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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일생 ⑥ : 자기과신(自己過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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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베드로의 일생 ⑥ : 자기과신(自己過信)
< 본 문 > 마17:1~8

오늘은 베드로의 일생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막 마치고 제자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이 머지 않아 예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펄쩍 뛰면서 절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요?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맙니다. 성경에서 3은 완전수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얼떨결에 실수한 게 아니라, 완전한 배반이란 뜻입니다. 그것도 위협 가운데 부인한 게 아닙니다. 어린 비자(=여종) 앞에서 부인한 겁니다. 더 황당한 것은 세 번째는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마26:74 “... 저(=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 작심삼일(作心三日)도 아니고 작심 3 시간이 된 꼴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어처구니 없습니까? 명색이 수제자인데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아마 베드러 입장에서 보면 이 배반 사건은 그의 일생 일대에 최악의 사건일 겁니다.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적인 사건일 겁니다. 만일 비디오 촬영한 것을 편집하듯이 자신의 생애 기록을 편집할 수 있다면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은 대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건을 4 복음서에 전부 기록해 놓았습니다. 복음서를 연구해 보면 4복음서 전부에 기록된 사건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 자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았지만 기억할 수밖에 없고, 아니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이라는 겁니다. 아픈 기억이지만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참 신앙이 무엇인가, 성숙한 신앙이 무엇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평생에 큰 교훈이 된 사건입니다.

이것은 오늘 성경을 읽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의 배반과 실패는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각자가 이 말씀을 베드로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삼고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무쪼록 우리의 신앙이 바르고 성숙한 것으로 정립되어 승리하는 사람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 베드로의 실패와 그 원인 : 자기 과신(교만)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배반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런 사실을 미리 예언해 주십니다. 31절. 이 말씀은 슥13:7의 예언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실까? 그들이 예수님을 배반하더라도 나중에 회개할 기회를 주시겠다는 암시입니다.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시면 갈리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씀도 주십니다. 32절. 예수님은 그들이 비록 배반하겠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임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중에 신앙을 회복할 것을 당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신들이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던 일입니다.

베드로의 태도를 보면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33절. “ ...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설사 다른 제자들이 배반한다 해도 자기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나는’이란 말이 원문을 보면 헬라어로 ‘에고’(εψω)라고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는 어법 상 동사 한 단어로 인칭 주어까지 포함합니다. 그런데 굳이 ‘에고(εψω)’라는 단어를 첨부한 것은 그만큼 확실하게 강조한 것으로 그만큼 베드로는 자신만만했던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한번 예언합니다. 34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cf. 막14:30 “ ...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 ” → 새벽 1시 30분쯤을 가리킴. 당시 사람들은 닭이 세 번 우는데 12:30, 1:30, 2:30에 각각 운다고 생각했음.)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는데도 막무가내입니다. 35절. “ ...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 ” 요13:37 보면 베드로가 더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여러분, 이토록 확실하게 호언장담하고 거듭 맹세까지 했는데 어찌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을까요? 장담한 것은 괜히 해 본 소리였나요? 아닙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죽을 것이라고 여전히 믿지 않았지만, 혹시 죽는다 할지라도 자기는 함께 죽을 수도 있을 거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실패하게 된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자기 과신 때문입니다. 자신만만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그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참 신앙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꿇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누이 말씀합니다. 자기를 믿는 것은 교만이고, 그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28: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 ” 사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예> 현대인들이 건강에 관심 많은데 ... 흔히 지방간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적 건강을 위해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지방심(脂肪心)입니다. 시119: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 ”
예> 사울왕 - 맨 처음 왕으로 세움 받을 때는 겸손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왕으로 추대하려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행구 뒤에 가서 숨어 있었습니다.(삼상10:22) 그런데 나중에 얼마나 교만한지 자기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심지어는 사무엘의 제사장 권한까지 침해합니다.(삼상13:8~15)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폐위시켜 버렸고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을 원한다면 자기 과신을 버려야 됩니다. 교만을 버려야 됩니다. 베드로는 어쩌면 자기가 수제자요, 예수님의 칭찬도 제일 많이 받았으니까 자기가 대단한 줄 알았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입성 시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호산나 찬송을 부르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아마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될 줄 알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는 제2인자가 된 줄로 착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완장 찬 사람처럼 우쭐댄 겁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오해한 겁니다.

예> 나귀의 착각(寓話) - 예루살렘 입성 시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는데 ... 군중들이 환영하고, 환호성 지르고, ... 흥분한 나귀가 우쭐댑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내리니까 아무도 자기를 봐주지 않습니다. “이상하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죠.

우리는 착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갖고 있는 소유나 조건, 직분이나 신앙 연조 등이 내 신앙과 내 인생의 수준인 줄 착각하면 안됩니다.
약1:9~10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우리는 결코 착각해서 자기를 과신하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그러면 큰일납니다.

[2] 참 신앙․성숙한 신앙 : 하나님 의뢰(겸손)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기 과신의 우를 범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의뢰해야 됩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우리 신앙이 성숙해지면 성숙해질수록 더욱 그래야 됩니다. 신앙의 겸손은 겉 모양만 그럴 듯 한 게 아닙니다. 마음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사랑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태도가 곧 겸손입니다.

이러한 겸손은 다음의 몇 가지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① 연약함 고백 : 베드로는 자기가 무엇쯤 되는 줄 알았습니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게 탈입니다. 눅5:8의 고백을 잊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만선이 되었을 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고 부르짖었던 그 고백말입니다. “ ...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되는데, 잊지 말아야 되는데 ... 이것을 잊어버린 순간 그는 교만했고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바울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면서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신앙의 연조가 길어질수록,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오히려 더 그랬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딤전1:15 “ ...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 그의 이름이 바뀐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신앙 자세가 유지되었기에 바울은 일평생 흔들림 없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 오드리 햅번 - 영화 「로마의 휴일」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배우 -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말년에 UNICEF(국제아동구호기금) 친선 대사로 수단, 에디오피아, 소말리아 등 방문하며 기아 어린이 구호 활동. 세계 언론이 지상의 천사라고 격찬 ...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렇게 고백 ... “나는 하나님만 아시는 비천한 여인입니다. 어린 시절 썩은 감자와 풀뿌리를 먹으며 연명하던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겸손함이 그녀를 천사로 만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세월이 갈수록, 신앙 연조가 더해지고 직분이 중해질수록,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소유가 많아질수록 더욱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겸손히 죄인임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을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의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말씀에 순종 :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귀에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조금이라도 새겨들었다면 주님을 의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이 겸손한가 교만한가는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동안 겸손한 겁니다. 그리고 그 동안만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 출16: 광야에서 만나 내려주시는데 ... - 말씀에 순종한 사람(매일 하루분 거둘 것, 인식일 전날은 2일분 거둘 것)은 풍성하게 먹었고, 불순종한 사람은 썩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③ 기도의 실천 : 베드로는 자기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주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기도를 등한히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피땀흘려 기도하고 계신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이처럼 기도하지 않고 자신만 의지하던 베드로는 마침내 재판정에서 주님이 심문을 받는 바로 그 곁에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며 배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제아무리 잘난 척 해도 이렇게 무력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합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베드로가 후일 뭐라고 말씀합니까?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예> 행3:1 이하 보면 제9시 기도 시간에 요한과 함께 성전에 가던 베드로 -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놀라운 기적! 어떻게 가능했나요? 행3:6 “ ...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자신의 의는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증거합니다.
멋진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는 동안만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늘 깨어 기도할 수 잇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베드로는 자기를 과신하다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일생 일대의 치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실패의 경험을 거울삼아 후일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실패의 경험을 하고 배우지 말고 말씀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잘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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