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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대 확신을 가져라 / 엡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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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확신을 가져라 (엡 2:4-10)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1.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확신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고,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은총 속에서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엡2:4에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랑이 바로 요3:16에 나타난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요일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하였습니다. 롬5:8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확실하게 보여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생명까지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2.하나님이 내게 큰 복을 주신다는 확신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이 내게 큰 복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 큰 복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큰 복을 주십니다. 갈3:29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내게 큰 복을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지 않겠느냐”하였습니다. 요10:10에 우리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엡3:20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내게 큰 복을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신다는 확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쓰시기 위함입니다. 엡2:10에“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 곧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 하였습니다. 사43:10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증인으로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마28:19에서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하셨습니다. 행1:8에선 “너희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주님이 갈릴리의 어부들을 사도로 쓰심 같이, 핍박자 사울을 사도 바울로 쓰심같이 우리도 복음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환난과 시련이 있어도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 같이 쓰십니다(욥23:10). 하나님이 나를 크게 쓰신다는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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