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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게도냐인의 환상 / 행 1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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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교 자 :손상률 목사 (후암교회)
† 설교제목 :마게도냐인의 환상
† 성경본문 :사도행전 16:6~15


세기의 전도자 바울은 그가 평생에 이루어 놓은 선교의 업적을 기록하면서 그 이면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깊으신 배려와 간섭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때 되어진 사건으로써 그가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배경을 소개한 것입니다. 전 후 네 차례에 걸쳐 해외 선교를 했던 바울은 그 중에도 두 번째 여행 때 되어진 극적인 사건을 매우 인상깊게 그려놓았습니다. 아시아 사람인 그가 에게해를 건너서 유럽으로 원정을 가게 된 것은 전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어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것은 또한 아시아가 발원지인 기독교가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되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세계 문화사에 있어서 그 판도를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의 초점은 마게도냐인의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눈에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여주셨고, 그 귀로는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보여진 마게도냐인의 환상은 자기의 계획을 성취코자 하는 하나님의 비상 수단인 것이며, 동시에 이 땅 위에서 주님의 교회가 전개하는 하나님 나라운동의 비젼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Ⅰ. 인위의 장벽을 허물게 하는 것입니다.

원대하신 하나님의 역사 경영에 있어서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들의 계획 때문에 방해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의도에 상관없이 자기의 신앙이나 열심만 가지고 어떤 일을 수행하려 할 때 성공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그르쳐 놓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16:24). 언제나 주님의 기쁘신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를 비우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됩니다.

본문 말씀 6-7절에 보면 바울의 의도하는 일에 성령께서 그것을 막으시고 차단시켜 버립니다. 그리고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게 하였습니다(9-10절). 이는 바울의 선교사역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것으로서 전자는 소극적으로 후자는 적극적으로 역사 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거리낌이 되는 인간적인 장벽을 허물어야됩니다.


(1) 지역의 장벽입니다.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아시아에서 전도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가고자 하는 비두니아는 갈라디아와 인접한 곳으로써 소아시아 내륙지방에 있는 지명입니다. 바울이 이곳에서 전도하고자 애를 쓰게 된 것은 아마 지방색에 대한 그의 본심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고 바울이 공부하여 자란 곳 이스라엘이 아시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출생지인 길리기아 다소는 오늘날 터키의 남쪽에 있는 도시로 그 당시에는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요 경제적으로도 매우 번영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그가 예루살렘으로 유학 가서 랍비 가말리엘에게 학문을 배운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행22:3).

이처럼 자기가 흠모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곳에서 전도하고 활동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오대양 육대주 어디에나 구별 없이 그가 영광을 받아야 될 곳이며 복음이 펼쳐져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인류가 온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며(창1:28), 또한 어디에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기를 원하십니다(마28:18-20).


(2) 종족의 장벽입니다.

어릴 때부터 유대주의 율법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바울은 그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동족에 대한 관념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였고(갈2:8), 유대인 율법자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기도 하였지만(행14:19), 그래도 그의 마음 속에는 유대인으로서 민족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 로마서 9:3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6:1-4에 보면 헬라인을 아버지로 둔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사도와 장로의 규례를 지키게 한 것도 동족을 의식하는 배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 없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롬10:13).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유대인이 아닌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3) 사고의 장벽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고후5:17). 은혜를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고백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개성과 철학에 따라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경륜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의 계획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몰아붙일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한 때는 자기 열심만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박멸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 인줄 생각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갔습니다. 결국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손에 붙들려 그 방향을 돌려놓고 말았습니다(행9:1-9).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임을 받는 사람은 모든 인간적인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딤전1:13-14).


Ⅱ. 성령의 주도하심에 이끌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사람이 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행1:8).


(1) 선교의 주체는 성령입니다.

본문 말씀 6절에는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더라고 말했습니다. 7절에는 예수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9절에는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볼 때 바울의 전도 사역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요14:25).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려 할 때 그 전개되는 과정을 통하여 성령이 개입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길이 막히고 또 한편 전혀 생각지도 않는 쪽으로 길이 열리며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등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아니했던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 임금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16:1).


(2)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불러서 그의 뜻을 알게 하실 때는 그 사람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앞으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을 구출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에게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하며 한사코 사양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통해서 이적을 행하게 하시며 모든 능력의 실제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였습니다(출4:1-7). 스가랴 4:6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다른 일들을 재물이나 권력이나 기술이나 사람이 가진 조건만으로 성사될 수 있어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신령한 일은 성령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평생 동안 이루어 놓은 실적들을 돌아보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빌4:13).


(3) 성령의 뜻을 수용하여야됩니다.

본문 말씀 10절에는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가에 민감하여야됩니다(롬12: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는 계시 사역의 실제가 육신의 눈이나 귀만으로 감지되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눈과 귀로써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2:14). 하나님께서 간혹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시거나 또는 통상적인 삶 가운데서 그의 의도를 살피도록 작용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마5:8). 깨어 있는 성도는 항상 열려져 있는 마음으로 계시의 환상을 분별하는 자이며, 또한 그것을 실천하므로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Ⅲ. 웅대한 하나님 나라의 환상입니다.

어느 때에나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그 일에 수종 드는 사람은 자기 속에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품고 사는 자입니다. 구약시대의 경우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사야는 동정녀의 몸에서 나시게 될 임마누엘의 예언을 통하여 메시야의 환상을 나타내었습니다(사7:14). 그는 또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고 하였는데(사60:22), 이는 멀리 신약교회가 지니고 있는 선교의 비젼이기도 합니다.

여기 본문 성경에 나타나는 바울의 경우도 세계 선교의 환상을 품고 그 뜻을 펼쳐나갔던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웅대한 선교의 비전을 구상하셨고 이를 지상 교회를 통하여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환상을 주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창조 주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게 하는 일을 그의 역사 경영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죄와 구원의 도리를 전파하고 그 열매를 거두게 하는 일을 자기 교회의 사명으로 맡기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1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놓은(요19:30)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지고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상대하여 믿어 구원 얻게 하는 이 사역이 바로 교회가 안고 있는 선교적 사명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하신 선교적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교회는 복음의 환상을 가진 교회입니다.

(2) 하나님의 전략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말하고 있으나(엡1:4-5), 그 방법은 선교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선택하시고 이들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의와 공도의 표본으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창18:19). 하나님의 선교 전략에 있어서 민족적으로는 이스라엘에서부터 모든 족속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며(마10:6), 지역적으로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로 확대하게 하신 것입니다(행1:8).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기 선교의 과정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받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복음의 불길이 사마리아를 거쳐(행8:14) 시리아의 안디옥으로 번져갔습니다(행11:19-26). 사도행전 13:3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에게 안수하여 최초의 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그들이 제 1차 전도 여행을 통하여 소아시아 일대를 석권하였습니다(행14:1-28). 그 후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때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이시며 그로 하여금 에게해를 건너서 유럽에 상륙하도록 작용하였습니다.
본문 말씀 11-12절에 보면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복음의 행진이 유럽의 첫성을 교두보로 삼아 세계 심장인 로마를 점령한 후 세계를 석권하게 하였습니다. 곧 시간적으로는 세상 끝까지, 공간적으로는 온 세계 어느 곳이나, 그리고 대상은 모든 족속이라는 하나님의 전략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3) 신비로운 결과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롬1:16). 그는 또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했습니다(롬1:17). 이는 복음의 신비로운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불가사의한 신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여준 하나님의 싸인에 따라 빌립보에 들어간 바울과 그 일행은 그곳에서 전개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크게 놀라고 기뻐하였습니다. 먼저 바울의 설교를 들은 루디아가 예수를 믿고 그 집이 세례를 받았습니다(15절). 또 저자거리에서 귀신들려 점하는 소녀가 예수를 믿었습니다(18절).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갇혀 있는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릴 때 간수가 무릎을 꿇면서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하고 회개하였습니다(30절). 결국 그도 회개하고 주 예수를 영접하여 저와 그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구라파의 모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신비로운 능력을 행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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