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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싸우는 사람 / 엡 6:10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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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설 교 자 / 고신일목사
설교장소 / 기둥교회
제  목 / 싸우는 사람
성경본문 / 에베소서 6장 10~20절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6장 10~20절) 

<목회기도>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세상이 사람들의 욕심과 죄로 인해
'보시기에 좋지 않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허물과 죄 때문임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평안과 화목 없는 세상에 평안을 주시옵소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먼저 화목하고 평안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든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새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평안, 세상이 줄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을 소유하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들어 고통당하는 이들,
전쟁과 죽음의 공포가 있는 이 때에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테러의 공포로 불안한 이 때 외국에 있는 기둥교회식구들…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함께 계실줄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옆의 분들에게 "평안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라고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전쟁은 '무력에 의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투쟁'입니다.

▶ 프러시아의 군사이론가이자 장군이었던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On War]에서,
"전쟁이란 '적을 굴복시켜 자기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일종의 폭력행위'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세익스피어는 [헨리 4세]라는 책에서 전쟁을 '지옥의 아들'이라고 불렀고,
▶ 루즈벨트는 '전염병',
▶ 간디는 '깡패주의의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전쟁을 표현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아들 가인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살인이고…, 목적성취, 자기 만족을 위한 폭력, 전쟁 행위였습니다.
그 후 인류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여러 가지 갈등이 복잡하게 얽힘으로
전쟁은 끊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의 한 통계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 5,560년 동안에 14,530회의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는 연평균 2.6회의 전쟁이 지구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찬성하는 자나 반대하는 자 모두 전쟁의 비극적인 참상은 인정합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6·25 동란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으며
그 분단의 상처는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쟁의 참상은 너무 오래 갑니다. 적어도 최하 50년 이상 지나야 복구될까말까 합니다.
뉴스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자녀를 잃고, 부모를 잃게 된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한번 비춰주지만, 그 남아 있는 가족의 비극적인 현실은 그것으로 끝나버리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의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비극적인 전쟁을 왜 해야 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도 모르면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만들어온 핵폭탄은
지구를 41번 완전히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날마다 3만 5천여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전쟁을 위해 전 세계가 준비하는 돈은 연간 5천 5백억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5천 5백억 달러는 1달러를 1250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682조원이라고 합니다.(682조는 682에 0이 12개 붙습니다.)
미국의 경우, 교육비는 한 어린이에 2백 60달러밖에 안 쓰면서
군인 한 명을 위해서는 1만 6천 달러를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이 있도록 세상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넉넉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전쟁을 위해 비축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가 쓰는 군사비를 조금씩만 줄여도
이 땅 위에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의 전쟁
 
성경에는 '전쟁'이란 단어가 구약에 78회, 신약에 7회, 모두 85회나 등장하고
구약에만도 130여 회의 전쟁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은 대개 전쟁을 '하나님의 싸움',
즉 '거룩한 싸움(성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싸움에 직접 관여하셔서 이스라엘을 도와 주신 전쟁도 있습니다.
• 출애굽기 17장 16절에 따르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출17:16)
• 민수기 21장 14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전쟁기사는
  이스라엘을 통한 전쟁의 근본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민21:14)
• 사사시대 여장부 드보라는 전쟁에 가담치 않은 자를 저주하고
  전쟁에서 싸우는 것이 여호와를 도우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삿5:23).
• 사무엘상 25장 28절에서 아비가일은
  다윗의 싸움이 곧 하나님의 싸움이라고 했으며,
• 다윗은 골리앗을 칠 때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운다고 고백하였습니다(삼상 17:45).
• 여호수아 10장 11절에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우박을 내려쳐서 원수들을 죽인 수가
  이스라엘 칼에 죽은 수보다 더 많았다고 증거합니다.
이 사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적인 계시가 전쟁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쟁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도와주심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전쟁을 위하여 이스라엘은
• 자신들을 성결케 하고(수3:5, 사13:3),
• 준비해야 했습니다(수3:9).
• 또한 하나님을 위한 전쟁은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용사들은 심신을 정결하게 유지해야 했습니다(신23:10).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전쟁 중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전쟁하며
원수들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외면하시고 도움을 거절하셨습니다.
 
성경은 전쟁을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이나 교만한 이방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했으며, 어떤 때는 전쟁에서 믿음에 대한 시험과
시대의 종말에 대한 표징을 읽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평화는 하늘에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성을 지니고 있고
가족에 대한 의무와 이웃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녕을 지키려면 범법자들을 제재해야 하고
의로운 전쟁을 치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전쟁 그 자체가 정당하거나 최선은 아니지만 침략자를 막아내거나
약자보호…등 '의로운 전쟁'은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우리의 적들이 가정을 파괴하고 재산을 약탈하고
가족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신앙생활 하는 사람으로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들에게로 가서 그들의 불의함을 합리적으로 일깨워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정당하고 올바른 처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입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적들이 매우 무자비하고 양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부도덕한 자들일 경우,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집을 불사르고 우리의 자녀를 죽이고
우리의 아내와 딸을 능욕하는 것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옵소서~"하면서 한숨만 내쉬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제기했던 사람은 어거스틴입니다.
지상의 나라 속에 영원한 평화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느낀 어거스틴은
<참된 평화는 하늘에만 있다>고 하며 
의로운 전쟁을 해야 할 때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의로운 전쟁의 규범을 네 가지로 재정하였습니다.
1) 의로운 전쟁은 그 의도에 있어서 정당한 것이라야 한다.
  즉 그 의도가 평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야 한다.
2) 의로운 전쟁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3) 의로운 전쟁은 그 성격에 있어서 정당해야 한다.
  그 성격은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4) 의로운 전쟁은 정당한 공적인 권위자인 국가가 집행하고 
  그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어거스틴의 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어거스틴의 '의로운 전쟁'이론은
최근까지 교회의 전쟁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가 되었습니다.
 
교만과 불타는 야심을 가진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전쟁의 비극은 이 땅에서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피는 더 많은 피를 부르고
전쟁은 더 큰 참화를 야기 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우리 모든 인간이 서로 화목하고
평화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일은…
그 목적이나 동기의 정당성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전쟁도
결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폭력이나 살상의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경고하셨으며,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랑의 선으로> <미움의 악을> 이겨야 한다고 권고하셨습니다.
 
사실상 전쟁 목적의 정당성 여부는
이해 당사국에 따라 정반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이라크전쟁도 미국/영국/호주…등
연합군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라크는 망해야 되고,
이라크 지도자는 축출되거나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라크 입장에서 볼 때는 자기 나라의 안정을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며 자기 땅을 쳐들어 온 적군을
가만히 보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한쪽 편의 정의로만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승자의 입장에서만 평가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전쟁이 한창인 요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군인은 반드시 승리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군대도, 어떤 군대도…  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인은 반드시 이기기 위해 존재합니다.
다만 전쟁하는 군인으로서 힘든 것은, '왜' 하는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사병은 장교가 시키는 대로 "뛰어라, 자라, 먹어라, 쏴라, 기다리라"는
명령대로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군인은 시키는 대로 하기만 되지만 그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의 확실한 목적은 '가장 높은 사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절대 순종, 절대 복종, 이것이 군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전쟁중인 군인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표현합니다(딤후2:3).
크리스챤 생활은 일종의 전쟁입니다.
모든 크리스챤은 자기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에 임한 병사로서 크리스챤은
전신갑주(영어 성경에는 whole armor)의 무장이 필요한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 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무기와 무장의 내용까지 설명하였습니다.
▶ "진리"라고 불리우는 허리띠,
▶ "정의"라고 불리우는 흉배,
▶ "평화"의 복음이라고 불리우는 군화,
▶ "신앙"이라고 불리우는 방패,
▶ "구원"이라고 불리우는 투구,
▶ "성령"이라고 불리우는 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고 바울 자신이 주석을 붙였다) 등의
무장을 말합니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면
1. 주안에서 강건하라고 했습니다(엡6:10).
 
바울은
"믿는 자들은 주 안에서와 하나님의 힘으로 강건하여지라"고 권고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마귀를 이길만한 능력이 없기에
우리는 다른 힘의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가 함께 쓰여졌음은
주님 안에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서 강건하여 질 수 있습니다.
 
▶ 어떻게 강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된다고 했습니다(6:11전반)
'입으라'는 헬라어 명령형은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항상 입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왜 그래야 합니까 -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기 위해서입니다(6:11후반~13).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마귀 혹은 적의 음모나 전술을 대적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궤계>라는 말은 "남을 간교하게 속이는 꾀"입니다.
마귀들이 우리를 간교하게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망하게 합니다.
 
 
2. 14절에 보면 "서라" 했습니다.
 
'서라'라는 명령은 긴급성을 나타냅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서서 전신갑주를 입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6:14~16)
 
▶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belt of truth buckled)
로마 군인은 갑옷을 입기 전에 허리에 허리띠를 띱니다.
허리띠는
- 옷을 정돈하여 바르게 입게 하고, 단정하게 하고
- 무기를 거는 데도 필요합니다.
- 허리띠는 허리에 힘을 주는 역할도 해서
병사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해 주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진리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는 믿는 자의 하나님 앞에 성실함과 신실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실함과 신실함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면, 진리의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안에서 살면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예수님 이름"으로 하게 됩니다(골3:17).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게 됩니다(고전10:31).
그래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는 것입니다.
 
▶ 의의 흉배를 붙이고(breastplate of righteousness in place)
'흉배'는 목에서 허벅다리까지 가리는 것으로
생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가슴과 폐를 보호하는 굵은 가죽이나
쇠나 구리등으로 만든 것을 가슴에 졸라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했으니
흉배(胸背)는 믿음과 사랑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군인의 흉배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그의 가슴을 보호해 주듯이,
의로운 삶(롬6:13, 14:17)은 믿는 자의 마음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줍니다(참조, 사59:17, 약4:7).
 
▶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feet fitted)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절),
신은 군인이 갖추어야 할 장비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군화는 군인들의 훈련과 활동에 필요하며 장애물로부터 발을 보호합니다.
 
그리스도인 군병이 신는 신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인한 평안은 세상의 환란과 역경에도 담대하게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있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평안하게 찬송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 "평안의 복음"이란 말은,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케 된 복음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여 마음에 평강을 소유한 자에게는
마귀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이것이 마귀를 막는 가장 안전한 방위태세입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 말하기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 "신을 신는다"는 말은 체중을 그 신위에 올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복음의 터 위에 몸을 올려 놓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터 위에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발이 위험합니다.
 
▶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take up the shield of faith)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16절)고 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마귀와 영적 전투에서 방패가 될 수 있는 것,
마귀를 막아 낼 수 있는 것은 방패입니다.
그 방패가 곧 '믿음'입니다.
 
흉배는 가슴만을 보호하지만, 방패는 전신을 보호하듯이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훌륭한 장비인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면 "모든 화전을 소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전은 불화살을 말합니다.
악한 세력은 우리의 양심에 악의 불을 붙이는 세상적인 유혹,
즉 의심, 불순종, 탐욕 등을 말하는데,
믿음은 이러한 것들을 무력하게 할 수 있는 방패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유로든지, 마음이 상했든지, 어떤 이유로 믿음이 떨어졌든지
믿음이 떨어지는 것은 방패를 손에서 놓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에게 자신을 내놓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믿음을 잘 지키시기 발바니다.
 
 
3. 17절에 보면 "가지라"했습니다.
 
'가지라'는 명령은 14절의 "서라"는 명령형과 평행합니다.
▶ 투구와 검은 군인이 갖출 마지막 두 가지 무기입니다.
무겁고 불편한 투구는 위험에 처했을 때만 쓰는 것입니다.
머리에 투구를 씀으로서 안정감을 주듯이,
구원의 투구는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안정감을 의미하며
"구원의 소망의 투구"(살전5:8)를 의미합니다.
 
영적 군사에게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투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성도는 투구 없이 전쟁에 임하는 병사와 같아서
신앙생활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사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확신이 분명히 있으면 마귀의 공격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확신이 없을 때 마귀가 틈을 타는 것입니다.
 
로마 군인은 손에, 유일한 공격 무기인 "검"을 듭니다.
그것은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말씀의 검>을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합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가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필요할 때마다 말씀(역동적인 말씀)을 통해 역사해 주십니다.
(엡5:26, 롬10:8,17, 벧전1:25)
우리가 말씀의 터 위에 살면 우리의 삶속에서
생각지 않은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이 말씀의 검이 되어서 사탄이 우리를 유혹해도
담대하게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아무리 잘못되어 가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이 세상의 교회들이, 이 기둥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18절에 보면 "기도하라", "깨어 있으라"했습니다.
 
18절에 보면 "기도하라"와 "깨어있으라"는 명령형의 말씀이 있습니다.
군인은 자면 안됩니다. 아니 군인들도 잡니다.
그러나 반드시 보초병이 있어서 보초를 섭니다.
다른 동료들이 잘 수 있도록 교대로 근무해 가며 보초를 섭니다.
그래서 자는 것 같지만 안 잡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 근신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항상 깨어 있어 정신차리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18절의 "모든 기도와 간구"는 기도의 일관성과 집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직한 군사들과 같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4. 19~20절에 보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19~20절에 보면 바울은 자기로 하여금 복음의 비밀을 알리게 하도록
자기를 위해 특별히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은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기도하고 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교만하지 말고 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자신이 기도 하지 않으면서 기도 부탁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히 도움을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전쟁을 하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싸움이라는 것은 불신과 싸우는 것이요
가난, 비굴함, 억압… 증오와 게으름과 교만과 이기심,
그리고 허영, 거짓과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 싸움에서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을 떨어뜨리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 중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귀의 장난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두 사람 중 열 사람은 비관적인 보고를 합니다.
작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큰 아낙 자손들을 보고 기가 질렸습니다.
그래서 "아낙 자손들에 비하면 저희는 메뚜기와 같더라"고 보고합니다.
이것을 '메뚜기 콤플렉스(grasshopper complex)'라고 합니다.
여기, 여러분 가운데도 메뚜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난 안돼, 난 작아, 난 못해"라고 단정짓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외칩니다.
민수기 14장 8~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we will swallow them up."-NIV)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메뚜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이 세상에 살면서 고생스러운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할 걱정거리,
고통스러운 일,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나만, 우리 가정만' 겪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누구다 다 겪습니다.
살다가 죽음을 맞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수하여 오랫동안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욕망이 더 큽니다.
심지어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를 잡아먹고
몸에 좋다면 종류를 불사하고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약과 영양식을 먹어도 결국 인간은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죽을 인생을 고생 안하고 편안하고 쉽게 살면
좋으련만… 산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려 해도 세상이 우리를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우리를 살게 하시고
전쟁터와 같은 이 땅에서 싸움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싸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선한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쉽고 악한 방법이 많은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직 "선한 싸움"을 하라십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볼 때 하나님이 가르쳐 준 싸움 방법으로는
도대체 세상 사람을 이길 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와 타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반칙과 부정한 방법을 보면서도
우리에게는 규정대로 싸우라고 하십니다.
억울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정당하심은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시적인 승리를 했더라도
하나님은 그 기쁨이 영원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당장은 불의가 이기는 것 같고, 당장은 못된 사람이 잘 사는 것 같아도
그러나 결국 '정의'가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택하시겠습니까?
비록 손해나고 눈물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한 싸움을 하시렵니까?
아니면 손해나는 것 같아서 세상 방법대로 싸우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생명의 나라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한 싸움이,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싸우며 사는 여러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실하고 부끄럼 없는 선한 싸움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지만, 우리에게 선한 싸움만 싸우라고 하신 주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능히 이기는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갈등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타협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사는 이기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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