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에스겔37장 1-10절
설교제목 : 큰 군대 같은 교회
설교 : 행복이 가득한 교회 (김영환 목사)


화창한 봄날에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 예배드리게 되서 참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을 보니 내 마음이 화창한 봄날 같아집니다.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이 사회에 우리 성도들이 존재한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사회에 교회가 존재한 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시 말하면 교회가 몇만개가 되고 교인이 몇천 만명이 된다고 하는데 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렇게 갈수록 어두워만 가는가?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시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변명해 보려고 애쓸지도 모릅니다.
주님 세상은 원래 악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기를 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어 지겠습니까?
우리만 예수 잘 믿고 천국가면 됐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죠. 라고 애써 외면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교회 안에서의 빛이 아니라 "세상"에서 빛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나만의 종교"가 아니라 "공적인 책임을 가진 종교"라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그리고 교회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무슨 책임
"우리 사회의 어둡고 아픈 상처를 끓어 앉고 치유해야할 책임"

여러분 그러면 이 사명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저와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 이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들을 때 이런 관점에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말씀 전체를 이끌어 가는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여러분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이 대체 무엇일까요?
또 하나님의 권능이 내게 임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에스겔 이라는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망했던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바로 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골짜기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것도 골짜기 한 복판으로 데려갔습니다. 가장 깊은 곳으로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다.
하나님이 능력이 내게 임했으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아주 멋진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아주 화려한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아주 거룩하고 특별한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 에스겔 선지자를 데려간 곳이 어떤 곳입니까?
해골이 가득찬 깊은 골짜기였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내가 어느 골짜기를 가게 되었는데 해골이 널려 있는 거예요.
그것도 한두개가 아니고 골짜기 전체에 해골이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시겠습니까?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공포에 떨 거예요.
그런데 오늘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권능이 임해서 간 곳이 바로 이런 곳이라는 것입니다. 해골이 가득한 처참한 곳 징그러운 곳 절망이 넘치는 곳
에스겔 선지자가 제 정신이라면 스스로 그런 곳에 갈 이유가 전혀 없을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이라면 제정신으로 그런 곳에 갈 수 있겠습니까? 절대 갈 수 없을 거예요.
에스겔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정신이라면
에스겔은 분명 가기 싫었을 것입니다. 무섭기도 했을 것입니다. 저라도 그럴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니까 에스겔은 순종하며 따라 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다는 것을 겉으로 보여 지는 현상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무슨 예기냐?
하나님이 권능이 임하시면 능력이 나타나고 병든 자가 벌떡 벌떡 일어나고 방언을 하고 갖가지 표적이 나타나고 등등
물론 이것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권능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 가는 것임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능력 받았다." 라는 말을 합니다.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혀 주옵소서." 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 슈퍼맨이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산을 뒤엎고 불을 토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능력 받는 것인 줄 착각합니다.
여러분 정말 능력 받은 종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에스겔처럼 온전히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 따라 그곳이 골짜기일지라도 뼈들이 널려 있는 골짜기로 인도하실지라도 겸손히 순종하며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 충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생각하는 것이 철저하게 변화되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성령충만은 어깨와 목에 힘이 빠졌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수영, 골프, 테니스 등의 운동을 생각해 보세요.
힘이 빠져야 실력자가 되고 프로가 되고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든 행동이든 내 힘이 빠지고 없어져야 프로가 되고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에 붙들린 사람만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목에 힘 들어가 있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 뜻을 무시하게 됩니다.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관심도 안 가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겸손해지기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을 영적인 교만이요, 어리석음이라고 말하지요.
여러분 외모의 겸손과 거룩함이 아니라 속사람의 겸손 영적인 힘 빠짐이 저와 여러분에게 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에스겔 선지자가 골짜기에 갔더니 그곳에는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사방을 다녀 보아도 온통 뼈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고 좋아 보이는 것 감탄이 나올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우리가 자주 쓰는 "비전" 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비전을 주십시오. 하나님의 비전을 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비전"이라는 글자가 붙은 행사들도 많고 표어들도 참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비전"을 갖는다는 것이 정말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골짜기에 버려져 있는 마른 뼈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늘 화려하고 대단한 엄청난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들을 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골짜기의 뼈들을 보게 하실 경우 현실을 보게 될 경우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실망을 합니다. 낙담을 합니다.
여러분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는 비전에 앞서서 먼저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이 먼저 입니다.
먼저 오늘 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 안의 속사람을 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간 골짜기는 뼈다귀만 널려 있는 골짜기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나 믿음이나 기쁨이 없었습니다.
절망과 염세주의만 가득해 있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런 우리의 모습을 바로 보는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며 겁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형편이구나 이런 처지이구나
우리 교회가 이런 형편이구나 이런 어려운 처지이구나
이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싫고 마음 불편합니까? 낙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게 마음 편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의 나를 세상을 교회를 분명히 알아야 하나님의 치유하시고 고치시는 은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3절을 보시죠.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뼈들을 보고 있는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질문을 던지십니다.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에스겔이 뼈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뼈들이 정말 살아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스겔이 보고 느꼈던 것은 그저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뼈들이 아주 많았고 심히 말라 있었다." 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생각도 했을 거예요.
"누구였을까? 왜 여기에 이 뼈들이 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에그 무서워라. 인생무상이로다. 나도 이렇게 되겠지.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오고 갔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런 에스겔에게 난데없이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에스겔아 에스겔아 네 생각에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우리의 관심사나 우리들의 흥미에 대해서 물어 보시면 신이 나겠는데 전혀 엉뚱한 것을 물어 보시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재미없어요?
여러분 비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까지 가져왔던 내 생각이나 내 입장이나 관심사가 바꾸어져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을 보게 되고 질문의식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입장이 예수님 믿은 다음 바꾸었습니까? 안 바뀌었습니까?
바꾸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꾸어져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숙이고 성장입니다. 그것이 믿음이 커 가는 일이요. 능력 받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신 질문을 잘 보세요.
"에스겔아 네 생각에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지금 오래되어 말라 버린 뼈들을 향해서 죽음이 아닌 생명을 말씀하십니다.
문제를 파헤치고 부정적인 것들을 들추어내어서 어두움에 대해서 죽음이나 절망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라 버린 뼈들을 보면서도 "살 수 있다"라고 소망과 꿈을 가지고 바라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각이고 입장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각이 이런 입장이 지금 나에게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지금 당장 어렵다고 실망하지는 않는지. 나의 형편과 처지가 어렵다고 낙심하고 낙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당장 교회가 작다고 어렵다고 낙담하고 소망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여러분 4절을 보시죠.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아 에스겔아 그 뼈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번)
여러분 얼마나 황당한 명령입니까?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뭔가 가능성 있는 대상이 전혀 아닌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 말씀을 들어라" 말하라고 하다니 놀랄 일 아닙니까? 황당한 일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보세요.
"모든 마른 뼈에게 말하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잘 골라서 그 중에서 가능성 있는 덜 마른 뼈를 찾아서 거기에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뼈들을 향해서 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불가능을 향하여 하나님이 시킨 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순종과 겸손은 지극히 아름다운 신앙의 높은 경지이며 수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뼈들에게 말하라고 하신 내용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뼈들은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에스겔 선지자가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뼈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불신자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분명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어려움 때문에 소망이 잃고 낙심하고 있는 교회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외치라고 말을 합니까?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대언이란, 내 해석, 내 생각을 첨가해서 이 시대에 맞게, 세상 흐름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하나님이 말하라는 그대로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뼈들을 향하여 선포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에스겔이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자 뼈들이 짝을 맞추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히고 사람의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생명은 없었습니다.
이때 다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생기가 들어가게 대언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생기가 들어가라고 대언하자 생기가 들어가고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진실로 기적중의 기적이 얼어났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기는 히브리어로 '루아흐'이며 헬라어로 '퓨뉴마'인데 원뜻은 바람, 영인데 여기서는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말합니다.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된 것처럼 생기는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죽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위에 마른 뼈 같이 죽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살아있는 것 같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며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살려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지역사회에서 또한 더 나아가 선교지에서 가는 곳마다 죽은 영혼들을 살려야 합니다.
이 지역과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주의 영으로 충만하기를 선포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시대의 상황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상황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상을 우리 모두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죽은 영혼들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선포할 때 여러분의 학교에 죽어가는 영혼이 여러분의 직장의 죽어가는 영혼이 그리고 이지역의 죽어가는 영혼이 하나님의 군대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비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저 되지 않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러분 마른 뼈를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백골 같이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라고 이 행복이 가득한 교회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이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마른 뼈들에게 '대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을 전하게 될 때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어 다시 사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아주 말라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다시 살아나서 "큰 군대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절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이곳에 세워주신 이유는 우리가 생기를 얻어 하나님의 군사로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키고 파숫군의 사명을 다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이 명령을 철저히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여러분의 학교에 죽어가는 마른 뼈들이 여러분 직장의 죽어가는 마른 뼈들이 여러분 가정의 죽어가는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이 일에 내가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른 뼈가 살아나는 기적을 우리 행복이 가득한 교회가 부흥되는 기적을 우리 모두가 체험하게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리영희 라는 37세 북한 여성의 순교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녀의 순교는 2000년 2월10일 12시 정각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에서 있었습니다.
장마당의 상점들을 모두 문을 닫게 하고 전 주민이 다 나와서 목격하도록 미리 알렸습니다.
그리고 처형당하는 이유를 남녀 당원 두 사람이 나와서 연극 식으로 해설하고 당과 조국을 배신하면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인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줍니다.
리영희 성도는 이미 고문으로 하반신은 마비되어 일어설 수가 없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이런 사람을 말뚝에 새끼줄로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묶었습니다.
처형당하는 사람의 눈은 헝겊으로 가려졌고 부서진 다리로는 상체를 버틸 수가 없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격수들에게 조준을 명하는 장교가 "발사준비!" 할 때 사형을 기다리던 리영희 성도는 "예수를 믿으시오!" "주여!"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발사!" 하는 소리에 더 이상 리영희 성도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저격수의 총성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3명의 저격수가 머리에 4발 가슴에 4발 배에 4발을 쏘아서 온몸에 살점이 터지고 심장에서 터진 피는 구경 군들에게까지 튀었고 땅은 순교자의 피로 검붉게 물들었습니다.
시체는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반사범에게는 세발씩을 쏨)

위의 글은 복음을 전하다 처형당하는 장면을 같은 동료 전도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생생하게 전한 보고중의 일부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 대언하는 회복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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